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 대한 나의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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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발제 글 올려봅니다. 한동안 글을 올리다가 너무 정치적인데 빠져드는 것 같아 그 동안 자제했었는데 아래에 이민복씨가 올려놓은 종교에 대한 토론이 진지하게 진행되기에 평소 생각하던 저의 종교관을 좀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저의 신앙부터 이야기 하면 전 비 종교인 입니다. 그리고 종교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종교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다소 인정을 하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이민복씨의 대북삐라 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전 이민복씨의 대북활동이랑 종교랑 결부 짖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고요~~ 언젠가 이민복씨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서(이젠 거의 1년 이 다 되어 오네요) 정치적인 발언을 해서 제가 한번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이야기 했던 내용은 종교는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제가 종교를 안 가지게 된 것을 말하기 전에 북한에서부터 지금까지 제가 접한 종교(거의 기독교)들을 보고 접하면서 생각하게 된 것들을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종교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종교는 착취계급이 피 착취계급을 탄압(통치)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사상적인 도구이다] 라고 정의 하고 있습니다. 즉 정권을 잡은 지배계급이 다수 국민들을 통치하기 위해서 종교를 이용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북한의 대학교 학과목 중에 [조국통일과 남조선 문제]라는 과목이 있는데 여기에 종교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도 나옵니다. 그 교육내용에는 남조선(한국)에 어떤 종교가 있고 그 교인들이 얼마고 또 그 교리는 뭐고 이런 내용들을 상세하게 배워줍니다. 외부세계에 대한 정보를 거의 얻을 수 없는 북한대학생들에게 이런 내용들은 그 나마 신비하게 느껴질 뿐 이였습니다. 저의 경우는 종교의 교리내용 중에 [모든 인간을 사랑하고 악한 일을 하지 말고 선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라는 교리 내용이 참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사실 북한의 교육목적은 적개심을 가지도록 교육하는 것 이였지만) 그리고 도저히 이해가 안 되던 부분은 종교가 그렇게 나쁜 것이라면 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믿고 있을까? 라는 의문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중국에 들어 왔는데 저의 삼춘 엄마가 교회에 다니는 것 이였습니다. 저는 신기해서 삼춘 엄마를 따라 교회에 나가게 되였습니다. 뭐 교회에서 하는 절차가 다 그렇겠지만 첨엔 들어가니까 알지도 못할 노래를(찬송가) 부르고 웬 사람이 나와서 선전(목사의 설교)을 하더니 또 마지막으로 노래를 부르고 점심을 먹는 것 이였습니다. 그때 제가 운명적을 만난 한 청년이 있는데 그는 그때 저의 곁에 앉아 있었는데 찬송 할 때면 성경책에 있는 노래 가사를 손으로 가르쳐 주며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 이였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교회에서 식사를 하는 시간이 되어 전 별로 섞고 싶지 않아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그 청년이 왜 그냥 가냐고 같이 들어가자고 하길래 전 별로 생각 없다고 가겠다고 하니까 그 청년이 그럼 자기랑 식당에 가서 간단하게 식사나 하고 가라고 하는 것 이였습니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그 사람이 하자는 대로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으면서 대화를 하게 되였습니다. (사실 저의 삼춘 엄마는 거의 종교에 미쳐있는 수준 이였음) 그 청년과 대화하는 과정에 전 좀 놀라게 되였는데 그는 사회학과를 졸업한 대졸생 이고 그 당시에는 중국의 대도시에 있는 한국기업에서 그래도 중국의 형편에서는 비교적 괜찮은 지식청년 이였습니다. 