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5월… 北에선 고생문 열리는 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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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처음 와서 5월 달력을 보고 무척 놀랐다. 신록의 5월은 어린이날을 비롯해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까지 이색적인 날들이 많다. 소중한 가족을 위한 시간이 많아 '가정의 달'이란다.
당시 미혼이었던 나로서는 감동 그 자체였다. 사람과 더불어 사는 세상이 바로 민주주의 국가임을 서울에 와서 알았으니 말이다.
아직도 많은 농사일을 수작업적으로 진행한다. 벼 모내기도 사람이 손으로 일일이 꽂으며, 옥수수 파종도 마찬가지다. 북한 농업의 기계화 비율이 50% 정도라지만 이마저도 전기·원유 사정으로 대부분 고철덩이 신세다.
공장 제조품과 달리 농사만큼은 적절한 때를 놓치면 절대 안 된다. 하여 많은 사람이 벼 모내기 전투에 40~60일간 참여한다. 공장 노동자는 기계를 멈추고, 학생들은 펜을 놓고, 심지어 군인까지 총을 놓고 '농촌지원 전투'에 동원된다. 대략 각 부문의 인력 50% 정도가 차출된다.
이것은 어디까지 5월에 시작하여 10월에 끝나는 농촌지원기간 중의 일부 전투이다. 이외에도 최대 명절인 김 부자 생일은 물론, 각종 기념일마다 북한 주민들을 들볶는 다양한 전투가 이어진다.
동절기를 제외하고는 모든 달에 거의 다 있다. 결국은 인민들이 약간의 잡생각도 못하도록 뺑뺑이를 돌리는 것이다.
평양에서 옥수수죽을 먹으며 5월이면 '농촌기피 연구'에 몰두했던 내가 서울에 와서 '소중한 가족의 행복 연구'를 한다.
남과 북의 5월이 이렇게 다르다.
2011년 5월 4일 림일 탈북작가 / 조선일보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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