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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락교회와 김기동씨는 귀순용사선교회를 통해 어떤 이득을 얻었는가
Korea Republic of 귀순용사 0 454 2009-04-01 08:36:00
가장 유명한 귀순용사는 단연 김신조씨. 그가 97년에 성락교회에서 목사 직분을 받았던 사실은 교계는 물론 일반의 화제가 됐을 정도로 그의 유명세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김신조씨는 1981년 초부터 성락교회에 출석해 현재까지 유명한 귀순용사들을 성락교회에 인도, 덩달아 성락교회 이름을 유명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 냈다.

그리고 김신조씨 뒤를 이어 대한민국 육군 대령까지 진급한 신중철씨, 다대포 앞바다 남파간첩 이상규씨, 그리고 김만철 여만철 등 유명한 귀순자들은 대개 성락교회와 관계를 맺게 됐다. 「반공」이데올로기가 극성을 벌이던 1980년대 성락교회는 「반공선교회」를 조직해 선교와 반공을 적절하게 조화시키며 교회 이름을 알려 나갔다. 그 후 김기동씨는 1989년에는 사단법인 허가를 얻은 「기독인 귀순용사 선교회」를 조직하면서 보다 대형화된 집회를 이끌기 시작했다.

또 귀순용사선교회 창립 기념일 등 귀순용사 관련 행사를 차례로 유치하면서 군 고위급 인사와 안기부 기무사 및 언론기관의 주목을 받게 됐다. 90년 해군회관 대연회실에서 개최된 선교회 창립 1주년 행사, 63빌딩에서 열린 창립 3주년 행사, 94년 귀순자인 여만철씨 가족 5명에 대한 환영식, 97년 김신조씨 목사 안수식 등은 귀순용사 덕에 성락교회 이름이 널리 퍼지게 된 행사들이다.

이외에 구국대성회라는 이름으로 개최된 대형집회는 대전충무체육관 전주 종합회관 성남실내체육관 동두천시민회관 인천실내체육관 88체육관, 여의도한강고수부지 등 전국을 누비며 개최됐다. 평균 2만명 가까운 많은 인원이 참석하는 초 대형집회들이다. 이 과정에서 김기동씨는 적잖은 금전적 이득을 취했다. 성락교회 오순근 사무처장은 『1000만원을 사례비로 받은 적이 한번 있고 나머지는 700만원 가량 받았다』고 밝히고 『대부분은 헌금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같이 강단에 섰던 귀순용사들에게 돌아온 사례금은 약 10만원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져 김기동씨에 비하면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나고 있다. 귀순용사들은 교회 유명세를 상승시키는 역할과 김기동씨에게 금전적 이득을 안겨준 외에도 이단시비를 해결하는데도 한 몫했다. 김기동씨는 92년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내는 진정서에 「귀순용사 선교회 반공활동을 방해하는 인물로 김충기 목사(강남중앙침례교회)를 직접적으로 거론」하고 「그의 이런 활동은 신학적 견해를 달리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며 그의 비방활동을 중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 성락교회 그늘 밑에 있는 귀순용사들은 각 집회에서 자연스럽게 김기동씨를 옹호하고 이단시비 불식에 앞장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95년 88체육관 집회때 귀순용사들은 『이단 시비와 과감히 맞서서 하나님을 증거한다』고 간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귀순용사 선교회의 존재는 성락교회와 김기동씨에게 금전으로 따질 수 없는 막대한 반대급부를 안겨준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1999년10월20일 뉴스앤조이 보도

★ 출처:http://www.nypkbc.net/index.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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