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광장

자유게시판

상세
과연? 이런 문제를 누가 해결할수가 있는지 잘보세요
강흥식 0 231 2012-02-05 00:25:45
 자대배치 2주 만에 사망한 이등병 아버지의 애원 〉

DMZ내 도로정찰작전중 총기사고로 사망한 아들을 자살했다고 몰아갑니다.

「“엄마 보고 싶어요!
2011년 12월 28일 첫 휴가 나가요!. DMZ에서 근무하면 첫 휴가를 일찍 보내준대요.
군생활 잘 하고 휴가 나갈 테니 맛있는 것 많이 만들어 줘요 엄마!“」
이 말이 아들의 마지막 말, 유언이 되어버렸습니다.

휴가 나온다던 2011년 12월 28일이 되었어도 휴가를 나오지 않은 아들 이름을 부르며 아들 사진을 부둥켜 앉고 울다가 엄마는 아들 방에서 실신합니다.
휴가 나온다는 날이 이틀이 지났는데도 엄마는 아들이 휴가를 나왔다면서 추운 날씨에 감기 걸릴지도 모르니 아들 방에 난방을 넣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군대 갔던 아들이 휴가를 나왔는지 확인한다면서 아들 방문을 열어보고는 아무것도 없는 휑한 아들 방을 보고 오열하면서 또 실신을 거듭합니다.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는 이제 자신을 지킬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습니다.

저의 아들은 유난히도 비가 많아 오고 무더웠던 2011년 7월 26일 대학교 2학년 재학 중에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신병교육대에서 모범적으로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9월 26일 3사단 백골부대 수색중대로 자대배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대배치 2주일 만인 10월 10일 DMZ내에서 1개 소대원이 소대장 지휘 하에 도로정찰작전 중 사주경계를 하며 행군을 하다가 휴대하고 있던 소총이 5연발로 발사되어 두부관통 총상을 입어 사망했습니다. 물론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유서도, 한마디 말도 없이 다시 돌아 올수 없는 저 세상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사고 직후 소대 통신병의 최초보고에는 ‘총기오발사고’로 보고되었던 것이 군수사대의 사고보고에서부터 ‘자살’로 바뀌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군에서는 계속 자살로 몰아가는 분위기였습니다. 우리 부부는 직장도 못나가고 포천의 국군병원 영안실에서 싸늘한 아들의 시신을 옆에 두고 같이 있다가 결국 사고발생 보름 만에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현재는 육군 3사단 헌병대에서 수사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아직 수사의 결론이 난 상태는 아니지만 우리 아들이 자살을 했다는 정황도 이유도 없습니다만, 이제 며칠 후면 우리 아들은 군대내 이유 없는 자살자가 되어 국립묘지에 묻힐 수도 없는 억울한 신세가 됩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대에 갔던 아들이 비명횡사한 것도 억울한데 자살자로 몰린다는 것은 너무도 억울합니다. 내 아들의 명예는 어떻게 할 것이며, 남아있는 가족들의 참혹한 심정은 어찌하란 말입니까? DMZ내에서 소대장 지휘하에 도로정찰작전중에 소총이 발사되어 사망한 것을 자살이라 결론지으려 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고 용납할 수도 없습니다.

제 아들의 죽음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들이 자살을 해야 했다면 자살을 해야 할 동기나 정황과 이유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고가 난지 100일이 지난 현재까지 중 · 고등학교 생활기록부, 병원진료이력, 군대에서의 적성검사, 싸이월드 등 사이버 수사, 목격자 면담, 사체부검결과 등을 조사하였으나 사고의 동기나 원인이 될 만한 것으로 확인된 것이 전혀 없습니다. 자살요인을 찾지 못했다면 당연히 작전 중에 일어난 총기사고로 사망한 만큼 ‘전사’나 ‘순직’으로 처리되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군 수사기관은 자기들이 최초사고보고서에 썼던 대로 자살로 결론을 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제 아들은 입대 후 2달 보름, 자대 배치 후 2주 만에 최전방 전시지역인 DMZ내에서 도로정찰작전 수행 중, 사주경계를 하며 정찰행군을 하다가 사망하였습니다. 아들은 자대에 배치된 지 2주밖에 안된 신병이었습니다. 또한 신병은 동화기간을 거쳐 임무수행을 하게끔 신중하게 관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 동화기간에 무리하게 DMZ내 작전에 투입되어 사망하였습니다. 자대배치 후 처음 접한 유탄발사기가 장착된 소총의 취급도 서툴렀을 것이고, 방탄조끼 등 무거운 군장, 전시지역인 DMZ내 작전의 공포감, 소속부대 내무반생활 등 모든 주변여건이 생소하고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한 사고였습니다.

