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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영 전 국무총리 인터뷰
United States hahaland 0 657 2012-04-07 20:52:56

"반총장 같은 사람 10명만 있으면 나라잘돼"

  • 연합뉴스
  • 입력 : 2011.06.06 17:29 | 수정 : 2011.06.06 18:31

    인터뷰 중인 노신영 전 국무총리 / 연합뉴스
    1980년대 초반 국가안전기획부장을 역임한 노신영(盧信永.81) 전(前) 국무총리는 안기부장 재임당시 북한에 의한 아웅산 폭탄테러를 대표적인 정보실패(Intelligence Failure) 사례로 언급하며 정보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오는 10일 국가정보원 창설 50주년을 앞두고 지난 주말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웅산 폭탄테러 사태에 대한 질문을 받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경천동지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아 웅산 테러 뿐만 아니라 소련의 KAL기 격추사건 등도 그의 안기부장 재직시에 일어났지만 전직 정보수장답게 구체적인 업무 내용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당시가 신군부의 권력장악 시기인 1980년대였다는 사실도 이런 신중함과 무관치 않아 보였다.

    그는 “국가정보기관장이 누구인지 모를수록 사회는 안정되고 정보기관도 잘 된다”면서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인 임무 수행이 정보업무의 기본임을 힘줘 말했다.

    노 전 총리는 전두환 전(前) 대통령 집권시기인 1980년대 초반부터 외무장관(1980~1982)과 안기부장(1982~1985), 국무총리(1985~1987)를 잇따라 역임하며 중용됐다.

    그는 일면식도 없던 전두환 전 대통령에 의해 주요 핵심 관료로 발탁된 배경과 이후 ’후계자’로 알려질 정도로 막역해진 인연 등에 대한 소회도 털어놨다.

    그는 1981년 1월 당시 전두환 대통령 미국 방문 직전 사형 선고 상태였던 김대중 전대통령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해야 대통령 방미가 가능하다는 점을 청와대에 적극 보고하면서 방미가 성사됐다고 돌아봤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재선 도전과 관련해 노 전총리는 외교관 후배인 반 총장과의 각별한 인연을 소개하면서 “그런 사람이 10명만 있으면 나라가 잘된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통 외무관료 출신인 그는 1987년 국무총리를 끝으로 “더는 국민 세금을 받지 않겠다”며 공직을 떠났다. 1994년부터 17년째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으로 재임하면서 복지 및 장학사업에 몰두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팔순을 넘긴 고령이지만 주 3~4차례씩 헬스장을 찾아 건강을 챙기고 있다. 인터뷰는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빌딩 26층에 있는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실에서 진행됐다.


    -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자주 만나나.

    ▲정월 초하루하고 추석 때 내가 꼭 찾아가서 뵙는다. 지금도 가깝게 지낸다. 관직에 있었던 사람 중에 내가 제일 가까울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 한다. 올해 2~3번 봤다. 전 전 대통령 80세 생일 때 보고 최근에는 천안에 있는 농원에 찾아오기도 했다.

    - 전 전 대통령은 어떤 사람인가.

    ▲너 그러운 데가 있다. 재임 당시 아침에 보고 들어가면 당시 경제부총리 등으로부터 뭘 배우고 있다. 그래서 내가 “뭘 배우셨습니까”하면 “아! 총리, 내가 무식하잖아. 내가 경제를 모르니까 배운다. 알아들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고 힘들다”고 했다. 또 저녁에 군인들이 오면 “너희 무식하지, 나도 무식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엘리트 관료에 대한 그것(신임)이 컸다.

    - 전 전 대통령이 한때 후계자로 생각했다는 얘기도 있는데.

    ▲ 지금도 내가 전 대통령과 가깝게 지낸다. 그런 것 포함한 것 아니겠나. 전 대통령은 나더러 그랬다. 이북 출신이니 더 좋지 않소. 경상도, 전라도로 치우치지 않고. 그런데 언젠가 나보고 (농담삼아) 그러더라. 총리보다 더 높이 했으면 안 좋을 뻔했다고.

