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바보가 아니라서 경제발전 민주화 이룬게 아니라...미국같은 혈맹이 있었고, 북한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난 북한출신 리승만박사같은 천재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워서 그렇게 된거란다. 뭘 알고 까불어라....니들 북한에 가면 니들이라고 뭐 민주화할 것 같냐?? 등신들...니들 보다 훨씬 더 똑똑한 유태인들도 2 차대전기가 나치에 반항한번 제대로 못하고 6백만명이 죽었단다.
걔네들 살인 병기들로 길러진 애들이란다. 사람 하나 죽이고 흔적도 남기지 않고 없애는 것은 그냥 식은죽먹기란다. 그 당시 광주에서 실종된 사람들 여러명 된단다.80년대 그리고 그런 조사가 제대로 이뤄졌다고 생각하냐? 그때 휴대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처럼 전산망으로 인구조사하는 것도 아니고....
1980년 학원소요의 전개과정입니다.
성균관대 신입생의 병영집체교육(8박9일) 입소거부- 국방부 집단 징집영장 발부-성대생 학내데모-서울시내 대학가 소요확산-서울역 데모-5.17 계엄확대-광주사태
성대는 입학 한달 후 4월초 입소(ROTC 창설순서로 입소, 서울대-성대...) 일정이었기에
서로 얼굴도 모르는 신입생들의 시위 구상은 어불성설이고 학도호국단도 해체돼서 학내 조직이 전무했습니다.
오후 5시 철수하던 전경 부대원들과 학교 울타리를 마주하며 애국가를 같이 부르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 민주화 열망으로 모두가 넋놓고 휩쓸렸습니다.
3월 28일-5월 18일 두달이 채 못되는 짧은 기간에 모든게 이루어지고 끝났습니다.
당시 학원정국을 조직적,전격적으로 배후조종한 자금,인력의 진원지는 어디였을까요?
5.18 와중에 갑자기 증가했던 광주근방의 정체불명 무선교신은 무엇일까요?
세월이 지나면서 아무리 곱씹어도 당시 상황은 북한을 배제하고는 이해 안되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이러지 말고 외국인인지 먼지한분 글좀 올리세요
그럼 한가지 충고 줄게요.
북한실태는 북한 인민이 더욱 잘안다고 선배님도 어느때인가 글 올렸더군요.
근데 요시기는 외 말을 살짝 바꾸시죠?
아님 지금와서는 고위급 장교들이 탈북하니 갑짜기 고향 생각나세요?
님은 어느때 볼때는 아무 생각없이 말 하는게 특징 이라고 보아도 과언 아님니다.
북한속담 잘 아시죠?
망둥이 뛰면 송어도 뛴다구요
선배님이 그격입니다
또는 솔나무 잎이 흔들리면 가랑 나무 잎도 흔들리려고 한다구요.
선배님은 선배님답게 살아야 대우 받는다는것을 명심 하기 바랍니다
이제는 적지않게 나이도 드셨갯는데 외 선배님은 달라지는게 하나도 없으신지요?
선배님도 이제는 오신지 퍼구나 되셨으면 통일 자금으로 후원도 해보심 좋겟습니다
이상 입니다
북한은 탈북자들이 잘 알고 남한은 남한사람들이 잘 알고
같은 남한이라도 특정지역에서 일어난 특정사건은 당시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나 취재기자가 더잘 알겠죠.
당시 광주에 있었던 수많은 목격자와 취재기자들 중에서 아직까지 북한군을 봤다고 말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진압에 참여했던 한국 군인들 역시 북한군을 봤다고 말한 사람은
아직까지 없습니다. 작년에도 이민복님의 글을 봤는데 북한군 개입에 대해 말을 바꾸신 적은 없습니다.
어딜 가더라도 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연히 주최측이 만류했겠지요.
올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면 될겁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꽉닫힌 남북관계를 개선하라는 메시지로 볼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보수언론사들도 정부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듯이 일부의 일을 전체로 일반화해서는 안되겠죠.
5.17 전국계엄 발표할 때 까지 광주는 타지역에 비해 조용했습니다.
박통의 긴급조치 이후에는 데모 경험도 별로 없어서 초기 시위양상은 코메디 수준이었고
원시적 장비를 갖고 있던 경찰도 어리버리 하기는 마찬가지 였지요.
나중에 서울역 데모현장에서 누군가 버스로 경찰대형을 덮칠 때 까지 시위대와 진압경찰은 절대로 과격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5.18에 대해서 첫번째 가졌던 의문은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광주지역 학생들이 어떻게 첫 데모에서 공수부대원들과 투석전을 할 수 있었을까 입니다.