전 당시까지 만해도 교회는 못사는 사람과 어려운 사람들만 가는 곳 인줄 알았는데 그 사람을 만나보면서 저는 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당신은 과학을 배운 지식인으로서 어떻게 있지도 않고 증명되지도 않은 하느님이라는 존재를 믿고 있는가?]라고 질문하자 그는[만일 당신도 어떤 계기가 된다면 믿을 수도 있다] 이렇게 만 대답할 뿐 별로 설교 같은 건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그를 통해서 개신교를 테두리적으로나마 알게 되였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한국에 입국하기 위해서 캄보디아에 한 2달 정도 머물게 되였는데 거기서도 기독교에 대해서 좀 알아가는 시간 이였었습니다. 거기는 종교단체에서 후원해주는 그런 곳 이였는데 같이 있는 탈북자들 중에도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그들도 거의 중독 수준 이였는데 나도 하루 종일 하는 일도 없이 밥만 먹고 있는 터라 지루하기도 하고 하여 주위에 교인들이 보고 있는 성경책을 한3번 정도 읽어봤는데(사실 그때 심정은 이 안에 뭐가 있길래 모두 여기 빠지면 저렇게 미쳐버릴까 하고 호기심에) 뭐 거의 예수란 사람의 전기 같은 느낌 이였고 오히려 거기 [잠언]인가 그건 그래도 속담집 비슷한 거 같아서 좀 볼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매일 아침 일어나서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눈을 감고 눈물까지 흘리며 [인간을 사랑하고 용서]에 대해서 그토록 부르짖는 사람들이 같지도 않은 일로 다투고 시기하고 지어 폭력까지 휘두르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저 사람들처럼 매일 아침 [인간사랑 과 용서]를 부르짖지 않아도 나름대로 어느 정도 타인에 대해서 배려 해줄 수 있고 용서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데 내가 굳이 저런 거짓과 가식으로 가득 찬 저런 사람들의 집단에 끼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회의하게 되는 기간이었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 까지 거의 기독교밖에 접하지 못했다면 한국에 와서는 더 많은 종교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하나원 에서부터 한번씩 다른 종교를 다 가보았습니다. 불교, 천주교, 그런데 기독교는 가지 않았습니다. 제일 많은 사람들이 가고 있었지만 별로 신뢰가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른 종교를 찾아 다닌 것은 얻어먹을 것 이 있어서가 아니라 해당 종교의 실제 내면을 알기 위함 이였습니다. 사실 얻어먹으려 한다면 기독교에 붙는 것이 제일 유리했었죠. 다른 종교는 내가 보아왔던 기독교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어느 정도 타 종교에 대한 인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기독교는 자기 종교가 아닌 모든 종교는 다 마귀, 사탄, 이단, 사이비, 라고 부정하는 반면 천주교나 불교는 그래도 타 종교에 대한 인정을 해주고 있는 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내가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에 꼭 종교를 가져야 한다면 난 천주교나 불교를 가지고 싶은 것도 그 것 때문 입니다. 특히 불교는 종교라기 보다 철학에 가까운 학문 같아 내가 한때 심취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절에 다닌 것은 아니 구요. 지금 살고 있는 영국에서 우리 가족은 코레아 타운(한인 밀집지역) 이 아닌 동네에서 삽니다. 한인들이래 봐야 몇몇 유학생들과 어울리는 게 전부, 그네들도 나랑 나이차이도 있고 해서 명절 생일 때나 이나 한번씩 보군합니다. 차로 한 1시간 반 정도만 가면 한인들의 교회가 있다고 하네요. 그런데 여기 와서도 거긴 별로 가고 싶지가 않습니다. 탈북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한인교회에 다니는데 제 생각에는 믿음이 있어서 다니는 사람들도 있지만 통역 같은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재영 탈북자들의 입장에서는 하느님 만세만 부르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교회가 더 할 나의 없이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같이 영국에 온 탈북자들 중에 영국인 교회에 다니는 친구가 있는데 그의 말이 한국 교회 같지 않다고 합니다. 한국교회는 거의 반 강제적인데 비해(안 나오면 왜 안 나왔냐고 집에 찾아 다니고) 영국교회는 자율적 이라고 하네요. 