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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재수 없는 날[2회]
Korea, Republic o 도명학 1 399 2013-09-05 17:54:19

                           재수 없는 날

                                                                           (도명학)

(2회)

수십 구의 시신이 한데 쌓여 있었다. 뼈만 앙상한 시체들이었다. 매일 역전에서 굶어죽어 나가는 시체들을 운송수단이 없어 처리하지 못해 모아놓은 것이었다. ,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구루마꾼들을 시체운반에 동원하려고 짐 단속을 핑계로 끌고 온 것이었다.

더럽게 재수 없다. 시작은 좋았는데 맛있게 먹던 밥에 재가 뿌려진 격이다. 팔자가 왜 이런가? 어쩌다 하루 짭짤하게 벌게 됐다 했더니 돈이 아니라 시체를 벌었다.

보안원들이 시체를 구루마에 실으라고 호령했다. 그러나 누구도 다가서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구루마를 몽땅 회수해도 좋다면 버텨보라, 너희들 원래 구루마질을 하면 안 된단 걸 모르는가. 구루마를 몽땅 중요대상 건설장에 보내야 정신 차리겠나, 지금 건설장들에선 청년들이 주먹밥을 먹으며 등짐으로 일하는데 제살궁리만 하다니 도대체 양심이 있는 가고 으름장을 놓았다.

딴 건 몰라도 구루마를 뺏기면 안 되지. 협박에 무리 중 한명이 먼저 움직이자 모두 개똥 씹은 인상으로 시체에 다가섰다. 어떤 것은 죽은 지 며칠이 잘돼 송장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쁜 새끼들, 지들 집에 석탄 실어갈 차는 있어도 이걸 치울 차가 없어? 굶어죽은 것만도 억울한데 이게 뭐야. 밤에 직일근무 서는 새끼는 귀신이 무섭지도 않은 모양이다. 하긴 죽은 사람 한 둘만 봤겠어, 구루마꾼들은 속으로 보안원들을 죽어라 욕했다.

시체에 거적때기를 덮은 구루마들이 줄줄이 보안서 문을 빠져나와 산으로 향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끔흘끔 쳐다봤다. 간혹 어떤 이는 시체 운반중인걸 아는지 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살피기도 했다.

보안원은 시체를 나르는 일이 창피한지 멀리서 자기는 이 구루마들과 상관이 없다는 듯 딴전을 부리며 스적스적 따라왔다.

구루마꾼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우리도 언제 이렇게 될지 모르겠지

거 재수 없는 소리 그만하오. 어떻게든 살아야지 죽으면 개보다 못한데

오늘 빈손으로 들어가면 녀편네가 지랄 할기다. 없는 세월에 애기는 왜 낳아가지고, 정신 빠진 년.”

인마, 니 탓은 없니? 잘 먹지도 못하는 주제에 야간작업 적당히 할 게지

누군가 시끄럽다는 듯 소리쳤다.

모두 좀 조용하기요. 죽는 게 바보지. 장사하든 도둑질하든 목숨이 살아야 사회주의를 지키지.”

힐끗 돌아보니 아까 제일 먼저 시체에 손을 대던 작자다.

늙은 구루마꾼이 그 작자의 말에 퉁을 놓았다.

뭐 사회주의? 사회주의를 니 지키니? 그만 웃겨라. 니 구루마나 잘 지켜라

옆에서 고소하다는 듯 아바이 말이 명언이요. 흐흐, 저 웃기는 새끼, 여기 죽은 사람들이 들으면 조선혁명 너 혼자 다하는 줄 알겠다.”하며 킬킬 댄다.

그래 구루마라도 뺏기지 않은 게 어디야? 창수는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말없이 걸었다.

일행은 산중턱에 대충 구덩이를 파고 시신들을 묻었다. 보안원이 그만하면 됐으니 돌아가자고 했다. 봉분도 없는 묘지 아닌 묘, 그것도 한두 구덩이에 여러 시신을 마구 처박았다.

일행은 침통한 표정으로 아무 말 없다. 각자 제 운명을 생각하고 있었다. 창수는 코에서 송장냄새가 계속 나는 것 같아 킁킁 코를 풀고 목이 칼칼하도록 침을 자주 뱉었다.

배가 꼬르륵 소리를 냈다. 배안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아침을 먹고 아무것도 못 먹었다. 어느 덧 저녁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는데 야단났다. 구루마를 살린 것은 다행이지만 빈손에 돌아갈 일이 아찔하다. 아내 따윈 윽박지르면 되겠지만 금옥이가 두렵다.

보안원이 구루마꾼들을 시보안서까지 데려갔다. 아직도 짐 임자가 거기 있을 리 없지만 그냥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떠오르자 쓴 웃음이 나왔다. 보안서 마당에 들어가자 잠시 기다리란다. 구루마꾼들은 담배연기를 피워 올렸다. 왜 보내지 않고 잡아두는지 괜히 불안해했다.

