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영애씨가 목소리가 곱다면 연주를 말고 차라리 노래로 불렀음 더 나을뻔했다는 생각이네요 참 전개인적으로 아리랑을 싫어합니다 곡자체가 넘 구성지고 가사도 악담이쓰려있어 별로 좋아하지않아요 민족노래로는 맞지 않다고 봐집니다 이산가족에 딱 어울리는 곡이라할수있지요 남북이 만났다하면 이노랠 , 해외입양아들도 아~ 진짜 싫습니다 노래도 지 사연따라 간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남북이 갈린것도 이노래에 원인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왜하필 이 노래가 민족의 노래가 됐는지 점점 이산가족만 늘어나는 노래라 여겨집니다.
작성일 : 11-01-15 04:50 북한 양금 연주 1인자 마영애씨 뉴욕 국악대회서 ‘양금’ 최우수상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030 http://usinsideworld.com/article/view.php?bbs_id=news&doc_num=8811 [202]
북한 양금 연주 1인자 마영애씨 뉴욕 국악대회서 ‘양금’ 최우수상 받아
[인사이드TV] ‘조선피아노’ 양금 세계 무대로 진출, ‘동양악기’로 소개..
맑고 오묘한 음색, 경쾌하고 활기찬 현대음악도 소화
▲ 마영애 단장이 전통악기 '양금'을 연주하는 모습
북한에서 양금(洋琴) 연주가 제1인자로 손꼽히던 탈북 연예인 마영애(馬英愛)씨가 지난 8월 29일 뉴욕에서 개최된 ‘미주국악경연대회’ 양금 부분에서 최우수상을 획득함으로써 북한의 양금이 한국을 거쳐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그 아름답고 고운 선율을 선보였다.
‘미주 국악경연대회’는 해마다 전 미국에서 선발되어 출전하는 민속국악 경연대회로 그 전통을 이어오는 큰 대회이다.
이 대회에서 처음으로 양금 부분에서 최우수상을 받게 되어 그녀의 솜씨에 보내는 감탄과 찬사는 물론 한국인들이 개발한 독특한 전통 현악기(絃樂器)의 황홀한 음율과 연주 모습에 미국인들도 큰 박수를 보냈다.
양금(洋琴) 악기에 대해 북한 주석 김일성은 ‘조선의 피아노’라고 이름을 붙이고 북한 스타일 양금을 개발 보급해 왔는데 양금은 구라파에서 만들어진 피아노의 원조이다.
양금은 10-12세기 사이 아라비아와 페르시아 ‘덜시머 (Dulcimer)’ 와 코카서스의 ‘산티르(Santir)’ 유목민들이 만들어 사용하던 것이다. 이 악기는 이슬람교회의 음악에 사용되었는데 12세기부터 시작된 신성 로마제국의 십자군 전쟁 때 유럽으로 퍼져 피아노의 전신으로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유럽에서 피아노가 개발되면서 양금은 아리비아, 페르시아 지역에서만 사용되다가 13세기 경 마테오 리치 신부가 중국 명나라 때 카톨릭 교회 복음선교를 펼치면서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으로 유입되었다고 중국 백과사전에 기록되어 있다.
한국에는 조선조 英祖 임금 때 중국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일반인들 사이에는 크게 보급되지 못하고 궁중에서만 전해져 내려왔다.
그러다가 지난 2000년 9월 북한에서 양금 연주 제1인자 칭호를 갖고 있던 연예인 마영애씨가 북한을 탈출, 한국으로 망명하여 KBS-MBC TV와 연예인 연주를 통해 한국 국민들의 눈에는 새로움을, 귀에는 즐거움을 주었으며 양금이라는 악기의 존재도 알게 만들었다.
‘양금’이라는 이름은 서양에서 왔다고 하여 洋琴 이라고 부르는데 중국에서는 초기에 서양금(西洋琴) 이라고 불렀으며 양칭이라고 발음한다. 또 중국 일부지역에서는 ‘구라철현금’(歐羅鐵絃琴) 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구라파에서 건너온 쇠줄로 만든 악기’ 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던 모양인데 서양에서 중국에 도착한 양금은 처음에는 철사줄로 가야금 같이 만들어져 있었다.
