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식하며 버텨냈던 박헌영이 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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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북으로 간 남쪽 인사들의 말로(末路)는 비참했다. 선전에 이용되다가 숙청되기 일쑤였다. 월북한 남조선노동당원들을 기다린 운명은 훨씬 가혹했다. 6·25 전쟁 후 김일성은 이제 쓸모가 없어진 남로당 인사들을 남김 없이 제거한다. 마지막 과녁은 해방 전후 사회주의운동의 거물이자 남로당 최고 지도자였던 박헌영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조선의 레닌'으로 불렸던 박헌영이 1956년 공개 재판에서 '당과 국가를 배반한 미제(美帝)의 스파이'임을 인정하고 처형되었다는 사실이다.
그가 고문과 회유에 굴복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은 일면적이다. 잔인무도한 일제강점기 치하에서도 전향을 거부한 채 옥중에서 몇 개월간 자신의 똥을 집어먹는 정신이상 증세를 연기(演技)함으로써 풀려날 정도로 지독했던 박헌영이다. 그런 그가 공산주의자로서 자신의 삶을 통째로 부인한 것은 북한 당국의 고문만으론 설명되지 않는다. 박헌영 재판은 1938년 모스크바 재판을 빼닮았다. 레닌이나 트로츠키와 비슷한 위상이었던 볼셰비키혁명 지도자 부하린(N Bukharin·1888~ 1938)은 스탈린에 의해 숙청된 후 서방 기자들까지 운집한 공개 재판의 최후 진술에서 "당과 국가를 배반한 자신을 대역죄로 처벌해 달라"고 요청한다.
일생을 공산혁명에 바쳤던 박헌영과 부하린이 왜 미국의 스파이이자 반당(反黨)·반(反)혁명분자임을 자백했을까? 강고(强固)한 혁명가였던 이들을 돌려세운 특유의 논리는 헝가리 출신 작가 쾨슬러(A Koestler·1905~1983)의 소설 '한낮의 어둠'에서 암시된다. 부하린을 모델로 삼은 소설의 주인공 루바소프는 처음에는 완강히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루바소프는 '개인보다 당이 중요하며, 혁명이념의 구현인 당은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당 앞에 혁명가 개인의 명예는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는 인식이다. 그리하여 그는 공개 재판에서 자신이 반혁명분자임을 기꺼이 증언한다. 그것이 혁명의 화신(化身)인 공산당과 그 '제1인자', 즉 스탈린에 대한 '최후의 봉사'이기 때문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모든 수단을 정당화하고 전체를 위해 얼마든지 개인을 희생시키는 도착적(倒錯的) 혁명의 논리는 박헌영과 부하린을 말살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정의롭고 아름다운 혁명의 이름으로 인간의 희생을 정당화한 현실사회주의의 실험은 인류의 역사가 일찍이 보지 못한 일대 야만의 기록으로 남았다. 민중 해방을 약속한 찬란한 '혁명의 대낮'은 전(全)인민의 노예화라는 처참한 '한낮의 어둠'으로 귀결되고 만다. 오늘의 북한체제는 이런 사회주의 혁명의 타락상을 극악(極惡)한 모습으로 증언한다.
통합진보당 폭력사태에서 나타난 구(舊)당권파의 행보도 비슷한 논리로 해석 가능하다. 이정희 전 대표가 진흙탕으로 추락하는 걸 감수한 이유도 개인의 명예보다 조직 전체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빗발치는 국민적 비난에도 국회의원직을 고수한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파렴치도 '당과 혁명'에 대한 충성의 산물이다. 북한 인권문제, 핵(核), 3대 세습을 북한 내정(內政)으로 이해한다며 에둘러 간 이상규 의원도 마찬가지다. 종북(從北)주의자들에게 '당과 제1인자'는 신성불가침의 존재인 것이다. 통진당 사태의 핵심은 구당권파가 충성을 바치는 그 '당과 제1인자'가 과연 경기동부연합만을 지칭하는가의 여부다.
진보를 더럽힌 종북주의는 한반도 현대사의 정통성이 북한에 있다는 총체적 미망(迷妄)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자유로운 인민의 나라인 민주공화국을 배반한 변태적 봉건체제에 불과하다. 종북주의자들만이 이런 사실을 직면할 양심과 양식(良識)을 갖지 못했을 뿐이다. 당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양심과 양식보다 앞세우는 혁명의 논리가 혁명 그 자체를 파괴하고 말았다는 역사의 교훈을 이들은 외면한다.
정치공동체는 현실의 인간이 숨 쉬는 유일한 곳이며, 대립하는 두 정체(政體) 중 하나를 선택하는 건 우리의 정치적 운명이다. 이를 회피한 채 한국 진보가 진화하는 건 불가능하다. 남북관계에 '경계인(境界人)'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진보는 기회주의자로 타락한다. 재독(在獨) 철학자 송두율이 북한 노동당 입당 사실을 숨긴 채 곡예를 거듭한 건 이 때문이다. 통진당 구당권파는 주체(主體)사회주의라는 '한낮의 어둠'에 편승해 종북의 그늘을 감추려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준엄한 목소리로 묻는다. 구당권파가 그토록 목숨 바쳐 지키려는 그 '당과 제1인자'가 과연 누구냐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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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증명한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론자체가 우리들에게 이미 그 부당성을 확인시켰기에 봉건적세습으로 물젖은, 그야말로 말로만 웨쳐대는 형식상의 미친 정권, 북한의 공산사회는 더 이상 남한의 진보세력에게 털끝만한 이익도 주지 않을 것이다.
박헌영이나 이승엽의 종말처럼 북한에 조금이라도 환상을 가졌다면 지금이라도 이 땅의 진보세력들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