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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맨발
Korea, Republic o 착한사람1 0 437 2010-08-06 22:32:33
송수권 시인이 2003년 백혈병으로 투병중인 아내 김연엽(53·金蓮葉)씨에게
바친 한 편의 詩 '연엽(蓮葉)에게'가 읽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듭니다.


송 시인의 아내는 백혈병에 교통사고로 인한 과다출혈로 서울의 한
병원으로 이송되었는 데 이 때 의경들이 피를 나눠줘 목숨을 건졌습니다.
송 시인이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 감사하다고 보낸 글의 일부를 옮겨
보았습니다.







저의 아내 연잎새 같은 이 여자는,
똥장군을 져서 저를 시인 만들고 교수를 만들어낸 여인입니다.
수박구덩이에 똥장군을 지고 날라서 저는 수박밭을 지키고
아내는 여름 해수욕장이 있는 30리 길을 걸어서 그 수박을 이고 날라
그 수박 팔아 시인을 만들었습니다.

그런가 했더니 보험회사 28년을 빌붙어 하늘에 별따기 보다 어렵다는
교수까지 만들어 냈습니다.
박사학위는커녕 석사학위도 없이 전문학교 (서라벌 예술대학 문창과)만
나온 저를 오로지 詩만 쓰게 하여 교수 만들고 자기는 쓰러졌습니다.



첫 월급을 받아놓고
"시 쓰면 돈이 나와요, 밥이 나와요, "
라고 타박했더니,
"시도 밥 먹여 줄 때가 있군요!"
라며 울었습니다.


특별 전형을 거쳐 발령 통지서를 받고
"여보! 학위 없는 시인으로 국립대학교 교수가 된 사람은 저 밖에 없다는군요.
해방 후 詩 써서 국립대학교 교수가 된 1호 시인이라고 남들이 그러는군요!"
라며 감격해 하더니
"그게 어찌 나의 공이예요, 당신 노력 때문이지 총장님께 인사나 잘해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자기는 이렇게 할 일 다 했다는 듯이 쓰러졌습니다.
친구나 친척들에게서 '골수 이식'을 받아야 한다고 말해도
"2년 후면 송 시인도 정년퇴직인데, 송 시인 거지 되는 꼴 어떻게 봐요,
그게 1억이 넘는다는데..."
라며 생떼를 씁니다.


지난 주 금요일이었습니다.
병간호를 하고 있는 시집간 딸 은경이의 친구가 2003년 9월 고등학교 1학년
학력평가 문제지(수능 대비 전국 모의고사)를 들고 왔습니다.
언어 영역 문제지에는 저의 詩《山門에 기대어》가 출제되어 있었습니다.
은경이의 친구가 자랑처럼 말하자 아내는
"너는 이제 알았니? 은경이 아빠의 詩, '지리산 뻐꾹새' 와 '여승'도 진작
수능시험에 출제되어 나갔어야!"
라고 설명해 주고는 눈물을 보였습니다.
"난 이제 죽어도 한은 없단다."
라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것을 자기의 공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혜가 큰 것이라고
모든 공을 주님께로 돌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
몹쓸 '짐승의 피'를 타고난 저는 저의 아내가 어떻게 살아온 것인지를
너무나 잘 압니다.

청장님께 말씀드리지만 저의 아내가 죽으면 저는
다시는 시를 쓰지 않겠습니다.
시란 피 한 방울보다 값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AB형! 그 의경들이 달려와서 주고 간 피!
그것이 언어로 하는 말장난보다 '진실'이라는 것
- 그 진실이란 언어 이상이라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2억5천여만 원에 달하는 수술비가 부담스러워 골수이식을 거부하는
아내에게
“당신이 숨을 거두면 시를 쓰지 않겠다”며
간절하게 설득한 끝에 김씨의 남동생의 골수를 이식 받았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남편을 위한 아내의 희생이 그렇고
교수가 된 남편의 아내에게 대한 감사가 그렇습니다.
오늘날 공(功)을 서로에게 돌리는 겸손이 더욱 그렇습니다.
한 가닥 단비처럼 메마른 삶에 우리의 마음을 포근하게 적셔줍니다.









아내의 맨발 / 송수권

- 갑골문 甲骨文


뜨거운 모래밭 구멍을 뒷발로 파며

몇 개의 알을 낳아 다시 모래로 덮은 후
바다로 내려가다 죽은 거북을 본 일이 있다

몸체는 뒤집히고 짧은 앞 발바닥은 꺾여
뒷다리의 두 발바닥이 하늘을 향해 누워 있었다

유난히 긴 두 발바닥이 슬퍼 보였다

언제 깨어날지도 모르는 마취실을 향해
한밤중 병실마다 불꺼진 사막을 지나
침대차는 굴러간다

얼굴엔 하얀 마스크를 쓰고 두 눈은 감긴 채
시트 밖으로 흘러나온 맨발

아내의 발바닥에도 그때 본 갑골문자들이
수두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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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필 2010-08-07 12:52:48
    오, 아름다운 이야기,
    부부의 인연가운데 이해타산의 뭉텅이만 커가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살만한 세상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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