당시 양금은 사다리 꼴의 상자 위에 긴 괘를 2개 세우고 쇠로 만든 현을 4현 1벌로 총14벌 56현(줄)을 얹었다. 56개의 줄은 각각 양 끝에 줄감기 못에 감겨 있어 조율할 때 사용했으며 채는 대나무 뿌리로 만들어 사용했다.
중국에서 사용되던 양금이 조선조 영조 임금때 들어와 궁중에서만 사용되었으며 영조 때 이규경(李圭景)이 편찬한 ‘구라철사금자보’(歐羅鐵絲琴字譜) 와 양금 육보인 서금보(西琴譜)를 비롯, 30여 종이 남아있다.
양금에 대한 30여 종의 악보까지 남겨 놓을 정도로 애용되던 양금이 그 후 사라지고 연주자도 없어진 이유는 궁중에서만 사용, 일반 국민들은 잘 알지 못했던 이유로 사라진 악기가 되어 버렸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이 양금이 언제 북한으로 건너가 오늘의 현대판 양금으로 탄생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죽은 김일성이 ‘조선이 만든 피아노’라는 이름을 붙여 적극 개발하도록 만들어 현대 감각이 물씬한 북한식 양금으로 탄생한 것이다.
북한으로 건너간 양금은 철사줄을 없애고 피아노 건반처럼 만들어져 있으며 철사줄 대신 음질이 좋은 철판을 크고 짧고 긴 여러 형태로 56개를 바닥에 깔고 대나무 채로 두드리면 오묘한 소리를 내며 고른 음색을 전달한다.
북한에서 나온 양금 에 대한 평가는 ‘음색 (音色)이 밝고 낭낭하며 표현력이 극히 풍부해 현대음악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조선의 피아노’라고 표현했다.
북한에서는 양금을 가르치는 음악학교가 있으며 마영애씨가 이 학교 출신으로 김일성과 김정일 앞에서 여러차례 독주 연주를 할 정도로 양금 연주의 1인자였다.
6살부터 양금을 배우기 시작한 그녀는 ‘평양학생소년궁전’(예술인재학교)을 졸업하고 조선인민군예술단에서 양금과 아코디언 연주 1인자 칭호를 받았다.
그가 북한을 탈출, 2000년 9월에 대한민국으로 망명하여 한국에 몇 개 있는 중국제 양금을 보고는 실망, 중국의 인맥을 통해 5,000 달러를 주고 북한 함흥 양금 악기 생산공장에 사람을 보내 중국으로 가지고 나와 다시 한국을 거쳐 미국으로 갖고왔다.
사실상 미국에는 그가 사용하는 북한에서 만들어진 양금은 1대 밖에 없으며 한국에는 어떤 경로를 통했는지 모르지만 몇 대의 북한에서 만든 양금이 있어 젊은 연주가들을 키우고 있고 이제는 개인 연주회도 갖는다.
마영애씨가 대한민국에 뿌린 씨앗이다. 그러나 그들이 마영애씨의 연주 기법을 따라오려면 오랜 시간연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음율과 기교면에서 흉내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뉴욕 연주회를 지켜본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은 “양금 연주자의 연주 기교가 뛰어나고 음색도 풍부하다. 抵音구에서는 낮고 高音구에서는 무게감 있는 소리가 나며 中音구는 깨끗하고 투명한 음을 만들어 내어 맑고 낭랑한 소리가 들려왔다”고 평가했다.
심사위원들은 “일반인들은 양금을 민속악기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이번 연주로 그런 오해를 벗게 되었다. 양금은 빠른 악곡의 연주에 비교적 적합한 악기이며 현대인들의 경쾌하고 활기찬 정서와 유쾌한 음악의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악기로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양금을 미국으로 가져온 마영애씨는 전 미국 순회공연 3회, 백악관 앞 이벤트 공연 1회, 연방 상.하원 의회 연주 3회, 개인 독주회 30여 회를 가졌다.
이제 그녀는 한국에 있는 후배들과 제자들을 키워 자신보다 뛰어난 연주자들을 탄생시키는 것이 꿈이다.
