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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자유로 반역의 기회로 삼지마라.
Korea, Republic o 구국기도 0 399 2008-09-25 10:07:34
1.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도 이와 같을 것이라 무릇 그를 만지기만 하는 자도 죄 없게 되지 아니하니라.] 他人(타인) 所有(소유)의 性(성)에 목적을 가진 터치는 성적인 표현일 경우 하나님은 그것을 죄로 여기실 것이라고 한다. 타인의 것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인간의 기본 도리이다. 그 기본 도리의 영역을 예수님은 더 높여서 마음에 품어도 간음이라고 하셨다. 이는 인간을 本能(본능)에서부터 탈출시키는 하나님 방식의 구원출구를 제공하시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淫慾(음욕)을 마음에 품는 세월의 의미는 인간의 선택의지에 따라서 다르게 생각하는 모양새로 합리화하려고 한다. 요즘에는 스토커라는 말이 나와서 그것을 나름대로 표현하는 것 같다. 성의 다양한 표현 속에서 일종의 條件反射(조건반사)인 셈인데 그녀가 아니면 성적인 만족이 없다고 하는 것에 또는 그 남자가 아니면 성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경우를 갖게 되는 자들이 있다고 한다. 타인의 성을 지켜야 하는 것은 우리의 국법에도 엄연하게 있고 이런 것은 아마도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로 대하는 것인 인간의 기본 상례이기도하다. 하지만 그것을 이기지 못하는 자들, 성적인 본능에 아주 약한 자들이 많다.

2. 他人(타인)의 성을 가지려는 노력의 의미는 변태적 성의 추구로만 볼 수 없다. 타인의 것을 불법으로 소유하려는 소유욕이라고 하는 차원에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인간은 성적인 만족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所有(소유) 執着(집착)에 있다는 것을 포함해야 한다는 말이다. 인간의 복잡한 심리 속에 성의 표현은 그런 것을 모두 다 함께하여 표현한다는 측면에 있다. 사실 인간은 성을 통해 상대를 소유하기를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는 일시적으로 타인의 성의 영역을 침범해도 이제 자신이 가졌다고 하는 정신적인 만족감에 충족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소유욕의 의미는 奪取(탈취)와 掠取(약취)와 喝取(갈취)와 詐取(사취) 등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타인의 성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려는 의도로 손만 대어도 죄라고 하나님의 지혜는 말씀하신다. 서로가 플라토닉 러브로 인해 逼近(핍근)이 하는 것이나 강제로 상대의 허락이 없지만 소유하고자 接近(접근)하는 것의 의미가 별반 차이 없이 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것의 의미는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에 있어 타인의 성적인 것을 지켜내게 하는 기본의 정조문화 구축과

3. 타인의 성의 소유권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소유권리 문화구축의 법치구현을 의미한다. 인간의 이런 문제는 부부간에 성을 공유한다는 측면과 그것을 배우자 허락 없이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자유선택의지 사이에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물론 그런 것은 죄가 되지만 그 선택의 결과는 본인이 지게 되는데 있다. 만지기만 해도 죄가 된다는 말씀은 율법적인 차원이 아닌 지혜적인 차원에서 생각하라는 말씀이다. 認知(인지)와 統制(통제)의 가능한 세계로 이 문제를 가지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성을 본능의 요구를 따라 처리 할 것인가. 아니면 지혜롭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있다는 말씀이다. 성을 지혜롭게 사용하고 부부와 지혜롭게 공유하는 것의 문화가 깊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성을 지혜롭게 다루는 것은 결국 인간의 본능을 억제하고 사는 길이 열리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성을 통제하는 지혜가 있다면 그것은 결국은 본능에 충실한 동물적인 행동에서 벗어나서 經濟的(경제적)으로 살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경제가 발전하려면 반드시 성의 본능을 지혜롭게 통제해야 한다. 그때만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4. 동물은 경제를 못한다. 하지만 인간은 경제를 해내기 때문이다. 성의 본능을 통제하지 못하면 인간은 동물과 같은 삶을 산다. 때문에 성의 본능이 절제되지 못하는 사회는 경제적으로 몰락을 가져온다. 인간이 성의 본능을 억제하면 인간다운 자가 된다. 성의 본능에 약한 자들이 만들어가는 동물적인 경제는 인간다운 경제에 비해 소득격차가 벌어진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인간이 동물적인 충동을 극복하고 살 수 있다면 그 극복의 질문은 하나님의 지혜만이 그 해답이고 결과여야 한다. 사람이 불을 보면 피하는 것은 각 사람의 지혜에 따라 다르게 反應(반응)한다. 본능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모든 것을 태우는 것이기 때문에 되도록 그 접촉점을 만들지 말아야 하는데, 성의 본능은 여전히 그런 접촉점을 무수하게 찾아내려고 한다. 때문에 그들은 본능에 충성된 세상을 여는 것이 목표이고, 그런 목표를 위해 돈을 많이 벌 것이라고 말한다. 또는 돈을 많이 번 자들이 성적인 본능에 종이 되어 산다. 이런 것을 보는 이들은 인간다움의 경제와 동물적인 경제의 차이를 무시하려고 한다. 때문에 동물적인 행동을 따르는 자들은,

