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은 광주폭동이 맞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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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은 광주폭동이 맞다. 5.18은 폭동이 맞다. 친북 좌익세력은 5.18 당시 계엄군과 공수부대가 시민들을 학살하자, 분노한 시민들과 학생들이 들고 일어섰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엄연한 왜곡이고 거짓이다. 계엄군이 사전에 조직되어 양민들을 학살했다는 주장 역시 날조된 거짓이다. 5.18은 시민군이 먼저 선제공격을 했다. 5.18은 자칭 시민군 폭도들이 병기고를 탈취하고 군경을 학살하면서 벌어졌다. 광주폭동은 처음부터 이런 반사회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광주폭동의 핵심은 크게 세가지이다. 광주폭동의 한 축은 먼저 군부대와 경찰서를 습격하고 병기고를 탈취한 시민군 폭도들과, 김대중 석방을 위한 폭력사태를 획책한 자들이고, 다른 한 축은 북한 인민군 특수부대원들이었다. 이런 것들이 어떻게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기여가 되었다는 것인가? 5월 18일 새벽 6시에 시민군이 먼저 예비군과 경찰서를 습격하고 군경을 학살한뒤 병기고를 탈취했으며, 18일 10시에는 계엄군의 도착 지연으로 공수부대원들이 급파되었다. 그 중 7명의 3공수부대원들이 전남대 정문을 지켰는데, 전남대학생 800명은 유언비어에 현혹되어 10시 20분 7명의 공수부대원들을 향해 일제히 돌을 던졌다. 7명의 공수부대원들은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800여명이 던지는 돌세례를 받아야 했다. 5.18은 용공 테러리즘이었고, 시작부터 병기고 탈취와 군경을 학살한 살인, 테러행위로 시작했다. 이런 반사회적 폭동이 어떻게 대한민국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할수 있을까? 자칭 시민군은 루머를 날조했다. 그들이 군인학살과 병기고 탈취의 명분으로 내세운 이런 주장들은 너무나도 허무맹랑하다. 광주 시민군이 날조한 루머들 중 대표적인 것들 몇가지만 보면, 계엄군이 여고생 젖가슴을 도려냈다 계엄군이 여자 대학생을 강제로 강간했다. 계엄군이 대검으로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태아를 꺼냈다. 계엄군이 학생들을 구타했다.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사람들 씨를 말리러 온다. 경상도 사람들이 전라도 사람 공장을 부쉈다. 경상도 사람들이 전라도 상가 불태우고 약탈한다. 공수들이 사람을 죽인뒤 가죽을 벗겼다. 공수들이 시민을 살해하고 그 고기를 먹는다. 공수들은 지나가는 버스를 잡아 학생들을 끄집어내고 여학생들을 벗겨 가슴을 잘라냈다. 위독한 노인이 병원에 가려다가 계엄군이 찌르는 대검에 맞아 죽었다. 임산부가 병원에 가려다가 공수부대의 대검에 찔려 죽었다. 한국방송 못믿으니 이북방송 들어라. 터무늬없다. 정당한 명분으로 들고 일어섰다면 왜 이런 터무늬없고 말도 안되는 루머들을 날조했다는 말인가? 더구나 광주에 파견될 계엄군 구성 시점은 국무회의가 열릴 5월 18일 8시나 국보위, 전두환을 상임부위원장으로 하는 국가보위입법회의가 열렸을 5월 18일 9시 이후인데 이 계엄군이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18일 새벽 이전으로 시간이동이라도 했다는 소리인가? 게다가 그 많은 계엄군이나 공수부대원들이 전부 경상도 출신이라니, 남한이든 북한이든 군대를 다녀온 자라면 말이 안된다는 것도 알 것이다. 