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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學에게 참혹한 인권유린을 자행하는 김정일을 英雄으로 가르치는 너희는 누구냐?
Korea, Republic o 구국기도 0 339 2010-03-23 22:30:32
1. [저는 자의 다리는 힘없이 달렸나니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도 그러하니라] 箴言(잠언)이란 가르쳐서 훈계하는 말씀이라고 한다. 후학을 가르치는 것은 인성교육과 학문의 진보를 위함이다. 후진을 가르치는 것은 밝은 인성에 따르는 기술의 進步(진보)를 위함이다. 후배를 가르침은 인생을 섬기는 질서에 理致(이치)의 더 밝음을 위함이다. 후손을 가르치는 것은 모든 부분에서 조상보다 더 괄목할 만큼의 발전함을 위함이다. 가르치고 훈계한다는 것은 그에게 배우고 훈계를 듣는 자들보다 더 앞섰다는 것인데, 하나님의 기준으로 볼 때 퇴보한 자들이 전진된 것으로 여겨 사람을 가르치고 훈계하는 자리에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이 또한 세상의 아이러니다. 가르치고 훈련한다는 것은 곧 등불의 燭數(촉수)로 비유할 수가 있다. 후학의 마음에 전기불이 100촉이나 빛나는데 거기다가 희미한 등불을 켜주면 오히려 退步(퇴보)로 끌어가는 것이 된다. 심각한 캄캄함이 있다면 희미한 등불도 큰 도움이 되지만 큰 빛 속에 있다면 아무리 밝은 촉수의 전기불도 無用之物(무용지물)이 된다.

2. 본문의 의미에서 본질의 내역에 대한 正鵠(정곡)확신의 결여를 저는 자의 다리로 비유한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미련한 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도 자기 확신의 결여를 가진다는 말씀이다. 正鵠(정곡)을 확신치 못하는 것을 세상에 말하는 것은 비전문가로서 전문가 행세를 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本質(본질)의 의미를 확신하는 것에는 그 확신이 자기 過信(과신)으로부터 왔는가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왔는가에 따라 다르다. 모든 것을 다 밝혀내는 절대 至尊(지존)의 빛 앞에서 確信(확신)에 이르는 것과 모든 것을 아는 것은 고사하고 특정부분의 한 구석을 겨우 밝히는 빛 앞에서 확신을 갖는 것은 格(격)과 質(질)과 內容(내용)이 전혀 다르다 하겠다. 모르는 것이 가득한데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의 힘은 사실상 그 모르는 분량만큼 약한 것이다. 이는 다 아는 자들의 확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등하다는 말이다. 세상은 확신이 강한 자들이 이긴다고 해서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한다. 많이 아는 것이 힘이고 그런 확신의 힘이 강한 자들이 이기는 것이다.

3. 똥 뭍은 개가 겨 뭍은 개를 나무란다고 한다. 기만폭력무한살인착취로 사는 김정일과 관련된 자들이 때마다 일마다 無欠(무흠)한 것처럼 세상을 비웃는다. 도리어 훈계하려고 한다. 그들이 방송인 언론인이 되어 세상에서 가장 의로운 족속으로 둔갑한다. 살인독재체제를 지지하면서 스스로 민주화 인사라고 하는 미명을 쓰고 앉아 위세 잡는다. 그런 위세의 겉은 가면이고 그 속은 狐假虎威(호가호위)이다. 핵을 가진 살인착취권력을 등에 업고 세상을 농락하는 여우짓이란 말이다. 그들은 민주화라는 미명으로 살인독재체제 전대미문 미증유의 인권유린을 하는 김정일체제를 유지시키는 이중성을 가진 자들이다. 그들이 인권을 자주 거론하고 있고, 환경오염을 자주 거론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데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들은 김정일의 등불가운데로 다니는 자들이다. 김정일의 등불은 악마의 빛 곧 기만 폭력 살인 착취하는데 밝게 빛나지만 하나님 사랑 인간 사랑하는 데는 캄캄하다 하겠다. 그들이 인간을 訓戒(훈계)하며 가르치는 것은 곧 기만폭력 살인착취하는 악마의 빛을 주는데 있다. 살인착취자 김정일을 영웅으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4. 따라서 그것은 退步(퇴보)지 진보와 발전과 전진과 보다 더 나은 밝음을 갖게 하는 가르침과 훈계가 아니다. 저는 다리에 관해서는 이런 의미가 있다. 전진으로 나가는 것은 진보인데, 그런 진보를 이루는 것이 다리고, 그 다리가 절면 힘 있게 달려가지 못하게 한다. 진보하는데 전진하는데 특히 강하게 달려가는 다리가 아니라 저는 다리같이 만드는 훈계란 사실 훈계가 아니다. 따라서 김정일 주구들이 스스로 진보의 탈을 쓰고 있어도 어디까지나 그것은 퇴보다. 그것은 어둠으로 빛을 대신하라고 가르치고 훈계하는 것에 해당된다. 그들은 이런 짓을 한다. [이사야 5:20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기준을 내세워 악을 선이라고 하고, 흑암을 광명으로 광명을 흑암으로 삼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기준을 파괴하는데 앞장서는 자들이 어떻게 인간을 훈계하고 가르칠 수가 있을 것인가?