    - 총리 퇴임 후 정치는 안 했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 그만두고 나서도 유혹이 아주 많았다. 그만두니 더했다. 당을 만들자는 사람이 없나. 그것도 일반 사람들이 아니고 대통령 된 사람들이 그랬다. 나는 초지일관 다시는 국민 세금 안 받는다고 결심했다. 정치에 대해 별로 흥미도 없었지만 내 고향이 평양인데 실향민이 무슨 정치를 하나 여기 와서.

    -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1년 1월 첫 미국 방문할 때 외무장관이었는데 당시 상황은.

    ▲ 그때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인데 그때의 이벤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감형 문제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사형(내란음모 혐의)으로는 전 전 대통령이 미국에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대통령 방미 직전인 1981년 1월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1982년 안기부장으로 재직할때 김 전대통령을 미국으로 보냈는데 그 일로 인해 이희호 여사를 몇 차례 만난 인연이 있다.

    - 김대중 전 대통령 취임 이후 인연은.

    ▲내 느낌은 이희호 여사도 나를 좋아하고, 김 전 대통령도 날 싫어하지는 않은 것으로 본다. 나에게 간접적으로 연락도 왔지만 일절 응하지 않았다. 또 뭐 맡으라고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 외무장관 시절 직원 숙정요구에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 외무장관 하면서 가장 힘들었다. 그것 때문에 머리도 많이 빠졌다. 군인들로부터 압력을 굉장히 받았다. 당시 정부 전체적으로 몇 천명을 잘랐다. 전 전 대통령이 외무부만 안 자르면 자신의 입장이 어떻게 되느냐고 하더라. 그래서 “대통령께서 내가 누군지 모르고 발탁하지 않았습니까. 잘라서 외무부가 잘 될 것 같으면 왜 안 자르겠습니까. 내가 외무장관으로 있는 동안 대통령께 플러스가 되면 됐지 마이너스가 되겠습니까. 그러니 내게 맡겨주십시오”라고 설득했다. 당시 허화평, 허삼수씨 등도 배석해서 들었다. 그 사람들도 “외무장관에게 맡기자”고 했다. 당시 68명을 자르라고 했는데 이들 중에 군인 출신은 다 자르고, 외무부 출신은 다 살렸다.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도 인연이 각별하다고 들었다.

    ▲ 특별한 인연이 있다. 1970년대 초 인도에서 근무할 때 젊은 친구가 왔기에 누군가 했더니 반기문이라고 하더라. 그때 그가 자기는 미국에 갈 수도, 유럽에 갈 수도 있는데 나를 따라왔다고 하더라. 그래서 데리고 일했는데 참 부지런하고 요령 있게 일을 잘했다. 내가 일 가르쳤다. 1980년 외무장관으로 오는 데 따라오겠다고 해서 데리고 왔다. 또 국무총리 됐을 때도 같이 가겠다고 해서 총리 의전비서관으로 삼았다. 우수하고 훌륭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 10명만 있으면 나라가 잘된다.

    - 자녀가 5남매인데 다복해 보인다.

    ▲ 아들 셋, 딸 둘을 뒀다. 서울대 교수를 하는 첫 아들은 하버드대를 나오고 옥스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4명의 손자ㆍ손녀가 있다. 아들 셋 밑에 손자 둘, 손녀 다섯이 있고, 딸 둘이 외손자 넷에 외손녀 셋을 낳았다. 두 아들에게 농담삼아 “나보다 못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나는 아들을 셋이나 뒀는데, 아들 세 명에 손자 둘밖에 없다고 하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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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꼴만세 ip1 2012-04-08 01:35:05
      한국의 명문가문 "노신영"가문을 알아보자.

      노신영은 외무고시를 통해 관계에 입문한 정통 외무관료 출신이다. 노신영은 김동조와 관련이 깊다. 김동조가 외무부 장관으로 있을 때 노신영이 외무부 차관에 임명됐다. 김동조는 이동원과 끈끈한 관계다.

