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과 박정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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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 많지 않은 우리역사에서 박정희는 풍운아요 영웅이었다. 나는 순결한 도덕의식도 없으면서 하인배의 의식수준으로 자꾸 내려가는 나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고 싶다. 5.16은 아직도 우리에게 시간적으로 너무 가깝다. 5.16과 박정희에 대한 역사적 조명은 미래에 더 정당한 평가를 받을 것이다. 박정희는 분명 큰별이 되어 세계적으로 추앙을 받을 날이 올 것이다. 세계, 특히 제3세계를 보면 의인이 많은데 박정희 같은 인물이 없어서, 그들의 꿈이 도로아미타불에 그치고만 현실은 오늘 코리안드림을 위해 목숨을 걸고 올려는 외국인에서도 찿아볼수 있다. 산업화의 토대 없이 정치투쟁,이념투쟁은 그들의 산업화마저 어렵게 하여, 번영은 고사하고 민주와 자유 그 숭고한 그뜻 자체도 살리지 못한 비극적 결말은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비일비재하게 목격된다. 눈을 돌려 북한뿐만 아니라 필리핀을 비롯한 아시아,중남미,아프리카의 190여개 모든 나라들이 방황하며 찌들어사는 국가적 치부는 오히려 우리에게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박정희를 이토록 높이 평가하는 마음의 바닥에는 그에게 허심탄회하게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박정희는 나 같은 책방서생이 반대하는 일만 골라가며 했기에 큰일을 해낼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이 옳다. 그는 절대로 하면 안된다고 내가 굳게 믿은 일들을 무서운 집념으로 추진하여 번번이 성공시킴으로써 나를 부끄럽게 했다. 교과서 읽고 원칙론을 맹신하는 선비, 수신제가 좋아하는 군자, 서구식 민주주의 좋아하는 사람 예수 믿는 사람, 좌파이론에 중독되어 무아경에 빠져 있는 사람을 모두 철저히 무시하고, 그는 오로지 통치권을 극대화하여 경제 개발을 박력있게 이끌어갔다. 이것이 바로 그의 위대함이다. 박정희의 개발독재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지금 나라 밖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므로 세계에서 그의 위상이 높이 드러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소련을 비롯한 동구의 나라들이 지금 그의 리더쉽과 한국의 기적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고, 산업화를 추구하는 후진국에서 그가 누리는 존경은 대단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영삼, 김대중에 이어 노무현이 정권을 잡은 이나라 안에서는 3공, 4공 에대한 객관적 평가 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에, 주로 박정희는 멜로드라마의 부역, 비화의 주인공 처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이것은 시간이 해결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나 간단한 상식에 속하는 몇 가지 이슈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아는 뻔한 사실마저도 이상한 분위기에 눌려 그를 은폐하려는 것은 우리 자신을 자기 기만의 족쇄로 묶어두는 어리석은 짓이다. 이른바 대권주의자 한 분이 어느 잡지에 박정희를 평가하여 경제개발에 약간의 공이 있었던 것은 인정하지만 발전할 여건이 갖추어졌기 때문에 경제가 발전했던 것이리라는 뜻의 글을 쓴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어떤 정치 지도자는 국민이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고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고도성장이 이루어진 것이지 박정희가 정치를 잘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했다. 이런 정치인들을 보면 암담한 생각이 든다. 국민이 모두 열심히 일해야 발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마나한 얘기지만, 이들의 얘기를 뒤집어보면 `나라의 경제가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국민이 열심히 일하지 않기 때문`이 된다. `한국경제가 성장한 것은 박정희 때문이라기보다 국민이 열심히 일한 결과이다` 라는 주장은 `북한경제가 낙후한 것은 김일성 부자의 위대한 영도력에도 불구하고 북한 동포가 게으른 결과이다`라는 주장과 꼭 같은 낮은 수준의 오류이다. 문제는 어떤 지도자의 어떠한 정책이 국민으로 하여금 열심히 일하게 하는가이다. 여기서 박정희는 성공했고 김일성은 실패했다. 경제가 어느 수준에 이르게 되면 정부 통제의 효율성이 내려가고 심지어 역기능까지 하는 것이 사실이다. 한 후진국의 지도자는 "박정희만큼 경제개발을 세차게 밀고 나갈 수 있다면 나는 그가 장기집권을 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겠다'. 유신체제가 어느 경우에나 무조건 나쁜 것인지는 따져볼 가치가 있다. 남한과 북한의 통일은 남한에 의한 북한의 흡수통합이 이상적이다. 