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창폭동과 송림사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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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창은 북한에서 제일큰 금광이있는곳 인평역에서 내려 70 리길을 삭도 (케이블카) 밑을따라 들어가면 회창군 광산이름은 성흥광산이다 시내보다 지하가훨씬더큰것이 이곳이다 갱은 혁신갱 부강갱 1.25갱 서갱 등 20 여개의 갱으로 홀동광산까지 지하로 연결되여있다 6.25 전쟁후 국군포로들과 반당분자들을 이곳에서 일을 시켯엇는데 건식착암 을 시켜가지고 모두 기페 (진페) 로 사망하고 그 후손들이 지금까지남아있는곳이다 1969 년 폭동이발발 하엿다 광산로동자들과 군인들( 군인노동자) 이 일을하지않고 태업하던중 안전부의 체포에 대항해나섬으로 시작된 폭동은 고향으로 돌려보내달라는 구호를걸고 시내를 점거하기에 이르럿다 인명피해가 많이난곳은 군 안전부 점거시이다 안전원들이 기관총으로 폭동군중을 향하여 무차별사격을 가함으로서 그주변 주민들이 많이죽엇다 그날밤에 안전부도 폭동자들의 수중에 들어오고 무장한 폭동군중이 회창군을 통제하며 한달을 사수하엿다 김일성은 최현 ( 김창봉이 떨어지고 민족보위상 이 방금됨) 을 이곳으로 보내여 진앞하게하엿다 백전노장인 최현은 회유책을 쓰기로 하엿다 폭동자들의 요구를 다 들어준다고 일단속이고 그들이 무장을 내려놓게 하엿다 그후 회창폭동참가자들은 한명도없다 어디로갓는지 주엇는지 살앗는지도 모른다 그때는 북한이 지금처럼 강도 국가 는 아니였다 그ㄸ로부터 25년후 송림사태 시위도 무장폭동도 아무것도없엇다 단지 송림시민들이 굶어죽지 않기위해 멈추어있는 황해제철소설비를 팔아먹는다는 비사회주의 때문에 탱크로 시내를 포위하고 전대미문의 자국민 학살을 용감하게 감행하였다 이제 폭동은 군인폭동이 될것이다 그 징후는 여러곳에서 돌출되고있다 허나 성공하려면 그 지휘는 남쪽에서 해야한다 탈북자와 국정원 북한군 과 북한주민 이들의 결합을 이루지못ㅎ면 성공은 어렵다 어쩡쩡한 대북자세에서 강경한 대북앞박 자세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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