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부유한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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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역사상 현재만큼 풍요로웠던게 있나요? 선진국국가 반열에 올랐던적이 있었나요? 그렇다면 과거와 현재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1. 서양문화 기술 습득. 2. 동아시아권의 미국의 영향력 3. 중국의 절대적이 없다 어쩌면 한국이 과거(조선...)와 다른것은 위의 3가지가 있기에 가능하다 봅니다. 서양기술습득을 중국보다 빨리했기에 중국기술을 똥취급하는것이구요. 예전에는 중국(대국)이 거의 모든면에서 조선보다는 앞서있었죠. 과거 중국의 절대적 권력이있어 더 발전하지도 못하고 중국의 속국비슷하게 그냥 중국이 시키는대로하면서 살았죠. 그 중국의 절대적권력을 막을수있는건 악어와 악어새처럼 미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입니다. 앞으로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약해지면 어떻게 될까요?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겠죠? 과거를 보고 습득하는것입니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그래도 중국의 영향력이 커져서 한국을 집어삼키는 것보다 미국의 영향력이 건제하여 그것을 이용하는 관계가 더 좋습니다. 미국이 없었다면 한국은 지금의 북한의 모습입니다. 지금 북한의 모습이 조선의 모습입니다. 잘보고배우세요. 학습을 하지못하는 인간은 동물과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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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배우락꼬? 네 한테서 뭘 배우락꼬?
물론 타국가와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따져야겠죠. 절대적인 개념으로 따진다면야 이 조그만 반도의 절반 땅덩이에서 5천만 인구 (과거 중국의 통일왕조 시대의 인구임) 를 부양해 내고 있으니 가장 생산력이 큰 시기인 것은 맞습니다만 이렇게 따지면 세계 모든 나라가 다 똑같을테니 말이죠.
또, 과거에는 국부의 규모에 큰 관계 없이 일반 서민대중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못먹고 못살았습니다. 거대한 제국의 주민들도 흉년이 들면 굶어 죽는 사람들이 허다했으니까요. 강대국이나 약소국이나 일반 민중의 삶은 어차피 질곡이었다고 한다면, 국가간 상대적인 부의 크기는 전체 국부와 이에 비례하는 국력으로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600년 전을 생각해 보죠. 조선 초기입니다. 흔히 사람들이 조선이 매우 나약한 왕조국가였다고 생각하는데 전세계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조선의 국력은 지금의 대한민국의 국력과 큰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금 한국의 총생산 순위가 10-15위권 하지요? 군사비 지출도 11위 정도 합니다.
이 시기면 중국에는 명나라가, 서역에는 티무르제국이 등장하여 대제국을 형성하고 있던 시기군요. 남아메리카에 잉카 제국이 있었고, 유럽은 당시만 해도 동양보다 모든 면에서 뒤떨어진 조그만 왕국들이 서로 치열하게 다투고 있었죠.
조선 초기의 동원가능 병력이 10만명이라고 했을 때 이 정도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국가는 전 세계적으로 우리가 제국으로 기억하는 국가를 제외하고는 몇 개 없다고 보면 됩니다.
결국 순위는 지금의 10-15위와 큰 차이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바로 옆에 중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있었기에 조선이 약해 보이는 것 뿐입니다. 당시의 조선이 유럽 한복판에 있었다면 프랑스 왕국, 신성로마제국, 스페인 왕국,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강력한 왕국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중국 명나라와 조선의 국력 격차는 지금의 미국과 한국의 격차라고 생각하면 역시나 초강대국과의 국력 격차도 비슷한 거구요.
암튼 이러저러한 이유로 한반도에 둥지를 튼 국가의 세계적인 국력 순위는 시기별로 차이가 있겠으나 삼국시대(고구려)-고려-조선-대한민국을 통해 큰 변동이 없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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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때말고 그 후에는 어떠했나요?
한나라의 국가의 총수가 다른나라에 절을하는것은 무엇인가요?
일본의 강제합병은 우리가 지금정도의 힘이있었다면 어땟을까요?
1800년대에 유럽에서는 차가 발명되었을때 우리나라는 소달구지였고 1900년대에 들어왔을때도 소련과 미국이 우주항공으로 싸우고 있을때 우리는 자동차를 일본의 기술로 만들기시작했습니다.
6.25를 왜 우리나라에서 했을까요?
유럽과 중국과 일본과 과학기술적인 면에서 문화적인면에서 국력면에서 우리나라가 동등하게 경쟁하던때는 언제였나요?
