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 갔다 온 조선족 여인의 말(나의 탈북수기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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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남조선 방문허락의 시초로서 방문자가 많지 않았다. 더구나 그 넓은 땅에서 약속도 없이 만난다는 것이 난감하였는데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의외로 어렵지 않게 이루어졌다. 장백현 시장에서 만난 경상남도 남해도 친척집에 다녀왔다고 자랑하는 여인. 어렸을 때 평양한 번 갔다 오면 친구들에게 자랑하듯이 끊임없이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도무지 믿기 어려운 소리뿐이었다. 방문한 친척의 집 앞에는 화단이 있고, 식사 후에는 과일을 먹는다는 것이다. 집 문턱까지 옥수수 한포기라도 더 심는 것이 북조선인데 화단과 과일후식이라니?! 그야 부잣집이 아니냐고 하니 곱 싶어 남조선의 농민 집이라는 것이다. 그 여인의 말을 통해 깊은 감명을 받은 세 가지가 있다. 그 첫 번째는 친척과 육지견학을 갔을 때 코 푼 종이를 차 밖으로 무심결 버렸는데, 친척이 말없이 휴지통에 넣는 것을 보고 창피해서 혼이 났다는 것이다. 무지막지한 남조선깡패소리만 듣던 나로서는 이런 신사가 있다는 것이 참 감동적이었다. 두 번째 감동은, 민속전통이 살아있다는 데서이다. 사실 조선족여인은 방문기간 뭐 하나라도 가져 올 궁리만하고 있었는데 친척들은 조상 묘를 반드시 찾아보아야 한다며 데려가더라는 것이다. 썩어빠진 외래문화의 침투로 민속전통이 말살되었다는 남조선이 오히려 공산국가사람보다 낮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조상묘는 친척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지만 수풀이 우거져 가기 무서울 정도였다고 한다. 산이 민둥산화 되지 않았다는 것을 유도적으로 알아 챌 수 있은 것이 세 번째 감동이었다. 한 여름에도 맨 땅이 보이도록 산천이 황폐화된 북에 비해 너무 대조적인 것이었다. 그 조선족여인은 당시 위해-인천 여객선이 새로 개통, 비행기보다 여행비가 싸서 남조선에 자주 갈 수 있게 되었다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좋아하였다. 어쩌다 북조선 얘기가 나오면 혀를 차며 저 아프리카 미개나라처럼 취급하고- 그렇게 넓은 세계 같지 않은 중국오지에서 조차 희망은 온통 남조선으로 향해 있었다. 나 역시 희망은 분명 남조선에 있다고 최종 결론하였다. 남조선을 직접 갔다 온 사람의 말의 위력인 것이다. 그 위력을 직접 체감하였기에 훗날 대북삐라내용에 반드시 라고 쓰는 이유이다. 남조선을 통해 본 희망은 불연 듯 꿈에서조차 생각지 못했던 탈북월남의 뜻으로 이어졌다. 말이라도 할 수 있는 곳에 가서 라고 실컷 소리치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탈북을 행동으로 옴기자고 하니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정도의 확신으로는 안 될 만큼 악랄한 가족연좌제처벌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초월할 만한 더 큰 확신이 있어야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는데 하늘은 연이어 나에게 그런 기회를 허락하였다. 남조선삐라를 보고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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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다가 일본의 식민지였던 과거와 미국에 군사적으로 정치,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다는 현재의 상태가 더욱 우리를 짓눌렀습니다...
그런 상황이었지만, 한쪽에서는 땀흘려 열심히 일하는 국민들이 있었고, 또 한쪽에서는 민주주의를 위하여 목숨을 내걸고 싸우는 대학생들이 있었습니다...그런데 어느날 외국인들이 한국에 일하러 오고 그 중에는 중국동포들도 섞여 있었습니다...
지금도 한국이 잘 사는 나라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회복지 측면에서도 그렇고 민족분단도 그렇고 부족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북한은 남한보다 더 심하겠지요....그래서 북한의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이 아픕니다...서로 힘을 합쳐도 잘 살까 말까인데, 우리민족은 벌써 수십년째 서로 싸움만 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우리민족을 갈라놓았던 공산주의 이념도 이제는 무너졌습니다...남아있는 것은 오직 김정일의 독재체제만이 우리민족의 장애물로 남아 있습니다..
남북이 힘을 합친다면 빠른 시간 내에 김정일 독재체재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김정일 독재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이민복님의 노력과 투쟁에 대해 늘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