저도 5.17 이전 도피생활하던 무렵에 경복궁 동십자각 앞에서 착검 도열한 수경사 소대 병력을 몰래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현장의 써늘한 기운은 맨정신 가진 학생들이 감당할수 있는 차원이 아닙니다. 5월 18일 오전, 대학정문 통과를 제지하던 공수부대에게 책가방속돌멩이로 맞선 전남대생들은 우발적인 시위대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2-3일 사이에 전국적으로 유언비어가 퍼지고 광주 일원에서 전개된 상황도 학생시위 차원이 아니었지요.
정필이가 아니고 건필이었습니다. 그 닉을 딱 하루 이틀 정도 썼지요.
이 창에 정필이라는 고정 닉네임을 쓰는 분이 있으므로 저하고 정필님을 다른 분들이 헷갈리 수 있기에 알려드립니다.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으네요.
사실 5.18을 포함해서 정치적인 것은 우리 삶과 크게 관련도 없습니다.
이제 그런 이슈에는 초연해지고 싶습니다.
오전에 썼던 댓글은 삭제했습니다.
계엄군이 광주와 광주외곽을 철통같이 봉쇄했는데.
어쨌든 천하의 북한군도 밥을 먹어야 싸우겠죠.
임무수행차 적국에 와서 자력갱생한다고 먹을것 구하러 다니겠냐? 그런 말은 북한에서나 통하지.
남한사람들이 북한군인 하나 구별 못하는 바보로 보이냐?
바보가 아니니까 경제발전과 민주화도 이룬거란다.
앞으로 할 말 있으면 즉각 즉각 대응해라.
내 말이 뭐가 틀렸고 비논리적이며 내가 언제 욕을 했다고 밑에다도 또 댓글을 달았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무식하다는 말은 너한테 처음 들어본다.
성균관대 신입생의 병영집체교육(8박9일) 입소거부- 국방부 집단 징집영장 발부-성대생 학내데모-서울시내 대학가 소요확산-서울역 데모-5.17 계엄확대-광주사태
성대는 입학 한달 후 4월초 입소(ROTC 창설순서로 입소, 서울대-성대...) 일정이었기에
서로 얼굴도 모르는 신입생들의 시위 구상은 어불성설이고 학도호국단도 해체돼서 학내 조직이 전무했습니다.
오후 5시 철수하던 전경 부대원들과 학교 울타리를 마주하며 애국가를 같이 부르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 민주화 열망으로 모두가 넋놓고 휩쓸렸습니다.
3월 28일-5월 18일 두달이 채 못되는 짧은 기간에 모든게 이루어지고 끝났습니다.
당시 학원정국을 조직적,전격적으로 배후조종한 자금,인력의 진원지는 어디였을까요?
5.18 와중에 갑자기 증가했던 광주근방의 정체불명 무선교신은 무엇일까요?
세월이 지나면서 아무리 곱씹어도 당시 상황은 북한을 배제하고는 이해 안되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아래는 깐깐하기 그지없는 외국인이 보낸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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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러지 말고 외국인인지 먼지한분 글좀 올리세요
그럼 한가지 충고 줄게요.
북한실태는 북한 인민이 더욱 잘안다고 선배님도 어느때인가 글 올렸더군요.
근데 요시기는 외 말을 살짝 바꾸시죠?
아님 지금와서는 고위급 장교들이 탈북하니 갑짜기 고향 생각나세요?
님은 어느때 볼때는 아무 생각없이 말 하는게 특징 이라고 보아도 과언 아님니다.
북한속담 잘 아시죠?
망둥이 뛰면 송어도 뛴다구요
선배님이 그격입니다
또는 솔나무 잎이 흔들리면 가랑 나무 잎도 흔들리려고 한다구요.
선배님은 선배님답게 살아야 대우 받는다는것을 명심 하기 바랍니다
이제는 적지않게 나이도 드셨갯는데 외 선배님은 달라지는게 하나도 없으신지요?
선배님도 이제는 오신지 퍼구나 되셨으면 통일 자금으로 후원도 해보심 좋겟습니다
이상 입니다
같은 남한이라도 특정지역에서 일어난 특정사건은 당시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나 취재기자가 더잘 알겠죠.
당시 광주에 있었던 수많은 목격자와 취재기자들 중에서 아직까지 북한군을 봤다고 말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진압에 참여했던 한국 군인들 역시 북한군을 봤다고 말한 사람은
아직까지 없습니다. 작년에도 이민복님의 글을 봤는데 북한군 개입에 대해 말을 바꾸신 적은 없습니다.
종부기들이 광주사람들을 무시하고 지들 꼴리는대로 저지르는것인가여?
아님, 정일동무래 광주민중을 위해 무슨 업적이라도 남겼는가여?
요런것두 누가 좀 설명해주시면 아주아주 감사하겠습니다.
확대해석 되기전에 빨리 점여....
