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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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사람치고 플라톤의 동굴이야기를 모르시는 분은 거의나 없을것이다. 평생 캄캄한 어둠속에서 불빛에 너울거리는 물체의 그림자에만 익숙해서 살아오다가 어느날 우연찮게 동굴밖으로 탈출하게 되고 눈부신 햇빛에 처음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다가 차츰 차츰 시력을 회복하게 되고 이어 푸른 하늘과 밝은 태양, 맑은 시냇물과 아름다운 꽃들 시원한 바람과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소리등 눈부신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그러던중 이렇게 아름답고 황홀한 바깥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모른채 살아가는 어두운 동굴속의 가엾는 친구들 혈육들이 생각나서 다시 돌아가 동굴밖에는 눈부신 세상이 있다고 혼신의 힘을 다해서 진실을 이야기하지만 냉정히 외면당하고 오히려 정신이상자로 몰린다는 비극적인 이야기...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북한의 현실과 너무도 흡사해서 소름이 쫘악 끼치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 곁들일만한 후일담이 있다는것이 새삼 고마웠다. 나의 몇 안되는 고향친구 이야기이다. 즉 카더라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화인 셈이다. 이친구 꽃다운 스무살에 등가죽에 달라붙은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두만강을 넘은지도 몇년 잘 흘렀고 그동안 이리저리 쫓겨다니며 숨어사느라 기진맥진해버린 상황에 다다르자 최종 한국행을 결심하고 고향에 기별을 띄웠다. 행여 한국행이 성공해서 한국가면 영영 다신 못볼텐데... 그동안 한푼 두푼 악착같이 모은 돈을 집에 보내주고 떠나기전 꿈에서조차 잊을수 없었던 혈육의 얼굴이라도 마지막으로 보려고... 그리고 무사히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는지라 딴엔 죽을 각오를 했던것이다. 소식을 보낸지 보름만에 오빠가 혜산에 도착했고 안내인을 따라 비밀리에 두만강을 넘은 오빠를 만났단다. 남매는 굽이 굽이 흘러가는 두만강을 뒤로 한 채 장백의 어느 이름모를 산등성이에서 근 십년만에 재회를 하게 되었다고 아시겠지만 북한에서는 군복무가 십년이다보니 이 친구 오빠얼굴을 근 십년만에야 처음 보았단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앳된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짓고 부모님께 큰 절 올리면서 떠나던 오빠, 아들은 조국을 지킬테니 건강히 계셔달라 부탁드리면서 고향집을 떠나던 십년전 오빠의 생기넘치던 모습만 기억하고있던 친구앞에 나타난 오빠의 모습은 눈을 의심할만큼 낯설었다고 그랬다. 못먹어서 그런가 가뜩이나 작은 키가 더 작아지고 딱 봐도 영양실조라 할 만큼 누렇게 떠버린 야위고 광대뼈만 앙상한 오빠의 모습은 친구의 마음을 멍들게 하기엔 충분했다고... 아무튼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남매는 그리 넉넉치 않은 짧은 시간내에 근 십년만의 재회를 나누느라 가쁜 숨을 몰아쉬었단다. 지금 고향의 돌아가는 형편과 늙으신 부모님들의 병환, 그리고 셋째삼촌과 삼촌어머니가 굶어죽고 오갈데 없는 사촌이 함께 얹혀산다는 이야기이며 막내사촌여동생의 행방도 모른다는 이야기이며 차마 떠올리기 싫은 아픔들을 담담히 남매는 인적드문 이역의 하늘아래서 주고받았단다. 친구는 다시는 고향에 돌아갈수 없는 처지에다가 더더구나 중국땅에서도 잡혀갈까 마음졸이며 한순간도 편히 살아갈수 없는 탈북자로써의 애환에 분통이 메여서 한바탕 욕을 시원하게 했단다.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산다고, ***가 뒈져야 얼릉 북조선이 잘 산다고, 지는 와인에 캐비어에 상어지느러미만 배터지게 처먹고 인민들은 풀도 없어서 못먹고... 뭐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느라 통강냉이죽만 드신다고...개뿔... 