      내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노신영은 정일권과도 상당한 교분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차관시절 국회의장인 정일권에게 유신헌법 신임에 관련된 이야기를 발설한 것도 그렇지만, 둘 다 이북출신으로서 모종의 신뢰가 있었을 게 분명하다.

      그 사건으로 차관자리에서 해임되었지만, 박정희도 노신영의 능력을 인정했던 모양이다. 매장시키지 않고 주 스위스 제네바 대사로 임명하여 다시 썼다.

      광주피바다 위에 전두환 신군부가 권력의 핵심으로 등장하자 노신영은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군벌 + 테크노크라트

      노신영은 신군부에 순종하며 협력하는 외무부 장관으로서 대외분야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 후 전두환의 신임을 받으며 2년 8개월간 안기부장을 지냈고, 또 국무총리까지 지내며 노태우와 차기를 놓고 기싸움을 벌일 만큼 강력한 힘을 행사했다.

      이른바 노노체제다.

      전두환 정권이 물러가고 노태우정권이 들어선 이후, 노신영도 권력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 이후 연구소에 근무하기도 하고,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으로서 착한 사람 얼굴로 쭉 살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노신영을 용서하지 않는다.

      노신영에 관련된 사안 가운데 가장 끔찍스러운 것은 "정형근"의 발탁이다. 안기부장 시절 가장 유능한 검사라고 정형근을 안기부로 끌어들인 자가 바로 노신영이다.

      노신영은 전두환에게 철저하게 충성하여 깊은 신임을 얻었다. 전두환이 후계자로 삼으려 했던 정황이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군벌들이 펄쩍 뛰는 바람에 실패했지만 노태우와 경쟁하면서 최고권력을 지향했던 것은 사실인 듯하다.

      하여튼 간에 노신영의 실체는 뭐냐?

      노신영은 전두환에게 운좋게 신임을 얻어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군부철권통치자들의 지배연합 내부에 기생하면서 테크노크라트로서 군부세력에게 전문적 지식을 가미해주고, 군부지배의 폭정을 합리화해주고, 포악한 군부를 대신해서 대국민홍보에 동원되는 하위파트너 역할을 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하겠다.

      남덕우니 진의종이니 김상협이니 유창순이니 다 이런 무리들이다. 전두환의 시국수습용 카드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권력 분점의 떡고물을 챙긴 것이다.

      또 재벌과 군부와의 매개체 역할도 이들의 임무였다. 대중을 군부와 엮는 것도 이들의 영역이었다.

      군부에 의해 급조된 전두환의 민정당이 대중정당이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민정당은 정당정치에 기반해서 형성된 정당이 아니므로 정치력도 매우 미약하였다. 따라서 신군부에게는 노신영같은 군사독재체제를 합리화 시켜줄 경험많은 인물이 필요했다. 공작정치의 소모품이었을 수도 있다. 또 대미관계를 원활히 조율할 필요성도 느꼈을 것이다.

      또 하나는 하극상으로 권력을 탈취한 전두환이 늘 정통성 시비를 겪을 수밖에 없었는데 노신영류의 박정희 이래의 관료세력이 여전히 전면에 있음으로써 국민적 저항을 다소 무마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도 했을 것이다.

      어쨌든 노신영은 광주 피바다를 묵인하고, 국가적 폭력을 애써 외면하며 정통성 없는 정권찬탈세력의 핫바지, 얼굴마담, 바지사장, 집 지키는 개 노릇을 하면서 최고권력을 구가할 수 있었다.

      결국 박종철군 고문치사 은폐조작축소 사건의 책임으로 정계를 떠났다.

      2002년 9월 우리는 노신영을 다시 정치의 무대에서 볼 수 있었다. 현승종, 남덕우 등 단골 멤버들과 더불어 이회창 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에 귀빈으로 참가한 것이다. 따라서 전두환 = 이회창이라는 등식은 여기서 다시 한번 확인된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노신영이 단지 군사독재자 주변에서 권력의 단맛만을 맛본 것이 아니라 그 힘으로 화려한 혼맥을 구성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깨뜨리기 어려운 철옹성같은 기득권이다. 어쩌면 영원한 것인지도 모른다.