올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면 될겁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꽉닫힌 남북관계를 개선하라는 메시지로 볼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보수언론사들도 정부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듯이 일부의 일을 전체로 일반화해서는 안되겠죠.
답글은 감사하지만, 애매모호한 표현들은 별로입니다.ㅋㅋ
호남지역은 언제부터인가 좌파들의 본거지가 되었고 좌파들은 독재를 찬양하는 종부기들에게
휘들리며 정의를 상실해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당제에는 공감하지만 독재세력에게 휘둘리는 거대 정당을 봐 주기가
참으로 딱하네여.
사회적, 지역적 갈등을 바라지는 않지만 이같은 현실들도 마음에 들지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부조리 현상들이 광주와 호남의 정의론 민심에의하여 바로 정리될수있기를 바랄뿐입니다.
그리고 대북문제를 말씀하시는데
북한민주화와 개혁개방을 위해서는 남.북관계가 꽉 막혀있는것이 현재로선 더 좋습니다.
남북관계개선 욾조리면서 북한민주화와 개혁개방에 찬물이나 붙지않았으면 합니다.
사정상 요기까지만 할게요.......
- 위에7번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5-07-14 23:11:11
사정은 탈북자들이 더 절박한것 같은데...
지금은 시간이 안돼니 저넠에 답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박통의 긴급조치 이후에는 데모 경험도 별로 없어서 초기 시위양상은 코메디 수준이었고
원시적 장비를 갖고 있던 경찰도 어리버리 하기는 마찬가지 였지요.
나중에 서울역 데모현장에서 누군가 버스로 경찰대형을 덮칠 때 까지 시위대와 진압경찰은 절대로 과격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5.18에 대해서 첫번째 가졌던 의문은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광주지역 학생들이 어떻게 첫 데모에서 공수부대원들과 투석전을 할 수 있었을까 입니다.
저도 5.17 이전 도피생활하던 무렵에 경복궁 동십자각 앞에서 착검 도열한 수경사 소대 병력을 몰래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현장의 써늘한 기운은 맨정신 가진 학생들이 감당할수 있는 차원이 아닙니다. 5월 18일 오전, 대학정문 통과를 제지하던 공수부대에게 책가방속돌멩이로 맞선 전남대생들은 우발적인 시위대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2-3일 사이에 전국적으로 유언비어가 퍼지고 광주 일원에서 전개된 상황도 학생시위 차원이 아니었지요.
님은 딱히 고정으로 쓰는 닉이 없으니 그냥 그전에 님이 썻던 닉 정필로 부르겟습니다.
솔직히 저 위에 댓글은 정필님 한분이 아닌 님과 비숫한 성향의 분들 모두를 보시라고
적어놓은 글 이였습니다.
말이 난김에 하는 말인데 진보와 호남쪽에서 종부기들을 어르만지는 이유는 기껏해서
선거에서 표를 모으기위한 수단일테지만 탈북자들에게는 본인과 가족들의 생사존위가
판가름되는 문제입니다.
만약에 이 사회에 종부기들이 득세하고 적화통일이 되는경우 탈북자는 형장의 이슬이
되던가 아니면 김정은 장군님의 하늘같은 배려에 의해 정치범수용소 행이 될것입니다.
이렇게 놓고볼때 어떤 세력의 정치적 목적 달성과,탈북자들의 사활이 걸린 종북척결중에
어느쪽의 사정이 더 절박한것일가여?
종부기들은 백주대낮에 공개적으로 설쳐대고 진보쪽에서는 그런것을 모르는척 하던가
아니면 은근히 감싸주며 탈북자들의 뒤통을 쳐 갈려대는 현상들 중에 어느쪽이 더
심각한것일가여? 실망스럽다면 어느쪽이 더 실망스러워 해야 하는가여?
탈북자들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신다면 저를향해 섭하다는 말씀은 안하실것입니다.
그리고 대북지원 문제도 그렇습니다.
걍 냅쳐두면 조금 느리기는 하겟지만 지들이 알아서 개혁개방을 할것입니다.
괜히 대북지원을하여 북한의 개혁개방을 방해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좀 덜 자극적인 말을 했으면 좋을텐데....
그렇다고 마음속에 없는말을 억지로 만들고 싶지도 않네여.
저역시 탈북자일 뿐이고 저의 뜻은 언제나 탈북자동지들과 함께입니다.
정필님께 좋은말을 해줄수없어서 미안합니다.
~~~편히 쉬세요~~~
이 창에 정필이라는 고정 닉네임을 쓰는 분이 있으므로 저하고 정필님을 다른 분들이 헷갈리 수 있기에 알려드립니다.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으네요.
사실 5.18을 포함해서 정치적인 것은 우리 삶과 크게 관련도 없습니다.
이제 그런 이슈에는 초연해지고 싶습니다.
오전에 썼던 댓글은 삭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