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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지도자들은 국민의 죽음을 바른 길로 이끌어야 한다.
Korea, Republic o 구국기도 0 325 2008-10-03 11:59:51
1. [그가 그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 집으로 들어가는데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중에라.] 存在(존재)가 가지는 引力(인력)과 그것을 拒否(거부)하려는 존재의 힘과의 차이점을 결정짓는 것이 인간 속의 內面(내면)에 또 있다는 말씀이다. 모든 존재는 자기존재를 위해 他(타)를 引力(인력)하고 있고, 그런 끌어당김을 통해 獨自(독자) 및 더불어 生存(생존)을 만들어가려는 시도는 존재적인 행동을 규명해야 할 것 같다. 최진실의 죽음을 보면서 그가 그 죽음의 길이라는 것을 피할 수 없는 引力(인력)을 느끼고, 그것에 순순히 자기생명을 내 맡기는 선택에 贊成(찬성)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죽음은 우리사회의 切迫(절박)함을 內包(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린다. 이름 하여 自殺(자살) 존(zone)의 영역이 있다는 말이다. 이런 것은 우주에 별들을 잡아먹는 강력한 중력을 가진 블랙홀처럼 존재하고 있다는 말이다. 경찰 발표대로라면 그녀가 안재환의 자살로 쇼크를 먹고 그 지역(자살존)을 지나다가 그만 희생당한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우리는 이런 영역에 대한 고찰을 분명하게 해서 이런 희생자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지상에는 [自殺(자살)존]만 있는 것이 아니라 [淫亂(음란)존]도 있다고 지혜가 알리고 있다. 한 청년이 음란한 거리로 가다가 [淫亂(음란)존]이라고 하는 블랙홀에 삼켜지고 있다는 말씀을 보면서 자살의 의미를 생각한다. [1774년 발행된 명작 괴테(Goethe)의 소설 에서 주인공 베르테르는 로테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끝내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 소설이 많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며 널리 읽혀지자 소설의 주인공 베르테르처럼 노란 조끼를 입고 권총자살을 하는 젊은이들이 급증했다. 이로 인해 이 작품은 일부 유럽지역에서 발행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몰고 올 정도였으며, 동조 자살을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라고 부르기도 한다.(올인 홀 통합 사전 야후검색)]. 베르테르 효과라고 하는 [自殺(자살)존]의 의미보다 더 심각한 영역이 우리사회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심각함을 인식해야 한다. 더욱 심각한 자살존의 의미는 매우 複合(복합)한 양상을 가지고 있는데, 다른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거기에 얽히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3. 무엇보다 더 김정일 주구들이 준동하는 시절에 나타나는 이 絶命(절명)의 선택은 베르테르效果(효과)의 의미 그 이상이 그 속에 담겨져 있다. 사람이 무엇보다 더 깊은 고민은 왜 사느냐와 왜 살아가야 하느냐의 의미에 걸려있다. 그런 인식을 갖게 하려면 하나님의 빛으로 눈이 밝아야 한다. 태양이 지는 거리는 곧 지혜가 없어지는 거리를 의미한다면 [自殺(자살)존]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사망의 어둠과 악마의 어둠과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희생당한다고 한다. [淫亂(음란)존]은 하나님의 지혜의 빛이 없어 저물어가는 황혼빛 또는 깊은 밤 같은 미련함에 따라 음녀의 거리로 지나다가 음녀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引力(인력)에 희생되어 결국은 생을 마감하게 하는 곳이다. 이 나라에 있는 [自殺(자살)존]은 다른 나라에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무기를 갖추고 있는 것 같다. 마치도 상품을 하나밖에 내걸지 않던 그 베르테르자살충동상점이 보다 더 많은 이유를 상품으로 내걸고 마치도 백화점 식으로 경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거기다가 마치도 자살로 위장하는 살인업자들과 김정일이 내려 보낸 킬러들 등등을 연결하면 그런 의미가 더욱 强化(강화)된다.

