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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용감한 동포를 보았다. 4
Korea, Republic o 미린다 3 736 2010-01-08 19:13:33
아침인지 점심인지 모르는 시간에 일어나 초대소를 나오며 옆방 조선분이 있나싶어 노크를 했다.. 대답이 없어 문을열어보니 조선분은 없었다..다시 만나기로 하고 없어지면 어떻하나 생각하고 초대소를 나왔다. 초대소를 나와 두리번 거리다 밥을 먹어야 겠다는 생각에 식당을 찾아 발길을 옮겼다... 조금 걸어가고 있으려니까.. 선생.. 뒤에서 누가 나를 부른다..돌아보니 옆방 조선분이었다.. 늦게 일어날줄 알았지.. 한시간 전부터 선생을 기다리고 있었소.. 미안합니다 제가 좀 일찍 나와야 했었는데.. 괜찮소 그러면 내가 더 미안하지 하하..

이곳 지리는 내가 잘아니 날 따라 오시오.. 조금 망설임이 있었지만 그를 따라 가기로 했다.. 조선족 식당이 있는데 그쪽으로 갑시다..식당안에서도 다른사람이 눈치를 못차리도록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는다 식당안에서 그는 탈북자로 보이질 않았다. 점심을 먹고 공원으로 나와 담배를 한대식 피고 있는데 공원에 여러나라 국기가 걸려 있는 국기봉이 일렬로 세워져 있었다.
그중 태극기도 있었고 북한기도 있었다. 그는 내가 군대에서 남조선 국기를본일이 있는데. 무슨 일본기 같기도 하고.. 하기야 일본은 남조선 편이니까.. 태극기 입니다.. 일본기하고 상관 없어요.. 조선 말쯤에 만들어 졌습니다.. 북한이 나라를 세우면서 국기를 바꿨어요.. 그때 태극기와 북한기를 보니 이상하게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압록강으로 갑시다. 그곳에세 배도 타고 조선도 보고 합시다.. 나는 그를 따라갔다.. 가는 도중 조선족 아줌마들이 공원구석에서 노래를 부른다..별들이 소근대는 홍콩의 밤거리 나는야... 그는 저노래가 무슨 노래니 머리를 세우며 관심을 가진다.. 내가 아는데 까지 가르쳐 주었다.. 가르쳐 주자 그 노래만 계속 부른다.. 택시도 시원시원 하게 잡는다.. 강가에서 보트를 탔다.. 그의 행동은 아주 자연스럽다.. 보트가 달리는 데도 그는 .. 홍콩의 밤거리만 부른다.. 그러면서도 눈에는 눈물이 나오고 있었다... 그 눈물과 표정은 말로 표현이 어렵다.. 그와 함께 강변을 따라 걸어가고 있을때 그는 노래를 다 배웠다.. 하도 그노래를 들어 올려본다..
http://video.nate.com/160222129

압록강변에 앉아 조선을보니 큰 굴뚝의 공장이 있었다...공장이 크네요..
크면 뭐하네 조선에 공장은 다 섯서.. 저기 굴뚝에서 연기도 나는데요.. 하하 저거 다 필여없어 조선의 공장은 다 섯다고 생각하면 돼 군수 공장만 돌아 갈꺼야.. 공장이 다서면 국민들은 어떻게 살아요.. 그러니까 조선이 어렵다는 거야.. 국민이 굶어 죽는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한번 신의주에서 평양까지 차를 타고 간일이 있지 가다보면 저기 한사람 쓰러져 있고 가다보면 저기 한사람 쓰러져있고.. 다 죽은거야.. 그러면 죽은 사람은 부폐할텐데 어떻하나요.. 차가와서 실어가....

저기보라 여자들이 주위에 사람들이 있는데도 옷을 벗고 목욕하는거.. 진짜 여성들이 옷을 벗고 꺼리낌 없이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나라가 한심하다.. 선생.. 네.. 남조선에도 김일성대학 처럼 똑똑한 사람이 다니는 학교가 있네.. 있어요.. 학교 이름이 뭐네... 서울대학교.. 허허..
그럼 우리 아버지가 서울대학교를 나왔을까?... 우리 아버지는 의사였어.. 남조선에서 제일 좋은 대학교를 다녔데.. 옛날에 김일성이 순시를 나왔는데 갑자기 맹장이 걸렸다는 거야 그래서 우리 아버지가 수술을 했는데..수술을 잘했다며 상을 줬어.. 그런데 상이 내려왔는데 남조선출신이라고 상은 엉뚱한 사람이 받았다더군.. 하하.. 그래서 우리 아버지가 화가 나 상받은 의사를 찾아가 때려주었다는거야 그 후 우리는 시골로 이사를 가서 살아야 했어..

나쁜놈들 수술은 누가 하고 상은 누가 받고.. 진짜인지 거짓말인지 잘 믿어지질 않았다.. 남조선에 가서 우리삼촌들을 찾는다면 아마 한걸음에 달려 올거야. 그동안 내가찾지 않아서 그렇지 찾는다면 꼭 나를 만나러 올거야..
그는 남쪽가족명단을 적은 종이를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 꼭 좀 부탁하네 하면서 내손을 잡았다. 다시 시내로 들어가 나는 한국집에 전화를 걸어 이산가족사항을 적은뒤 그에게 전해 주었다.
그날 저녁 나는 그와 노래방엘가서 몇시간을 불렀는지 모를 정도로 노래만 불렀다..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얼마나 큰지 노래방이 떠나가는듯 했다.

노래방에서 나와 그와 함께사는 중국여성의 집으로 갔다. 그곳에서 2틀을 있었는데 대접을 잘 받았다.,,,, 그와 함께 있으면서 있었던 이야기는 많지만 .. 여기서 줄이기로 하고 .. 나는 그의 핸드폰 전화번호를 적은뒤 또 만나자는 약속과 함께 작별했다.. 시내로 나와 통화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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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복 플로베르 원효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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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로베르 2010-01-09 02:58:55
    좋은 경험을 하신 것 같습니다...다음 이야기가 매우 궁금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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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madma 2010-01-09 11:34:30
    음... 저도 북한에서 갓넘어 왔을 때 한국 사람이 천국에서 파견하신 사도 같아서 무척 공경했습니다
    달러밖에 없다고 방금 쓸 돈이 없다고 헤서요 중국돈 50원을 드리기도 했죠. 그 주제에요 참 웃기는 일이지만 그땐 참 순진 했어요 하하
    다시 못 만나 보았지만 아마도 북한인에 대해서 나쁜 인상을 준 것 같진 않아서 후회하진 않아요. 그때 북한인은 특히 여자는 받아야만 하는 그런 인간이 아니었으니까요
    좋은 사람 만나 셨던 추억....그것이 동족의 본심이 아닐가 합니다
    서로가 시간이 흐르면 찾아 보기도 힘든 순수이지요
    잘 간직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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