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 톡홀름에서 있었던 일이다. 은행갱들이 인질을 잡고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경찰이 접근하거나 인질들이 반항할 기색이라도 보이면 갱들은 무자비하게 총격을 가했다. 팽팽한 긴장 속에 시간이 흐르면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경찰의 구출작전에 인질이 협조하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잠든 갱의 총을 받아들고 경찰을 향해 쏘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상황은 무사히 끝났지만 인질들의 구출방해 행위는 수수께끼로 남았다. 이를 계기로 후세 사람들은 이런 심리현상을 두고 '스톡홀름증후군'이라 부르고 있다.
우리에게 '배짱으로 삽시다'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유명한 전 고려병원 정신과 의사 이시형 박사는 이런 현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 심리적 배경은 단순 명쾌하다. 갱들은 내 생명을 맡고 있다. 허튼수작부리다간 당장 내 목숨이 날아갈 판이다. 어떻게 하든 그의 환심을 사야 하고 신임을 얻어야 한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갱은 내 목숨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내 생명의 은인을 경찰이 잡으려 하는데 누가 보고만 있을 것인가. 경찰을 쏴서라도 그를 지켜야 한다. 아니, 나를 지키기 위해..”
그 러고 보면 이런 현상이 동토의 왕국 북한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 시작도 총칼의 위협 때문이다. 위대한 수령에게 충성을 다하도록 협박했다. 반항하는 기색이라도 보이면 숙청, 수용소감, 처형까지 끔직한 일도 서슴치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게 틀을 짰다. 누가 밀고를 할지, 속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말 한마디, 일거수 일투족이 조심조심이다. 처음에는 그들을 원망했다. 하지만 10년 20년.. 더 긴 세월이 흐르는 사이 반인륜 김일성은 인민의 수호신으로 구세주로 자리잡게 된다.
스 톡홀름증후군이다. 충성을 맹세하며 천개도 넘는 동상을 경쟁하면서 세웠다. 충성을 보이기 위해 목이 터져라 환호성을 지르고 광적인 박수에 껑충껑충 뛰기까지 하고 있다. 그 뿐인가? 신임을 얻기 위해 이른바 반동분자를 고발 처단한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으면 당간부 또는 평양쇼단의 일원으로 평양에 사는 특권이 주어진다.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이런 환대까지 받으니 그 크신 은혜가 백골난망이다. 어쨌튼 북한 주민들이 이런 잠재적 인질심리에 빠져있는 이상 그들 체제는 확고할 뿐이다.
문제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있는 대한민국이다. 김일성주체사상 찬양론자가 있는가 하면 심지어 신봉자들이 국회까지 입성했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운명과 평화의 열쇠는 평양이 쥐고 있는 양 억지 논리를 펴고 있다. 김일성·김정일 집단의 핵무기 개발에 대한 명분을 한반도 평화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통일이 되면 핵무기는 우리의 것이 될것이라는 논리도 그 연장선에 있다. 대한민국을 인질화하기 위해 전쟁도 불사했던 세력에게 말이다. 엄밀히 이는 어떤 증후군 심리를 넘어선 것이다.
잠재적 인질, 북한 주민의 탈북과 재입북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북한이 지난 28일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어 "남조선으로 끌려갔다가 공화국의 품으로 돌아왔다"고 선전한 박정숙씨가 실은 지난 4월 박씨 아들을 인질로 잡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협박전화를 받고 고뇌 끝에 북한행을 택한 것으로 29일 밝혀졌다. 탈북자 문제가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 요즘 동토의 왕국 김정은 집단은 정황상 인질의, 인질에 의한 북한 주민이 가진 남한에 대한 환상과 기대감을 꺾어놓겠다는 노림수가 보인다.
▼="목적지는 같아도 가는 길은 달라" 박정숙씨의 월북에 즈음해...탈북자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지난 해 10.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66주년이자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1주기인 이날 오전 탈북자단체들이 임진각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했다. 이들은 황 전 비서의 사진과 대북전단 20만장, 미화 1달러 지폐 1천장, 라디오 100개 등을 대형 비닐 풍선 10개에 매달아 북쪽으로 날려보냈다.
예 컨대 박씨는 기자회견장에서 함께 참석한 아들 부부와 함께 '못 잊을 나의 길'이란 노래를 부른 뒤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화를 향해 절을 했다. 박씨는 기자회견에서 한국 생활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인간의 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회, 사람들을 정신·문화적으로 타락시키는 썩고 병든 사회가 바로 남조선"이라며 "탈북자들에게 돌아가는 일자리란 오물 청소, 그릇 닦기, 시중들기 등 가장 비천하고 어려울 일뿐이고, 여성들은 유흥업소에 매매되거나 음란한 화상 촬영에 내몰린다"고 강요당하고, 이를 선전하고 있다.
하는 짓들이 가관이다. 사실 지난날 김일성 품에 안겼던 조선노동당의 꽃 임수경이
탈북자를 보고 "변절자 새끼"라고 표현했을 때 어쩌면 탈북자 박정숙씨 사태는 이미 예고되었을지도 모른다. 지난날 김정일이 죽기 전
김정은이 첫 모습을 보일 때 우리 사회 일부에서는 '김정은이 할아버지를 닮았다' 라는 말까지도 나왔다. 종착역으로 가는
니힐리즘의 말로인가? 김일성과 그 추종세력을 비판하면 수구꼴통이 되어버리는 우리사회,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이 김일성의 잠재적
인질이 되어 스톡홀름증후군에 빠져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