5. 경제적으로 몰락을 가져온다는 것을 共感(공감)하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은 개방의 시대에서 여성들이나 남성들이 공동으로 작업하고 또는 타인의 아내와 한 직장에서 같은 업을 위해 동료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이 이미 충족을 하고 있다. 타인의 아내가 동료가 되고 함께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의 한 축이라고 한다면, 이는 性(성)의 만남이 아닌 직장동료의 만남이 된다. 함에도 타인의 성이기 때문에 지켜야 하는 도리는 다 지켜야 한다. 이렇게 모두가 같이 일해야 살아가는 공동체들 속에서 각기 성에 대한 본능적인 표현은 不得不(부득불) 발생하게 된다. 본능에 충실한 시대는 그런 사회적인 문화는 결국 먹이 사냥터에 불과하게 된다. 사실 본능에 충실한 사람들이 가득한 대한민국이라면 성을 억제하지 못하는 지성은 의미가 없다. 통제의 美學(미학)이 그 나라를 먹여 살린다면 그런 것의 淵源(연원)은 성이 본능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성을 아름답게 사용하는 지성과 성을 추하게 사용하는 지성의 의미는 결국 본능에 이끌리는 지성과 본능을 억제하여 아름다움을 가진 성의 문화로 만들어내는 지성으로 구분되게 한다.

6. 성의 본능을 억제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간다면 이는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결과라고 봐야 한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으면 타인의 성을 유린하지 아니하고, 그런 성을 지혜롭게 억제하여 통제미학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간다는 말이다.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이 결국 하나님의 지혜로 통제하는 통제미학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욕망의 의미에 태초이래로 쉬지 아니하고 어떤 가치부여를 하고, 그것으로 자기들의 통제불능을 미화시키려는 의도의 이름표를 붙이려는 행동들이 있다. 이는 통제미학의 의미에서 결국은 파괴되는 性(성)으로 유린되는 性(성)으로의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행동들이다. 하나님의 지혜는 최고의 나라가 되려면 타인의 성을 지켜야 한다는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하신다. 인간의 강력한 본능을 억제하고, 타인의 성의 영역을 지켜주는 지성의 의미는 그만큼 컨트롤이 뛰어난 세상이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국가가 최고의 지성으로 다스려지고 통제되어 나오는 문화로 가야한다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본능에 충실한 문화는 사양되어야 한다. 우리가 서구문명을 받아들이고 있고 近者(근자)에는 김정일의 문화가 나라 전체를 덮고 있다.

7. 김정일의 문화란, 남한을 적화공작하기 위해 만들어진 문화 곧 인간의 본능에 충실하게 만들어가려는 모든 문화를 의미한다. 인간의 본능에 충실하면 實定法(실정법)을 어기게 된다. 실정법을 어기는 문화가 드넓게 자리 잡으면 결국은 국법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국민에게 반역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늘 본능에 충성하는 자들이 만들어가는 문화는 국법을 짓이기는 행동의 공간을 가지게 한다. 그런 공간은 곧 반역자들이 편하게 다리를 뻗고 잘 수 있는 공간이 형성이 된다. 법을 철저하게 지키는가. 아니면 지키지 못하는가에 따라 다르게 된다. 타인의 성을 만지기만 해도 죄가 된다는 것이나 또는 음욕을 품기만 해도 죄가 된다고 하는 세상을 생각한다면 이는 본능을 그만큼 철저하게 통제하고 사는 세상을 말한다. 이는 예수님의 지성이 통제하는 세상을 말한다. 이미 그런 통제를 마음에 받게 되는 자들만이 누리게 되는 문화이다. 이런 문화는 우리 국법의 요구를 충족시킨다. 이런 충족은 결국 반역자들을 숨겨줄 수 없는 여지를 갖게 된다. 때문에 국법을 무너지게 하는 자들의 문화 속에는 반드시 김정일의 주구들이 숨어 있다고 봐야 한다.