이상 제가 북한과 한국에서 그리고 영국에서 겪은 종교에 대한 생각을 늘어놓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 하신지요? (특히 남한 태생 회원 분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저의 종교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종교는 사회를 이루고 사는 인간집단에서 일정부분 필요한 부분 같습니다. (김구 선생님은 [경찰서를 10 개 짓는 것 보다 교회를 한 개 건설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 라고 말씀 하셨다고 합니다. 그만큼 종교가 어느 정도 사회질서유지에 도움이 준다는 의미로 받아 들이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 종교에 대한 북한의 이론에서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통치에 유리한 수단으로 종교를 이용한다는 내용을 인정하고 싶습니다) 2) 그러나 전 이 민복씨와 같은 그런 맹아적인 신앙 추종은 오히려 종교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비판 글을 올린 분들이 충분히 지적 하였다고 보아 집니다. 예하면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은 모두 북한에 가야 한다거나 혹은 기독교를 믿지 않는 국가는 다 못산다던가 그건 결국 생각만 반대일뿐 북한의 독재국가의 사고방식이랑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고 보아 집니다. 왜냐면 북한공산독재정권도 자기의 생각과 다르면 모두다 적이고 처단 대상이 된다는 거랑 꼭 같기 때문입니다.) 3) 그리고 전 아직도 종교의 본질적 의문에 대해서 시원한 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과학은 그 이론을 제시함에 있어서 그에 대한 증명을 필수로 합니다. 그러나 종교는 그게 아니고 무조건 믿고부터 보라고 합니다. 이점은 분명히 과학과 모순이 되는 겁니다. 한번은 제가 이런 생각을 해 본적이 있습니다. 세계문명의 발전과 종교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종교주의 자들이 말하는 것 과 같이 기독교의 파급이 곧 세계문화의 발전인지 에 대한 심오한 검토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4) 전 진심으로 자신들의 종교를 숭배하는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그것은 내가 그 종교를 공감해서가 아니라 그냥 인간관계 상 본인들의 노력이나 사고를 존중해주는 차원에서 그런 겁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종교를 이용하여 자기 이 속을 채우는 사람들을 제일로 경멸합니다. 왜냐면 종교에 의지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가진 것이 없고 순수하고 정직하고 또 고지식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 불쌍한 사람들을 이용하여 자기 이 속을 채우는 사람들이라야 말로 세상에서 제일로 가난하고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상 저의 종교에 대한 생각을 적어 보았습니다. 탈동회 회원 여러분께서는 어떤 종교관을 가지고 계신지 또 종교적 믿음을 가지고 계신 분 들은 저의 생각에 어떤 것이 잘못 되였는지 지적해주는 답 글 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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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저는 지금은 교회에 나가지 않는 소위 '길 잃은 양'이지만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지인들 중엔 자신의 종교를 겉으로 자랑 삼지 않고 묵묵히 그 가르침의 실천을 위해 노력하는 분들도 적지 않더군요.
절대적 믿음을 필요로 하다 보니 타종교를 이단시하고 때로는 사탄이나 사이비로 묘사하는 분들도 적지 않으나 내 종교가 소중한 만큼 다른 종교를 믿는 분들이나 무신론자들의 믿음까지도 존중해 줄 수 있는 인간존중의 마음가짐을 가진 그분들이 종교적 신념을 타인 앞에 강조하는 분들에 비해 참 종교인으로 여겨집니다.
저 역시 님과 별로 생각이 다르지 않습니다. 이민복님의 삐라사역에 대해 비판한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그 분의 종교관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삐라사역을 하면 되지, 거기에 기독교만 옳다고 하는 인상을 가졌기 때문에 종교의 자유 속에서 살아온 다른 분들이 많은 댓글을 달았다고 생각됩니다.
영국 교회를 말씀하셨는데, 영국 국교회는 영국 여왕이 교황의 위치를 대신하는 것 빼고는 천주교와 다른 점이 거의 없습니다. 차이라면 성직자들이 결혼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진국에선 영국 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기독교에 대해 열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국 개신교는 제외.
