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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북한의 속셈은 ‘비핵화’가 아니라 ‘비핵지대화’ [I]
Korea, Republic o lovekorea 0 297 2008-09-06 17:14:11
이동복

작성일 2008-09-01 07:13:21


북한의 속셈은 ‘비핵화’가 아니라 ‘비핵지대화’[I]

'6자회담'은 이제 壽命을 다 했을 가능성이 있다

李東馥

2008 베이징 하계 올림픽 폐막 다음 날인 8월25일 서울을 방문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자주석과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한ㆍ중 정상회담을 가진 뒤 “북핵 사태 해결을 위해 6자회담의 틀 안에서 조기에 비핵화 2단계 조치의 전면적이고 균형 있는 이행을 촉진시키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합의는 공허한 합의였다. 하루 뒤인 26일 북한이 6자회담의 틀 안에서 ‘비핵화 2단계 조치’의 핵심으로 영변 소재 핵시설을 상대로 진행 중에 있던 이른바 ‘불능화’(북측 표현으로는 ‘무력화’) 작업을 일방적으로 “중단시킨다”는 ‘자살폭탄’(?)을 또 터뜨렸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학계 및 언론계의 ‘친북’ㆍ‘좌파’ 성향의 인사들은 이번 북한의 조치에 대해서도 북한의 입장을 두둔하려 애쓰고 있다. 한 편으로는 “미국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전형적인 북한식 협상술”이라고 그 의미를 축소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슬그머니 ‘미국 책임론’을 띄워서 은근히 미국측의 양보를 종용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이 같은 반응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 26일자 외무성 성명은 베이징 ‘6자회담’이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절벽에 부닥쳤음을 보여 주었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6자회담’에서 미국과 북한은 여전히 하나의 동일한 ‘핵문제’가 아니고 서로 간극이 메워질 수 없는 2개의 서로 다른 ‘핵문제’들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미국이 ‘6자회담’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북한의 비핵화’다. 그러나, 미국이 ‘6자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표현을 받아들인 것은 치명적인 잘못이었다. 미국은 이 표현을 수용한 것은 미국이 생각하는 ‘비핵화(denuclearization)’의 개념이 “비핵국가의 핵보유를 저지하여 핵무기의 확산을 막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은 이미 남한에서 모든 핵무기를 철거(1991년)했고 대한민국은 핵무기를 보유는 물론 개발도 하지 않고 있으니까 ‘한(조선)반도’에서 ‘비핵화’의 대상은 당연히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미 개발ㆍ생산하여 보유했다고 스스로 선언한 북한”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라고 표현하더라도 ‘비핵화’의 대상은 ‘북한’에 국한될 것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생각은 달랐다. 북한이 실제로 ‘6자회담’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한(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nuclear free zone)’였다. '비핵화‘와 ’비핵지대화‘는 상반된 개념이다. ‘비핵지대화’는 ‘비핵화’와는 달리 ‘일정한 지역’(‘비핵지대’) 내에서의 ‘핵보유국가’들의 특정한 군사적 ‘핵활동’을 ‘통제’하는 활동이다. 상식적으로는, 한반도의 경우, ‘비핵화’의 행동 주체는 ‘북한’이지만 ‘비핵지대화’의 행동 주체는 ‘북한’과 ‘미국’(그리고 어쩌면 ‘남한’도)이 된다. ‘6자회담’에서 북한은 ‘비핵화’라는 표현의 사용을 수용하면서도 지역을 ‘북한’이 아니라 ‘한(조선)반도’로 표기하는 표현을 관철함으로써 실제로는 ‘6자회담’ 석상에서 ‘북핵’ 문제를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한(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의 차원에서 논의할 것을 주장할 수 있는 논거를 확보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북한의 이 같은 협상전술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91-92년 남북한이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할 때도 사용했던 상투적인 전술이다. 1991년 북한은 남한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제안에 대해 ‘조선반도 비핵지대화 공동선언’ 제안으로 맞섰다가 막판에 이를 철회하고 남한의 주장대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채택에 합의했었다. 그러나, 북한은 다음 해(1992년)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에서 ‘핵사찰규정’ 작성 협상이 시작되자 일단 철회했던 ‘비핵지대화’ 내용을 다시 풀어 내놓고 이의 관철을 고집하다가 ‘핵통제공동위’를 일방적으로 중단시켰었다. 북한은 이번 ‘6자회담’에서 1992년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에서 사용했던 협상전술을 재탕하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6자회담’이 우여곡절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알면서 그랬는지 아니면 몰라서 그랬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북한이 ‘비핵지대화’ 주장을 꺼내 들 가능성을 내장한 표현인 ‘조선(한)반도’라는 표현을 수용하는 것을 대가(代價)로 하여 우선 가능한 것을 먼저 챙기는 쪽을 선택했다. 그 결과로 북한과 미국 간에는 ‘2007.2.13자 합의’의 1단계와 2단계 조치가 이행되기 시작했다. 우선 북한이 영변의 플루토늄 관련 시설과 물질을 ‘폐쇄’ㆍ‘봉인’하는 대신 미국 쪽에서는 한국이 중유 5만톤을 제공하는 1단계 조치가 이행되었다. 이어서 북한이 ‘폐쇄’ㆍ‘봉인’했던 영변의 핵시설과 물질을 ‘불능화’시키고 ‘핵신고서’를 제출하는 대신 미국이 95만톤의 중유와 50만톤의 식량을 지원하는 것에 추가하여 북한에 대한 ‘적성국교역금지법’ 적용을 해제하고 국무부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제거하는 절차를 밟는 2단계 조치가 이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7.2.13자 합의’의 2단계 조치는 북한과 미국의 동상이몽(同床異夢)으로 처음부터 실패가 예고된 것이었다. 북한은 2단계 기간 중 11개의 대상 시설 중 8개에 대한 ‘불능화’를 이행했고 그 일환으로 영변 소재 5MW/e 흑연감속로의 냉각탑을 폭파시켰다. 북한은 또한 1,800여 페이지 상당의 플루토늄 생산관련 기록을 미국에 건네주고 60 페이지의 ‘핵신고서’를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제출했다. 일견 괄목할 만 한 진전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북한의 조치에는 북한 나름의 계산이 숨겨져 있었다. 즉, 북한이 취할 2단계 조치는 철저하게 ‘영변 소재 플루토늄 관련 시설’에 한정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적성국교역금지법’ 적용 종결과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받아내겠다는 것이 북한의 계산이었다. 북한의 입장에서 이미 사실상 용도가 폐기된 죽은 시설인 영변의 핵시설을 버리는 대신 실리를 취한다는 사마매골(死馬賣骨) 작전이었다.