이 때 한 여자가 울상이 되어 지나쳤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장마당에서 고급담배를 파는 여자다. 그를 알아 본 구루마꾼들이 아지미~하고 불렀지만 힐끗 쳐다보고는 울 것 같은 얼굴로 휭하니 정문을 빠져나갔다.

조금 후 보안원이 종이박스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박스에서 고급담배를 꺼내더니 한 사람 앞에 세 갑씩 주기 시작했다. 구루마꾼들이 웬 떡이냐 하는 눈길로 받아 쥔다. 먼저 받은 작자들은 담배를 코에 대고 흠흠 냄새를 맡아 본다.

모두 수고했소. 보안서가 구루마꾼을 단속 하는 게 맞지만 죽은 사람 주무는 일을 했는데 어쩌겠소. 나도 사람인데. 나눠준 담배를 피우겠으면 피우고 팔겠으면 팔고, 앞으론 구루마꾼을 그만 두고 직장에 나가시오. 누구나 동무들처럼 행동하면 누가 사회주의를 지키겠소. , 모두 담배가 보이지 않게 집어넣고 조용히 한사람씩 나가시오.”

구루마꾼들은 뒤에서 다시 들어오라는 소리라도 들릴까봐 목을 움츠린 채 덜컹 거리는 구루마를 끌고 정문을 나왔다. 후유~ 지옥에서 나온 것 같다.

구루마꾼들은 보안서 주변을 벗어나자 약속이나 한 듯 모두 구루마를 둘러 세우고 걸터앉아 투덜거렸다.

에이 재수 없는 새끼들, 소리 없는 총이 있으면 콱 쏴 버렸으면 좋겠다.”

, 내일부터 우릴 직장 나가라고? 병신 같은 새끼, 직장 나가면 돈 주나, 쌀 주나.”

그러게 말이야. 미친 새끼들, 우리절로 벌어먹겠다는데 무슨 상관이야

그나저나 장마당에 가서 이 담배 팔아야겠다. 우리 처지에 비싼 담배 피면 입술이 부르튼다.”

근데 이 담배는 아까 울상 짓고 나가던 그 여자한테 뺏은 것 같아. 우릴 주자고 장마당에 나가 단속해 잡아 왔겠지. 좆같은 새끼들, 주겠으면 제 주머닐 털어 줄 게지.”

어어, 그 새끼들이 뭐가 안타까워서, 해가 서쪽에 뜰 소리지. 보안원자리가 좋긴 좋다~”

좋으면 너두 좀 돼봐라.”

인마, 성분이 나쁜데 어떻게 되니? 우리 할아버지 월남자란 말야. 헤헤

창수는 무리가 주절대는 소리를 멍하니 듣다가 먼저 몸을 일으켰다. 배속이 계속 난동을 부린다. 얼른 장마당부터 가야지. 구루마가 덜컹대는 소리와 배속의 우레 소리가 뒤섞여 분간이 안 된다. 우선은 뭘 먹어야 쟤네 말마따나 사회주의든 구루마든 지키지.

장마당에 이르자 담배 장사꾼에게 세 갑을 도매가격에 넘겼다. 비싼 담배라서 창수네 세 식구가 하루 살아갈 돈은 되었다. 이제 급한 것은 제 배부터 달래는 일이다. 창수는 화로에 불을 피워 두부를 팔팔 끓이는 음식 장사구역에 들어섰다. 음식냄새에 창자가 뒤집힌다. 어디 앉을 지를 가릴 경황도 없다. 맨 처음 맞다든 음식장수 앞에 무작정 앉았다. 그 찰나 찌끈! 소리가 나며 나무의자가 찌그러졌다. 원래 든든치 못한 의자에다 쇠새끼만한 몸통이 내리 찧듯 짓누르니 견디지 못했다.

어저쩌! 음식장수 아줌마가 기겁을 했다.

불에 덴 소처럼 놀란 창수가 황겁히 벌떡 일어섰다. 하는 일마다 개판이다.

아아, 괜찮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버리자던 물건입니다. 이젠 너무 고쳐서 못씁니다. 그냥 앉아서 식사 하세요.”

아줌마의 표정이 금세 바뀌며 찾아온 손님 떠날세라 붙든다.

뭐 잡수시겠습니까. 두부? 고추장국에 팔팔 끓여달랍니까? 양념두 지내 맛있습니다. 한번 잡숴보십쇼. 네네, 그렇게 해달랍니까?”

아줌마가 서글서글한 게 성격이 좋아 보인다. 척 보기에 장사하게 생겨먹었다. 제꺽 상황을 수습하고 손님을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창수는 두부가 끓을 동안 앞에 놓인 김치를 집어 입에 넣고 술을 청했다. 우선 배안에서 반항하는 것들에 알코올 세례를 퍼부어야지. 두부가 끓기까지 언제 기다려, 당장 급해 죽겠는데.