일본의 음악 서적에는 양금을 ‘요우킨’으로 기록하며 ‘한국 국악의 현악기’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영어에서는 ‘동양악기’(Kind of Zither)로 기록되어 있다.
가슴팍에 꽂힌 태극기가 보기좋고 가야금을 탔으면 더욱 멋질 것 같기도 하구요.
피아노 양쪽 손 갈라지는 것도 힘든데 저렇게 연습하기까지 히유~ 존경스럽습니다.
돌아가는 삼각지를 부른 가수는 가사 그대로 돌아가시고
산장의 여인이라는 여인도 가사 그대로 산장에 살았다나?
말이 씨앗이 된다는 엄청난 진리를 무시 못하지요.
민족의 노래가 이제는 밝고 명랑한 것을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박수
옳소
멋쟁이 자유대한님이여라.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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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양금 연주 1인자 마영애씨 뉴욕 국악대회서 ‘양금’ 최우수상 받아
[인사이드TV] ‘조선피아노’ 양금 세계 무대로 진출, ‘동양악기’로 소개..
맑고 오묘한 음색, 경쾌하고 활기찬 현대음악도 소화
▲ 마영애 단장이 전통악기 '양금'을 연주하는 모습
북한에서 양금(洋琴) 연주가 제1인자로 손꼽히던 탈북 연예인 마영애(馬英愛)씨가 지난 8월 29일 뉴욕에서 개최된 ‘미주국악경연대회’ 양금 부분에서 최우수상을 획득함으로써 북한의 양금이 한국을 거쳐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그 아름답고 고운 선율을 선보였다.
‘미주 국악경연대회’는 해마다 전 미국에서 선발되어 출전하는 민속국악 경연대회로 그 전통을 이어오는 큰 대회이다.
이 대회에서 처음으로 양금 부분에서 최우수상을 받게 되어 그녀의 솜씨에 보내는 감탄과 찬사는 물론 한국인들이 개발한 독특한 전통 현악기(絃樂器)의 황홀한 음율과 연주 모습에 미국인들도 큰 박수를 보냈다.
양금(洋琴) 악기에 대해 북한 주석 김일성은 ‘조선의 피아노’라고 이름을 붙이고 북한 스타일 양금을 개발 보급해 왔는데 양금은 구라파에서 만들어진 피아노의 원조이다.
양금은 10-12세기 사이 아라비아와 페르시아 ‘덜시머 (Dulcimer)’ 와 코카서스의 ‘산티르(Santir)’ 유목민들이 만들어 사용하던 것이다. 이 악기는 이슬람교회의 음악에 사용되었는데 12세기부터 시작된 신성 로마제국의 십자군 전쟁 때 유럽으로 퍼져 피아노의 전신으로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유럽에서 피아노가 개발되면서 양금은 아리비아, 페르시아 지역에서만 사용되다가 13세기 경 마테오 리치 신부가 중국 명나라 때 카톨릭 교회 복음선교를 펼치면서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으로 유입되었다고 중국 백과사전에 기록되어 있다.
한국에는 조선조 英祖 임금 때 중국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일반인들 사이에는 크게 보급되지 못하고 궁중에서만 전해져 내려왔다.
그러다가 지난 2000년 9월 북한에서 양금 연주 제1인자 칭호를 갖고 있던 연예인 마영애씨가 북한을 탈출, 한국으로 망명하여 KBS-MBC TV와 연예인 연주를 통해 한국 국민들의 눈에는 새로움을, 귀에는 즐거움을 주었으며 양금이라는 악기의 존재도 알게 만들었다.
‘양금’이라는 이름은 서양에서 왔다고 하여 洋琴 이라고 부르는데 중국에서는 초기에 서양금(西洋琴) 이라고 불렀으며 양칭이라고 발음한다. 또 중국 일부지역에서는 ‘구라철현금’(歐羅鐵絃琴) 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구라파에서 건너온 쇠줄로 만든 악기’ 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던 모양인데 서양에서 중국에 도착한 양금은 처음에는 철사줄로 가야금 같이 만들어져 있었다.
당시 양금은 사다리 꼴의 상자 위에 긴 괘를 2개 세우고 쇠로 만든 현을 4현 1벌로 총14벌 56현(줄)을 얹었다. 56개의 줄은 각각 양 끝에 줄감기 못에 감겨 있어 조율할 때 사용했으며 채는 대나무 뿌리로 만들어 사용했다.