그러나 제일 큰 걸림돌은 남북한의 경제의 격차가 너무 크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공공연히 조국을 통일한다는식으로 북한인민을 우롱하지 말고 10년 정도 경제개발과 생활수준 향상에 전력을 다하는 것이 진정한 통일로 가는 길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원컨대 유신체제처럼 북한이 하루속히 나라를 부흥시켜 국부를 쌓을 효율적인 방법이 된다면 오히려 환영할것이다.(그럴일도 없겠지만) 박정희를 폄하하는 또 하나의 시각은 "절대빈곤을 없앤 것이 무엇이 그리 대단한가? 그까짓것을 하려고 장기 독재를 했는가?" 하는 비판이다. 젊은 학생들이 주로 하는 주장인데 절대빈곤을 전혀 겪어보지 않은 세대가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의문이다. 그런데 제3세계국가의 절대빈곤을 얘기해보면 한국학생이 그들의 굶주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동안 절대빈곤 이야기를 지겹게 들었기 때문이리라. 졸부부모가 자식에게 고생하던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너희는 복에 겨운 줄 알아라는 소리에 아이들이 견딜 수 없어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더구나 고생을 자랑하며 강요하려 드니 젊은이들이 분노하는 것도 당연한 이치일것이리라. 산업화에 따르는 계급모순과, 보릿고개 이야기가 궁상떠는 기성세대의 푸념 정도로 무시되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상대적 빈곤이 절대적 빈곤보다 결코 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딱하게 보인다. 굶주림은 "간디"처럼 한달 넘게 단식상태에서 죽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하루 세번 들이닥치는, 피하려해도 피할수없는 끼니의 두려움을 적어도 한번쯤은 체험할 필요가 있다.그렇다면 50억 인류의 3분의 1이나 되는 사람의 삶에 있어 빈곤의 극복은 어떠한 경우에도 `그까짓 것`이 될 수 없다. 지난 수년이 지난 동안 한국인에 대한 평가가 해마다 높아지는 것을 피부로 느끼며 해외에서 살아왔다. 한국의 학생들이 이념서적을 200권씩 독파한다는 소문이 퍼져서가 아니다. 이념서적 독파 정도가 아니라 그 책들을 써내던 사람들이 폐허속에서 기적을 이룬 한국을 깊이 연구하게 되면서 박정희라는 개인의 지도력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산업화는 후진국 인민들에게 큰 희망을 준 성공의 모범이요, 전형인 것이다. 절대빈곤 속에서 질식상태. 빈사상태에 놓여 있는 한국이 강력한 지도자에 의하여 큰 생산적 에너지로 동원될 수 있으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물질적 토대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가능하다는 확신을 박정희는 이들에게 심어주었다. 한국은 세계 속의 희망의 나라가 되었고 박정희는 이 신화의 주인공이다. 박정희의 공로를 인정하면서도 독립군과도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했었던 그의 청년생활을 일본육군 장교로서 일년 남짓 복무한 과거를 거론하여 거품을 물며 비난하며, 1965년 개방화를 위해 필수적이었던 한일국교정상화가 굴욕적 외교라고 역시 거품물며 외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일본에 대한 한국의 위상은 굴욕 종속과는 반대 방향으로 발전해서 대등한 외교에서 국제사회에서 오히려 압도해가는 위상으로 나아가게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나약한 자의 공허한 시위의 극일이 아니라 진정한 극일이 어떤것인가를 일깨워준 것이다. 그의 실용주의 노선은 결국 어떤 명분론보다도 민족자존의 길임이 입증된 것이다. 그 당시 한일협정으로 배상금과 차관을 들여와 중요한 국가적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고 일본의 기술을 도입하지 않았다면, 또한 굳건한 한미일 동맹을 구축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반일의 목소리를 낼수있는 환경은 커녕, 영원한 일본의 하청업체, 일본물건의 중고품 전시장으로 전락했을것이 틀림없다. 그이전에 전쟁준비만 해왔던 북한의 김일성의 남침준비에 남한은 먼저 농락당했을지도 모를일이다. 이 시점에서 박정희를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글은 누구를 위하게 되는가? 나는 나 자신에게 정직하기 위하여 내가 보는 대로 진실을 말하고 싶은 것뿐이다. 3공,4공 세력에 이 글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지도 않으며, 설사 약간의 도움이 된들 나쁠 것이 무엇인가? 과거에 우리는 흑과 백, 선과 악을 명확히 가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흑과 백을 포괄하여 파악하는 정치적 성숙성이 요구되는 더 높은 단계로 왔다. 지난날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던 이른바 "양심인사"들이 자칭 민주화를 시작한 이래 보여 온 치졸무쌍. 파렴치한 작태도 볼만큼 봤고, 박정희의 큰 업적들이 새삼 돋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박정희 에 대한 올바른 평가 없이는 우리는 자기기만 속을 계속적으로 헤매게 될 것임을 지적하고 싶은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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