그러나, 미국에게는 미국의 계산이 있었다. 미국은 우선 영변 소재 핵시설의 ‘불능화’와 북한으로부터의 ‘핵신고’를 확실하게 챙기는 길을 택했다. 북한이, 특히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시설’(‘방사화학실험실’)을 포함하여, 그 동안 ‘불능화’시킨 8개의 영변지역 핵시설을 복원하여 재가동하려면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이 미국의 계산이다. 북한의 ‘핵신고’ 내용은 당연히 영변 소재 핵시설과 핵물질에 한정되어 있었지만, 일단 북한이 제출한 ‘핵신고’ 내용을 손에 거머쥔 미국은 비장(秘藏)의 보도(寶刀)를 뽑아들었다. ‘검증(verification)’이 그것이었다. 미국은 ‘검증’을 통해 비단 ‘신고서’에 포함된 영변 소재 플루토늄 관련 사항의 진위(眞僞) 뿐 아니라 북한이 ‘2005.9.19자 공동성명’과 ‘2007.2.13자 합의’, 그리고 ‘2007.10.3자 합의’에서 ‘신고’하기로 약속한 ‘모든 핵무기’와 ‘모든 핵 프로그람’이 과연 ‘신고서’에 망라되었는지의 여부를 분명하게 가려내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특히, ① 북한이 이미 제조하여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만약 있다면)와 ② 미국이 의혹을 가지고 있는 ‘고농축 우라늄’(HEU) 문제 및 ③ 시리아 및 이란과의 핵협력 의혹은 모두 ‘신고’ 대상이라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이 제출한 ‘핵신고서’에 대한 ‘검증’을 통해 이 같은 세 가지 사항을 확인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이 같은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는 내용의 ‘검증의정서’에 합의할 것을 ‘시한부’로 북한측에 요구했다. 이를 위해 미국이 설정한 ‘시한’은 45일간이었다. 이 45일간은 북한이 6월26일 ‘핵신고서’를 중국에게 제출함에 따라 미 국무부가 의회에 통보한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결정이 발효되는데 소요되는 최소한의 시간이다.

이 기간 동안 의회가 반대 입법을 하지 않는 한 문제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 결정은 발효하게 되어 있다. 여기서 의회의 반대 입법이 없이 이 시간이 경과하면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결정이 “자동적으로 발효되는 것”인가 아니면 이로써 그 결정을 “발효시킬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는 것”인가에 관해서 양론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미국 정부는 의회의 반대 입법 없이 45일이 경과하더라도 북한이 미국이 수용할 수 있는 ‘검증의정서’에 합의할 때까지 문제의 해제 결정을 발효시키지 않는 것으로 방침을 정리했다. 45일이 경과하는 8월11일까지 북한은 미국이 원하는 ‘검증의정서’에 동의하지 않았다. 미국은 8월11일이 경과했지만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결정을 발효시키지 않았다.

