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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책 - 「일본책, 김정일의 요리인 : (상)편
Korea, Republic of 돌통 0 1505 2022-05-21 18:37:42
상편..



■ 日本책 - 「金正日의 요리인 : 가까이서 본 권력자의 맨얼굴」


화제의 日本책 - 「金正日(김정일)의 요리인 : 가까이서 본 권력자의 맨얼굴」


●『金正日(김정일)은 한 상에 20~30가지 음식을 차려 놓고 먹었다. 가장 좋아하는 상어지느러미요리를 3일 연속 먹기도』

●『金正日의 입맛을 위해 외국 출장을 부지런히 다녔다. 그는 식사 중에 「내일 당장 일본에 가서 떡과 담배를 사 오라」고 시켰다』

●『金正日이 「그들을 쏘았는가」 물었다. 한 장군이 「어제 쏘았다」고 했다. 이 비밀숙청에서 20여 명이 사살됐다』

●『1992년 金正日 落馬(낙마), 한때 의식불명』


金正日의 점퍼와 바지는 최고급 캐시미어 실크 원단


평범한 요리사가 우연한 기회에 외국 최고 권력자의 총애를 받으며 벤츠 자동차를 선물로 받고, 본처에게 주는 위자료를 대신 내주면서까지 20세 연하의 젊은 여성과 결혼시켜 줄 뿐 아니라 최고급 가구가 갖춰진 방 8개짜리 집을 얻어 준다면?
 
예전에 일본에서 발간되어 국내 언론에도 크게 소개된 「金正日의 요리인: 가까이서 본 권력자의
맨얼굴」(扶桑社·부상사 刊)은 도무지 요즘 세상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각 언론의 東京(동경) 특파원들은 金正日의 후계자 구도와 核(핵)시설 등 정치적인 문제에 주로 초점을 맞춰
보도했지만, 이 책의 주요 내용은 북한의 특권층,특히 金正日이 어떻게 「먹고 노는지」 취미 오락 생활에 관한 것이었다.
 
1988년부터 2001년까지, 무려 13년 동안 金正日의 전속 요리사로 일했던 이 책을 쓴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등본건이)·56)씨는 스스로를 『아무런 사상이 없는 인간』이라고 책 말미에서 표현했다.

『이런 내가 사회주의 국가에서 살아가는 일은 어차피 무리였으며, 혁명이나 主體(주체)사상이 무엇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를 막판에 「脫北(탈북)」으로 내몬 것은 북한의 철통 같은 24시간 감시체제와 일본 스파이로 의심받은 후 1년2개월에 걸쳐 겪어야 했던 가혹한 가택軟禁(연금)조치 등으로 인한 불안감이었다.
 
후지모토가 철저하게 非(비)정치적인 인물이었다고
하지만 그는 권력의 핵심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바로 눈앞에서 지켜볼 수가 있었다. 이 책에「세계적 특종 사진」이라고 센세이셔널하게 내세우며 소개한 71장의 컬러 사진 중에는 그가 金正日을 비롯해 북한의 최고위급 간부 23명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찍은 사진이 포함되어 있다.

1991년 12월24일 金正日의 軍(군)최고사령관 취임을 기념해 평양의 관저 8번 연회장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들이 마치 유니폼처럼 입고 있는 올리브색점퍼 바지정장은 金正日에게서 받은 것으로, 이
옷은 「金正日의 측근」이란 징표라고 한다. 후지모토도 金正日이 「하사」한 이 옷을 입고 이 자리에 섰다.
 
후지모토는 金正日에게서 받았다는 두 벌의 옷을이 책에서 공개했다. 「사회주의 검약」의 상징으로 알려진 金正日의 점퍼 바지정장은 사실 알고 보면 캐시미어 실크라는 최고급 원단으로 만들어진맞춤옷이라고 한다. 이 바지는 허리둘레가 80cm인데 고무줄로 되어 있기 때문에 최대 120cm까지 늘어난다.
 
8번 연회장의 철판구이 코너에서 金正日이 손수찍었다는 간부들의 사진은 북한 특권층이 어떤 식으로 파티를 벌이고 놀았는지 보여 주는 사실감 넘치는 자료이다. 식탁 바로 앞에는 기쁨조의 공연을즐기기 위해 매끄러운 흰색 바닥이 깔려 있고, 좌우 아래쪽에는 색색의 화려한 조명이 설치되어 있는것이 보인다.
 
외부 세계와 철저하게 단절된 나라, 일반 주민들과유리되어 온갖 사치를 누리며 사는 북한 특권층, 최고 권력자의 은밀한 사생활과 정치 행태에 대해 이책은 대단히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 金正日 주선으로 기쁨조 출신 가수와 재혼


후지모토가 북한에 처음 간 것은 金正日이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오르기 한참 전인 1982년 8월이었다. 日朝(일조)무역상사가 월급 50만 엔(약 500만원)에1년 동안 북한에서 초밥 요리사로 일할 사람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자원한 것이다. 평양 보통강 호텔 앞에 있는 일본 식당 겸 가라오케
「安山館(안산관)」에 고용된 그는 그해 10월 원산초대소(별장)에서 벌어진 金正日의 파티에 불려 가 초밥을 만들었다.