그리고 김구 선생님이 활동할 당시에는 기독교가 나름 긍정적 측면이 있던 시대였습니다. 제국주의에 반대해 한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성직자들이 꽤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들의 도움이라도 받아 그들 나라에 가서 교육도 받고 좋은 기술과 혜택을 얻어야 독립운동도 할 수 있었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나름 필요합니다. 그러나 절대화하거나 노예화 되면 패가망신의 지름길이 됩니다. 기독교는 기독교를 모르는 사람들한텐 무척 친절하게 대합니다. 일단 전도를 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믿을 듯 말듯한 사람들에겐 간, 쓸개도 빼줄 듯 도와줍니다. 실제 일자리부터 시작해 실질적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불신자라는 판명이 나면 그때부턴 적으로, 사탄으로 대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해버립니다. 즉 주님 앞에 항복하면 도와주지만 항복 안하면 적대세력이 되는 것이지요. 기독 모르는 사람 기독 믿는다고 하면 인생 편히 살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탈북자님들처럼 절박한 심정에 있지 않는한, 꼭 그래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안 믿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제 생각 역시 윗분들처럼 각자 어떤 종교를 가지던 전 상관없다고 봅니다. 종교를 가지는 것은 자유시민의 자유니까요. 다만 제가 그동안 가장 고민했던 개신교 신앙의 문제점에 대해 제 생각을 달아볼까 합니다. 하긴 이 문제로 한국개신교의 미움을 받아 개신교와 거리를 두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가 타종교와 공존하기 어려웠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가톨릭 편에서는 교황의 베드로 계승권이었고, 개신교 편에서는 〈사도행전〉 4장 12절의 문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이는 베드로의 간증일뿐입니다. 역사학계에서 이 발언이 나온 시점을 서기 28년 8월경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982년 전 발언입니다.
베드로가 이 간증을 하기 전에 당시 세계의 그 많은 종교를 모두 비교. 연구한 후에 그러한 결론을 내렸다고 볼 수 있을까요? 베드로는 어부였습니다. 성경에 자세한 기록이 없어서 단언할 수는 없으나 그는 아마 거의 문맹에 가까운 어부였을 것입니다. 그가 알고 있었던 세계는 중동 일대와 로마뿐이었고 아메리카 대륙은 물론 인도. 중국 등 동양의 존재는 미지의 세계였을 것입니다. 하물며 그가 인도(샤카족이 지배)와 중국(후한 광무제)의 종교를 연구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배경을 가진 베드로는 세계 어떤 곳에 무슨 종교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 국한된 세계 안에서 자기들이 주창하는 예수의 종교를 박해하고 억압하던 극소수의 타종교만을 다소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유대사회에는 ‘종교’라는 단어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타종교에도 구원의 도리를 주셨는지 알지도 못하고, 조사도 연구도 하지 못한 그가 구원은 오직 기독교에만 있다고 간증한 것은, 그 시대에 사교로 천대받고 있던 예수의 도를 천하에 전파하기 위한 방법과 그의 사고방식으로는 있을 수 있는 독단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의 처지와 환경을 되돌아보면서 그의 간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밖에 모르는 사람에게 그 하나는 절대화될 수밖에 없었던 경우를 우리는 가끔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베드로의 간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그 성경 구절 하나를 수호하기 위하여 기독교와 타종교와의 공존공영은 불가능하게 됩니다. 베드로의 간증을 따라 타종교를 사교로 멸시하고 적대시하며 기독교만을 절대화한다면 그런 정책은 마침내 종교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그 수많은 종교들과의 쉴새없는 종교전으로 인류를 괴롭히고 인류의 종말을 자청하는 종교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기독교를 예수 없는 기독교, 사랑도 계명도 없는 종교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불교는 우상종교요, 유교는 조상을 신으로 섬기는 거짓 종교이며 여타 다른 종교들은 모두 잡신을 섬기는 저등종교라는 거지요. 객관적 입장에서 보면 이는 배타적 독선입니다.
