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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바라보는 한국전쟁의 시각. 19편..시리즈
Korea, Republic of 돌통 0 389 2023-11-27 20:41:34
?외국에서 바라보는 한국전쟁의 시각..19편  시리즈

연재



이승만은 경찰과 보안군을 증강하고 미군정청(AMG)의 지원을 받아 모든 정치적 반대 세력을 제거하려고 시도했으며, 이를 공산주의자들의 지원을 받았다고 표시했습니다.  따라서 일본 통치 기간 동안 반군과 협력자들 사이의 초기 적대감은 남한 내 빨치산 투쟁과 남북한 간의 투쟁의 차원을 모두 가졌습니다.


1946년 10월, 경찰의 학대와 점령 당국의 엄격한 임금 통제로 인해 전라남도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대구에서 폭동은 철도 파업을 경찰이 진압하면서 촉발되었으며, 이로 인해 민간인 39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으며 38명이 실종되었습니다.  이후 계엄령이 내려졌다.


선언하고 1,500 명이 체포되었습니다.


40명의 학생들이 사형을 선고 받았는데, 그 중에는 북으로 도망친 박민주연합 대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폭도들이 경찰 초소를 뒤지고, 경찰관들을 생매장하고, 경찰서장의 얼굴을 칼로 베는 동안, 10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노동자들과 연대하여 걸어 나갔습니다. 이웃 도시들에서도 똑같이 재현된 패턴으로 폭도들이 경찰 초소를 뒤지고, 경찰관들을 생매장하고, 경찰서장의 얼굴을 칼로 찌릅니다.


미군은 폭력사태를 외부 선동가들(북한의 지원은 사실 물질적이라기보다 도덕적이었다)과 농민들의 우둔한 탓으로 돌리면서,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지원군을 불러들였습니다.


미국 육군 교통부의 국장은 우리는 전투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고한 사람들이 다칠 경우 우리는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도시 밖에 강제 수용소를 설치하고 감옥이 너무 가득 찼을 때 공격자들을 그곳에 가두었습니다. 그것은 전쟁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전쟁으로 인식하고 전쟁과 같이 싸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38참고》


나의 근대화 탄압, 4장 카티아피카스, 아시아의 알려지지 않은 봉기: 1권 왜권에서 폭도들이 경찰서장의 눈과 혀를 잘랐다고 합니다. 이런 반란은 어차피 남한에서 반란의 여건이 무르익었고 소련의 개입도 미미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북한 주재 소련 대사는 연락을 통해 반란군들에게 얼마간의 돈을 지불했습니다.



       

        이상..     20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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