저도 군대를 다녀와서 잘 알고 있습니다만, 막 자대배치를 받은 신병들은 모든 것이 서투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신병을 유탄발사기 사수로 배치하여 방아쇠도 2개이고 조정간도 2개인 유탄발사기가 붙은 소총을 지급했으니 조작이 서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사방이 지뢰밭인 DMZ내의 특수상황에 대한 공포감도 컸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소총이 발사될 확률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데 왜 군 수사기관에서는 그런 측면의 시뮬레이션 조사에는 인색하며 꺼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만약에 시뮬레이션조사를 할 경우 총기를 취급해야 함으로 인한 위험성 때문에 대역을 구할 수 없다면 아버지인 제가 그 대역을 맡겠습니다. 100번이고 1000번이고 시뮬레이션 조사를 실시하여 사망의 진짜 원인을 밝혀내야 합니다.

군대생활을 오래한 경험이 있는 제 주변사람들은 분명히 지휘책임을 회피하려는 군대 내부의 암묵적 담합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쉽게 말해서 제 아들이 자살이 아니라 총기안전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결론이 난다면 지휘계통에 있는 분대장,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 등 모든 상관들에게 피해가 미칠 것이고 최초 자살사건으로 사고보고를 했던 군수사대에도 책임이 돌아갈 것인 만큼 관계자들 모두가 입을 맞추고 무조건 자살로 몰아붙이려 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젊은 청년들이 조국의 부름으로 헌법상 국방의무에 임하였다면 국가에서는 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또한 국가는 반드시 그 청년을 소중히 관리하여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조국의 부름에 따라 군에 입대한 저의 아들을 국가는 무책임하게 싸늘한 시신으로 돌려주었고, 그 죽음을 본인이 자신을 자해할 목적으로 총을 쐈다는 아무런 정황이나 이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살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피워보지도 못한 꽃다운 청춘을 죽이고 짓밟아 정령 개죽음으로 몰아가서야 되겠습니까?
이렇게 한다면 어느 젊은이가 군대에 가려하고, 어느 부모가 아들을 군대에 보내려 하겠습니까? 지금 이글을 쓰는 중에도 아들 잃은 엄마는 아들 이름을 부르며 가슴을 치면서 통곡을 하다가 차가운 아들 방바닥에 쓰러져 있습니다. 아들이 사망한 작년 10월 이후 해가 바뀐 지금까지 저의 아내는 음식이나 약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거의 정신이 나간 상태로 지내다 보니 이제는 일어설 힘조차 잃어가 잘 걷지도 못합니다. 아들의 이름만 부르며 울부짖다 지치면 잠이 들고 꿈을 꾸면서도 아들을 찾고, 깨어나면 또 아들이 휴가 나왔다는데 어디 있느냐? PC방 갔을지 모르니 찾아오라고 울부짖습니다. 저도 다니던 직장을 휴직했었고, 저의 아내도 천직으로 여기던 초등학교 교사직을 휴직해야 할지 모릅니다. 이러한 엄마의 고통과 우리 가족들의 고통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저는 사고책임을 묻거나 변상을 요구할 생각도 없습니다. 다만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국가의 부름에 기꺼이 응한 제 아들의 숭고한 뜻과 명예를 지켜달라는 것입니다. 제발 국가와 군은 제 아들이 군에서 작전 수행 중 사망한 것에 대해 명예만은 지켜주십시요!
남은여생 동안 자식 잃은 슬픔을 가슴에 묻고 고난의 길을 가야 할 부모의 간절한 애원입니다. 자식 잃은 슬픔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야 할 불쌍한 아버지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 DMZ내 도로정찰작전 중 총상 사망사고 사건개요

- 성 명 : 지환구 (910125-, 사망 당시 만 20세)
- 계 급 : 이등병
- 소 속 : 육군 3사단(백골부대) 18연대 수색중대
- 일 시 : 2011년 10월 10일(월요일) 오전
- 장 소 :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DMZ내 GP보급도로
- 사 인 : 두부관통 총상으로 사망

[사고경위]
지환구 이병은 대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2011년 7월 26일 의정부에 있는 훈련소를 입소하여 3사단 제1신병교육대에서 5주 훈련을 받고 다시 철원군 김화에 있는 3사단 제2신병교육대에서 3주 훈련을 마침. (전체신병교육 2개월)
2011년 9월 26일 자대인 3사단(백골부대) 18연대 수색중대에 배치되어 근무하던 중
자대배치 2주일만인 2011년 10월 10일 오전 도로정찰작전을 위해 통문을 열고 DMZ내로 1.5KM 들어간 지점에서 행군도중 총기에 의한 두부관통 총상으로 사망하였음.
3사단 헌병대에서 수사하고 있으나 최종 결론은 나지 않은 상태임. (조만간 수사종결 예정)