그리고 문명사회에서 계엄군이나 공수부대원도 인간인데, 사람이 사람의 고기를 먹는다 라는 것에서는 실소만 나온다. 어떻게 반론을 제기할 가치 조차 못느낀다. 어떻게 이런 유언비어, 루머들이 의심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까! 18일 새벽 6시에 어느 부대 어떤 계엄군이 등장했던가? 3,7,11공수는 오전 10시에 광주시내에 도착했고, 31향토보병사단과 32향토보병사단 병력은 18일 상오 12시가 되어서야 광주시내에 진입했다. 한국의 국군은 부대마다 부대마크와 비표 라는 것이 있고, 그것으로 소속을 식별한다. 자칭 시민군이 병기고를 탈취하기 이전, 늦어도 5월 18일 새벽 5시 이전에 나타났다고 하는 그 계엄군은 육해공군 중 어느 군 소속이며, 어느 부대의 병력들이란 말인가. 시민군의 병기고 탈취와 군경 습격이 보고되자 오전 8시 긴급히 비상국무회의, 9시 국가보위입법회의(국보위) 회의가 열리고 31사단을 계엄군으로 구성한뒤, 계엄사령부 사령관 중장 이희성, 계엄군 지휘관 소장은 31사단장 정웅 으로 구성이 되어 계엄군을 파견했다. 계엄군으로 파견된 31,32사단 병력은 광주 상무지구에서 보병학교 병력을 만났는데, 서로 네가 폭도라면서 3시간여 교전을 벌였다. 다급해진 정부는 3공수, 7공수 ,11공수 특수부대를 광주로 급파했다. 5.18은 시민군이 먼저 선제공격하였다. 시민군이 군경을 먼저 공격했기에 계엄군이 구성되었다. 만약 신군부가 광주시민을 학살할 목적으로 계엄군이나 공수부대를 조성했다고 하면, 왜 보병학교 병력하고 계엄군은 서로 상대방을 못알아보고 네가 폭도라고 하면서 3시간 가까이 교전을 벌였단 말인가? 국방부-육본-2군사령부 로 지휘체계가 갖추어져 있고, 그 당시에는 군내에는 유선전화, 무전기, 무선전화 등이 놓여 있었는데 말이다. 계엄군이 먼저 시민을 학살했다는 친북좌익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늬없는 궤변인지 쉽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계엄군 투입이 지연되자 18일 오전 10시, 국방부는 임시로 3,7,11공수가 광주시내에 배치시켰다. 그날 10시 20분경 외출하고 돌아오던 전남대생을 전남대 정문에 있던 7명의 군경이 검문검속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내에서 누군가 계엄군 학살타령을 하며 돌을 던지라고 선동했고, 순식간에 5백명의 대학생들이 7명의 보초를 향해 돌을 던졌다. 5월 18일 오후부터는 북한에서 파견한 인민군 특수부대원 700~1200명이 시내에 진입해서 폭도들을 지원했다. 이런 개판 오분전의 난동이 어떻게 민주화 운동인가? 5월 18일 12시에는 9시에 급히 구성된 계엄군이 도착했는데, 계엄군 도착때 학생들이 떼거지로 우루루 몰려갔다. 방금 계엄군이 도착했는데 학생들이 떼거지로 몰려나간다면 이는 계엄군을 자극하는 것이나 다를게 없다. 방금 도착해서 광주시내의 상황을 눈치챌 기회조차 없는 셈이다. 보병교 병력하고 서로 네가 폭도라고 오인사격하는 웃지못할 코메디를 벌이고 나서야 12시께에 광주시내에 진입했는데, 12시에 대학생들 역시 갑자기 교문 밖으로 쏟아져나왔고 계엄군 및 공수부대원들과 흥분한 대학생들의 물리적 충돌은 불가피한 일이 됐다. 대학생들의 시위가 격해지자 5월 21일부터 대검과 수류탄이 등장했다. 앞서 수집된 시민군들이 날조한 루머에 의하면 대검으로 여고생 젖가슴을 도려내고, 대검으로 임산부의 배를 갈랐다고 하는데, 대검은 폭동을 일으키고도 3일이 지난 뒤인 5월 21일 오후 8시에 최초로 등장했다. 5월 21일 이전에는 계엄군이나 공수부대는 대검을 쓰지 않았다. 200여대의 택시와 차량을 파괴하고, 버스와 택시기사들을 끌어낸뒤 살해하고 버스와 택시를 불태웠으며, 군경을 학살하고 병기고를 탈취한 것으로 부족해 일반 대중교통까지 탈취했다. 