8. 그것은 곧 그들의 남한적화의 도구이고 은거지고 또한 방법이라고 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만큼 타인의 성을 만지기만 해도 죄가 되는 세상이 아니라, 오히려 타인의 것을 어떤 방법을 통해 자연스럽게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간다. 이런 것은 곧 본능에 충실한 것이기 때문에 법을 무시하고 오히려 본능을 禮讚(예찬)하게 된다. 작은 법이라도 지키려는 노력이 강한 국민일수록 결과적으로 법의 통제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낸다. 국민이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통제가 가능하겠는가? 성의 본능에 얽혀 날마다 범죄의 행동을 절제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타인의 성의 영역을 넘나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전국적으로 이렇게 본능에 충실된 것에 있다면 이미 그 국법은 死文化(사문화)되다시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이 이렇게 성욕을 인해 조롱당하게 된다면 최고의 지성의 통제를 국가브랜드로 삼아 첨단문명의 수출 국가는 될 수가 없게 된다. 국민들이 저 나름대로 자기 법을 따라 살기 때문이다. 공법이 무너지고 나면 결국 남한적화는 아주 쉬운 것이다. 국민이 국법에 충성하면 적화는 없게 된다. 하지만 법질서가 그때그때 본능에 따라 적용된다면 이는 적화를 이루게 하는 치명적인 여건을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9.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그 지혜로 자신의 본능을 철저하게 통제하여 마음으로도 품지 않는 세상으로 나가기를 성경은 권고하고 있다. 우리가 바라는 대한민국은 물질이 풍요해질수록 더불어 사는데 방해가 되는 성의 본능의 불법적인 요구를 하나님의 지혜로 철저하게 다스리는 통제미학의 시대를 여는데 있는 것이다. 그것은 서구문명의 무분별한 도입을 막아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 것이 통제는 성의 본능에 충족하려는 서구문명의 그것을 기초로 해서 국법을 문란하게 하고, 또는 법질서를 교란하거나 사문화시키는 분위기나 문화를 핑계 삼아 치외법권적인 영역을 만들어내지 못하게 하는 통제를 의미한다. 사실 인간은 그런 본능과 싸우고 있고, 그런 본능을 이기지 못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그만큼 인간의 자기통제 능력은 부패한 것이고 자신을 이기는 힘이 없다는 것이 국가의 경쟁력을 떨어지게 한다. 그런 것의 추락은 결국 경쟁력의 추락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인 것 같다. 기독교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령의 도움을 입으면, 하나님 지혜의 통제를 받게 된다고 하신다. 그런 통제를 받은 자들은 참으로 자기본능에서 이기게 되는데, 그렇지 못한 자들은 그 반대편에 서 있게 된다는 것을 보게 된다. 갈라디아서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다.

10.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자유를 위해 부르심을 받은 것은 본능의 기회로 삼지 말라고 하신다. 오히려 아가페 곧 하나님 본질의 사랑통제를 통해서 서로가 사랑의 종이 되라는 말씀이다. 많은 분들은 김정일과 그 세력의 문화에 이미 드러난 인간들만을 법적으로 조처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의 보금자리를 깨버려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앞으로도 그런 본능을 이용하여 대한민국을 망치려는 세력이 준동하는 거점이 때문이다. 때문에 자유를 위해 싸우려면 본능에 충동되어 충족을 목표로 하는 문화를 극복하게 하는 문화가 반드시 이 땅에 자리를 잡아가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본질인 아가페와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들여 본능을 통제하여 아름답게 사랑의 종이 되는 세상을 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높은 이상은 항상 우리의 각성을 요구한다. 때문에 이런 하나님의 지혜의 통제의 세상을 목표하고 한걸음씩 그것이 우리에게 이뤄지도록 기도하는 것은 구국과 애국에 직결되며 법질서를 굳게 세우는 법치구현의지를 강력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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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목: 강력한 법치구현을 달성하려면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를 힘입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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