金正日에게 주문받은 첫 메뉴는 「참치 뱃살」.
본바닥에서 새로 온 초밥 요리사로 金正日의 관심을 끌게 된 그는 그해 연말까지 열두 차례에 걸쳐
파티에 불려 가 초밥을 만들었다. 金正日은 파티가 끝날 때마다 후지모토에게 5만 엔씩 팁을 주었다.
 
이듬해 식당 책임자와의 의견 충돌로 열 달 만에 일본으로 돌아간 후지모토는 최고 권력자 앞에서 초밥을 만든다는 쾌감과 경제적 윤택함에 대한 미련을 좀처럼 버리지 못했다. 다시 북한으로 들어갈 날을 고대하던 그는 1987년 8월 일본에서 받던 월급의 2배인 60만 엔을 받기로 하고 북한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고려 호텔 지하식당에서 일을 시작한 다음날 金正日은 그를 불러들였다. 이번에는 한 번 출장 나갈때마다 팁이 8만 엔. 당시 북한 일반 요리사의 월급은 2만 엔 정도였다.
 
1988년 들어 후지모토를 부쩍 가까이 하며 벤츠
자동차를 선물한 金正日은 5월, 『10년 동안 곁에 있어 달라』는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드디어 金正日의 전속 요리사가 된 것이다.
 
같은 해 후지모토는 나중에 결혼하게 될 嚴正女(엄정녀)를 金正日의 연회장에서 만났다. 기쁨조 출신으로 인기 민요가수였던 그녀는 金正日의 연회석에서 자주 노래를 불렀다. 嚴正女(엄정녀)는여자끼리 하는 복싱에도 나갔다. 후지모토는 이때심판을 맡게 되었는데, 코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고 털어놓았다.

후지모토가 嚴正女(엄정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눈치 챈金正日은 후지모토를 일본에 보내 본처와 이혼하게 하고, 위자료 4800만 엔을 조총련을 통해 내주도록 했다. 金正日은 직접 결혼식 날짜를 잡아 주고 이들 신혼부부를 위해 평양 러시아대사관 바로앞에 있는 방 8개짜리 고급 아파트를 구해 주었다.이 아파트는 중앙당 副部長(부부장) 이상의 고관들만 살 수 있는 곳이다. 결혼식 이후 후지모토는 지하식당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金正日을 따라다니며 요리사로 일하게 된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눈을휘둥그레지게 만든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金正日의 호사스런 식단이었다. 후지모토는 책 앞쪽에 金正日의 6일치 식단을 공개했다.
 
꽃간낭쥐무초침, 야자상어날개탕, 자라함찜, 뱀장어캐비아, 상어날개소라탕, 물고기룡정차철판볶음, 비둘기간장찜, 쏘가리룡정차짐….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산해진미가 매일같이 이어진다. 후지모토에 따르면 金正日은 기름진 음식을 좋아해서중국요리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상어지느러미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일주일에 세 번 매일 밤 연속해서 먹기도 했다. 매운음식은 좋아하지 않아서 고추장이 많이 들어간「시뻘건 요리」가 식탁에 오르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후지모토가 담당했던 초밥은 일주일에한 번 정도. 보통 한 상에 20~30가지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 놓고 먹은 金正日이 요리를 평가하는 기준은 「첫째가 눈(모양과 색깔), 둘째가 향기, 셋째가 맛」이다.
 
〈金正日은 놀랄 만한 미식가였다. 1992년 평양의 8번 연회장에서 초밥을 먹던 金正日이 갑자기『오늘 초밥은 뭔가 다르다』고 말했는데, 나중에살펴보니 평소보다 설탕을 10g 적게 넣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金正日이 먹는 쌀은 요리사와 웨이터가 미리 한 알 한 알 검사해서 완벽한 모양의 쌀만 골라 낸다〉

후지모토는 「희대의 미식가」인 金正日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물론 金正日의 지시에 따라) 외국출장을 부지런히 다녔다. 중국의 신강-위구르에서는 주로 멜론과 포도, 태국과 말레이시아에서는 두리안과 망고 같은 과일류,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생맥주, 덴마크에서는 돼지고기, 이란과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철갑상어알, 일본에서는 생선류를 사왔다.

金正日이 식사를 하다 말고 갑자기 『내일 당장
일본에 가서 쑥이 들어간 다이후쿠모치(大福(대복): 팥이 든 둥근 떡, 한국에서 흔히 「모찌」라고 함)와 모든 종류의 일본 담배를 사 오라』는 바람에 1박2일 일정으로 北京(북경)을 거쳐 떡을 사 온 적도있다.
 
金正日은 술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의 관저에 있는 커다란 술 창고에는 全(전)세계의 술 1만 병 정도가저장돼 있었다. 1989~1991년 당시 金正日은 위스키는 「조니 워커 스윙」, 코냑은 「헤네시 XO」를 마셨다.


《 하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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