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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9명 입국시킨 김성은 목사
Korea, Republic o 고발자 0 1090 2011-03-25 09:25:04

“배 타기 한 달 전부터 옌타이 인근서 흩어져 숨어 지내”

[중앙일보] 입력 2011.03.25 00:48 / 수정 2011.03.25 02:45

탈북한 9명 입국 시킨 김성은 목사24일 오후 중국에서 배를 타고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 9명이 군산항 인근에 정박한 해경 경비함에서 조사 받은 뒤 차량편으로 이동하고 있다. [군산=연합뉴스]


24일 귀순한 탈북자 9명은 남성 4명과 여성 5명으로 이뤄졌다. 남성은 모두 30~40대고 여성은 30~40대가 3명이다. 7살과 15살 난 여자아이 두 명도 포함됐다. 이들 가운데는 부부와 딸 등 가족이 포함됐다. 귀순자 중 6명은 이미 가족이 한국에 들어와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탈북과 입국을 도운 사람은 천안 갈렙선교회 김성은(47) 목사다. 김 목사는 두 달 전 중국 현지에서 이들을 만나 입국 방법을 논의했다. 김 목사는 정확한 중국 출발지를 밝히지는 않으면서도 “옌타이(煙臺) 부근 조그만 항구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해양경찰청은 탈북자 9명 중 3명은 조선족으로 보고 있다.

김 목사는 이를 부인했다. “9명 모두 북한에서 탈출한 사람”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목사에 따르면 이들은 23일 중국에서 생선 운반선을 타고 공해상까지 이동한 뒤 24일 김 목사와 만났다. 김 목사는 군산항에서 어선을 빌려 이들을 마중 나갔다.

 김 목사는 “공해상에서 그들을 만났을 때 서로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며 “가족을 만난다는 기쁨과 2년여간의 설움, 울분이 한꺼번에 북받쳐 올랐을 것”이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 목사는 입국자들이 타고 온 배의 크기나 선적 등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김 목사는 “배가 크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돈을 주면 공해상까지 배를 태워주기 때문에 선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김 목사의 설명이다. 이들은 중국에서 배를 타기 전 옌타이의 주택과 아파트에 분산돼 한 달 정도 은신해 있다가 출항시간에 맞춰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입국자 가운데는 북한을 탈출한 지 짧게는 두 달에서 길게는 2년이나 된 사람도 있다. 애초 김 목사는 30여 명의 탈북자를 입국시킬 계획이었다. 하지만 탈북자 중 상당수가 “김 목사가 우리를 다른 곳에 팔아 넘기려 한다”고 오해해 준비 과정에서 20여 명 이상이 이탈했다. 브로커와 달리 돈을 받지 않고 한국으로 보내준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는 게 김 목사의 설명이다. 김 목사는 “그들이 내 말을 믿었다면 지금 30여 명 모두가 한국 땅을 밟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김 목사는 군산에서 배를 빌리면서 해경 등 관계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 탈북자의 입국 시도가 사전에 알려지면 중국이나 북한 등에서 문제 제기를 할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는 “중국에서 출발하는 것부터 배를 타고 공해상까지 이동하는 것 모두가 불법인 줄 알았지만 이들이 무사히 입국하는 게 더 중요했다”고 말했다.

 김 목사가 탈북자들의 입국을 도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0년 처음 탈북자를 한국으로 데려온 뒤 지금까지 10여 년간 수십여 명을 도왔다. 대부분 기존에 한국으로 입국한 탈북자의 가족이다. 이번에 입국한 탈북자 9명 중 6명도 가족이 이미 한국에 들어온 경우다. 김 목사는 “탈북자의 입국을 돕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탈북자들이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어려움을 해결해줄 방법을 찾다가 “가족을 데려오자”고 결심한 것이다. 탈북과 입국을 도운 사람은 중국 현지의 조선족과 한족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 살고 있는 교포도 김 목사를 도왔다. 이들은 이번에도 탈북부터 은신, 출항까지 모든 과정을 침착하게 준비했다. 입국에 들어간 돈은 김 목사의 지인과 교회 후원자들이 마련했다. 김 목사는 “비용의 규모는 알려줄 수 없다”며 “다만 많은 사람이 탈북자들을 후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 군산에서 다니던 교회의 목사를 따라 두만강 유역에 선교하러 갔다가 처음 북한 주민들의 어려운 실상을 느끼게 됐고 이후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고 탈북 주민을 돕게 됐다고 설명했다.

천안=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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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발자 ip1 2011-03-25 11:08:19

    - 고발자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1-03-25 11: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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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발자 ip1 2011-03-25 11:13:17
    탈북민 출신 송성국씨와 김성은 목사의 연합작전 성공을 거두다

    24일 새벽 4시 군산항에서 210㎞쯤 떨어진 공해(公海)에선 달빛만 출렁거렸다. 탈북 주민 9명을 구하러 군산을 떠난 송성국(27)씨가 무전기를 조타실 바닥에 내던졌다. 무전기 없이 망망대해에서 작은 선박을 찾는 일은 불가능한데, 중요한 순간 먹통이다. 송씨는 김성은 목사와 갑판에 올라 외쳤다. "거기 누구 없어요?" 애타는 목소리가 밤바다를 울렸다. 바다 어디에서도 그들의 외침에 답하는 이는 없었다.