우리사회에서 종교는 재(재물/물질), 수(무병장수), 영(부귀영화)을 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이것은 기독교 정신과 정반대가 됩니다. 이런 신앙에 머물게 되면 원시종교, 저등종교의 차원을 극복할 수 없지요.
축복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교회에 충성하면 그 보상으로 축복을 내려준다고 하니, 이것이 사실이라면 얼마나 매력이 있는 곳일까요? 지금 이렇게 설교하는 한국 목사들이 한국 개신교에서 태연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서를 해석할 능력 없이 문자적으로 믿는 신앙에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킬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무엇보디 이 세상은 타락해도 저 세상을 바라보고 영원한 진리를 붙들고 영적인 생명의 불시를 보전해야할 마지막 보루인 종교마저 도둑세계의 도구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일 겁니다.
전 지금 기독교에서 이탈했지만 애증으로 바라보고 있지요. 지금 한국 개신교에선 그리스도가 배반당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도 아닌 사람들도 이젠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니 안티-크라이스트들이 늘어날 수밖에요.... ^^
맞습니다. 쉬운 예로 지금 개독교(기독교를 비하해서 씀) 내에선 예수는 울타리 밖으로 추방하고 믿기만 하면 뇌물먹은 돈도, 중소기업 등친 돈도, 횡령한 돈도, 도둑질한 돈도 헌금이라면 가리지 않고 좋아하며, 하마 아가리 물먹듯 삼켜버리는 가짜 하나님을 교회의 중심에 모셔 놓고 있지요.
헌금이라면 사악한 돈도 누르고 흔들어 10배~100배의 축복을 내려달라고 기도해주는 이 사이비 목사들은 정말 대책이 없는 수준입니다. 그러기에 한국 개독교(특히 개신교)의 하나님은 끊임없이 돈을 요구하지요 ^^
한국 개독교는 기업경영 방식을 도입해서 교회 키우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교인을 엮어드리는 전략도 기업의 상품 세일방식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피라미드 세일을 응용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상품화해서 고객들을 낚는 것을 선교라고 하지만 실은 고객인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수입원으로 보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지금 교회 건물 높이는 경쟁은 세상 구원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말 문제가 심각합니다. 탈북자들은 대한민국에 입국하면서 이런 교회들을 보면서 남한은 하나님이 보우하사 이렇게 잘 살고 북한은 하나님을 믿지않아 못산다고 생각한다는 군요. ^^
아무튼 그토록 많은 교회들이 즐비하고 있는데도 하나님이 이 나라의 어둠의 권세 앞에 그처럼 무기력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기독교의 하나님이 악의 신에게 맥을 못 추는 무능한 존재이거나, 아니면 한국 개신교가 저마다 불러대는 그들의 하나님이 기독교의 참 신이 아닌, 다른 잡신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즉, 지성은 결여된 채 뜨거운 성령운동을 기초로 한 절대적인 믿음에 대한 강조가 교회성장의 비결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집단 최면술과 같은 방식으로 성령과 영생 체험을 했다느니 천당과 지옥에 갔다왔다느니 하는 거짓말로 무지한 신도들을 이끌어 왔던 것이지요. 대부분 거짓말로 판명됐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함.
이런 성령신앙에 대한 반복적인 설교와 훈련, 성령강림의 예배의식은 무서운 열심과 에너지를 창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웃사랑은 등한시 될 수밖에 없지요. 개인과 하나님의 문제로만 국한되다 보니...
목사에 대한 복종이 하나님에 대한 보종이라는 엄격한 신앙의 전통이 세워져 있습니다.
한국 개독 문제 심합니다. 북한과 아주 흡사함.
그러던 것이 점차 고대사회가 되면서 유대교 형태의 고등종교들이 나타났는데, 말하자면 인간들이 신앙이론을 체계화 한 것입니다. 또 '사랑'을 설파한 예수 같은 성인도 나타난 것이구요. 역사적 인물로서 예수는 성인이고 훌륭한 분이었죠.
