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조국해방전쟁서 총 한방 안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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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정영 2008-07-01 북한에서 김일성은 소련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기 스스로 개척한 민족의 영웅으로, 나라를 찾아준 은인으로 소개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 소련이 김일성을 체계적으로 키워 북한의 지도자로 내세웠다는 한 연구보고서가 남한에서 발간되었습니다. '비록(秘錄) 평양의 군정'이라는 이 연구보고서의 저자 조선대 정책대학원 김국호 교수는 김일성이 1940년대에 소련으로 들어가 소련군에 의해 정치군사지도자 교육을 받았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 연구보고서는 소련 국방성 비밀문서에 근거해 작성된 것으로 북한이 주장하는 항일무장 투쟁을 다시 조명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소련국방성 비밀자료에 따르면 1945년 8월, 제88정찰여단장인 주보중은 소련 극동군 바실레프스끼 총사령관에게 보낸 긴급보고서에서 “제 88정찰여단이 1942년 스탈린의 특별지시에 따라 조직되었고, 군사정치 전문가 교육을 받았다”고 보고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북한 혁명력사에서는 김일성이 1940년 8월 소할바령회의를 열고 조국광복을 주동적으로 맞이할 준비를 하기 위해 소련으로 들어간 것으로 묘사됐습니다. 김일성의 회고록에도 나와 있는 제88정찰여단은 주보중이 여단장으로 있었고, 김일성은 대위로 조선인 빨치산 출신 100여명과 함께 있었던 부대입니다. 당시 소련은 대일전쟁에서의 승리에 대비해 제 88여단을 조직하고, 장차 한반도에 소련의 위성국을 건설하는데 주역이 될 지도자 양성기관으로 키웠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김일성의 소련원동지방 생활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북한 혁명력사에서는 김일성 부대가 조국광복을 위해 들어갔다고 하지만, 사실은 일제의 토벌을 피하기 위해 100여명의 조선인 대원들을 데리고 피난간 곳이었습니다. 당시 동북항일연군에서 2로군 군장이었던 주보중은 여단장으로 소련군에 편입되었고, 김일성은 대대장으로 편입되었습니다. 북한의 교과서들은 김일성이 일제를 반대하는 조국해방작전을 진두에서 지휘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보고서를 보면 일본에 대한 총공격 명령이 내려진 지 4일 후에 여단의 작전계획이 전면 취소되고 여단의 기동이 없었다고 적혀 있어 김일성 부대가 조국해방전쟁에서 총 한방 쏘지 못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북한은 김일성을 '조국을 찾아주신 수령님'이라고 우상화 하고, 김일성을 중심에 놓고 항일무장투쟁역사를 전면 수정하고 날조했습니다. 항일무장투쟁 역사에서 김일성 보다 더 공로가 큰 투사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조국에 돌아와 썼던 '항일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는 그들이 세상을 떠나고, 종파로 숙청된 다음에 하나씩 회수되어 없어졌습니다. 80년대에 “붉은 해발아래 항일혁명 20년”이라는 책으로 새롭게 나타나 항일무장투쟁 역사는 김일성을 중심으로 전면 수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왜곡되고 날조된 역사는 언젠가는 밝혀진다는 것을 이번 연구보고서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자유아시아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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