이러면서 온갖 분풀이를 시원하게 해댔나보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반격을 맞았다고 당시 친구오빠는 군에서 제대한지 얼마 안되었었다. 친구 오빠가 정색해서 오히려 친구에게 대놓고 비난을 하더란다. 꼭 강연회에서 달달 보여주는 상투적인 내용 그대로 너희들이 조국이 어려울 때 배신한 반역자 주제에 뭐 어쩌고 저쩌고... 우리 조국이 지금은 적들의 경제봉쇄책동에 어렵지만 장군님의 위대한 영도아래 꼭 승리를 이룩할것이라고 뭐 어쩌고 저쩌고... 아무리 친오빠지만 이 이야기를 하는 오빠의 얼굴이 갑자기 그렇게 낯설어 보일수가 없더라고... 비극도 이런 비극이 어데 있을까? 조용히 이 어이없는 황당한 이야기를 듣던 친구가 한마디 툭 던졌는데 이 말을 들은 친구오빠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고.. "그럼 오빠가 그렇게 믿고 따르는 장군님한테 가서 돈을 달라고 해 나같은 배신자에게서 돈을 받지 말고... 배신자가 주는 돈을 더러워서 어떻게 써?" 친구오빠의 지금껏 살아오면서 받은 사상교육으로는 반격을 가하고 싶었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으니 오히려 그 괴리감에 빠져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사이에서의 갈등을 이보다 더 적라라하게 보여줄수 있는 예가 잘 없을것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날 그렇게 친구는 돈의 위력으로 완판승을 거두었다고... 친구는 이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씁쓸했다고 그랬다. 북한땅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얼마나 자신들이 속혀서 살아가는지 잘 모르는게 현실 아니냐면서... 피를 나눈 형제지만 북한당국의 말도 안되는 헛소리에 속혀서 속은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오빠가 정말 답답하고 안타까워서 미치고 팔짝 뛰겠더라면서... 이게 비단 내 형제의 이야기이지만 또한 북한동포들의 이야기도 아니겠냐면서 북한땅을 벗어나지 않는 한 진실을 안다는것은 참 어려운 일 아니겠냐고 한숨을 내쉰다. 오히려 진실을 알고있는 우리들(탈북자)이 민족반역자니, 혁명의 배신자니 하면서 매도당하는 현실이 어이없고 황당하기 그지없었다면서... 마지막으로 오빠와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금새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울지마...살아 있으면 언젠가는 또 만나게 될꺼야... 나는 그리움에 치를 떠는 친구를 꼭 안아주었었다. 이건 벌써 오년전의 이야기이다. 이제는 친구오빠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장군님만 믿고사는 길이 굶어죽는 길이라는 것을 잘 깨달아갈터이고... 열심히 나름대로 먹고 사는 길을 찾아서 동분서주 할것이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북한이라는 저 지옥(동굴)을 벗어나기전까지는 사실상 어렵다. 많은 탈북자들도 수긍하는 이야기이다. 그 전까지는 장님 코끼리다리 만지기에 불과하다. 삼인성호(세사람이면 호랑이를 만든다는 옛 고사성어)는 과거에만 존재했던 고사에 불과한 것일까? 북한당국이 온갖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한채 주구장창 삼인성호를 웨치는데야 아무리 사리분별과 판단이 분명한 사람일지라도 진실을 알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나오는것보다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통일을 앞당기려면 동굴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진실을 깨닫고 과거와 같은 노예생활을 청산할수 있다고 본다. 인도주의적 지원도 중요하겠지만... 일단은 동굴에서부터 빠져나오는것이 급선무일것이다. 북한정권으로써는 동굴을 빠져나온 사람들이 점 점 더 많아져서 목소리를 내는것, 급기야 우렁찬 진실의 메아리가 동굴속으로 울려퍼지는것보다 더 두려운 일이 없을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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