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소녀의 탈북이야기(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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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이 정말 컸었다. 2010년 02월 20일 (토) 02:13:57 뉴스코리아 qor829@naver.com 두만강은 들어오던 것과는 달리 꽤 넓고 물살도 거세 보였다. 지체할 틈 없이 새 아빠는 식구들에게 바지를 벗고 강을 건널 준비를 서두르라고 하셨다. 가족은 바지를 벗고 강물에 몸을 던졌다. 13살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키가 작았던 꼬맹이 동생은 새 아빠가 업고 건너기로 했다. 물살이 너무 거세서 당장이라도 떠내려 갈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 손을 꽉 잡고 누구 한명 휘청하면, 힘을 다 합쳐 끌어 당겨주었다. 어떠한 경우에 있더라도, 그 어떤 것보다 가족을 잃고 싶지 않았다. 배고픔보다, 억눌림보다, 가난보다, 가족을 잃는 것이 가장 힘들었을 것이다. 새 아빠 등에 업힌 사랑하는 우리 동생도, 동생을 업고 묵묵히 목숨을 거신 새 아빠도, 그 누구보다 마음을 조이고 탈북의 길을 걷는 사랑하는 엄마도, 그 누구도 잃고 싶지 않았다. 가족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이 정말 컸었다. 새벽 1시에 출발했는데 4시간이 지난 새벽녘에야 중국 쪽 두만강 변에 도착했다. 그때에야 우리는 서로 쳐다볼 수 있었다. 얼마나 추웠는지 얼굴은 백지처럼 하얗고 입술은 파랗게 얼어 있었다. 여전히 건너 편 탐지기에서는 하얀 불빛이 쏟아져 나왔고, 오토바이 소리도 여전했다. 한명도 다치지 않고, 강을 건넜다는 안도감으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뒤늦게 느낀 추위는 뼛속까지 파고들어왔다. 두만강을 무사히 건넜지만, 모든 것이 다 끝난 게 아니다. 이미 중국 땅에 발을 들여놨지만, 날 밝기 전에 국경연선을 벗어나는 것과 변방부대(국경을 지키는 중국 측 군인)의 눈을 피하는 것 또한 옥수수 밭을 통과하던 만큼이나 아슬아슬 일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날이 다 밝기 전에 국경연선을 벗어나야만 했다. 물에 다 젖은 바지를 허겁지겁 입는데 얼마나 차갑던지 이루 표현할 수 없다. 새벽의 푸르스름한 거울에 애써 눈물을 삼키는 아빠 엄마의 얼굴이 비쳤다. 두려움과 지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엄마 아빠는 여전히 안쓰러운 안색이 영력하다. 이대로 얼마나 더 걸어야 할까? 꿈이라면 제발 깨고 싶었다. 꿈이었다면 다시는 꾸고 싶지 않은 악몽 이였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어른들이 뒤를 열심히 따라 걸었다. 아직은 길이 아닌 잡초 밭을 걸어야 했다. 날카로운 풀줄기들이 앞으로 나갈 때 마다 발목을 거칠게 긁었다. 북한에서 떠날 때 신은 운동화는 바닥이 하도 얇아서 맨발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다. 뾰족한 돌을 밟을 때에도, 보이지 않아서 돌부리를 찼을 때에도 사실 너무 아팠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한 번도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계속 걸었다. 온 몸이 다 젖고 뼈가 저리도록 얼어드는데 볼에 흐르는 눈물은 뜨거웠다. 왜 떠돌아 다녀야만 하는지, 왜 숨어서 걸어야만 하는지, 왜 고향을 떠나야만 했는지, 왜 코끝이 아린 매콤한 추위를 몇 시간째 참아내야만 하는지 가슴이 답답했다. 들을 지나 도시로 접근하기 위해 그 사이에 있는 산을 타기로 했다. 우리는 산속에 도착하여 잠시라도 눈을 붙여야 했다. 한참 고생 끝에 산기슭에 도착했고, 조금 들어가니 깊고 한적한 숲을 찾을 수 있었다. 가족은 큰 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잘 위장한 뒤, 하우스용 비닐보자기를 꺼내 다 같이 쓰고 잠시 눈을 붙일 수 있었다. 비닐보자기 밖으로 비집고 나온 발들은 다 얼었고, 새벽서리가 하얗게 봉지를 덮었지만, 그 속에서 오랜만에 평화로움을 느꼈다. 관련기사 · 17세 소녀의 탈북 이야기(1) · 17세 소녀의 탈북 이야기(2) · 17세 소녀의 탈북이야기(3) 뉴스코리아의 다른기사 보기 ⓒ 뉴스코리아(http://www.newskorea.info)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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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것이 탈북 수기 입니다
남한의 작가들은 이상한 상상으로 이상한 탈북자들 만들어 놓지 말고 이런 탈북수기들을 읽고 부끄러워 할줄 알아야 할것입니다.
소녀가 탈북인들의 심정을 너무 잘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소녀에게 한마디
너는 어린나이에 해서는 안될 참혹한 체험을 했지만 그래도 행운아 이다.
어머니 아빠를 잘 만났을가 ? 하늘이 도왔을가요?
아직 오지 못하고 감옥에서 고생하는 가족단체가 너무 많습니다
식구들이 다 잡혀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새아빠(조선족인지 모르나) 에게도 참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게 생각하나 보지요. 북한에선?
저런 상황에선 어느 누구도 판단 못 내림. 다 저런 식으로 남자는 버리고 왔나보네요. 모조리~ 하긴 새 남자가 생겼으니깐...
다행인건 새 남편이 다행이 나쁜 사람 같지는 않다는 것....
그래도 아버지 인생이 정말 비극이구나~~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것이 작용하는것 같군요.
북한 아버지가 엄마에게 잘 해주었다면... 술 독에 빠지지 않았다면
북한의 사상 속에서 살아온 아버지가 새로운것을 본 어머니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을 터이고 .. 어머니는 이미 알고 있었다..
술먹는 사람은 안된다는 것을..ㅎ
남자들은 대부분 군대로 가지요. 그것도 10년이상.. 그러니 발목잡혀 있는 경우도 많고.. 중국에 넘어와도 돈벌 궁리를 합니다. 한국에 올생각은 나중일 입니다. 중국에서 나쁜짓(?)하다 총살 당하는 탈북 남자들이 종종 있습니다.
지금 마약이 큰 문제라고 하던데요?
얻어먹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