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중국에 간 이유 / 셀리그 해리슨 |
---|
[세계의창] 김정일이 중국에 간 이유 / 셀리그 해리슨 북한이 천안함에 어뢰를 발사했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나는 만일 북한이 그랬더라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의 남북정상선언을 회당에 안치하고, 남북공동성명을 부인했다. 북한의 보복을 불러온 측면이 있다. 이는 만일 북한이 그런 일을 저질렀을 경우, 북한을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건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두 번의 정상선언을 거부하는 것은 북한에 남한이 또다시 북한의 붕괴와 흡수통일을 바라고 있다는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시점에서 필요한 건 이명박 정부가 두 정상선언을 분명히 받아들이고 비핵협상을 진행하는 것이다. 남한은 북-미 양자 비핵협상, 남북한·미국의 3자 평화협상, 그리고 6자회담 재개 등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야 한다. 비핵화는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과 같이 진행되어야 한다. 물론 현실은 집권당내 강경파들이 이명박을 반대 방향으로 몰아갈지도 모른다. 미 국방부와 국무부 관리들의 말에 따르면, 지난 6일 워싱턴을 방문한 박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은 미국 관료들을 만나 서해에서의 한-미 합동 해군훈련,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 등을 촉구했다고 한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전의 군사적 긴장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남북한 양쪽의 군사비 증강을 뜻한다. 어떤 분석가들은 군사비 증강이 남한의 경제발전에 득이 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존 페퍼(미 정책연구원 외교정책포커스 소장)는 한미경제연구소(KEI) 보고서를 통해 “군사비가 경제적 이득이 된다는 것은 매우 미약한 수준이고,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서재정 교수(존스홉킨스대)는 논문에서 “남한의 군사비용은 정부, 군, 방위산업체의 긴밀한 네트워크인 ‘군산복합체’에 의해 주도된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1990년대 중반 한국의 방위산업체에 326명의 전직 장성과 장교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페퍼는 연간 70억달러 규모의 북한 국방비 규모로는 남한(200억달러)을 따라올 수 없다고 지적한다. 남한에서는 군산복합체들이 군비감축의 반대 최전선에 서 있다. 북한에도 노동당내 강경파와 결합된 군산복합체가 있다. 김정일 치하에서 이들은 더 강해졌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경제적 요인 때문에라도 군축이 불가피하게 된 측면이 있다. 이에 반해 남한은 빠른 경제성장으로 말미암아 국내총생산에서 국방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북한에 비해) 높지 않아 실제 국방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에도 군축 압력이 북한만큼 크지 않다. 미군의 존재도 군축을 시급하게 만들지 않는 또다른 이유다. 그러나 방위비가 복지비로 전이된다면, 남한의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남한은 선진국에 비해 국내총생산(GDP)에서 의료, 복지, 사회보장 비용이 매우 작다. 최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과도한 군사비 증가를 줄이려는 의도가 포함돼 있다. 나는 1998년 탈북 직후 황장엽이 했던 예언적 인터뷰를 기억한다. 그는 “중국은 김정일을 자신들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 애쓰고 있는 중이다. 식량난과 경제침체가 계속되면, 김정일은 도움을 얻기 위해 중국에 항복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북한이 중국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중국의 나진항 개발을 허용해 중국의 오랜 숙원인 동해 진출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으로 연결될지 모른다. 이명박의 (대북 강경) 정책은 북한의 중국 의존도를 높였고, 이는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의 전략적 지위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는 결국 장기적으로 미국과 남한의 비용증가로 귀결될 것이다. 셀리그 해리슨 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21199.html
신고 0명
게시물신고
|
지나치게 오랫동안 자유를 빼앗겼던 한국인들에게 자유는 언제나 절대선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얼굴이 있다.
