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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의 한 농가, 울음바다가 돼 버린 사연은?
China 통일한민족 1 558 2008-09-04 10:20:04
△ 가을의 햇살속에 유난히 푸르렀던 백두산 천지
"저 평양에서 왔시다"
자년 가을 저는 중국의 국경절 연휴에 고구려 유적지 답사 겸 우리 민족의 혼이 서려있는 뜻깊은 중국 동북 3성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민족의 성지 백두산도 올라보고 중국의 동북 지역도 두루 둘러볼 겸 우선 베이스캠프(?)로 제가 찾은 곳은 베이징에서 알게 된 조선족 동포 친구의 집입니다. 그 친구의 집은 연변 조선족 자치주 연길시에서 조금 떨어진 교외의 한 농가였습니다. 장작으로 불을 지펴 가마솥에 밥을 해먹는 전형적인 연변의 가난한 농가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곳에서 뜻하지 않게 그 집안의 먼 친척 뻘 되는 '평양에서 온 손님'과 조우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이곳도 오랜만에 명절을 맞아 재중동포 친구의 대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인 자리. 저 역시 살가운 친구인지라 일일히 친척들과 한사람씩 소개를 하며 악수를 나누는데 누군가 갑자기 음습한(?) 목소리로 " 저 평양에서 왔시다"라고 하더군요. '똘이장군'의 반공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어린 시절을 보낸 저는 북한 사람을 만난다는 생각에 순간 섬뜩했습니다.

전 잠시 어리둥절 했지만 곧바로 "저는 서울에서 왔시다"라며 북한 억양섞인 목소리 빠르게 응수했습니다. 일순 "와~ " 하고 주위에서 웃음이 터졌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조선인(북한인)이 오는데 한국 사람을 만났는데 어쩌냐"며 은근히 걱정을 했다고 합니다.

북한 동포들은 주로 중국에 거주하는 친인척 조선족들의 초청으로 중국 방문이 이루어지며 당국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출국을 허락해 준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북한과 중국 간의 이산가족 상봉인 셈이죠.

제가 만난 북한동포 K씨는 60년대 북한의 경제가 상대적으로 중국보다 우월하던 시절 가족과 함께 먹고 살 길을 찾아 북한으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무려 40년만에 중국 땅을 다시 밟는다고 했습니다.

한국전쟁의 기원을 놓고 '1민족 3국적인'의 난상토론
왜소하고 깡마른 체격의 K씨의 나이는 올해로 만 45세. 그러니 실제로는 15년 이상은 더 들어보였습니다. K씨는 가족은 평양에 살고 있고 가족 중 당 하급 간부도 있고 자녀들이 평양에서 학교를 다니는 걸로 보아 대체로 북한에서도 중산층 정도 되는 계층인 듯 보였습니다.

중국에서 우연히 보는 대부분의 북한 동포들(외교관이나 음식점 종사자들을 제외한)의 얼굴은 늘 표정이 굳어있고 마른 체격에 얼굴이 앙상한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겠습니다. K씨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K씨는 연변에서 TV로 상영되는 한국의 드라마나 뉴스 등을 통한 한국의 실상을 보고 매우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대개 연변의 많은 조선족 동포 가정에서는 위성수신기를 설치하여 한국의 TV를 시청합니다)

K씨는 한국인인 저를 보고 이것 저것 물어보며 대단히 반가워 했습니다. "장인어른이 6.25때 의용군으로 끌려왔다. 고향을 너무 그리워한다. 이름 알면 친척들을 찾을 수 있냐"라고 물어보기도 하고 한국인들의 보통 급여수준을 물어보기도 하였습니다. "1가구에 한 2백만원 정도 되지 않나 싶다"라고 생각나는대로 일러주자 중국 돈으로 한참 환산해보더니 연신 "그게 사실이냐?"며 놀란 입을 다물지 않더군요.