둘째, '한나라의 국가 총수(?)가 다른 나라에 절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셋째, 과학기술적 발명의 사례는 다양합니다. 선생님의 주장대로 유럽이나 기타 다른 나라의 과학기술적 성장이 눈에 띄게 발전한 시기도 있지만 또 어느 때는 우리가 뛰어난 과학기술적 업적을 이룬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이런 사례를 가지고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가요?
넷째, '한국전쟁을 왜 우리나라에서 했을까요?' 이게 무슨 선문답입니까? 선생님은 왜 한국전쟁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시며, 그것이 선생님의 주장하고자 하는 바와 무슨 상관이 있는 지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우리나라(우리 민족의 국가)를, 어떤 특정한 한, 두 나라도 아니고 전세계 열강들 모두와 비교한다는 말입니까? 지금 이게 비교대상으로 적합하다 생각합니까? 그리고 비교해서 뭘 어쩌자는 겁니까.
반세기에도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데, 수백년을 이어온 조선과 고려, 또 그 이전의 왕조에 역사의 부침이 없었을까요?
저는 그래서 조선 초기(약 600년 전)를 예로 들었던 것입니다. 지금이 '대한민국'의 중흥기라면 당시는 '조선'의 중흥기였으니까요.
님이 예로 계속 드시는 조선말기는 조선 500년 역사중 가장 피폐했던 시기입니다. 이 시기와 비교하려면 지금의 대한민국보다는 1950년대의 대한민국과 비교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조선, 고려가 번성할 때 전 세계에서의 국력 순위와 현재 한국의 국력 순위를 비교해 보자는 것이지요. 아마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겁니다.
즉, 한민족의 5000년 역사를 놓고 볼 때 지금과 국력이 비슷하거나 더 강했던 시기 (세계 순위로 놓고 보았을 때)도 있을 것이라는 말이지요. (굳이 흔히들 말하는 고구려의 최전성기를 제외하고서라도 말이죠.)
하지만, 미국과의 강력한 동맹을 통해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님의 의견에는 백번 동의합니다. 저도 미국에 살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미국은 한국에 영토적 야심도 없고 고도로 성숙된 자유민주주의 사회이니까요.
무조건 자기합리화 시킨다면 개인으로보나 국가로보나
발전은 없습니다.
님은 영광의 역사는 깡그리 잊고 오욕의 역사만을 기억하여 한민족의 역사적 자부심조차 포기하시겠다는 말씀인지요?
님의 역사인식은 1950년대의 대한민국으로 현재의 대한민국까지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태도라면 당신은 당신 부모가 대단한 인물이 아니라면 역시 시니컬하게 비웃음을 던질 사람같군요. 당신의 발언대로라면 결국 내 얼굴에 스스로 침뱉기와 같은 건데, 뭐가 그렇게도 즐겁고 신이 나셨는지 한심한 따름입니다.
무조건적인 '우리나라 만세, 우리민족 만세'도 경계해야할 모습이지만, 우리민족이 이룩했던 수많은 나라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우습지 않았습니다.
먼저 묻고 싶군요. 여기서 말하는 '한국'의 정의가 무엇인지 말입니다.
만약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을 말하는 것이라면 선생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 당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고 지금은 그런 대한민국이 역사상 가장 부유한 시절임에 틀림없으니까요.
하지만 선생님의 주장 중에 '조선'이라는 국호가 나오는 것을 보니, 위에서 말하는 '한국'은 '대한민국'이라기보다는 한반도를 영토적 기반으로 아우르며 흥망성쇠를 거듭해왔던 '한민족의 국가들'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선생님의 말씀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물론, '한민족의 국가들'의 범주를 어디까지 보아야 할까 등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습니다만, 그것이 어찌 정의되든 간에, 국제사회에서 우리 한민족에게 지금보다 더 국력과 영향력이 강했던 시기가 없다고 말하는 듯한 선생님의 주장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지금 북한의 모습이 조선의 모습이라고요?
참으로 선생님은 '조선' 알기를 우습게 아시는군요.
또, 조선이 중국의 속국이라고요?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마세요.
그런 논리라면 지금 대한민국 또한 미국의 속국이라 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당시 강대국이었던 중국의 영향을 받았던 점은 '속국'이라 파악하면서, 현재 강대국인 미국의 영향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상대 영향력을 이용하는 것'이라 표현하다니, 이런 이중적 태도가 어디 있습니까.