[자살이 아닌 이유]
○ 아들은 유서가 없었습니다.
아들은 유서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래와 같은 이유 때문에 분명히 자살은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 사고 당일 아들이 생활했던 내무반에서 개인관물과 소지품, 병영일기, 메모지등을 육군 본부 광역수사대에서 필적감정 등 정밀 수사하였으나 자살의 정황과 흔적을 단 한 가지 도 찾아내지 못하였다,
○ 제2신병교육대에서 훈련을 같이 받고 같은 부대로 전입와 같은 내무반에서 생활했던
동료사병의 진술에서도 “지환구 이병은 자살이 아니다. 죽을 이유가 없다. 군 생활도
신병으로서 어렵다는 말은 했어도 죽을 만큼 어려운 것은 없었다. 안전사고면 몰라도
자살은 아니라 확신한다. 진실을 꼭 밝혀 달라”고 하였다.
○ 같은 내무반의 동료 사병들도 자대에서 생활하면서 자신의 주변을 정리한다거나, 자살을 암시하는 말은 한 마디도 없었다고 진술하였다.
○ 부모와 주고받은 편지에서도 군 생활 잘 하고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였고, 사고 이틀 전 부모와의 통화에서 “DMZ에서의 근무자는 휴가 빨리나간대요 12월 28일 휴가 나가 요. 맛있는 것 많이 만들어 줘요”라고 말했고 또한 “과자를 사서 우편을 보내달라”고 하 여 우체국이 문을 여는 이틀 후인 월요일에 과자를 사서 보내주마 약속하였다.
○ 사망사고 두 시간 전 도로정찰작전에 들어가지 않는 동료사병에 “이동식 PX가 오면
바디삼퓨와 과자 사줘라. 오후에 GP작전 들어갔다가 돌아오면 같이 나눠먹자”는 메모지 와 카드를 동료사병 관물대에 남기고 도로정찰작전에 투입되었다.
○ 50개 문항의 7페이지에 달하는 빽빽하게 기록된 군생활기록부에 가족관계, 학교생활,
이성관계, 군생활, 건강관계의 기록에서도 반듯하게 성장하였고 문제없는 사병이었다.
○ 사고 4일전에 소대장이 작성한 적성적응도 검사에서도 총평에 “심리적으로 건강하고
무사하게 군 생활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기록되어 있고,
○ 육군본부의 사체 부검에서도 약물 중독이나 신체 장기에 이상이 없는 183cm, 78kg의 건장한 청년인 것만을 확인하였다.
○ 중학교의 생활기록부와 고등학교 생활기록부까지 헌병대에서 수사한 결과 착실한 학생이 었음을 확인하였고, 죽음과 연관지을 만한 사항이 없었다.
○ 학교 다닐 때부터의 병원이력에 대한 헌병대에서 수사한 결과 정신 병력이나 죽음과
연관지을 만한 병력을 확인하지 못 하고 감기 정도로 병원에 다닌 것을 확인하였다.
○ 헌병대에서 수사한 결과 입대전 후 친구들과 주고받은 문자기록에서도 일상적인 내용만 있었다.
○ 사이월드 등 사이버 공간에 대한 헌병대에서 수사한 결과 군입대전과 군입대후에 군대 내에서 친구와 주고받은 대화 내용에서도 죽음을 암시한 것이 없었음을 확인하였다.
○ 전시지역이라 할 수 있는 DMZ 내에서 1개 소대원이 소대장의 지휘하에 정찰작전을
위해 사주경계하며 행군하던 중에 사망하였다. 이런 상황에서의 사고는 30여년의 수사 경력이 있는 육군본부 광역수사대 팀장도 처음 접해 본다고 하였다. 또한 수사를 총괄하 였던 사단 헌병대 수사과장도 수사경력 30년가까이 되지만 3개월 이상 정밀 수사하였어 도 아들이 죽음에 이르게 된 정황과 이유가 없는 이번과 같은 사고는 처음 접해 본다고 하였다.

국가의 부름으로 아들을 군에 보낸 죄 밖에 없는데, 어떻게 키웠던 아들인데, 금쪽같이 키워온 자식이 군에 보내 주검으로 돌아와 부모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몇 일 지나면 자살이라 결론을 낼 것이라 생각됩니다.
아들은 위에서 말한 대로 자살할 이유가 없고 DMZ에서 작전을 수행하다 사고로 사망한 것이며, 본인이 자신을 자해할 목적으로 총을 쐈다는 정황과 이유를 수사에서 밝혀낸바 없으므로 “아들 본인이 자신을 자해할 목적으로 총을 쐇다”고 결론을 내서는 안 됩니다.
아들을 다시 볼 수는 없지만, 다시 살아서 돌아 올 수는 없지만, 그것만이 평생 죽은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살아 가야할 부모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2012년 1월 26일 지환구 이병 아버지 지운흥 (연락처 : 010 - 8517 - 3589)
좋아하는 회원 : 0

좋아요
신고 0  게시물신고

댓글입력
로그인   회원가입
이전글
빨리 통일좀 되었으면 좋겠네요 ㅋㅋ
다음글
북한보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