4. 複合的(복합적)으로 하나가 되어 그 [自殺(자살)존]의 引力(인력)은 실로 다양한 개체들을 흡수하여 망하게 할 수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왜 사느냐와 왜 살아야 하느냐에 대해 밝은 빛을 주는 태양 같은 지혜가 그 속에 있었다면, 결국 그길로 가지 않을 것이고 그것을 넉넉히 이기고 죽음의 가치를 통해 인간의 행복된 문명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없는 세상이라면 곧 黃昏(황혼)의 葬送曲(장송곡)이 을씨년스럽게 울려 퍼지는 곳이 있게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우리 대한민국의 정신세계를 정처없이 떠돌고 있고, 그것이 지나는 지역에는 슬픔을 자아내는 소식이 급히 비보로 들려오게 한다. 그 지역에 빠지는 자들을 살펴보면 상상할 수 없는 내용으로 접근된다. 인간의 生(생)과 死(사)의 의문을 일으키는 고뇌가 결국은 태양 같은 해답을 요구하고 있고, 그것에 답을 얻지 못하게 하는 窮地(궁지)에 끌려 들어가면 거기는 황혼 같은 곳이고, 智慧(지혜)의 태양이 저무는 곳이고, 지혜의 운동이 정지된 깊은 밤 흑암중이 되는 곳이다. 거기서 그는 악마와 사망이 속삭이는 힘에 가위 눌려 그것들이 시키는 대로 자기 몸에 밧줄을 걸고 죽게 된다.

5. 사망과 악마는 크게 기뻐하며 또 하나의 생명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오래 참은 사랑의 기다림에 젖은 가슴에 못을 박는 짓을 하게 된다. 이런 것은 自意(자의)로 가는 것이 아니라, 자살이라는 것은 사망과 악마에게 가위 눌려 자기의 의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 순간에는 절박한 선택을 하도록 그런 존재가 와서 그로 하여금 죽게 만드는 효과를 낸다. 이름 하여 [自殺(자살)존]은 그들의 거처하는 장소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인간이 왜 사느냐? 왜 살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 하나님의 지혜는 이렇게 답한다. 너는 이웃을 위해 살아야 한다. 네 생명은 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의 것으로 이웃을 위해 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이웃을 위해 살아야 한다. 이런 말씀을 하실 때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에게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알아듣게 되는 지혜의 빛이 태양처럼 강력하면 그는 그 말씀에 크게 공감하고 자신의 생명을 이타적인 자살로 가게 한다. 이런 이타적 [自殺(자살)존]으로 가려는 자들은 빛의 아들들이고 빛의 밝기가 아주 강력한 太陽(태양)과 같다.

6. 自由人(자유인)의 국가와 사회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게 하는 이런 밝기의 빛이 强力(강력)하게 빛나야 한다. 그런 자들이 많으면 강력한 국가가 된다. 또는 아주 건강한 사회가 된다. 사실 이타적 자살자가 많은 나라치고 富强(부강)하지 않는 나라가 없을 정도다. 김정일은 그런 이타적 자살을 교묘하게 유도하여 偶像崇拜(우상숭배)의 대상으로 여기게 하고 결사옹위를 유도하고 있다. 이는 이타적 자살자가 많을수록 그 세상은 강력한 힘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고 그것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김정일의 暴政(폭정)에 시달리거나 김정일을 사랑하는 자들은 그런 심리상태에 빠져있다. 우리가 말하는 이웃사랑은 이런 스톡홀름 러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상숭배 사랑을 말함이 아니다. 강요된 사랑이 아니다. 십자가에 못을 박아 인간을 구원하신 예수 속에 태양의 7배처럼 빛나는 그 하나님의 지혜가 지시하는 이웃사랑이다. 이런 사랑을 성경은 아가페적인 사랑이라고 한다. 스톨게의 가족사랑을 희생시키고 에로스의 사랑을 희생시키고 필리아의 사랑을 희생시키고 오로지 이웃을 위해 아가페 사랑을 하는 자기희생적인 滅私奉公(멸사봉공)을 의미한다.