정치적 자유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자유, 즉 통제되지 않는 자본의 자유는 매우 나쁜 것이다. 우리는 굶어죽은 자식을 안고 ‘불쌍한 아이의 고통을 멈추어주신’ 신에게 감사드리던 자본주의 초기의 ‘자유로운’ 노동자들을 기억한다.
한국 민주화는 대중들에게 정치적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민주화는 자본에도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후자를 우리는 “신자유주의”라고 부른다. 물론 신자유주의는 한국만의 일이 아니라 1970년대 이후 레이건과대처의 주도로 진행된 전지구적인 자본의 운동이다.
김대중씨가 그 거대한 흐름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그가 하필이면 한국 경제가 신자유주의 세계체제에 편입하는 통과의례라 할 아이엠에프(IMF) 사태에 맞추어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를 이어 대통령이 된 노무현씨는 “이미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고 토로했다.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비정규 노동자가 절반을 넘고 청년들이 88만원 세대가 되고 아이들은 공포에 젖은 제 부모에 의해 감옥의 수인들처럼 시들어가는 세상이, 그러면서도 “부자 되세요!” 서로 덕담하는 기괴한 세상이 만들어졌다.
이 모든 책임은 대중에게 자유의 두 얼굴에 대해, 민주화와 신자유주의화에 대해, 절차적 민주주의와 진정한 민주주의의 차이에 대해 환기하고 견제했어야 할 사람들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수구 기득권세력과의 싸움”이라는 감성적 언어로 현실을 분칠한 채 정치적 자유만 강조해온 사람들에게 말이다.
그들에게 물어나 보자. 당신들, 정말 오늘 현실이 ‘이명박의 독재’ 때문이라고 믿는가?
이명박만 물러나면 정말 이 현실이 분명히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는가? 혹시 당신들의 진보가 제도 정치, 엔지오, 신문 방송, 대학 등에 똬리를 틀고 앉아 ‘비주류풍 주류’로 자본의 피폭을 모면하는, 말하자면 다시는 옛날처럼 풍찬노숙하지 않으면서도 진보연하고 싶어 하는 당신들의 추레한 욕망에 맞추어져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가?
당신들이 이명박에 치를 떨며 이명박과 공생한다는 견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국은 참 슬픈 사회다. 그토록 오랫동안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싸움과 희생으로 자유를 얻었는데 이젠 그 자유에 의해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스러져가고 있으니 말이다.
김대중씨도 참 슬픈 사람이다. 그토록 염원해온 바로 그 자유에 의해 스러져가는 수많은 착한 사람들을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의 명복을 빈다.
[출처] 펌 - DJ에 대한 칼럼 둘 : 셀리그 해리슨, 김규항|작성자 TTi
북한의 군비와는 달리 남한의 군비는 단지 소비측면외에도 생산적인 측면이 많네요. 아직도 개선할 사항은 무수히 많지만 계속 방위산업 품질향상을 하면서 기술과 기능이 축척되어 민간생산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거든요. 미국의 우주기술, 우리가 지속적으로 따라잡고 일부는 따라잡고 있는 일본의 하이테크가 상당부분 군수산업에서 시작되었잖아요. 자체적인 동북아 힘의 균형을 위해서도 군비유지는 통일후에도 주변국 만큼은 못하더라도 계속 유지해야 할거에요.
6자회담... 그거 우리로서는 별로 효과없는 회담아닌가요? 그거 시작 한지 벌써 10년이 되어가나요? 글쎄 미국입장에서는 핵문제자체니까 중요하다지만 지금까지 진행된 과정과 중간결과를 보아서는 글쎄요... 내가 만일 김정일이라면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것 같네요. 내가 강도인데 그것 하나 가지고 인질극을 펼칠 수 있는 상황인데, 그것마져 놓으면 내가 죽는데, 왜 놓겠습니까? 칼을 가졌으니 경찰과 대치상황에서 협상흉내는 하겠지만, 절대로 칼을 내주진 않을거에요.그것 뺏기면 자기가 자기를 포기하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