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브로커가 탈북 10대 소녀 성폭행 파문 |
---|
중앙일보] 2009년 01월 04일(일) 오전 03:22 가 가| 이메일| 프린트 [중앙일보] 탈북자들의 인권을 위한다는 기획 탈북 브로커가 오히려 그들의 인권을 짓밟아온 게 드러났다. 절박한 상황에 놓인 탈북자들의 처지를 이용했다. 10대 소녀도 성적으로 유린했다. 자유 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동남아 탈북루트의 피해자를 만났다. 탈북 브로커들의 명백한 범죄 행위에 대해 정부도 처음으로 매스를 들이대겠다고 한다. 다음은 중앙SUNDAY 기사 전문. “가슴이 턱 막혀 오더군요. 안아줘도 바들바들 떨기만 했습니다. 어떻게 아이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습니까.” 최근 탈북자 실태 조사를 위해 동남아 국가들을 방문하고 돌아온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2일 기자 앞에서도 격한 감정이 가라앉지 않는 듯했다. 간간이 눈물도 맺혔다. 탈북 브로커에 의해 성적 유린을 당한 16세 소녀 B양을 만나 들은 얘기 때문이다. 30대 후반의 가해자 A씨는 일부 언론과 기획 탈북을 성사시켜 주목받은 인물이다. 동남아 국가로 건너온 탈북자들을 우리 공관에 인도하는 ‘선행’을 해 왔고, 탈북자들의 한국행을 주선하다 현지에서 감옥살이를 했으며, 정부의 미흡한 탈북자 처리에 항의도 해 인권 일꾼으로 대접받기도 했다. 다른 브로커의 안내로 국경 지대에 도착해 A씨를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B양은 그를 은인으로 고마워했다. 1년 전 엄마·언니와 헤어진 뒤 짓눌렸던 불안에서 해방되는 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반대였다. “너는 미국 보내줄게” 유인 박 의원은 “A씨는 방을 배정할 때부터 B양을 다른 탈북자들과 분리한 뒤 성폭행했다”고 했다. 처음엔 “저 사람들은 한국으로 보내고 너는 미국으로 보내줄게”라고 했다. 성폭행 뒤에는 “총각이니 나와 결혼해야 네 삶이 편안하다”고 유혹했고 ‘나는 총각’이란 각서까지 써 줬다. 정부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A씨는 유부남이다. 그는 며칠 뒤 공관에 나머지 탈북자들을 들여보내면서 B양을 현지의 자기 집에 남겼다. B양은 보름 동안 A씨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탈북자 신분으로 혼자 집 밖으로 나올 수 없었던 B양은 A씨가 출장으로 집을 며칠 비우는 사이 중국에 있는 조선족 친구에게 e-메일을 보냈다. 그 친구의 아버지가 급히 날아왔다. 친구의 아버지는 곧바로 B양을 우리 공관으로 데려갔다. B양의 진술로 A씨의 파렴치한 행각은 드러났다. 박 의원은 “아이를 만났을 때 왼쪽 손가락의 손톱이 모두 없었다”고 했다. “어린아이가 처할 수 있는 극한적 상황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불안 때문에 손톱을 모두 물어뜯어 생살만 남았겠습니까”라고 했다. “‘나쁜 아저씨를 어떻게 해 줄까’라고 물었더니 기가 넘어갈 정도로 울기만 하던 아이는 ‘제발 벌 주세요. 꼭 좀 벌 주세요’라고 애걸하다시피 했다”고 말한다. 정부는 A씨에게 성폭행 또는 성추행을 당한 여성이 B양만은 아닌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미 입국한 성인 탈북 여성 가운데도 피해자가 있다. 정부 관계자는 “B양 사건 이후 다른 여성 탈북자를 탐문한 결과 같은 수법에 당한 사람들이 있었다”며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라고 말했다. A씨는 피해자들이 공관에 머물고 있을 때도 다른 탈북자들을 데리고 공관에 버젓이 나타났고, 무슨 이유에선지 탈북자들을 한꺼번에 공관에 데려오지 않고 ‘의도적’으로 분리해 왔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정부 관계자는 “피해 성인 여성들은 국내로 들어온 뒤 ‘A씨를 고발하지 않겠다’고 해 처벌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박 의원은 탈북과 강제 북송을 반복하며 고된 삶을 살아온 여성들이 겪는 자괴감, 또는 정착해야 하는 상황에서 경찰서와 법원을 드나드는 것을 겁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나 중국에 있는 가족들을 또다시 브로커에 의지해 데려와야 하기 때문에 브로커를 고발하기 쉽지 않다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B양 사건의 경우 명백한 형사 고발 대상이라는 게 박 의원의 말이다. 그는 “미성년자 성폭행, 혼인 빙자 간음 혐의까지 추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미 B양의 진술과 주변 인물 증언, 기타 증거물들을 수집해 검·경 측에 수사를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자들의 남한행은 수년 전부터 대부분 브로커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중국 당국이 탈북자 단속을 강화한 이후에는 태국·라오스·미얀마·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을 거쳐 한국으로 온다. 