    30여분 뒤 암흑 밤바다에 작은 불빛이 보였다. 송씨와 김 목사가 환성을 질렀다. 파고는 0.5~1m, 하늘이 도운 듯 잠잠했다고 한다. 두 선박은 조용히 물살을 헤쳐 나란히 마주 섰다. 밧줄로 배를 동여매고 탈북 주민 9명이 아이·여성·남성 순으로 배를 갈아탔다.


    24일 새벽 서해상에서 탈북민 지원활동가 송성국씨가 탈북 주민 9명을 싣고 중국을 떠나온 배를 바라보고 있다. 송씨는 2009년 첫 해상접선 탈출 때는 탈북 주민과 함께 중국에서 배를 타고 출항했고, 이번에는 한국에서 출발한 배로 주민을 태워 돌아왔다. /김성은 목사 제공
    여섯 살 소녀가 먼저 이쪽 배로 건네졌다. 아이는 배를 넘자 심한 뱃멀미로 토하기 시작했다. 구토를 마친 아이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아이 엄마(37)가 얼른 건너와 아이를 부둥켜안았다. 김모(37)씨를 마지막으로 선박을 붙여 9명을 건네받는 데 15분이 걸렸다고 한다. 잔잔한 밤바다에서 잠시 마주했던 두 선박은 뱃머리를 돌려 각자의 길을 향해 내달렸다.

    탈북 주민은 인민 열사 직계후손 김모씨 일가족 3명, 다른 이모(37)씨 일가족 3명, 평양 군부대 소속으로 활동한 함모(36)씨, 탈북 1년이 넘은 장모(45)씨와 이모(여·29)씨 등 9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함씨는 "화폐개혁 이후 거짓만 늘어놓는 북한 정부가 싫어 도망쳤다"고 했다고 김성은 목사가 전했다.

    탈북민 출신으로 탈북동포 지원 활동을 벌이는 송씨는 지난해 11월 중국으로 가 선박을 구했고, 동북부에서 한국행을 원하는 탈북 주민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송씨와 김 목사는 2009년 12월 12일에도 공해상 접선 방식으로 송씨의 아내 전수련(28)씨의 남동생(21), 이모(54), 이종여사촌 두 명(30·27) 등 처가 식구 네 명을 구해왔다. 송씨는 첫 해상 도킹 당시 중국에서 배를 타고 김 목사 일행이 승선한 배를 만났다. 당시 두 배는 높은 파도 때문에 밀착 과정에서 서로 부딪혀 중국 측 선박이 파손됐고, 엇박자로 출렁이는 두 배 사이를 넘느라 생명을 위협받기도 했다.

    송씨와 처가 가족이 탄 배는 중국의 한 항구에서 출항한 지 21시간 만에 약속된 장소에 도착했고, 9시간 동안 그 일대에서 기다린 끝에 김 목사 일행을 만났다. 그리고 15시간을 더 달려 출항해 바다에 머문 지 총 45시간 만에 군산항에 도착했다.

    송성국씨는 1999년 탈북해 중국에서 막일을 닥치는 대로 했다. 2004년 중국 공안(公安)에 붙잡혀 북송돼 혹독한 고문을 치렀지만 또 탈북했다. 그는 2006년 탈북 브로커를 통해 라오스·태국을 거쳐 한국에 왔다.

    아내 전씨는 북한에서 간호사였다. 희망 없는 삶에 지쳐, 모친(52)과 국경을 넘었다. 인신매매 브로커에게 붙들려 어머니와 이별했고, 옌지(延吉)에서 파출부 벌이로 돈을 모아 태국을 거쳐 2006년 9월 한국에 왔다.

    송씨는 2009년 11월 북한 국경을 넘은 처가식구 넷을 차량에 태워 2박3일간 고속도로를 달려 수천㎞ 떨어진 항구로 갔다. 그리고 그해 12월 10일 중국 배를 타고 출항했다. 처가식구 넷은 기름 냄새 뿜는, 허리도 못 펴는 엔진실에 끼여 앉았다고 한다.

    전씨는 최근 위암 말기 진단을 받아 수술을 받은 후 치료 중이다. 전씨의 어머니는 2009년 말 라오스에서 한국으로 들어와 딸을 간병하고 있다. 전씨의 남동생은 건설 노동자, 이종사촌 둘은 대학 신입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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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종도 ip2 2011-03-25 14:22:31
    모처럼 기분 좋은 소식입니다.
    공짜로 한국에 가는 걸 믿지 못해 떨어져나간 20명은 지금쯤 중국에서 이 소식을 들으며
    무얼 생각할까요? 안타깝습니다.
    저같으면 공짜에 대한 의심은 들겠지만 사람의 말은 진지하게 표정이나 목소리레서 그 진정성이 드러난다고 보며 아마 믿었을 것 같은데요.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절실히 다가오네요.

    정말 훌륭하고 사랑이 많은 목사님에 존경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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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명 ip3 2011-03-25 21:14:26
    떨어져나간 20명의 미래..
    '아.. 내가 남을 너무 못믿었구나' 하면서 다음번엔 사기꾼에 제대로 걸려 들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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