5. 지구 역사에서 강한 자가 이기는 세상에서 지금은 빠른 자가 이기는 세상으로 가고 있다고 사람들은 힘주어 말한다. 전자속도로 달려가는 지식과 학문의 세상에서 그 속도를 시장화하고 그것으로 산업을 일궈내는 나라가 강한 나라가 된다고 사람들은 강조한다. 빠르다는 말은 지구와 하늘의 거리를 좁힌다는 말인데, 그런 좁힘을 가능케 하는 나라가 세계 最强(최강)이 된다는 것이다. 학문과학의 전자속도와 그에 걸맞는 시장의 수요속도를 선도하고 그것을 일궈가는 나라가 된다는 것은 전 지구를 단 시간대 안에 묶어 둔다는 말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최첨단 여객기에 지구 어디든지 1시간 거리로 만들어내는 시장을 연다면, 그 첨단기술의 개발 및 에너지의 개발로 아울러지는 시장의 의미가 단연 최강이 될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거듭 고찰컨대 저는 다리는 빨리 달릴 수 없다. 전자속도로 발전해가는 학문과학의 진보를 다 따라잡는 나라가 강한 나라가 된다는 말인데, 시장이 전자속도로 발전해 간다면 그 가진 지식의 격차에 따라 빈부가 다르게 되는 것은 자명하다.

6. 문제는 모든 것을 밝혀내는 속도에 있고, 그것을 전자속도로 주입 또는 입력하고 그것을 곧바로 기존과 결합하여 완전한 소화로 기존과 더불어 그것을 응용하여 인류의 모든 자유와 행복과 사랑과 평화 등등의 발전을 해내는 생산을 해내는 창조를 해내는 결과를 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인류애는 전자속도로 기계를 만들 수 있다고, 전자속도로 나는 비행체를 만들 수 있다고 학문과학의 전자속도를 감당한 인간의 두뇌활용이 될 수 있다고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자속도감으로 발전하는 기술문명이 가능해진다면 지금과는 엄청난 차원을 가질 것이다. 각설하고,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 치자. 인간이 우주 속에 살면서 우주를 다 통달하고 있다면, 그것을 응용하여 생존을 해낼 수 있다면 인간의 몸에서 죽음을 떨어내고 항구적으로 생존이 가능한 몸을 만들 수 있다면, 인간이 모든 만물과 자신들을 만든 하나님의 손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독자생존을 가능케 하려고 할 것이다. 결국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속도감은 발생할 것이고, 그것은 인간에게는 결코 합당치 아니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7. 그런 것으로 하나님을 떠나가는 것이 된다면 그것은 불행한 것이다. 전자속도로 달려가는 나라가 전자속도로 하나님에게서 멀어진다면 그것은 불행한 것이다. 하나님이 멀어지는 만큼 악마와 결합이 된다는 말이다. 악마가 통치하는 나라는 인류를 파괴하는 기술의 실험욕심을 제어할 수 없게 하는 악마의 충동을 겪게 되는 것이다. 거기서 인생은 파국을 하는 것인데, 그것이 한민족의 악마화로부터 이뤄진다면 불행을 만드는 민족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진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으로 더욱 들어가야 하는 것으로 정의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끈을 끊고 벗어나는 속도감은 패역한 속도이고 반역의 속도감이다. 지식이 발전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미련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의 눈에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피조물이고 하나님의 손에 만들어진 인간이라는 한계, 그 피조물이라는 限界(한계)를 벗어날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 한계를 결정지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은 진리이시다. 진리는 빛이고 빛은 정직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8. 그 정직함의 고백은 이러하다. 인간의 한계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공급이 없으면 결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에 있다. 하나님을 버린 인간은 각기 자기 정체성을 자기구현을 통해 확인하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모든 한계는 이미 부여되었다. 때문에 인간은 결코 영원한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그 한계를 결코 벗어날 수가 없다. 인간의 한계는 거기에 있다. 그 한계를 아는 자들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달려간다. 그들은 그 다리를 저는 자들이 아니다. 오로지 하나님께로 달려가는데 발이 빠른 것이다. 하지만 미련한 자들은 하나님께 나가는데 발이 느리다. 다리에 힘이 없다. 도리어 하나님에게서 벗어나는 길로 가는데 빠르다. 하나님에게서 벗어나는데 그 다리에 힘이 있다. 인간의 진보 곧 지식을 얻으면 얻을수록 하나님께 더 나아가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나님이 만든 만물을 알아갈수록 하나님 품으로 더욱 들어가야 한다. 그 속도감이 넘쳐나야 한다. [야고보서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인간의 머리로 혼으로 알아가는 지식은 하나님에게서 벗어나려는 충동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 충동은 그 속도와 비례한다.