미국의 입장은 북한이 제출한 ‘핵신고서’는 ‘검증’이 없이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핵무기’와 ‘모든 핵 프로그람’에 대한 북한의 ‘신고’ 의무는 ‘신고’ 내용의 ‘완전성’과 ‘정확성’에 대한 ‘검증’에 필요한 ‘검증의정서’를 북한이 수용할 때라야 충족된다는 것이다. 북한 외무성의 26일자 성명은 형식적으로는 이 같은 미국의 입장에 대해 반발하는 것이었다. 북한은 북한이 “핵신고서 제출”이라는 2005년9월19일자 ‘공동성명서’의 ‘2단계’ 의무사항을 이행했는데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거한다”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행동 대 행동’ 원칙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에 대한 대응 조치로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① “진행 중이었던 핵시설 ‘무력화’(‘불능화’) 작업을 즉시 중단”하고 ② “영변 소재 핵시설들의 ‘원상회복’을 고려”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26일자 외무성 성명에서 북한은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 전망을 어둡게 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거론했다. 북한은 이 성명에서 그 동안 ‘6자회담’ 석상에서는 더러 거론했지만 공개적으로는 거론하지 않았던 북한의 속내를 여과 없이 들어 내 보여 주었다. 즉, 북한은 북핵 문제를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한(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로 다루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우리가 조선반도를 비핵화 하려는 것은 우리 민족에 대한 핵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서이지 결코 핵억제력을 놓고 흥정하자는 것이 아니다”라는 대목과 “검증에 대하여 말한다면 ‘9.19 공동성명’에 따라 전 조선반도를 비핵화하는 최종단계에 가서 6자 모두가 함께 받아야 할 의무”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외무성 성명은 북한이 말하는 ‘검증’은 “남조선과 그 주변에 미국의 핵무기가 없으며, 새로 반입되거나 통과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검증이 우리의 의무 이행에 대한 검증이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비핵화’가 아니라 ‘비핵지대화’인 것이다.

만약, 이 같은 북한의 주장이 수용된다면 ‘6자회담’은 실질적으로는 ‘난파선(難破船)’의 처지를 모면할 수 없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되면, ‘6자회담’이 할 수 있는 일은 ‘파먹어서 빈 김치 독’에 불과하게 된 영변 지역의 핵시설을, 그나마도 북한이 ‘신고’한 내용을 가지고, ‘검증’하고 ‘관리’하는데 불과해 지게 된다. 북한의 속셈은 터무니없게도 스스로 ‘핵억제력’이라고 호칭하는 핵무기 보유 여부에 대하여 사실상 ‘핵보유국’에 준하는 지위를 누릴 수 있을 정도의 ‘모호성’(ambiguity)을 계속 유지하면서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이를 카드로 사용하여 공갈하고 협박함으로써 미국과 남한, 그리고 국제사회로부터 북한이 원하는 정치ㆍ경제적 양보를 갈취하는 ‘벼랑끝 외교’(brinkmanship)를 무한정 반복 구사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거론하는 ‘비핵지대화’는 미국과 남한은 물론 국제사회가 결코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이 의미하는 것은, 영변의 ‘쓰레기’들은 버리고, 나머지 ‘핵능력’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북한을 만족시키는 내용으로 종식될 때까지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북한이 말하는 “대북 적대시정책의 종식”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북한이 요구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의 종식”은 ‘한-미 안보동맹’의 해체를 의미한다. 궁극적으로 ①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폐기, ② 한-미 연합작전 체제의 해체, ③ 한-미 연합사 작전계획-5027의 폐기, ④ 한-미 합동군사훈련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미-북 평화협정’ 체결 요구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북한은 북한을 작전 반경 안에 두고 있는 미국의 세계적 핵전략의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26일자 외무성 성명의 “남조선과 그 주변에 미국의 핵무기가 없으며, 새로 반입되거나 통과하지도 않아야 한다”는 대목이 바로 그것을 말한다.