중국에서 사용되던 양금이 조선조 영조 임금때 들어와 궁중에서만 사용되었으며 영조 때 이규경(李圭景)이 편찬한 ‘구라철사금자보’(歐羅鐵絲琴字譜) 와 양금 육보인 서금보(西琴譜)를 비롯, 30여 종이 남아있다.
양금에 대한 30여 종의 악보까지 남겨 놓을 정도로 애용되던 양금이 그 후 사라지고 연주자도 없어진 이유는 궁중에서만 사용, 일반 국민들은 잘 알지 못했던 이유로 사라진 악기가 되어 버렸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이 양금이 언제 북한으로 건너가 오늘의 현대판 양금으로 탄생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죽은 김일성이 ‘조선이 만든 피아노’라는 이름을 붙여 적극 개발하도록 만들어 현대 감각이 물씬한 북한식 양금으로 탄생한 것이다.
북한으로 건너간 양금은 철사줄을 없애고 피아노 건반처럼 만들어져 있으며 철사줄 대신 음질이 좋은 철판을 크고 짧고 긴 여러 형태로 56개를 바닥에 깔고 대나무 채로 두드리면 오묘한 소리를 내며 고른 음색을 전달한다.
북한에서 나온 양금 에 대한 평가는 ‘음색 (音色)이 밝고 낭낭하며 표현력이 극히 풍부해 현대음악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조선의 피아노’라고 표현했다.
북한에서는 양금을 가르치는 음악학교가 있으며 마영애씨가 이 학교 출신으로 김일성과 김정일 앞에서 여러차례 독주 연주를 할 정도로 양금 연주의 1인자였다.
6살부터 양금을 배우기 시작한 그녀는 ‘평양학생소년궁전’(예술인재학교)을 졸업하고 조선인민군예술단에서 양금과 아코디언 연주 1인자 칭호를 받았다.
그가 북한을 탈출, 2000년 9월에 대한민국으로 망명하여 한국에 몇 개 있는 중국제 양금을 보고는 실망, 중국의 인맥을 통해 5,000 달러를 주고 북한 함흥 양금 악기 생산공장에 사람을 보내 중국으로 가지고 나와 다시 한국을 거쳐 미국으로 갖고왔다.
사실상 미국에는 그가 사용하는 북한에서 만들어진 양금은 1대 밖에 없으며 한국에는 어떤 경로를 통했는지 모르지만 몇 대의 북한에서 만든 양금이 있어 젊은 연주가들을 키우고 있고 이제는 개인 연주회도 갖는다.
마영애씨가 대한민국에 뿌린 씨앗이다. 그러나 그들이 마영애씨의 연주 기법을 따라오려면 오랜 시간연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음율과 기교면에서 흉내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뉴욕 연주회를 지켜본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은 “양금 연주자의 연주 기교가 뛰어나고 음색도 풍부하다. 抵音구에서는 낮고 高音구에서는 무게감 있는 소리가 나며 中音구는 깨끗하고 투명한 음을 만들어 내어 맑고 낭랑한 소리가 들려왔다”고 평가했다.
심사위원들은 “일반인들은 양금을 민속악기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이번 연주로 그런 오해를 벗게 되었다. 양금은 빠른 악곡의 연주에 비교적 적합한 악기이며 현대인들의 경쾌하고 활기찬 정서와 유쾌한 음악의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악기로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양금을 미국으로 가져온 마영애씨는 전 미국 순회공연 3회, 백악관 앞 이벤트 공연 1회, 연방 상.하원 의회 연주 3회, 개인 독주회 30여 회를 가졌다.
이제 그녀는 한국에 있는 후배들과 제자들을 키워 자신보다 뛰어난 연주자들을 탄생시키는 것이 꿈이다.
일본의 음악 서적에는 양금을 ‘요우킨’으로 기록하며 ‘한국 국악의 현악기’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영어에서는 ‘동양악기’(Kind of Zither)로 기록되어 있다.
<마영애 단장의 양금 연주 동영상>
땅꼬님~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이제서야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