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에 묻고 싶은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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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30일자 북한 노동신문 1면 상단에 실린 김정은의 첫 사진을 보면서 북한 주민들은 깜짝 놀랐다. 한 인민군 장성을 사이에 두고 아버지 김정일과 나란히 앉은 그의 모습은 마치 죽은 할아버지 김일성이 환생이라도 한듯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무지몽매한 북한 주민이지만 김일성에게는 그나마 존경하는 마음이 조금 있었다. 해마다 송년의 날이면 어린이들의 재롱잔치도 봐주고 다음날 1시간씩 TV에 나와 신년사를 하는 등 인민생활을 현지지도했던 그였기에 갑작스러운 죽음을 애도한 주민이 적지 않았다.
김일성에 비하면 김정일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공장과 산업시설 건설은 뒷전이고 오로지 아버지의 동상과 기념관, 우상화를 위한 건축물 시공이 최우선이었다. 건강하지도 않던 몸으로 그는 자칭 인민의 어버이라면서 국정 현지시찰의 70%는 군부대를 찾았고, 30%는 문화예술인의 공연을 관람했다.
노동당이 무서워 말은 못했지만 김정일 시대에 북한 주민들의 마음은 완전히 돌아섰다. 무조건 따르라니 안 그러면 죽겠고, 마지못해 그를 따른 주민들이다. 무척이나 새로운 지도자를 갈망했는데 의외로 기회가 일찍 찾아왔다. 주민들은 은근히 김정은에게 희망을 걸었다. 외국에서 공부했다니 말이다. 낡은 것보다는 새롭고 창조적인 정치를 펴지 않을까. 굶주리는 주민의 어려운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말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부친 김정일이 죽자 최고사령관이 된 김정은은 새해 두 달 동안 10개 남짓 군부대를 방문했다. 현장에서 내린 지침이나 행동까지도 신통하게 아버지 김정일을 빼닮았다. 외형은 할아버지 김일성의 모습이고, 행동은 아버지 김정일을 따라하는 김정은을 보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정은 시대에 희망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아 뛰쳐나온 탈북자들이다.
생전 김일성의 유행어인 “인민들에게 흰 쌀밥에 고깃국을 먹이고 비단옷 입고 기와집에서 살게 하겠다”와 같은 사기성을 보여주진 않더라도, 하루 한 끼라도 옥수수밥을 먹고 따뜻한 집에서 살 수 있다면 소중한 목숨 걸고 고향을 등질 자는 없을 것이다. 오죽 배가 고팠으면 3대 멸족을 각오하고 탈북을 감행할까.
중국에서 벙어리 흉내를 내면서 다니는 남자, 산중 토막굴 속에 숨어 지내는 꽃제비(가출 청소년), 공안의 검거 출동에 줄행랑을 놓는 노인, 단돈 100달러에 이리저리 팔려가는 여성은 누구인가. ‘김일성 민족’이라는 북한 주민이다.
그들의 어버이라는 최고지도자 김정은에게 묻고 싶다. ‘조선노동당은 어머니당’이라고 했다. 미우나 고우나 부모에게는 똑같은 자식이고, 오히려 못난 자식을 더 보듬는 분이 바로 어머니다. 당에 묵묵히 충성하는 사람만 자식이고 배고파 못 참겠다고 집 뛰쳐나간 사람은 원수란 말인가. 불쌍한 탈북자도 고귀한 생명이며 똑같은 사람이다.
2012년 3월 18일 림일 탈북작가 /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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