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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계신 할머니를 그리며...
Korea, Republic o koh 2 325 2008-11-19 19:17:37
우리 할머니는 중풍에 걸리셨다..
중풍은 있는 정 없는 정 다 떼고 가는 그런 병이다..학교에서 집에 들어오면 코를 확 자극하는 텁텁한 병자냄새..
얼굴 높이에 안개처럼 층을 이룬 후텁지근한 냄새가 머리가 어지럽게 했다..
일년에 한두 번 밖에 청소를 안 하는 할머니 방은 똥오줌 냄새가 범벅이 되어
차마 방문을 열어보기도 겁이 났다..
목욕도 시켜드리지 않아서 할머니 머리에선 항상 이가 들끓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할머니가 중풍에 걸려 쓰러지시고 난 후..
처음 1년 동안은 목욕도 자주 시켜드리고 똥오줌도 웃으며 받아냈었다
2년 째부터는 집안 식구들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3년째에 접어들자 식구들 은근히 할머니가 돌아가시길 바라게 되었다..
금붕어를 기르다가 귀찮아져서 썩은 물도 안 갈아주고 죽기만을 기다리듯이 말이다..
경우에 따라서 무관심은 살인이 될 수도 있었다..
온몸에 허연 곰팡이가 피고 지느러미가 문드러져서 죽어가는 한 마리 금붕어처럼..
할머니는 그렇게 곪아갔다..
손을 대기도 불쾌할 정도로..
그래서 더욱 방치했다..
나중엔 친자식들인 고모들이 와도
할머니 방엔 안 들러보고 갈 지경이었다..
돌아가실 즈음이 되자 의식도 완전히 오락가락 하셨다..
그토록 귀여워하던 손주인 내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셨다..
할머니가 건강하셨을 때..
나는 할머니랑 단 둘이 오두막에서 살았었다..
조그만 헌 담요 한 장에 할머니와 난 나란히 누워 별을 세며 잠이 들었었다..
아침은 오두막 옆에 있는 밤나무에서 떨어지는 밤을 주워서
삶아먹는 걸로 대신했다..
할머니는 나에게 굵은 밤을먹이려고 새벽부터 지팡이를 짚고 밤을 주우셨다..
할머니가 내 이름을 잊는 일은 절대로 없을 줄 알았는데..
하지만 이성이 퇴화 할수록 동물적인 본능은 강해지는 걸까..
그럴수록 먹을 건 더욱 밝히셨다..
어쩌다 통닭고기가 생겨 드렸더니..
뼈까지 오독 오독 씹 어드셨다..
섬뜩하기 까지 했다...
병석에 누운 노인이 그 많은 통닭을 혼자서 다 드시다니..
가끔 할머니에겐 돈이 생길 때가 있었다..
고모들이 할머니 방문 앞에 얼마씩 놓고 간 돈이다..
(이상의 소설)'날개'에서아내가 남자의 골방 머리맡에 잔돈을 놓고 가듯 말이다..
그러면 나는 할머니에게 돈을 달라고 졸랐다...
할머니는 그 돈을 조금씩 조금씩 나에게 주셨다..
한꺼번에 다 주면 다음에달라고 할 때 줄게 없을까 봐 그러셨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돈이 필요할 때면 누구보다 할머니에게 먼저 갔다..
엄마가 '먹이'를 넣으러 왔다 갔다 할때 말고는 그 방을 출입하는 사람은
내가 유일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느 날이던가..
결국 할머니의 돈이 다 떨어졌다..
나는 돈을 얻기 위해 할머니를 고문했다..
손톱으로 할머니를 꼬집었다..빨리 돈을 달라고...
그렇지만 얻을 수 없었다..
할머니는 정말로 돈이 없었으니까...
그때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셨다..
꼬집혀서 아팠기 때문이 아니라
나에게 뭔가를 줄 수가 없어서 였을 것이다..
가끔 할머니는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시려고 노력하셨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꼼지락 꼼지락
하시는게 무언가를 주려고 하시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나는 내 이름도 제대로 못 부르는 할머니를 피하기만 했다..
할머니에게서 더 이상 얻을 돈이 없다는 것도 이유 중에 하나였다..
간혹 한밤중에도 '허.. 흐흐.. 하..'하는 할머니의 신음 같은
목소리가 내방까지 들려오면..
나는 흡사 귀신소리라도 듣는 듯 소름이 돋아 이불을 얼굴까지
덮어쓰고 잠을 청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할머니는 낙엽처럼 돌아가셨다...
그제서야 고모들도 할머니 방에 발을 들여놓았다..
할머니는 돌아가신 후에야
목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의 몸을 씻으려고 걸레 같은 옷을 벗겨내었을 때...
할머니의 옷 안주머니에서 무엇인가가 나왔다..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거무튀튀한 물체였다..
그것은....
통닭다리 한 짝이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 거리셨는지 손 때가 새카맣게 타있었다..
이 감추어둔 통닭다리 한 짝을 나에게 먹이려고 그토록 애타게 내 이름을 부르셨던가..
한 쪽 손을 주머니에 넣고
꼼지락 거리며 내 이름을 부르시던 할머니..
마지막 순간까지 이 손주 생각을 하셨는지....

.."할머니에게"...

나 닭고기 먹을 때 마다 할머니 생각한다..
특히 다리 먹을 때마다 항상 그때 할머니가 준거라고 생각하고 생각 하고 먹어..
그러니까 이제 그런거 안 감춰도 돼..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만나면 또 주머니에 밤이며 떡이며 잔뜩 숨겨놓고 있을 거지?
그러지 말고 할머니가 다 먹어..
할머니 먹는 거 좋아하잖아..
난 여기서 잔뜩 먹을께...
거기선 아프지 말고 잘 지내...
이제 영원히 못 만나겠지..?
그 동안 할머니한테 못 해드린 거 미안해..
하늘나라에서..만약 그때 만나면...
착한 손주 될게...
후..이제 정말 안녕할 시간이다..
그런데 할머니..나 이상하게..
..자꾸..눈물이 나와...

..자꾸.자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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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보트 미소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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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무보트 2008-11-19 22:12:16
    할머니...
    말만들어도 푸근한 상대...
    뭐든지 내편인 사람..
    꼬부랑허리로 다락에 올라 감쳐논 사과하나 꺼내 오시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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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소천사 2008-11-19 23:08:42
    저켠에서 할머니가 손저어 부르시는 지독한 사랑냄새가 진동하는군요 !!
    koh 님 많이 울었습니다
    힘내시고요
    고무보트님도 할머니의 달인 이십니다 ^^
    내 할머님을 뵈옵는듯 착각하였습니다....요
    ㅎ...! 그 사과 내가 먹곤 했는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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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oh 2008-11-21 11:50:43
    윗분들 고맙구요 미소천사님쓰신 심장에 와닿는 글 많이 읽었습니다..정말로 미소짓는 天使 같은 느낌들구요..암튼 감사합니다..선배님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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