대중교통을 탈취한 뒤에는 아시아 병참공장을 약탈해서 차량과 각종 군수물자를 약탈해서 하나의 진을 형성했다. 5.18은 시민군이 먼저 병기고를 탈취하고 군경을 학살하고 선제공격하였다. 시민군이 먼저 공격했는데 계엄군은 앉아서 당하고 있어야만 하는가? 국가공권력이 공격받는데도 앉아서 공격당하고 당해야만 그것이 도덕적인 일인가! 그것도 계엄군 구성 직후 3시간이나 시간이 지체되어 도착했으니 얼마나 위급한 사태인지 계엄군 측에서 미처 파악하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12시를 기해 광주 시내에서 대학생들이 우루루 몰려나와 계엄군을 공격했다. 5월 18일 12시부터는 거의 통제가 불가능한 수준까지 갔고, 이는 5월 21일부터 5월 30일까지 광주 해방구를 만들어버렸다. 남한의 방송은 거짓말만 하니까 북한 조선중앙방송을 들으면서.... 광주폭동이 발생하자 김정일은 인민군 특수부대원 600~800명을 잠수함에 태워 남한으로 내려보냈다. 북한 인민군 특수부대, 김정일까지 개입된 마당에 광주폭동은 순수 민주화 운동으로 보기 어렵다. 아바이 수령에게 큰 선물(?)을 해주고자 했던 김정일은 광주에서 봉기소식이 날아오자 인민군 특수부대원 정예요원을 선발하여 600~800명을 잠수함들에 태워 내려보냈다. 5.18 당시 공수부대나 계엄군은 M16소총을 사용했고, 자칭 시민군들은 K2 소총을 사용했다. 그런데 광주 희생자들 중에는 카빈 소총에 의한 희생자들이 있다. 카빈 소총에 의한 총상이며, 뒤에서 총에 맞은 흔적이 있는 것이다. 남한 국군은 M16, 병기고를 탈취한 폭도들, 시민군들은 K2 소총! 그러면 카빈 소총으로 희생자들 뒤에서 사격을 가한 자들은 누구더란 말인가? 5.18 전개과정에서의 이런 석연치 않은 점을 묻어버리고, 모두 남한 군인에 의한 학살로 둔갑시키려는 의도도 의문점이다. 친북좌익세력과 일부 세력에 의해 미화된 5.18은 반사회적인 폭동이다. 온갖 유언비어와 날조된 루머, 국가공권력에 대한 무차별 공격까지 미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5.18은 반사회성이 다분한 무장반란이며 성격상 폭동이다. 민주화운동으로 미화되고 둔갑한 5.18은 무장반란이고, 반사회적 성격을 지닌 폭동이었다. 자칭 시민군이 먼저 국가공권력에 대한 도전을 했다는 점에서 이는 정당화가 어렵다. 반란자들이 공격하는데도 앉아서 당해야만 하는가? 하는 질문을 해보게 된다. 5.18은 시민군이 먼저 군경을 습격하고 병기고를 탈취하면서 벌어진 사건이다. 광주폭동은 민주화 운동이 아니다. 5.18은 명명백백한 무장반란이며 폭동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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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말하면 직접 체험한 광주사람에게 물어보셨느냐 하는겁니다
추측과 소설은 이 게시판에서는 금물입니다
http://cafe.daum.net/issue21
친북좌파가 아니라 친여친독재 탈북자 맞지?
이런 친북좌파 민노당 프락치가 여기까지 등장하다니 친북좌파는 북한으로 꺼져라
군인입장에서는 시민들 자극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군인들은 아무리 상관의 명령이라도 선량한 시민들에게 총을 쉽게 쏘지 못합니다
상관의 명령이라도 임산부 배가르지 못합니다
그런명령 내릴 상관도 없겠지만요(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아실겁니다)
임산부 배를 가르고 태아를 꺼냈다면
일부 불순한 무리들이 광주시민을 자극하려고 한 행동일겁니다
왜 시민군들이 경찰서 습격해서 경찰들 죽이고 교도소 습격했을까요?
광주교도소는 중범죄자들 3천명가까이 수감된곳인데
범죄자들이 사회에 뛰쳐나오면 사회는 어떻게 되겠나요?
과연 그들이 노린것은 사회의 혼란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