7. 건강한 남자가 자기 성욕에 이끌려 가는 것은 그만큼의 切迫(절박)한 본능의 문제일 것이다. 본능이 강하면 결국은 그곳으로 이끌려가게 되고, 그것을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 배고파진다고 예수님은 지적하셨다. 때문에 이웃을 사랑하는 자들만이 그 배에 충족감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充足(충족)이란 것의 반대는 虛怯症(허겁증)이고 공허증이다. 이런 심리의 의미는 채울 수 없는 慾望(욕망)이라는 것이고, 그런 존재를 만나면 결국 젊음을 그것에 먹이로 드려진다고 하는 것이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한 아름다운 여인의 속에 性(성)의 倒錯(도착) 곧 채울 수 없는 慾望(욕망)이 자리잡아 있다면 그것을 채우려고 하는 운동이 그녀의 속에서 활발하게 작용하고 그것으로 인해 먹이 된 자들을 만들어내는 노력을 하게 되고, 그런 것을 확보하기 위해 [淫亂(음란)존]으로 가서 먹이사냥을 한다는 것을 말한다. 사랑의 아름다운 로맨스가 아니라 이는 다른 자를 흡수해서 자기의 性的(성적)인 虛怯症(허겁증)을 충족시키는 여자들, 곧 팜므파탈的(적)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런 여자들의 가진 성적인 힘은 곧 허겁증이고 공허증이다.

8. 普通(보통)으로 만족하는 보통여인들이 아니라 밤새도록 느껴도 지치지 않는 여자들을 의미한다. 이런 여자들에게는 남자를 사로잡는 매력이 있고, 그것에 묶이면 정신없이 파고들다가 결국은 심각하게 건강을 잃고, 마침내 죽게 된다는 것이 聖經(성경)의 憂慮(우려)함이다. 우리사회에 떠도는 자살존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살펴내야 한다. 그것을 이용하여 赤化(적화)공작을 하는 김정일 주구들의 준동여부를 면밀하게 추적해서 살펴내야 할 것이다. 社會(사회)를 치료하고 국가를 건지려고 나선 이들은 우리사회의 인간들이 문제에 굴복하고 생명을 輕視(경시)여기는 이런 風潮(풍조)를 반드시 없애야 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상업적인 言論(언론)들은 이런 것이 많을수록 장사가 잘 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면 베르테르슬픔이라고 效果(효과)를 주어야 한다는 것을 내심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자살존은 이제는 베르테르的(적)이 아니라, 어쩌면 남한적화的(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의 존재는 이유가 있기에 인과의 결과이다. 우리는 노무현 씨 때 실로 많은 자들이 대북문제로 인해 자살하게 되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9. 그런 自殺(자살)의 裏面(이면)에는 무언가 그들을 그런 자살존으로 몰아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자살존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그것으로 적화를 이루고자 입막음용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의 의미다. 자살한 최진실의 죽음은 무엇일까를 두고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그가 무엇을 안고 가려고 한 것인가의 有無(유무)를 생각하게 한다. 그녀의 죽음은 하나님의 지혜의 태양을 잃어버려 그만 사망이 주장하는 입김인 어둠에 깊은 흑암에 황혼에 가위 눌려 원치 않는 행동을 하였다는 것을 말함인가? 그녀의 苦惱(고뇌)가 주는 의미는 우리 사회의 책임있는 공인들의 심리에 많은 警鐘(경종)을 가하고 있다고 본다. 나라의 대통령은 이 사회에 분명한 빛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왜 우리가 살아야 하는가? 많은 어려움이 없는 자들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살인의 허급증에 빠진 사망이 그 자살존의 영역을 몰고 다니는 것을 막아낼 수는 없는 것인가 하는 자살예방장치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으로 봐야 한다. 자살예방장치의 의미는 결국 이웃사랑이다. 이웃사랑을 하면 사랑의 만족이라고 하는 것이 발생하게 되고, 그것이 인간의 모든 虛怯症을 채워준다고 한다.

