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소녀의 탈북 이야기(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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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눈빛이나 얼굴의 표정들은 차마 올 것을 상상하지 못했던 사람처럼 보였다. 2010년 03월 20일 (토) 08:40:46 뉴스코리아 qor829@naver.com 한밤중이라서 그런지 주변은 도보하는 우리가 민망할 정도로 고요했다. 저녁 9시가 넘고 열차 한 대 지나가지 않는 철길을 따라 묵묵히 걷고 또 걸었다. 10시 넘어서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싸리로 곱게 울타리를 치고, 마당 밖으로 새어나오는 불빛이 참으로 온화해보였다. 작은 싸리 대문은 잠기지 않았지만, 아무도 마당으로 선뜻 들어서지 못했다. 잠시 멈칫했지만, 얼마 후 안으로 조심스러우면서도 신속하게 발을 들여놓았다. 엄마가 마루에 걸터앉으면서 ‘아주마이’ 하고 부르자 누군가가 급하게 문을 열어주었다. 그의 눈빛이나 얼굴의 표정들은 차마 올 것을 상상하지 못했던 사람처럼 보였다.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조선족 아주머니는 ‘어쩌면 이럴 수가!’를 계속 되뇌시면서 우리 가족의 얼굴을 대견한듯한 눈빛으로 맞아주셨다. 엄마는 친정에 오신 것처럼 다소 자신 있는 눈빛이었으며, 굉장히 편안하고 익숙한 표정이 역력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아주머니는 남편과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조선족이셨다. 엄마와 새아버지가 1년 전 연변지역에서 숨어 다니시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다고 한다. 마음씨 착한 부부는 엄마와 새아버지에게 일감도 주시고, 생활비도 챙겨주셨고, 동생과 나를 데리러 북한으로 다시 나갈 때에는 정성스레 도시락을 싸주셨던 분들이셨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 떠날 때 예정한 날짜에 안전하게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려주셨던 분들이셨다. 아무리 야속해도 그래도 그렇게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아직도 세상은 더 살아보고 싶은 아름다운 곳처럼 느껴졌다. 아주머니는 얼마나 힘들었냐고 자꾸만 등을 아래위로 어루만져 주셨다. 중국인들이 탈북자를 집에 숨겨주는 것이 발각이 될 경우, 벌금도 있고 체벌이 있는데도 가족처럼 맞아주시는 두 분께 얼마나 감사했는지. 아직도 그 분들은 우리는 가족의 은인으로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다. 내 기억으로는 그 집에 4박 5일간 머물면서 그 집의 추수를 도왔다. 콩이며 옥수수도 따 들이고, 호박이나 오이의 막물추수로도 바빴다. 매일 매일 통마늘 장아찌에 따뜻한 쌀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웃음이 나올 일이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했지만, 전혀 힘든 줄 몰랐던 것 같다. 하루 세 끼 배불리 밥 먹는 일은 당시로서는 가장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었다. 이렇게만 먹고 살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었으며, 배부르다는 사실은 남의 집에서 일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망각하게 했다. 오래 오래 그 삶에 머물러 있고 싶었다. 하지만 한 5일간 우리는 힘든 부분은 다 도와드리고 또 다른 코스로 이동해야 했다. 그 이유는 그곳에서 체포되면 바로 북송될 확률이 100%였기 때문이었다. '도착’이라는 말보다는 ‘출발’이라는 말에 익숙해야만 했고, 항상 ‘출발’은 초조함과 두려움 그 자체였다. 아마 몇 개월 전, 엄마가 다시 북한으로 우리를 데리러 나갈 때에도 그랬을 것이다. 아주머니는 새벽부터 일어나셔서 소머리 국에 따뜻한 밥을 말아주시면서 배불리 먹고 떠나라고 벌써부터 울먹이셨다. 그러시고는 하얀색 봉지에 적당히 식힌 밥도 싸주시고 다른 봉지에는 우리가 가장 좋아했던 마늘장아찌를 싸주셨다. 그리고 얼마 안 되지만 아이들 물이라도 사주고 어딜 가든 굶지 말라며 엄마 손에 중국 돈 몇 푼을 꼭 쥐어주셨다. 끝이 거칠게 그을려진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시면서 어디서든 잘 살고 있어야 한다고 배웅하셨다. 아주머니가 주셨던 새 옷들을 입고, 도시락을 메고 세 번째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관련기사 · 17세 소녀의 탈북 이야기(1) · 17세 소녀의 탈북 이야기(2) · 17세 소녀의 탈북이야기(3) · 17세 소녀의 탈북이야기(4) · 17세 소녀의 탈북 이야기(5) · 17세 소녀의 탈북 이야기(6) · 17세 소녀의 탈북 이야기(7) · 17세 소녀의 탈북 이야기(8) 뉴스코리아의 다른기사 보기 ⓒ 뉴스코리아(http://www.newskorea.info)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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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살기 힘들 때 그런 방법 택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