      노신영은 3남 2녀를 두고 있다.

      큰 아들 노경수는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로 있다. 요즘 서울대 대외협력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영국 더 타임즈와 같은 일간지들의 대학평가 방법이 잘못됐기 때문에 서울대의 국제적 평가가 낮다는 논리를 부르짖고 있다.

      어쨌든 이 노신영의 큰 아들의 장인이 세상을 떠난 "포니 정" 정세영회장이다. 그 덕에 노경수는
      70만주의 현대산업개발 주식을 상속받았다. 부인은 정숙영으로서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의 누나다.

      노신영의 큰 며느리 정숙영의 동생 정몽규는 코오롱 이웅렬, SK 최태원 등과 고려대 동문으로서 예전부터 절친하다. 이 클럽은 늘 민주개혁세력의 요주의 관찰대상이다. 그 핵심에 코오롱 이웅렬이 있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삼성 이재용을 끌어들이기 위해 공을 쌓는 것 같다. 이 멤버에 노신영의 작은 사위 풍산회장 유진이 있다는 것도 말할 나위 없다.

      정몽규의 부인은 대한화재보험 김성두 사장의 딸 김나영이다.

      노신영의 큰 며느리 정숙영에게는 파크 하얏트 호텔 사업에 관여하고 있는 정유경이라는 여동생도 있다. 정숙영의 여동생 정유경의 남편은 김종엽이다. 노신영의 큰 아들 노경수의 동서가 되는 이 김종엽은 누굴까? 민주개혁세력에게는 그다지 반가운 인물이 아니다.

      김종엽은 김석성의 막내아들이다. 김석성은 전방 전 회장으로서 전방 명예회장 김창성의 사촌동생이다. 김창성이 누구냐?? 얼마 전까지 경총회장을 지냈고, 현재 경총 명예회장인 바로 한나라당 염창동 당사의 주인이다. 아주 염가에 가난한(?) 한나라당에게 빌딩을 임대해 주고 계신 분이다.

      이 김창성의 동생이 바로 우리 유시민 의원이 지난 대통령 선거 즈음 중국 북경에 가서 간첩과 접선하고 돌아왔다고 떠벌리신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이다. 이 김무성의 누나가 현대그룹 회장 현정은의 모친인 용문학원 이사장 김문희로써 얼마 전에 아버지 김용주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박근혜와 이회창의 돈독한 자리를 마련해주신 이화여대 메이퀸 출신, 바로 그 분이다.

      이렇게 볼 때 노신영의 큰 아들 노경수의 인맥이라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지금 귀찮아서 이름에 "몽"자 들어가는 그 수많은 사람들을 전부 제외시켰다. 또 정씨 가운데 이름 뒷자리에 "영"자 들어가는 그 수많은 삼촌뻘 되는 사람들도 전부 제외시켰다.

      게다가 노신영 가문 혼맥의 백미는 둘째 아들 노철수다. 바로 홍진기의 막내 딸 홍라영과 결혼하였다. 이로써 노신영의 차남 노철수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 동서지간이 되고, 중앙일보 홍석현과 처남 매제 지간이 되며, 삼성의 후계자 이재용의 이모부가 되고, 동아일보 김병관의 차남 김재열 또한 노철수의 조카사위가 된다. 노철수는 삼성에서 경영을 배운 후 독립하여 스스로도 꽤 큰 사업을 벌이고 있다.

      얼마나 빵빵한가?

      그러니 호텔대전이니 뭐니 하는 신문쪼가리들의 기사는 전부 우스꽝스러운 집안싸움이 된다. 신문쪼가리를 보면 삼성 이건희 회장의 큰 딸 이부진이 호텔신라에 공을 들이고, 또 신세계 이명희 회장의 딸 정유경이 조선호텔에 정력을 쏟고, 정세영회장의 딸 또 다른 정유경이 파크 하얏트호텔에 힘을 쓴다면서 피말리는 엄청난 호텔업계의 대접전이 벌어졌다는 식으로 쓰고 있다.