△ 백두산 정상에서 필자
K씨와 친구의 온 가족이 저녁식사를 마친 후 차를 들며 이런 저런 한담을 하며 은근히 신경전(?)을 벌이던 우리들은 이내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민감한 6.25를 중심으로 한 한국 현대사를 놓고 설전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몇 마디 주고받다가 금방 서로의 입장차를 드러낸 것은 너무 당연한 일. 조선족 동포 대가족의 호기심 어린 눈길에 둘러싸여 중국 조선족 노인, 북한의 K씨, 한국의 젊은이인 저, 이렇게 '1민족 3국적인'의 보기드문 난상 토론이 벌여졌습니다.
그러나 저마다 신경을 곤두세운 열띤 토론은 시간이 지날수록 '평양에서 온 손님'측이 점차 수세로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요즘 장군님을 많이 존경하지 않느냐"
그 집안의 제일 웃어른인 조선족 노인은 K씨가 존경해 마지않은 '어버이 수령'을 '김일성'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호칭하는 바람에 K씨가 얼굴을 붉히며 당황하기도 하고 "한국전쟁은 미괴뢰도당이 도발한 전쟁이 아니라 북한이 일으켰다"라는 노인의 주장에 "중국 조선족들이 한국과 교류가 많다보니 영향을 받아 물든것 아니냐"며 상기된 표정으로 맞서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중국동포들을 비롯 많은 중국인들은 한국전쟁을 미국의 선제공격으로 일으켰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민해방군 출신으로 한국전쟁에 참가하기도 하고, 그 덕에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고 젊은 시절 평양을 자주 방문했으며 대약진, 문화대혁명 등 격동의 중국현대사를 온몸으로 거친 해박한 이 노인의 논리정연함과, 현대사에 관심이 많았던 제가 간간히 던지는 '지원사격' 앞에 K씨의 날선 주장과 목소리는 힘을 잃고 점점 허물어져 갔습니다.

K씨는 중간 중간 저에게 "그렇지만 한국의 젊은이들이 요즘 장군님을 많이 존경하지 않느냐", "인터넷이 도대체 정확히 뭐냐"라고 묻기도 했습니다.
"김영삼 김대중과는 달리 난 노무현 대통령이 싫지는 않다"라는 얘기도 하더군요. -_-;

한국전쟁의 기원, 그리고 그 후의 일련의 굵직굵직한 현대사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다가 끝내 포기한 K씨. 그러나 그는 토론의 말미에 "우리는 가난하다. 그러나 우리는 장군님 중심으로 일치단결한다"는 말과 함께 당당한 표정을 잃지않았습니다.

"못 입고 못 먹어도 주체의 한 길로 간다"며 공화국의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K씨가 허물어진 것은 정작 그 다음.


△ 연변의 한 거리
울음바다가 되어버린 연변의 한 농가
제가 가족들의 안부를 묻자 K씨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이 역력하더니 곧 떨리는 목소리로 "아버님이 고난의 행군 시절에 굶어서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한참있다가 “나이드신 삼촌들 역시 마찬가지다”라고 힘없이 덧붙였습니다.
"배급이 제때 나오지 않아 로인들은 며칠씩 굶고 그러다보면 날씨 추운날은 그냥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시기 일쑤"라며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그 '굶어 죽은 사람들'은 다 그 조선족 동포 대가족들과 한 피를 나눈 친척일 터.
듣고 있던 한 아주머니가 훌쩍 거렸습니다. 그러자 가족 중 또 다른 한 사람이 숨죽여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스산한 늦가을 저녁. 마른 땔감으로 불을 지피는 농가의 좁고 낡은 방은 이내 온통 울음바다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한 것일까요.

조선족 노인과 친구, 그의 가족들, 북한동포 K씨 그리고 저까지 그 대목에서 무언가 울컥 복받쳐 모두 목놓아 엉엉 울었습니다. 한참 울고난 K씨는 눈물을 훔치며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야 할텐데.."라며 말을 흐렸습니다.

이 조선족 노인의 집안 역시 한눈에 보아도 참으로 가난했습니다. 다음날 이 시골 농가의 인심많은 주인은 달리 줄것이 없다며 조카뻘되는 K씨에게 창고에서 헌 옷가지를 보따리에 잔뜩 챙겨 주었습니다. 번번히 북한에서 친척들이 방문하기 때문에 이미 따로 준비해놓은듯 보였습니다.

털이 달린 헌 옷가지들은 장마당 내놓아 팔 수 있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북한에서 온 친척에게 할아버지가 큰 맘먹고 재봉틀과 텔레비젼을 들려보내 할머니와 '황혼이혼'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할머니 역시 간혹 방문하는 할머니쪽 북한 친척들에게는 더없이 인심히 후합니다.

저도 인민폐 100위안(한화 약 1만3천원)짜리 지폐를 건내려다 그만 주저하고 말았습니다. '못살아도 당당한' K씨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기 싫었던 것이지요.


어느덧 1년이 다 되갑니다. 낙엽지는 중국 동북의 스산한 바람을 맞으며, 고향으로 돌아가 겨울을 나겠다며 자신의 몸집보다 훨씬 큰 헌옷 보따리를 소중히 짊어지고 뒤뚱뒤뚱 걸어가는 K씨의 야윈 뒷 모습이 지금도 아픈 기억으로 제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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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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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대한동이 2008-09-04 18:58:10
    좋은글 감사합니다... 여기 오시는 여러 네티즌 여러분 이렇게 한국,북한동포,중국동포는 피를 나눈 한민족입니다.. 앞으로 중국동포를 미워하지 마시고 우리와 피를 나눈 한민족임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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