26일자 북한 외무성 성명으로 ‘6자회담’이 직면하게 된 문제 상황은 북한이 이제는 공개적으로 북한이 ‘신고’한 영변의 핵시설 이외의 대상에 대해서는 미국이 북한의 ‘비핵지대화’를 수용할 때까지 일체의 ‘검증’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그때 가서 ‘검증’을 한다면 그 ‘검증’은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한(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의 개념에 입각하여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이 같은 입장을 고수하는 한 ‘6자회담’은 진전은 물론 속개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로써 ‘6자회담’은 ‘2007.2.13자 합의’의 ‘2단계’를 졸업하는 것이 사실상 무산되었다. 우선 문제는 ‘불능화’ 작업이다. 본래 ‘6자회담’에서 합의된 ‘불능화’ 시한은 작년 12월말이었다. 이 시한이 금년 10월말로 연장되었던 것인데 이 시한마저 지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거기에 더하여 26일자 북한 외무성 성명으로 북한이 제출한 ‘핵신고서’에 대한 ‘검증의정서’ 협상의 길이 봉쇄되었다.

더구나, 이제 미국은 본격적인 차기 대통령선거 기간에 접어들고 있다. 민주당은 이미 전당대회를 열어 바락 오바마(대통령)-조셉 바이덴(부통령) 티켓을 출범시켰고 공화당은 곧 전당대회를 열어 존 매케인(대통령)- 사라 페일린(부통령) 티켓을 내세울 예정이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문제가 있다. 민주ㆍ공화 양당이 비록 ‘외교적 해결’을 표방했지만 모두 대선 공약에서 북핵 문제에 관하여 매우 강경한 입장을 채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대선 공약은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검증가능한 종식”과 함께 “지금까지 북한이 생산한 모든 핵분열성 물질과 무기에 대한 완전한 설명”을 강조하고 있다. 공화당의 대선 공약은 더욱 강경하다. "미국은 북한의 핵확산 활동에 대한 충분한 해명과 아울러 핵 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해체 요구를 철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제 남은 임기가 4개월여에 불과한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여지는 없다. 이에 따라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먼저 핵 신고 검증체제에 합의해야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하겠다”는 원칙을 재강조하고 있다. 토니 프레토 백악관 대변인은 26일 "북한이 먼저 핵 신고 내역 검증 체제에 합의하여 약속을 이행해야 미국은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삭제할 것"이라고 역설하여 북한의 핵시설 ‘불능화’ 중단 조치에 대한 ‘양보 불가’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6자회담’의 속개는, 북한의 입장에 변화가 없는 한, 빨라도 오는 11월의 미국 대통령선거 뒤로 미루어진 것으로 보고 이에 대비하는 것이 옳다. 여기서 짚어두어야 할 사실은 새로운 ‘6자회담’ 교착상태의 장기화로 반드시 북핵 사태가 악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26일자 외무성 성명에서 북한은 ‘폐쇄’되고 ‘불능화’되었던 영변지역 핵시설의 ‘원상 회복’을 협박했다. 그러나, 북한의 이 같은 협박은 공허하다. ‘재처리시설’을 포함하여 그 동안 ‘불능화’된 영변의 핵시설을 ‘원상’으로 ‘복귀’시켜 ‘재가동’하려면 11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의 26일자 북한 외무성 성명에 대한 반응이 의외로 느긋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8월31일자 주간지 에 게재된 ‘인터뷰’ 기사에서 ‘6자회담’ 한국측 수석대표인 김숙 외교통상부 은 북한이 8월14일 ‘불능화’ 작업을 중단시키고 이를 미국에 통보했을 때 한국정부도 ‘실시간’으로 상황을 파악했다고 주장함으로써 26일 이전에 문제의 북한 외무성 성명 내용을 알고 있었음을 시사했다. 그는 “이 조치가 바람직하지 않고 실망스럽기는 했지만 북한이 나서서 발표하지 않는데 먼저 나설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26일까지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사실이 그렇다면 25일 서울에서 한-중 정상회담을 가졌을 때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지도자는 “북핵 사태 해결을 위해 6자회담의 틀 안에서 조기에 비핵화 2단계 조치의 전면적이고 균형 있는 이행을 촉진시키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상황은 한-중 양국도 이번 사태를 크게 위험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 남은 문제는 ‘6자회담’의 궤도 이탈이 장기화되는 동안 이로 인하여 파생되는 남북관계의 동반 교착 상태에 한국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한국의 좌파 세력은 곧 정부에 대해 핵문제와는 별개로 남북관계의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한 노력을 주문하고 나설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한반도의 진정한 화해와 협력을 위해서는 북핵 해결이 선결과제”(2007.7.11 국회본회의 연설)라는 입장을 이미 분명하게 밝혀 놓고 있다. ‘6자회담’이 무기한 중단되어 있는 상태에서 그의 정부가 무언가 대북정책의 새로운 이니시어티브를 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7월11일 발생한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에 대한 수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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