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만류에도 출국 … 지령 받아
독약 암살 임무수행 중 현장서 체포

- "몽골에 다시 가서 북한 정보를 얻어오겠습니다."(안모씨)

- "안 됩니다. 납치될 수도 있습니다."(국정원 직원)

　올해 1월 서울시내에서 두 남자가 은밀하게 대화를 나눴다.

대화의 주인공은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를 살해하려 한 혐의로 지난 6일 구속기소된 탈북자 안모(54)씨와 국가정보원 요원 강모씨였다.

안씨는 이 자리에서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전 북한 여광무역 대표 김덕홍(73)씨를 죽이라는 지령을 받았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안씨가 올 초까지만 해도 북한과 국정원에 모두 정보를 제공해 온 이른바 '이중간첩'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7일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와 안씨 공소장에 따르면 1995년 북한을 탈출한 안씨는 중국에서 김치공장을 운영하다가 실패한 뒤 2009년부터 한국에 있는 대북교역 업체인 남북경협의 이사로 재직해 왔다.

그가 대북교역 사업의 현장으로 점찍은 곳이 몽골이었다. 그는 지난해 3월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 가서 북한대사관 대외봉사총국 대표 김모씨를 만났고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사업에 대한 논의를 했다.

　김씨는 그해 11월 다시 몽골을 방문한 안씨에게 북한대사관의 김모 국장이라는 사람을 소개했다. 김 국장은 북한의 대남, 해외 공작업무를 총괄 지휘하는 정찰총국 소속 요원이었다.

안씨가 탈북자며 북한에서 22년 동안 군복무를 했다는 사실을 파악한 김 국장은 안씨에게 "김덕홍씨를 암살해 달라"고 요구했다.

　안씨는 귀국 후 이를 국정원에 알렸고, 국정원 요원 강씨는 신변 안전을 이유로 안씨의 몽골행을 막았다. 하지만 생업을 위해 북한과의 연결 고리가 절실했던 그는 올해 3월 말 몽골행 비행기에 올랐다.

안씨를 기다리고 있던 건 가족을 볼모로 한 회유였다. 결국 그는 만년필 모양의 독총 1개와 볼펜 모양의 독침 1개, 독약이 든 캡슐 3개를 건네받고 귀국했다.

　그러나 김덕홍씨의 소재 파악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테러 대상은 박 대표로 바뀌었다. 안씨는 박 대표와 연락해 지난달 3일 서울 강남 지역의 한 일식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술에 독약을 타 그를 살해하겠다고 마음먹고 작은 화장품병에 독약을 담았고, 만약을 대비해 독총도 휴대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그를 맞은 건 박 대표가 아니라 국정원 요원들이었다. 안씨의 박 대표 암살 계획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박진석 기자 < kailas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