      그러나 어차피 신라호텔 이부진과 조선호텔 정유경은 사촌지간이다. 게다가 파크하얏트호텔 정유경이나 신라호텔 이부진은 노신영 가문을 매개로 다 이어지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건너사돈밖에 안 된다.

      어쨌든 이름도 별로 안 알려진 노신영의 아들들 노경수, 노철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삼성가문, 현대가문이 좌청룡 우백호로 버티고 있고, 그 막강한 동아일보, 중앙일보가 뒤에서 받쳐주니 왕후장상이 따로 없는 것 아닌가? 아버지 덕분에 인생은 탄탄대로, 그야말로 기호지세다. 세상에 두려운 게 뭐가 있으랴??

      그 뿐인가??

      노신영의 둘째 딸 노혜경이 요즘 소전 만들어서 대박 터뜨리고 있는 풍산 유진회장에게 시집갔으니 이것은 더할 나위없는 파워가 아닐 수 없다.

      유진은 브이소사이어티라는 민주개혁세력이 집중감시하는 조직의 핵심멤버로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호되게 당한 유찬우의 아들이다. 비록 이혼하긴 했지만 유진의 형수가 박정희의 둘째 딸 박근영(후에 박서영이라고 개명)이다.

      요즘 유진은 전경련 활동에도 매우 적극적이다. 유진은 특유의 사교성으로 그 아버지 유찬우에 이어 미국 부시가와 교류가 두텁다. 미국 국무장관 파월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 전세기까지 제공하기도 했다. 그의 부인 노혜경(우리가 아는 그 노혜경 아님)도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바바라 부시와 친분이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미국 공화당 인맥과 가장 가까운 집안이 바로 노신영의 사돈인 이 유찬우 집안이다.

      김원기 국회의장이 얼마전 멕시코를 방문할 때 풍산 회장 유진과 유진의 손윗 처남, 그러니까 노신영의 큰 아들 노경수가 함께 김원기 의장을 수행했다. 노신영의 장남과 사위가 왜 김원기 국회의장을 수행하지??

      김대중 대통령 이래로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할 때는 늘 노신영의 사위 유진이 수행한다.

      어쨌든 간에 현대, 삼성,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배경도 모자라 이 노신영 가문은 미국 공화당 인맥에까지 깊숙이 손을 뻗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명문가문(?) 반열에 오르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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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꼴만세 ip1 2012-04-08 01:39:52
      북한 인권도 문제지만 지나간 대한민국 인권 유린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집시다
      친일반민주쿠테타군부독재 정권에 부역한 사람일 뿐
      또한 대한민국 상위 1%의 지들끼리 인맥을 점하고 있는 가문이올시다
      탈북자분들도 알건 제대로 아시길
      아무리 빨아대봐야 남한 수꼴들처럼 상위1%의 노예만 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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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haland ip2 2012-04-08 04:02:56
      YS (김영삼) 가 노태우와 합당 할 때 군사 독재와의 야합 이라고 비난 하던 DJ 가 , 자신의 집권을 위해 5.16 주체 세력 이며 박통의 조카 사위이던 JP (김종필) 과 손 잡고, 집권 한 것에 대한 님의 의견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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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꼴만세 ip1 2012-04-08 09:59:42
      A에 대해 논하는 데 논지와 전혀 관계없는 B를 들먹이며 반박
      이런 걸 물타기라고 하죠