10. 인간을 사랑하려면 변치 않는 사랑이 필요하고,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것만이 변치 않는다는 구별을 갖게 된다. 아름다운 사랑의 결과는 거기에 있다. 결국 사랑의 아주 强力(강력)한 힘의 근원인 하나님을 누리는 것에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이웃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다 이런 허겁증에 끌려갈 수 있는 가능성의 지역을 지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인간의 충족감은 결국 많은 돈을 채우데 있지 아니하다. 북한의 김정일처럼 광범위한 虐政(학정)으로 인간을 파괴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과 그 지혜와 사랑의 본질을 그 마음에 채우는데 있고,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날 때 비로소 하나님의 기쁨이 인간에게 공급된다고 한다. 그런 기쁨에 잠겨 사는 자들만이 인간존재의 충족감을 갖고 생명을 사랑하며, 그 생명으로 福(복)된 가치를 창조해 가는 것이다. 우리는 자살한 자들의 다양한 구별에 있어 대부분 국가나 사회에 해악을 끼친 자들이 자기 책임감에 따라 죽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으로 자신의 잘못을 贖罪(속죄)하려는 자기式(식)의 계산 방법이다.

11. 이런 보상심리는 자기만의 방법이고, 그것이 또한 이미 범한 잘못을 씻어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하늘에 하나님의 지혜의 빛이 태양처럼 떠올라 의식 무의식 속에 인간 생명의 가치가 얼마나 위대한가를 알게 되어야 한다. 정치인들이 그런 것을 공급하지 못한다면 自殺(자살)공화국 소리를 듣게 될 것이고, 사회에는 이타적 자살자들보다는 오히려 자살을 빙자한 킬러들의 준동이 강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범죄수사의 의미는 그런 완전범죄를 꿈꾸는 자들의 이상적인 환경에 鐵槌(철퇴)를 가해야 한다. 우리사회가 김정일 주구들이 준동하는 지난 10년 동안에 상상할 수 없는 자살존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고, 그것이 또한 적화공작의 은폐와 엄폐의 킬러들의 수단이 되어버렸다는 의구심을 갖게 하고 있다. 정몽헌 회장이 자살하였다는 것이 공식발표인데, 누가 그것을 믿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은 각자의 상상의 자유라고 치부할 수 없을 것 같다. 누가 지금 대한민국의 의식 무의식의 하늘에 자살존의 영역을 넓히고 있는가? 대통령은 이것에 대한 책임을 깊이 통감하고 그것을 이 한반도의 의식무의식의 영역에서 기거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12.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의 빛을 태양처럼 밝히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북한인권의 의미는 바로 그런 데 있다. 절망에 빠진 자들의 의미는 실로 다양하다.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는 방법과 그들에게 접근하는 통로가 없다는 단절의 의미 속에서 체념하며 살 수밖에 없는 限界(한계)를 가지고 산다. 하지만 그들을 사랑하려는 노력은 다른 여러 경로를 통해 가능할 수가 있다. 그런 노력을 전국적으로 한다면 이 나라는 이웃을 사랑하는 길로 접어들게 된다. 거기서 우리는 한 가지 축복을 보게 되는데, 곧 국민의 마음속에 허겁증이 소멸되는 惠澤(혜택)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을 먹어도 먹어도 배고픔을 가지는 사망이나 성의 먹이로 전락시켜야 사는 팜므파탈의 허겁증이나 같은 살인의 목적을 이루는 도구들일 뿐이다. 남한적화는 이런 것으로 하는 것을 주력하는 부대가 곧 북의 대남공작부서들이다. 이런 것들이 이 나라의 미래를 이렇게 亡(망)하게 하려고 사망과 음란의 허겁증을 부르고 있다. 이것은 어둠이고 그런 어둠은 악마와 사망과 허겁증을 가진 淫女(음녀)에게서 나온다. 그들의 주장에 빠지면 모두 다 희생된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지혜를 태양처럼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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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목: 자유대한민국을 위해 이웃을 위해 진리를 위해 희생하는 이타적 자살로 가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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