이른바 남방 루트다. 브로커들은 북한과 중국, 중국과 동남아 국가의 국경에서 탈북자들을 넘겨받아 수 주일이 걸리는 여행에 동행한다. 탈북자들은 이 ‘여행’에 선불이든 후불이든 1인당 300만~500만원의 비용을 준다. 국경에 먹이사슬 구조가 구축돼 있는 셈이다. 과거 비정부기구(NGO)가 주도했던 기획 입국이 브로커에 의한 입국으로 대세가 전환된 것이다. 이런 브로커의 활동을 ‘착취’로 보는 주장도 있지만, 그나마 브로커가 있기에 인권 불모지에 있던 탈북자들이 국내에 들어올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탈북 브로커는 ‘필요악’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필요악이란 모자 아래 저질러지는 범법 또는 비인도적 행위다. 정부는 지난 10여 년간 브로커들의 비행에 관한 정보가 들어와도 메스를 들이대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탈북자 도우미로 유명한 C 목사의 비위 정보를 우리 정부에 전달한 적도 있다고 한다. 한 소식통은 “정부가 탈북자를 돕는 활동가들을 탄압한다는 비판을 의식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은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는 “그동안 탈북 활동가 또는 브로커들의 일탈 행위가 동포애와 인권의 미명 아래 덮여 왔지만 이젠 치부를 들춰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입국하는 탈북자의 80%가 여성인 만큼 비슷한 사례가 더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적극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중국과 동남아 등지에서 활동 중인 탈북 활동가 또는 브로커는 수백 명에 이른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이 직접 브로커로 나서는 경우도 70~80명쯤 된다. 한 탈북자 단체 대표는 “북한 거주 가족들을 데려오는 상황에는 탈북자 출신 브로커가 많이 활동하고, 그래야 성공 확률도 높다”고 말했다. 탈북자가 지불해야 할 브로커 비용은 ‘현역 브로커’가 많을 땐 내려가고 줄면 올라가는 ‘시장의 법칙’도 작용한다. 박 의원은 “브로커들이 탈북 비용으로 돈을 벌고는 있지만 탈북 과정이 목숨을 건 일인 데다 수 주가 걸리는 탈북 행로를 감안할 때 비난만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돈을 받는 행위 자체를 단속하려는 것은 아니다. ‘수지 안 맞는다’ 국경지대에 버리기도 문제는 A씨처럼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탈북 여성들을 성매매 업소로 팔아넘기는 악덕 브로커들이다. 또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에 정착해 잘 살고 있는 탈북자들을 ‘정부 정착금을 받을 수 있다’고 유혹해 남한행을 부추기는 브로커들도 있다. 최근에는 중국과 동남아 국경지대인 쿤밍까지 탈북자들을 데리고 와서는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위험 지대에 버려두고 달아나는 브로커들도 있다고 한다. 인신매매도 심각한 상황이다. 박 의원은 “중국에서 성매매 업소로 팔아넘겨진 탈북 여성이 수차례 탈출을 시도하자 업소 측이 생다리를 잘라 낸 끔찍한 사건까지 있었다고 들었다”며 “중국 내 탈북 여성들의 인신매매를 근절할 특단의 외교적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메콩강을 건너거나 정글을 헤치고 오다 미얀마 반군에 잡혀 인간 이하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탈북자들도 정부가 돈을 줘서라도 구출해야 한다”고 했다. 남성 탈북자들은 쇠사슬에 묶여 아편을 따고, 여성들은 낮에는 부엌일을 하고 밤에는 성적인 노리개가 되기를 강요받는다는 것이다. 박 의원은 “중국-동남아로 이어지는 탈북 루트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시급하다”며 “길을 정확히 알고 제도적으로 대처하면 악덕 브로커에 의한 인권 유린도 없을 것이고, 탈북자들이 밀림에 버려지는 일도, 반군에 납치되는 일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28일 동남아 국가에 머물 때 영국 BBC 방송의 탈북자 인권 특집을 봤다. 한국 방송에선 보기 힘든 특집이다. 가슴이 답답했다”며 박 의원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B양이 다 클 때까지 후견인이 돼 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수정 기자 (sujeong@joongang.co.kr) 중앙SUNDAY 구독신청 [ⓒ 중앙일보 & Join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신고 0명
게시물신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