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이 클린턴을 평양에 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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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김대중이 클린턴의 평양 방문을 중재했다고 하니까, '그가 병중이였는데 어떻게 가능했겠냐?' 의문을 제기 하셔서 관련 글을 퍼옵니다. 딴지일보의 글입니다. 마우스로 눌러 보세요. '김대중이 옳았다' http://www.ddanzi.com/articles/article_view.asp?installment_id=267&article_id=4629 앞서 94년도 제네바 합의 전에도, 진짜 전쟁이 날 뻔한 것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당시 사태를 풀었던 카터의 평양 방문도 야당 총재였던 김대중의 권고에 따라 개인자격으로 방문한 것이였다고 합니다. 그는 고비고비 마다 폭 넓은 외교로서 어럽게 얽힌 문제들에 대해서 해법을 제시하면서 한반도의 평화를 이끈 평화도우미였던 것이지요. 6.15는 한반도가 평화적으로 통일이 될 수 있다는 초석을 남긴 성과였고요. 이는 앞으로도 남북관계가 지속되는 한 수십년 기억될 것입니다. 북이 자신들이 절실히 원하는데로 핵을 포기하는 댓가로 북미간 수교를 한다면, 한반도에는 평화체제가 도래합니다. 그럼 북은 남과 서방의 지원을 받으면서 경제발전을 위해서 대외 개방에 나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북 주민들도 억압과 가난에서 서서히 벗어나서 생활이 개선되고 자유가 늘어날 것입니다. 1국가 2체제로 외교와 국방을 독립하는 1단계 통일도 남북간 합의만 하면 가까운 시일 내에 가능해 집니다. 그러다가 언제인가 남북의 경제, 사회적인 격차가 줄어드는 수십년 뒤에는 우리의 후손들의 합의에 따라서 완전한 남북 통일도 기대할 수 있겠지요. 김대중이 몇년이라도 계속 살았으면 다른 어느 누구도 대신하기 힘든 중요한 역할을 계속 더 했을 테인데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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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으로 김대중은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자,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핍박을 이겨내고 한국의 민주화를 이끈 성인 비슷한 인물로 인식이 됩니다. 그것이 끝이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를 이끌어 내고,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기도 했지요. 인종갈등을 극복한 민주화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보다도 더 성과를 많이 만들어낸 정치인입니다.
국내 정치적인 이유로 우리들 중의 일부만이 스스로 김대중을 폄하해 온 것이지요.
호불호를 떠나 오늘 운명하신 분을 비판하는 것은 인간된 도리가 아닐 듯 하여 적고 싶은 글들은 많지만 그냥 생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