3편
◇ 김정일-베일에 감춰진 걸 풀다
■ 김정일-베일에 감춰진 걸 풀다(처형 성혜랑의 고백 3부)
일본 태생의 재일교포 댄서 출신인 고영희와 김정일의 관계는 성혜림에게 있어서 더욱 큰 충격이었습니다. 고영희는 그 후 성혜림으로부터 김정일의사랑을 빼앗게 됩니다. 고영희는 결국 김정일의 여러 아내 중의 한 사람이 되는데, 김정일이 성혜림과의 관계처럼, 고영희와의 결혼을 공식화하려고 했는지 아닌지 여부는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김정일은 세 명의 아내 누구하고도 갈이 공식석상에 나타난 일이 없으며, 따라서 아무에게도 '퍼스트레이디'의 확실한 지위를 안겨주지 않았습니다.그 대신 그 역할은 정치적으로 강력한 위치에 있는김정일의 누이동생 김경희가 맡아서 했습니다.
성혜랑은 동생의 남편인 김정일이 아주 상냥하고붙임성 있으며, 상대하는 사람에 대해 자세히 캐묻는 호기심도 갖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김정일은 상대하는 사람의 신상에 대해, 또 그 사람의 사상과 의견에 대해 꼼꼼하게 묻는다. 그는 마음이 내키기만 하면 남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재간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 일에 깊이 빠지는 그의 호기심은 예술에 대한 그의 집념에서도 잘 드러났습니다. 성혜랑에 의하면, 김정일은 엄청난 양의 영화 필름과 음악 레코드를 개인적으로 수집해 놓았으며, 장서도 1만 권에서 2만 권에 이르는데 그 대부분은 한때 신문사편집간부였던 성혜랑의 어머니 김원주가 마련한
것이라고 합니다.
김정일의 식도락 또한 유명합니다. 그는 특히 두 가지 일본요리, 즉 스키야끼와 철판구이를 좋아했습니다. 젊었을 때는 테니스를 아주 즐겼으나, 몸이점점 비대해지자 나중에는 건강을 염려하여 매일수영장을 몇 번 왕복하는 운동을 하게 되었다고 성혜랑은 말했습니다.
가정인으로서의 김정일에 대해 언급하면서, 성혜랑은 그가 어린 아들을 무척 귀여워했다고 강조합니다. 아들 정남이 아주 어렸을 때, 김정일은 어린것을 등에 없고 참을성 있게 그를 어르며 잠들게 하곤 했다 합니다.
정남이 성장하면서, 김정일은 어린 자식이 격리된저택에 갇혀 지내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장애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점점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동 평양에 있는 집과 청삼동에
있는 집을 번갈아 옮겨다녔다"고 성혜랑은 말합니다. 김정남에게는 환경의 변화를 위해 전지가 필요했고, 밖에 나다닐 수 없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장애를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김정일은 성혜랑 자매가 그의 아들을 데리고 제네바와 모스크바에 있는 저택으로 여행을 나가도록허용함으로써 약간의 행동 자유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의 다정다감한 기질은 괴팍하기도
했고, 어찌 보면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성혜랑은
언젠가 김정일이 사냥을 마치고 흥분된 모습으로집에 돌아왔을 때의 일을 기억합니다. 황급하게 집안으로 들어온 김정일은 곧 어느 지방병원에 전화를 걸게 하더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어미와 새끼가 다 무사하냐고 물었습니다.
김정일이 사연을 이야기 할 때까지 모두들 당황한표정으로 마음 산란해진 김정일을 쳐다보았다 합니다. 사냥을 하면서 실수로 새끼를 밴 사슴을 쏘았고, 그러자 순간적으로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미사슴과 뱃속의 새끼를 급히 병원으로 옮겼는데, 새끼 사슴은 산부인과 병동의 보육기에서 보호를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김정일의 난폭한 감정 폭발은 그의 주변 사람들을늘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성혜랑은 이에 관해 회고록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김정일은 버림을 받았기 때문에 생명을 잃은 사람들을 나는 알고 있다.
그의 미움을 산다는 것은, 인생의 끝장. 때로는 죽음까지를 의미했다."
김정일의 가족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김정일은 아들 정남이 자기가 허락하지 않은 여자친구와 같이 있는 것을 목격하자, 정남과 그의 생모 성혜림 그리고 이모 성혜랑이 같이 살고 있는 집에식량공급을 중단하도록 명령했으며, 정남을 북한의 악명 높은 탄광에 보내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성혜랑은 다른 식구들과 같이 무릎을 꿇고 10대의어린 정남을 용서해달라고 애원했던 일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김정일은 결국 마음이 누그러졌지만, 본인은 그 후 이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2개월 후 김정일은 자신이 정기적인 식량공급의
중단을 명령해 놓고 이를 잊어버렸던지 왜 식량공급을 신청하지 않느냐고 식구들을 야단쳤다 합니다.
김정일은 자기가 배신당하거나 기만당했다고 생각할 때 가장 위험한 심기에 빠진다 합니다. "그는 거짓말하는 사람을 아주 싫어합니다. 그가 제일 화내는 것이 바로 거짓말이다"라고 성혜랑은 말합니다. 1980년 성혜랑은 김정일의 허락 없이 헬싱키로 쇼핑여행을 갔었다 합니다.
다른 북한사람 같았으면 그보다 가벼운 잘못을 저질러도 체포됐을 것입니다. 평양으로 돌아오자, 성혜랑은 강제노동수용소로 추방될 날이 임박했다는 예감이 들어 짐을 쌌습니다.
김정일은, 이미 잘 알고 있으면서도, 성혜랑에게
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사실대로 김정일에게 말하였더니, 그의 마음이 누그러졌다 합니다. 그리하여 성혜랑은 계속 집에 남아있을 수 있었습니다.
- 마지막 편 4부에서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