문제는 중세로 오면서 종교가 정치와 결합되면서 통치이데올로기로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농노 농민들을 다스리고 통치할 때 종교를 이용한 것인데,,,그 과정에서 폐단들이 나타났죠.
기독교는 중세에서 자본주의로 넘어오면서 카톨릭 이라는 중세 종교가 자본주의라는 사회에 맞는 형태로 변 변화되었는데,(그 중심 인물이 루터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기독교입니다.
불교도 싯탈타 석가모니는 자비를 실천한 훌륭한 분입니다. 훌륭한 고승들도 많았구요. 근데 불교도 고대나 중세에 동아시에서 정치와 결합되면서, 정치와 결합된다는 것은 사회가 통치자와 피통치자로 나누어져 있는데, 통치자와 결합되는 것을 말합니다. 통치이데올로기(이념)으로 되고, 귀족이나 지주 양반들이 일반백성들을 지배하면서 그 이념을 악용했던 것이지요. 공자의 유교(성리학)도 마찬가지고, 이슬람교 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가 계급사회 지배이념이 되면서 부작용이 나타났던 겁니다. 기독교는 자본주의 논리와 결합되었는데, 즉 돈(자본)의 논리와 결합된 것입니다.
오늘날 진정으로 종교(나 보다는 남)를 실천하는 성직자 종교인들도 많이 있지만, 상당수가 자본주의 논리에 기독교이든 불교이든 카톨릭이든 찌든 집단 및 개인들이 많습니다.
돈 벌기 위해 종교를 가장해서 활동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는 와 부처는 자신이 돈 벌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존재에 지나지 않은 위치치로 변해버린 거지요. 종교들과 자본주의가 결합되어 만든 폐단들입니다.
인간은 현대와 와서도 종교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문제입니다. 개인의 자유입니다. 종교활동을 통해 서로 돕는 사람들도 많고, 자살에서 헤어나온 사람들도 많습니다. 종교는 개인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원래 종교활동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마르크스는 중세 종교적 세계관을 비판했지만, 개인들의 종교활동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회주의에서도 얼마든지 종교생활을 하는 것이 원래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이라는 사회는 김일성 김정일 장기 독재체제가 되면서 종교자체를 부정했죠. 개인들의 종교활동 자체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탈북자님들은 잘 아시겠지만, 봉수교회니 묘향산 스님들은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형식이죠.
우리들이 종교 논쟁을 할 때에는 내가 부분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마치 전체인양 일반화해서 논해서는 안됩니다. 사안사안마다 구체적으로 살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그래야 합니다.
여기에 처음으로 글 남기는데,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북한 출신들은 보다 심오한 것은 이해가 잘 안가고 쉽게 누구나 다 아는 수준으로 얘기해줘야 아는가 보네요?
이건 정말 상식으로 웬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라고 생각하고 언급도 안했던 부분일텐데....
더구나 그 배타성이란..... 혀를 내두를 정도입이다.
통치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지가 언제인데...
북에서는 개인숭배를 하지 않으면 죽이니까 할수 없이 따랐다면...
이 자유로운 사회에서 어던 종교를 믿고나 말거나는 본인들의 듯에 다른것인데...
누구의 눈칠를 볼 것도 없고,,, 또 누구에게 믿으라고 강요를 할 필요는더욱없고 자기들 신념에 따라 하면 될일 아닌가?
또 남이 믿는것을 욕할 필요는 더욱 없다고 본다.
무슨 권리로 강요를 하거나 비난을 한단 말인가?
그런데 무슨 이론들이 그리도 구구한 것인가?
남한 분들은 자기들 입으로 툭하면 <자유민주주의 사회이기때문이다.>라고 탈북자들을 가르치려 들면서도 자기들이 오히려 남의 자유를 비난하는 글들을 올리는 것을 보면 참으로 겉과 속이 다른 무식한 자들이라 하겠다.
