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식품종은 미국수준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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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종자는 미국선교사를 통해 조선에 처음 도입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강남에서 들어온 작물이라는 어감으로 <강냉이>로 부른다. 이러한 강냉이는 주로 마치종류가 생산성이 가장 좋았다. 강냉이 알이 마치 말 이발과 비슷하다고 하여 마치종이라고 한다. 이 마치종은 이삭과 알이 크지만 단점은 키가 크다는 것이다. 모든 작물은 넘어지면 반 수확이라고 할 만큼 치명적이다. 태풍이 부는 한반도에서 키가 크다는 것은 그 만큼 치명적인 것이다. 이러한 단점을 해결한 것이 1대 잡종이다. 1대 잡종은 키가 상대적으로 작아 태풍에 안전하며 또한 직립형 입모양으로서 배게 심을 수 있다. 마치종이 평당 7-8대 심었다면 1대 잡종은 20대 이상을 심는다. 개별적 이삭의 무게는 마치종 보다 못하지만 총 이삭수가 많아 소출은 150%이상 높다. 세계적으로 <녹색혁명>의 대명사는 바로 1대잡종 옥수수 도입을 말한다. 믿기 어렵지만 1970년대 전국 도입 율을 보면 북한이 단연1등이었다. 이 사실은 멕시코 국제 강냉이연구소와 유럽의 강냉이연구소 중심인 로마에서 확인한 자료들이다. 극도로 폐쇄된 북한이지만 의외로 농업과학기술 향상을 위해 옥수수연구소에서 1명의 우수한 과학자를 로마와 멕시코에 파견, 주재하고 있었다. 그 주재원의 성함은 잊어 먹었지만 누군지는 잘 아는 분이었다. 수재 급에 속하는 과학자였고 부인도 영어를 잘 하는 교사출신이었다. -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북한의 2大작물인 벼와 옥수수 종자는 우수한 것이다. 심지어 옥수수 생산대국인 미국수준이다. 이 사실은 2001년 한미곡물협회 박영인회장님의 추천으로 미 농무성 초청 한국농업대표단 일원으로 필자가 미국 방문하여 확인한 결과이다. *남한 옥수수연구가 북에 뒤쳐진 것은 쌀이 남아도는 형편에서 연구할 필요성이 소외된 결과였다. 남한의 옥수수연구원이 5명 안팎 이라면 북한은 수백 명에 이르고 보조노동자까지 합치면 몇 만명 이나 되기에 게임이 안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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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고추와 담배 고구마 등은 조선시대 임진왜란때 일본에서 건너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전쟁이 꼭 나쁜것만은 아닙니다.
6.25전쟁으로 수천년간 이어져 왔던 이른바 양반과 상민 신분제가 무너진 것은 사실입니다.
임진왜란 중에 온 것도 있고 그전에 또는 그후에 온 것도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