창수는 반병짜리 컵에 술을 쿨럭쿨럭 부어 목구멍으로 꿀꺽꿀꺽 쏟아 넣었다. 그리고는 김치를 덥석 집어 풀 씹는 소처럼 써걱써걱 소리를 냈다.

두부가 다 끓자 또 한 병을 들이켰다. 눈앞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온종일 빈속으로 일만 한데다 단번에 술을 두병씩이나 들이부으니 정신이 금방 해롱해롱 해진다.

에라, 취했다, 안 되겠다. 이제 깡내국시나 먹구 가야지

창수는 강냉이국수 파는 쪽으로 휘청휘청 걸어갔다. 호주머니에서 담배 판돈 한쪽 귀퉁이가 빠금히 내민 줄도 모른다.

국수 두 그릇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에 들어가는지 모르고 먹어치운 후에야 돈이 없어진 줄 알았다. 어느 꽃제비가 해치운 게 분명했다.

국수장수가 난리를 쳤다. 돈이 없으면 곱게 빌어먹을 노릇이지, 덩치 커다란 게 애도 아니고 무슨 지랄이야! 악을 빡빡 썼다. 주변에서 구경거리가 생겼네 하고 쳐다본다. 누가 전했는지 국수장수의 동생인지 조카인지 하는 녀석까지 달려와 주먹질을 해댔다. 창수는 국수 값으로 윗저고리를 벗긴 채 컴컴한 거리로 구루마를 끌고 나왔다.

젠장, 집으로 가야지. 그래, 집에 가서 자고 싶다. 비틀거리는 걸음을 따라 구루마도 이리저리 갈지자를 그린다. 집에 가자, 집에, 창수는 끝도 없이 중얼 거렸지만 몸은 집이 아니라 역전을 향해 갔다. 취중에도 금옥이가 두렵다. 술까지 마시고도 한 푼도 없이 나타나면 혼자 다 해 처먹고 거짓말 한다고 야단칠 것이고, 그러면 내일부터는 구루마를 내주지 않을 것이다.

밤에 들어오는 열차를 기다리자, 그래서 한탕이라도 벌고 가야지, 그렇구말구.

역전광장 한쪽 구석에서 창수는 구루마위에 드러누웠다. 북방의 봄밤은 쌀쌀했다. 속옷 바람이지만 술기운이 달아올라 추운 줄도 못 느꼈다.

이제 한 시간만 있으면 열차가 도착할 시간이다. -그래 기차만 들어와라 몽땅 내거다 내거!- 객기를 부리는 소리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흠칫 놀라 돌아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창수는 노래를 부른다.

 

경치도 좋지만 살기도 좋고

살기도 좋지만 경치도 좋네

 

끝도 없이 같은 곡조를 반복해 주절대던 노래 소리가 잠잠해졌을 즈음 열차의 기적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창수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술 취한 쇠새끼가 덜덜 떨며 깨어났을 땐 몸은 구루마 위가 아닌 콘크리트 바닥에 있었다. 누군가가 구루마를 훔쳐간 뒤였다. 하늘에선 새벽 별이 깜빡이고 창수는 얼음판에 자빠진 소처럼 휑한 눈을 껌뻑거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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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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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생 ip1 2013-09-05 19:14:56
    잘봤어요,,,
    이렇게 단편 집을 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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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먼길 ip2 2013-09-05 20:37:42
    실화인지요?
    이런삶도 있네요~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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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주 ip3 2013-09-05 22:13:59
    글재주가 있네요. 대충쓴거 같은데도 괜찮습니다.

    누구 찬양하는 그러것하고는완전 대비가 되네요.
    게속 요런글 쓰세요 두가을 나타낼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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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흐으음 ip4 2013-09-05 22:41:41
    에이 더러운 세상, 그넘의 술이 웬쑤로다. 서로 빼앗꼬 훔치고 악다구를 쓰지 않으면 살아갈수 없는 세상. 그것이 북한이로다, 북한에 태여난게 죄로다.
    소설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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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명학 ip5 2013-09-05 23:54:35
    읽어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부족점이 많습니다. 앞으로 북한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잘 써내기 위해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능력은 모자라지만 많은 응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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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캬캬 ip6 2013-09-06 18:52:11
    재밌게 잘 봤습니다. 참 별의별 사연이 많겠죠. 그 얘기 어디다 다 할꼬...
    한 많은 세상 등지고 간 사람들, 벤츠는 고사하고 아반떼도 못 타보고 죽은 사람들.
    불쌍해서, 정말 불쌍해서 여기서라도 잘 살고 그 원쑤를 꼭 갚아줘야 겠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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