      i.e.)
      태양을 빨갛게 그려야 하느냐 하얗게 그려야 하느냐로 논쟁하는 데
      A라는 사람이 난 태양을 빨갛게 그려야 한다 생각한다....라고 했을 때
      그럼 달은 하얗게 그리는 데 그거에 대한 니 생각은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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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ㅋㅋㅋㅋ ip3 2012-04-08 10:03:04
      수꼴 만세....
      나라가 잘 되려면 네놈 부터 잡아 죽여야 되는거야.
      너새기는 김정은에게 충성하잖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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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꼴만세 ip1 2012-04-08 11:15:45
      왜? 나불대지말고 말을 해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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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으로가라 ip3 2012-04-08 10:04:27
      수꼴만세...너같은놈들만 북한으로 보내면 한반도는 조용해 지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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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꼴만세 ip1 2012-04-08 11:16:19
      나불대지말고 반박을 해봐 논리적으로 물론 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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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haland ip2 2012-04-08 11:31:19
      민주화 운동을 외치는 세력들에게는 군사 정부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 하지요 ?
      님의 노신영 전 국무 총리의 비판 목적이 군사 정부의 요직에 머물렀다는 이유 때문에 비판 하는 것이라면, 소위 민주화 투쟁을 외치는 DJ 는 5.16 혁명 주체 세력과 손을 잡을 수 밖에 없었는지를 설명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 DJ 도 노신영 전 국무 총리를 영입 하려고 했는데 노신영 전 국무 총리가 거절 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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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꼴만세 ip1 2012-04-08 11:36:38
      북한김씨왕조의 독재 비판 ===> 맞음
      북한김씨왕조에 부역하며 호위호식하는 간부들 성토 ===> 맞음
      북한김씨왕조 치하의 북한국민들의 인권유린에 분노 ===> 맞음

      남한쿠테타군부독재 옹호 ===> 맞음?
      남한쿠테타군부독재에 부역하며 호위호식한 위인들은 찬양 ===> 맞음?
      남한쿠테타군부독재 치하에서 인권유린 당한 남한국민들에 대해서는 무시 ===>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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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haland ip2 2012-04-08 11:45:48
      님아 토론을 할려면 합리적으로 판단 해 바라. 민주화 운동의 리더라고 떠 받드는 DJ 가 자신의 지지 기반으로는 정권 교체를 이룰 수 없었기 떄문에 내각제를 합의 하여 5.16 김종필과 연대 하여 정권 교체를 이루었던 것 이고, 만일 님의 생각에 한국의 민주화가 순수한 민주화 세력에 의해 이루어 졌다면 군사 정부에 참여한 인사들을 배제 해야 했던 것 아니었나 ? DJ 는 왜 자신의 지지 기반 만으로 정권 교체를 이루어 내지 못했을까 ? DJ 가 자신의 지지 기반 만으로 정권 교체를 이루어 냈다면 군사 정부의 요직에 있던 사람들이 현재도 한국 사회에서 기득권을 유지 할 수 있었을까 ? 한국 국민들 다수는 DJ 를 지지 하지 않았기 떄문에 DJ 는 자신만의 세력으로는 정권 교체를 이룰 수 가 없었던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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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haland ip2 2012-04-08 11:51:33
      순수한 민주화 세력만으로 정권 교체를 이루었다면 근대화 세력 (군사 정권)가 현재도 기득권을 형성 할 수 있나 ? 순수한 민주화 세력만으로는 국민 지지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근대화 세력 (군사 정권의 주체) 와 손을 잡았던 것이고, 결과적으로 근대화 세력의 기득권이 현재도 유지 되고 있는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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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haland ip2 2012-04-08 11:53:16
      님이 비판 하는 근대화 세력이 현재도 유지 될 수 있는 이유는 DJ 가 순수한 자신의 지지 기반 만으로는 정권 교체가 불가능 했기 떄문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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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haland ip2 2012-04-08 12:10:40
      군사 정부 부역 운운 하면서 DJ 는 비밀리에 노신영을 영입 하려다 실패 하였고 결국은 김종필을 끌어 들여 국무 총리에 앉혀 놓고 민주화 이루었다고 사기 친 거 였 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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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꼴만세 ip1 2012-04-09 02:06:37
      위에 내가 말한 거에 답을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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