참고로 나도 교인이니 나를 비난하지도 말며 ,,더우기 가르치려 하지도 말며,.. 자기 갈 길들이나 바로 가라.
그 대신 나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 하지도 않으며 또한 그 무슨 자랑으로 여기지도 않은 것이니라.
경직된 체제에서 살다보니 유연성과 상상력이 부족함. 그것이 지금 북괴와 한국의 차이를 낳게 한 것 같다.
처방전 당신은 늘 쓸데없는 것이라며 치부하고 관심끄고 필요한 부분에만 신경쓰라며 사람들 타이르지만, 당신이 신경끄는 부분을 신경씀으로써 대한민국은 북괴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장족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오.
공부가 안 돼 있으면 다른 분야도 배울 생각을 해야지, 자기가 아는 부분만 좋고 선하고 자기 갈길이라고만 우기면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겠지만 천박한 인간이 될 수도 있는 것이오. 그런식으로 믿는 신도들 때문에 개독이 부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국사람은 철학적으로는 불교이고 사회적으로는 유교이고 운명에 있어서는 영혼숭배자이다라고...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시면 좋겠습니다.
크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나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발견된 과학혁명으로 인해서, 성경의 절대적 권위는 일찌기 서구에서는 무너졌습니다. 성경은 역사적으로 진실로 보기 어려운 내용이 많이 섞여있는 신화집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오늘날 유럽 교회에서는 성경의 내용은 성령이 자구 하나하나에 실려 씌여진 절대적인 것이라고 보질 않습니다. 그렇게 믿는 근본주의적인 신도들은 극소수이기 떄문에 비록 여전히 신을 믿는 기독교도들이지만 종교생활면에서나 남의 신앙에 대해서도 크게 배타적이지 않게 된 것이죠.
반면에 지금도 성경의 내용에는 오류가 없다는 식의, 다수의 유럽인들은 이미 버린 몽매하고 광적인 중세적인 방식의 믿음을 강조하는 것이 한국 개신교의 수준이고 이것이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면이 있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단군은 물론 고구려 시조 고주몽이 자라(?) 등을 밟고 압록강을 건넜다는 것도 그냥 신화로 이해하고 있는데, 유대교의 아류인 개독은 모세가 홍해를 건넌 것만 옳다고 생각하니...
지들 것은 절대적인 믿음이고 다른 민족 것은 신화로 치부해버리니...
차라리 우리처럼 신화로 인정하고도 어울림의 미학을 추구할 수 있는 아량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개독은 실체가 벗겨지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동네북 신세가 돼가고 있구나. 그저 "믿씹니다" 하는 맹목적 신도들 빼고는... 아니면 개독 기대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업자나 일부 탈북자 빼고는...
일부 없는 사람한테는 잘 해준다. 학생들한테도.... 개들은 돈이 없으니까...
그러니 없는 사람(탈북자나 소외계층)이나 (수입이 없는) 학생들은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죠.
"어??? 개독교 비판하지만 내가 경험한 기독교는 돈 별로 요구하지 않고 어려운 사람들 돕는데 쓰던데?" 하고 말이지요.
대신 그들 부모나 죄졌다고 생각하는 기업가 등 큰 손들이 액수가 큰 십일조를 바치잖아요 ^^
처방전 등 탈북자들이 바라보는 시각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그래서 개독을 비판하면 싫어하는 사람들 생각 외로 많다. 그러므로 뭘 알아야 할 것이다. 나중에 속지 않고 살려면....
주일에 가서 헌금내고 회개하면 신이 다 용서해줄테니까.. 고 따위 믿음으로 생활하니 미움을 받을 수밖에..
저 역시 선생님의 생각에 100% 공감합니다.