모든 나라에는 흥망성쇠가 있기 마련입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우습게 보는 조선의 역사에도 역시 흥망성쇠가 있어요. 흥할 때는 동북아의 강력한 세력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약할 때는 다른 강대국의 영향력에 속절없이 휘둘리기도 했고, 심지어는 나라를 잃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모두 보지 못하고 오직 한 순간의 모습만으로 전체를 이해하고 결론지으려 하다니요. 그건 역사를 바라보는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입니다.
선생님은 '사실은 사실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우리 역사의 오욕만을 말하며 이를 인정하라 강요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우리는 오욕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습니다. 하지만 그 뿐만이 아니지요. 우리는 영광의 역사에서 자부심과 발전의 동력을 얻습니다. 선생님의 주장대로라면 반만년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 영광의 순간이란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걸 동의하라고요? 무슨 근거로 말입니까.
저는 선생님같은 분이 더 이상 개인의 편향적인 가치관을 함부로 공인된 객관적 가치인양 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스스로의 말씀처럼, 우리 역사의 오욕뿐만이 아닌 영광까지도 함께 보고 평가할 줄 아는 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1. 미국과의 돈독한 관계로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애국자님의 말씀에는 백번 동의합니다.
2. 애국자님은 한민족 역사상 가장 피폐했던 시기중의 하나인 조선 말기를 한민족 5천년 역사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일반화하고 있습니다. 조선 말기는 1940-50년대의 대한민국, 현재의 북한, 몽고 침입기의 고려 등과 비교되어야 적절한 국력 비교가 될 것입니다.
3. 현재 대한민국의 국력은 조선 초기, 고려 초중기, 통일신라와 고구려의 전성기와 비교되어야 적절한 국력 비교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전세계적 국력 순위에서 현재와 비슷하거나 강력했던 경우도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4. 일반 서민대중의 삶을 놓고 현재가 가장 부유하다고 한다면 이는 맞는 말이지만 동시에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같을 것입니다.
5. 결론 : 올바른 역사 인식을 통해 치욕의 역사뿐만 아니라 영광의 역사도 제대로 평가하여 반성 뿐만 아니라 자부심도 함께 키우자는 말입니다.
1241년 3월 18일 폴란드가 공격을 당하고 있을 때 그 북쪽의 리투아니아와 동부 프러시아에도 소규모의 몽골군이 출몰했습니다. 그 직후 실레지아에 수많은 몽골 기마군단이 집결했죠.
1241년 4월 9일, 바투(37) 휘하의 몽골군이 폴란드의 심장 크라쿠프를 돌파하여 남부독일의 실레지엔(지금의 폴란드 일부)을 공격하였습니다. 이에 실레지엔 대공(大公)인 하인리히 2세(재위 1238~41)가 몸소 3만의 군사를 이끌고 폴란드 및 독일연합군과 함께 니그리츠(Liegnit) 교외에서 몽골군을 맞아 싸웠으나 참패당해 비장한 최후를 마치고 말았습니다. 단 하루 만에 출전한 총5만의 기사들 중 4만 명이 전사하는 대참패였다. 이때 몽골군은 수많은 전사자의 귀를 잘라 9개의 자루에 가득 채웠다고 합니다. 이 전쟁을 통해 몽골의 경쾌한 기병이 중세 서양의 무거운 갑옷으로 중무장한 기사들보다 월등하게 우수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죠. 즉, 서양의 중무장 기사들이 큰말을 타고 대형을 이뤄 달려오면 정면 대결 할 듯 다가가다 신속하게 옆으로 빠져 후위를 공격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면 가속도로 균형을 잃어버린 기사들은 허둥대며 몽골 경기병들의 손쉬운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었던 거죠.
몽골 군대의 기동성이 증명되는 것은, 보통 몽골 기병이 출전할 때는 말을 한 5마리 정도 끌고 간다고 합니다. 즉 보급물자로 가져가는 것이죠. 달리다 말이 지치면 바꿔 타기도 하고 식량이 떨어지면 죽여 고기는 먹고 가죽은 입고 말뼈는 화살로 씁니다. 하다못해 말똥까지도 연료로 사용합니다. 즉 서너 마리의 말을 끌고 동시에 이동한다는 것은 보급물자도 동시에 달린다는 얘기죠. 이 기동성,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이런 속도전은 그 당시 세계 어느 국가도 당해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유일하게 당해냈던 나라가 있다면 무려 42년간(1231~73) 싸웠던 고려 정도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한편 2일 후 헝가리 왕국에 진격한 바투(37)의 군대는 폴란드로부터 개선한 군대와 합세, 부다페스트의 동쪽 무히평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셔요 강변에서 ⑳벨러 4세(재위 1235~70)가 이끄는 6만의 헝가리 대군을 궤멸시켰습니다(4.11).