9. 하나님의 빛으로 모든 것을 알아가는 자들은 하나님 품으로 더욱 들어가서 하나님을 누리고자 하는 충동으로 충만하다. 그 충동은 그 속도와 비례한다. The legs of the lame are not equal: so is a parable in the mouth of fools. 본문) [~so (is) a parable~]은『mashal (maw-shawl')』라 읽는다. 하나님 보시기에 인간에게 퇴보를 주는 속담 격언 금언(金言) 교훈 proverb, 하나님 보시기에 인간을 어리석게 하는 우화(寓話, 비유(담) parable, 인간을 퇴보로 몰려가게 하는 속담 말 proverbial saying, 외형적으로는 金言(금언) 格言(격언) 잠언(箴言) 警句(경구)같이 보이나 하나님을 버리게 하는 가르침과 훈계의 말들, 인간의 지혜로만 살게 하는 가르침과 훈계의 말들 aphorism, 하나님의 품을 떠나게 하는 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기름부음에서 멀어지게 하는 상투적인 말 전해져 내려오는 말 속담 격언 byword, 모습 상(像) 외형 외모 similitude, 인간을 파괴하는 시 운문(韻文) poem, 하나님의 기준으로 제시한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sentences of ethical wisdom, ethical maxims, 윤리적인 지혜의 문장, 윤리적인 격언 등을 담고 있다.

10. 미련한 자들이란 곧 인간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임하시는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것을 벗어버리게 하는 것을 주도하는 자들과 그 주도를 따라 사는 자들을 의미한다. 우리가 전교조를 싫어하는 것은 그들의 속성에 있다. 그들의 속성은 거짓말과 살인으로 폭력으로 뭉친 김정일과 그 주구들의 지령을 따라 사는 족속이라는 것에 있다. 인간의 진보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간을 인류를 내 몸같이 사랑하는데 있다. 인간이 인간을 하나님의 손이 되어 섬기는 것에 능한 자가 되는 것이 인간의 진보이다. 인간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들이 인간을 어떻게 교육 훈계를 할 것인가? 후학들에게 후배들에게 후손들에게 기만폭력무한살인착취자 김정일과 그 집단을 위한 총알받이가 되라고 가르치는 것일 뿐이다. 이들에게서 배운 모든 지식은 결국 자유를 파괴하고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는데 있다. 대한민국을 패망케 하는 것은 이런 세력을 발본색원치 못하게 하는 중도실용에 있다. [요한복음15:5 ~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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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목: 대한민국의 교육은 退步하는 인간을 만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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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아침 2010-03-30 20:59:56
    아무튼 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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