이런 곳에선 오해를 살까봐서 미리 밝힙니다만 제 스스로 개신교 집사입니다. 물론 나의 믿음을 다른 이들 앞에 자랑하고 전도에 목소리를 높일 정도의 심오한 신앙심은 갖지 못했습니다만, 그래도 한 명의 기독교인으로서 한국 개신교 내의 문제점에 대해 많은 고민과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일전에 다른 책에서 '한민족은 근본적으로 정치적이다. 그 단적인 예로 볼때 한민족의 역사에 있어서 한번도 종교가 정치세력보다 우위를 점한 바가 없다.'라는 글을 본 적 있습니다만, 저는 그 말이 매우 적절하다 여겼습니다.
물론 우리네 역사 속에도 불교나 유교 등이 국교가 된 일은 있지만, 그 내용을 엄밀히 살피면 종교우위의 사회도 아니었으며, 제정일치의 사회도 아니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한민족에게 종교란 주요한 통치수단 중 하나였다고 봅니다. 더구나 종교적 자유도 꽤 보장되었지요. 민간신앙이건, 외래신앙이건 그것이 기존 정치질서에 위협만 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박해도 받지 않았습니다.
백성들 역시 종교의 본래 기능이라 하는 '내세적 신앙'보다는 '현세 구복적인 신앙'에 심취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에 정착한 모든 종교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면 '현세구복적 신앙'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죠.
이 모습은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절에 가서 사람들이 어떤 기도를 하는지 살펴 보세요.
교회에 가서 사람들이 어떤 기도를 하는지 들어 보세요.
다른 내용들도 있지만 결국 대부분은 현세에 내게 큰 복을 달라는 겁니다. 그런 모습이 종교인의 참 모습은 아닐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민족은 여전히 정치적입니다.
저 자신이 개신교 신자이긴 하지만 하나님의 복으로 지금의 내가 이렇게 잘 먹고 잘 산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은 매우 역겹습니다. 언제부터 하나님께서 자신을 믿는 참교인들에게 현세의 부와 명예를 주셨나요?
그것이 칼뱅이즘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수님께서 '낙타가 바늘 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더 어렵다'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볼 때,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을 때 주시는 복은 현세에 인간들이 생각하는 그런 재물과 명예는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크게 융성하고 있는 많은 개신교인들이 보이는 모습이 진정한 크리스찬의 모습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들은 거듭나야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작위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무기로 다른 이들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주는 행위는 없어져야 합니다.
하고픈 말은 많은데, 시간에 쫒겨 쓰다 보니 엉망이네요.
모든 개신교인들이 진정한 크리스찬이 되기 위해 고뇌하고 노력하길 바랍니다.
원효대사님 왜 아디를 그 이름으로 하셨나요?
원효대사, 참 뒤생활도 말이 아니던데. 그건 마음에 사탄이 기어들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예수의 말씀에 토를 다는 서푼짜리 지식은 우환단지야. 지식인연대 카페에 기어들어 황당한 궤변을 늘어 놓다 된서리를 맞고 쫓겨난 교훈이 뭔지 똑똑히 깨달아라.
그리고 기독교의 타종교 불인정은 하나님의 뜻이다. 십계명을 다시 읽어 보라, 모든 종교가 하나님을 모방한 다른 이름으로 부처니 알라신이니 하고 부르는 것이다. 하나님은 유일신이시다. 북한의 김정일에 대한 입장도 기독교에서 대답을 찾지 않으면 어디서도 명쾌한 답이 안 나온다.
당신 같은 믿음은 당신의 몽매함을 설명해줄 뿐입니다. 미안하지만 개독의 대부분의 신적 개념은 이집트와 수메르에서 빌려온 것입니다. 무슨 개독 하나님에서 다 나오나??? 공부좀 하시구료.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 마태복음 19:2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 마태복음 19:21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 마태복음 19:22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 마태복음 19:23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예수님의 언행을 살펴보면 율법에 별로 얶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성경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십계명은 구약의 율법인데, 부족신앙 당시의 결속력을 위해 만들어진 부족적 신관을 굳이 집착할 필요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