전쟁에서 몽골군의 전투비결은 사냥에서 체득한 전술을 적용했어요. 예를 들어 해마다 겨울이 되면 사냥을 하는데 말을 탄 병사들이 거대한 원으로 사냥감을 포위합니다. 그리고는 점점 원의 크기를 좁혀서 최적의 장소까지 압박해 갑니다. 이 원형사냥법이 그대로 전투에 적용된 거죠.
간신히 목숨을 건진 헝가리 왕 벨러는 아드리아 해 방향으로 도주했습니다. 곧이어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는 몽골군의 수중에 떨어졌습니다. 이로써 유럽의 파수꾼을 자처하던 동유럽의 강국 헝가리는 1242년까지 철저히 유린당했습니다. 다뉴브 강을 몽골군이 쉽게 건너지 못함으로써 다뉴브 강 동부의 헝가리 땅은 특히 많은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1273년 눈에 가시였던 삼별초를 토벌한 후에야 ⑤쿠빌라이(재위 1260~94)는 본격적으로 남송(1127~1279)을 정벌하기 위한 군대 동원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정도로 당시의 고려의 군사적 역량만 설명을 마칩니다.
신라는 말할 것도 없고 조선 역시 긍지 있는 나라였습니다. 한민족의 저력을 우습게 알면 안되죠. ㅎㅎ
물론 지금의 대한민국 역시 자랑스런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북한이란 한쪽 살이 떨어져 나가 가슴이 아프지만 말입니다. 하루빨리 북한도 남한과 통일을 이뤄 세계속에 당당한 주역이 되길 바랄뿐입니다.
전에도 느낀 것이지만 타이프님께서는 역사에 조예가 깊으시군요.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보고 있고 많이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요즘 방학해서 시간 있어 들어와 봤습니다. 과찬이십니다. 두리뭉실보다는 자세한 역사적 가치에 흥미를 느껴 관심을 좀 가지고 있는 편입니다.
님의 균형잡힌 글에 늘 감동을 받습니다. 좋은 글을 통해 자주 뵙기를 바랄뿐입니다. ^^
그런 자의 글에 댓글을 달며 논쟁을 피터지게 하는 분들도 참....
글을 보세요,
미국이 약해지면 중국의 영향력이 크게 미친다네요.
참으로 매국노가 아니면 철저한 사대주의 바보이든가 아니면 멍청이지요.
이 (병신)아 ~ 너 같이 미국 에서 (노숙자)로 있으면서 식당 (구정물 통) 에서(구더기)가 욱실 거리는데서 (음식물 쓰레기) 나 걷어 처먹는 주제에 누굴 욕해! 다른 사람 들은 다 살만한 능력 을 가진 사람 들이야! 알았어?
분열을 일삼는 논의와 생산적 논의조차 구별 못하는 인간들이나 웃통을 벗어던지든 댓글을 달지 말든...
한국은 땅덩어리가 작아서 아무리 발전해봤자 그기서 그기게요...어찌하던 미국을 등에 업어야 해요
한국이 역사상 제일 강한 나라가 아니라 ...우리민족 제일 강한 시기는 고구려라고 생각됩니다. 그 땅덩어리가 얼마나 되는지 다들 아시잖아요..그 당시 고구려가 주변국가에 주는 영향력도 상당했지요...
당시 고구려의 국력은 당조도 위협할수 있었지만 한국은? 솔직히 한국이 동아시에서 군사로 위협을 줄수 있는 나라가 있나요?
중국,북한,일본,남한... 군사력이 제일 약한 나라가 남한입니다.
애국은 눈먼 사랑으로 하는게 아닙니다. 자신의 실력을 똑바로 알아야 부족함을 제때에 미봉할수 있고 남한테 당하지 않는 법입니다.
수많은 세월을 당신 조상들이 살아왔고 묻혀 있는 고국산천을 비하하지 마시고 중공에 요구할 건 요구하며 경제적 문제로 만족하지만 말자구요. 하긴 요즘은 국토가 국력을 의미하는 시대는 아니지만.. 아무 나라라 가서 살면 그게 내 나라기도 하지만....
다만 닉넴이 애국자란 사람의 글이 하도 유치하여 한마디 했던겁니다.ㅋㅋ
지금 우리나라의 부가 그렇게 간단히 역사의 흐름대로 이루어진 게 아닙니다.
지난 반세기동안 밑바닥에서부터 얼마나 피터지게 노력했는지는 고등학생인 저보다도 더 잘 아실 분들 많으실 거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