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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분들에게 질문드립니다.
REPUBLIC OF KOREA 남한인 2 1472 2006-10-04 21:57:50
북한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비록 북한에서는 심한 탄압이 있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의 저항이 있기는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별적으로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는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기 영국인 기자인 재스퍼 베커의 (2005, 기파랑)이라는 책에서 나온 내용인데, 여기 나온 여러 가지의 저항들은 신뢰할 만한 사실인지 질문을 드립니다. 놀랍고 충격적인 내용인데 이 내용을 뒷받침할 근거가 뭔지 확실하지가 않습니다. 죄송하지만 바쁘시더라도 답변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981년 9월: 청진에서 노동자와 군인 간의 무장 분규가 발생하여 500여 명 사망
1983년: 북한에서 활동하던 소련 전문가들이 신의주에서 노동자와 군인 충돌을 보고
1985년: 함흥에서 군인들이 공공 건물 옥상의 대공포를 이용해 시위대에 발포
1986년: 김일성이 탄 방탄 기차가 지방에서 습격을 받음
1986년 8월~1987년 7월: 일부 장성들이 김정일 대신 김평일을 후계자로 추천하기 위한 쿠데타 시도
1987년 5월: 신의주에서 일부 장교들이 김일성 암살 시도, 함경북도 온성 강제수용소에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남. 5000명의 사망자 발생. 무산에서 시위 발생
1990년: 김일성 종합대학의 학생들이 시위 조직 혐의로 체포
1991년: 청년 장교들이 반정부 조직 결성. 열차에서 김일성과 김정일 처형을 촉구하는 전단 뿌림
1992년 1월: 동아일보는 김정일이 군 최고사령관이 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음모가 북한 당국에게 발각되었다고 보도
1992년 4월: 암살 시도 혐의로 30명의 장교 체포, 일부는 러시아로 탈출
1992년 12월: 북한 경호총국 장교들이 쿠데타 계획
1993년 4월: 신의주의 군부대가 폭동 계획. 노동자들의 식량 부족으로 인한 소요
1993년 7월: 함흥 7군단 장교들이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이 시작될 때를 노려 폭동 계획
1994년: 작가들이 반정부 활동 혐의로 체포. 항곤 간부 군사학교에서의 김정일 암살 모의 발각
1995년: 청진 6군단 쿠데타 사건-청진의 군사시설 점거 계획
1995년 8월: 일부 러시아 유학 출신 장교들이 김정일이 군을 사열하는 것을 노려 포탄 발사 계획
1996년: 금수산기념궁전에서 김정일을 비방하는 전단 살포. 신의주 낙원기계공장에서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화 파괴
1998년: 혜산의 김일성 동상 폭파. 김일성의 남침을 비방하는 대자보 발견. 양강도 팽산에서 소요 발생. 함연에서 주민들이 김일성 초상화에 돌을 던짐. 함흥, 청진, 선천, 평양에서 김정일 전복과 시장 개혁을 촉구하는 전단 발견. 평양에서 학생 시위. 동해안 오랑군에서 시위 발생. 진압으로 500명 사망. 황해제철소 노동자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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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한인 2006-10-05 01:06:10
    덧붙여 1998년 황해북도 송림시 노동자 파업 사건의 경우 탈북자 이춘구 씨는 파업과 탱크 진압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정철민 씨의 증언에는 그런 내용은 없습니다. 이 사건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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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궁 2006-10-05 11:05:43
    97-98년경에 황해북도 송림시에 있는 황해제철소에 대한 보위사령부의 대규모적인 검거와 공개처형이 있은 줄로 압니다.
    당시 탱크도 동원되였다고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당시 황해제철소는 멎은지 몇 해 잘되였으므로 거기 노동자들은 사실 상 실업자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식량을 공급받을 데도 없고 가만히 앉아 죽을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이 설비를 뜯어내고 전기설비에서 동을 뜯어내 팔아먹어 공장은 거의 페허로 되다 시피 하였습니다.
    황해제철소는 북한에서 규모가 김책제철소 다음가는 큰 제철소였으므로 김일성이와 김정일이가 가장 많이 관심을 두는 공장이였습니다.
    한 때는 자동화 수준이 어느 정도 되였다고 자랑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공장이 페허가 되다시피 하였으니 김정일이가 노한겁니다.
    저는 당시 청진에 있는 김책제철소에서 기사로 있었는데 거기에서는 황해제철소가 보위사령부에 의해 죽탕을 맞자 다음차례는 김책제철소가 아니겠느냐 하고 사람들이 모두 근심에 쌓여있었습니다.
    김책제철소도 사정은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좀 나은 편이였습니다.
    그 소문이 나자 공장내에 예 전에 설비를 뜯어 팔아먹었거나 전기선을 절단해 팔아먹은 전적이 있는 사람들은 부들 부들 떨었습니다.
    직장들에서는 설비를 사다 보충한다 소동이 났구요.
    또 공장당위원회에서는 그런 전과자들을 한 사람이라도 건지려고 그들에게 미리 가벼운 처벌을 내린다 야단법석이였습니다.(북한에는 어지간해서는 2중처벌이 적용되지 않습니다.경우에 따라 추가로 밝혀지는 경우를 다소 제외)
    좌우간 그때 황해제철소 사건으로 뒤숭숭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더우기 탱크가 동원되였다는 소리에 사람들은 모두 경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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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한인 2006-10-05 14:38:48
    청궁님 답변감사합니다. 그런데 검거와 공개처형이 있었다는건 다들 인정하는데... 월간조선 보니까 김정일도 그거는 인정했다던데..... 그런데 파업과 탱크 진압 진술 부분이 좀 엇갈리는 것 같아서요. 청궁님 말씀처럼 공개처형까지만 설명하시는 분도 있고 그 다음에 파업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분도 있고..... 아무튼 정말 파업이었다면 북한 최초의 파업은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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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궁 2006-10-05 17:16:49
    북한에서 파업이 일어났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
    본래 생산이 죽은지 오랜지라 파업이라기보다는 식량 등을 요구해 집단항의 정도의 소요가 있었던 걸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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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00 2006-10-06 12:26:48
    이보쇼!
    남한인!
    위에 밝힌 당신 소리 맞아떨어지는거 전혀 없어!황당하기 그지없는 소리말고 제대로 정보 수집하던지 분석해!
    구체적인 자료 알고 싶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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