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사싱혼 사실무근 재증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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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사실혼 사실무근 증언 고(故)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수양딸인 김숙향(68) 씨가 고인의 장례 이후 처음으로 언론에 입을 열었다. 김 씨는 최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대북사업가 또는 공작원이라는 풍설에 대해 “나는 장사하는 사람이 아니고, 정보기관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난 기독교인이다. 북한 선교의 사명을 갖고 활동했다. 당초 기독교방송국을 평양에 세우려는 게 우리 목표였다”고 그간의 의구심을 털어놓았다. 이 인터뷰를 통해 신문은 1일 황 전 비서의 망명 일화와 김 씨가 수양딸이 된 배경, 사실혼 관계의 여인과 아들에 대한 내막을 보도했다. ⓒ뉴스한국김 씨는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 안에서 어른을 만날 때 직원을 입회시켰다. 내가 '부녀간에 만나는데 이럴 수 있느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그 뒤로 둘만이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청 때문에 필담(筆談)으로 대화했다. 한번은 어른이 '자유를 달라'고 썼다. 그 말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얼마나 슬펐는지 모른다”면서 과거 정부 때 황 전 비서가 국정원에 의해 통제받았던 때를 떠올리기도 했다. 김 씨가 황 전 비서를 알게 된 것은 외화벌이를 위해 중국 베이징에 나와 있던 북한여광무역 사장이었던 김덕홍 씨를 통해서였다. 이를 계기로 황 전 비서가 망명하기까지 두세차례 만남이 이어졌다. 황 전 비서는 남한 망명 전에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어가고 있는 것에 괴로워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씨는 “어른은 '나는 밥을 먹고 국제적으로 돌아다닌다. 하지만 인민들은 굶어 죽어가고 있다. 내 주체사상이 수령독재에 이용되고 있다'며 학자적 양심으로서 괴로워했다”고 했다. 황 전 비서가 망명하지 않고 북한 내부에서 개혁할 수 없었는지에 대해선 “(북한은) 함께 개혁을 모의할 당 간부들을 만날 수 없다. 서로 한자리에서 대면할 수 없게끔 되어 있는 체제”라며 “김정일은 각자에게 팩스로 지시하고 보고받는다. 이대로 안에서 죽을 수 없다는 강박감이 어른에게 있었다”고 밝혔다. 황 전 비서 망명 직전 김 씨는 자신의 모든 행적이 국정원에 의해 도청, 감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았다고 했다. 그는 황 전 비서의 망명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 ‘햇볕정책’이 추진되고 남북정상회담까지 성사되면서 스스로 불편한 존재가 된 것을 느끼고 망명을 후회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황 전 비서가 사선을 함께 넘었던 김덕홍 씨와 결별했던 배경에 대해선 “어른은 학자였고 김덕홍은 행동파였다. 김덕홍은 '여기서는 자유가 없다. 미국으로 망명가자'고 했을 정도다. 당시 국정원에서는 둘이 붙어 있는 것을 원치 않았다. 어른에게 '당신이 원하는 철학연구소를 내줄 테니 김덕홍과 떨어져라'고 했다. 그 배경을 알고서 김덕홍이 원망했다”고 속사정을 설명했다. 또 황 전 비서의 사망으로 언론에 알려진 사실혼 관계의 여인과 그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있다는 소문에 대해선 “사실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뉴스한국 고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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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더욱 더 파편화되고 이기적이 돼가고 애새끼들도 싸가지 없어지고...
좌빨 민쥐들의 공작은 집요했죠. 모든 국가 기관에 마치 점령군처럼 입성했는데, 한날당은 집권하고도 질질대다 좆불시위 당하고 쫄아서 찍도 못하고 슨상이 만들어놓은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
그래서 개구리도 임기 마지막에 무조건 대못부터 박아대기 시작했음. 박정희나 전두환 같았으면 바로 뽑고 좌빨들 아작내고 대한민국을 살렸겠지만 밴댕이 가슴의 명박은 중도니 뭐니 돌아서고.... 민쥐들의 눈치나 살피고 있으니...
민쥐들의 돌격성과 무모함, 철면피라도 배우든지.... 대통령이 될 사람들은 퇴임 후 어찌되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면 나라가 산다.
돈은 남한에서 대주고 생색은 개정일의 공로로 돌아가고... 북괴 주민들은 더욱 더 장군님만 찬양하게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