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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고향] 외교관이 꿈
United States RFA 0 334 2012-11-18 12:49:57

[제 2의 고향] 외교관이 꿈

2012-11-15

사진-연합뉴스 제공

외교통상부 김성환 장관과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 박기태 단장이 지난 7월 외교통상부에서 디지털 외교관 양성을 위한 MOU를 체결한뒤 전국에서 모인 반크 학생 동아리 리더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살다보면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고비를 잘 넘기고 나면 거칠 것 없이 인생의 순탄대로가 펼쳐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현실의 고통에서 좌절하지 말고 잘 참아봐라, 그런 말들을 하는데요. 오늘은 어린 소년시절 동생들과 함께 탈북 해 지금은 남한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조동현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조동현: 살아야 된다는 그런 의지가 있으면 된다고 봅니다. 아니면 죽는다는 생각...

함경북도 온성 출신으로 한참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어야 할 16살, 조동현 씨는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합니다. 먹고 살 길을 찾아 고사리 같은 동생들을 손을 잡고 두만강을 건넌 겁니다. 그는 지금의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힘의 근원을 북한에서 기억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조동현: 가장 힘들었을 때는 북한에 있었을 때입니다. 중국이나 한국에 올 때는 힘들긴 했지만 북한에 있을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쉬웠습니다. 북한에서는 가족과 헤어지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집도 없고 먹을 것 없이 살 때 겨울에도 밖에서 생활하고 그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북한에서 그렇게 힘들었기 때문에 중국에서도 공안 피해 살 때도 그렇고 제 3국을 통해 목숨 걸고 올 때도 잘 버티고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도 많고 이성에 대한 호기심도 많을 때인 사춘기 시절 조동현 씨는 생존의 문제로 고민해야 했고 그 고통은 어른들이 느끼는 삶에 대한 두려움 못지않은 것이었습니다.

조동현: 북한에선 운명이라 생각했고 부모 잘 못 만나서 이 고생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라 지도자를 잘 못 만나서 고생한다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때로는 하늘을 원망하고 했죠. 그때 그 마음이 지금은 많이 사라지고 없는 것 같은데 그때는 진짜 망망한 바다에 떠 있는 배처럼 갈 바를 모르고 계속 울기만 하고 그랬습니다. 그 심정을 지금은 어떻게 표현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도강을 한 후 중국에서의 불안한 8년 생활 끝에 다시 남한 행을 할 때는 동생들을 설득하는데 애를 먹었습니다. 왜냐하면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제3국 통해 한국을 가야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궁하면 통한다고 동현 씨와 동생들은 무사히 2008년 한국에 도착했고 그는 지금 외국어 대학교에서 2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조동현: 전공이 중국 지역학이랑 정치외교학 공부하고 있습니다. 남한에서 살려면 대학을 나와야겠더라고요. 직장 잡는데도 학력이 중요하니까 대학을 갔는데 공부하다 보니까 언젠가 통일이 되면 고향엘 가야 하니까 여기서 주어진 시간과 여러 가지 혜택을 나만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공부해서 나중에 어려운 사람위해 써야겠다는 생각도 있고...

한국 정부는 만 35세 이전에 대학에 입학하는 탈북자에게는 등록금을 지원합니다. 물론 북한에서 그리고 중국에서 제대로 된 배움의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는 것을 고려해 특별전형 즉 외국 생활을 오래한 사람들만 따로 대학 측에서 심사를 하고 일정 수 합격 시키는 혜택을 받아 대학진학을 할 수 있었던 겁니다. 조동현 씨는 중국에서 오래 있었기 때문에 중국말이 남한 학생들보다 수월해 그쪽 방면으로 공부를 하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조동현: 제가 꿈이 있습니다. 외교관이 되고 싶거든요. 외교관 생활을 하려면 정치 공부를 해야 되더라고요. 그리고 저희 학교는 복수나 부전공을 꼭 하게 돼 있습니다. 언어를 두 개 하는 것보다 정치 외교 학을 병행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영이나 언론은 관심도 없고 어려운데 정치는 제 관심 분야기도 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남한 청소년들은 서울 수도권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학교 수업은 물론 따로 학원 등에서 사교육을 받으며 준비를 철저히 합니다. 다시 말해 대학생의 학습능력은 수능시험이라는 일제고사를 통해 검증 받게 되는 겁니다. 조동현 씨는 남한입국 후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2년을 준비 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12년을 준비한 남한학생과 함께 수업을 받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조동현: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부딪쳐 보니까 조금 노력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학습능력이나 이런 부분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남한아이들과 똑같이 공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저녁마다 과외를 통해 보충하거나 교회나 그런 곳에 가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인민학교 1학년을 다니다 생활고로 학업을 중도 포기 했다는 조동현 씨. 하지만 중국에서도 역사에 관심이 많아 항상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대학에서 처음 듣는 외래어나 전문용어는 생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늘 바쁘게 시간을 쪼개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가 남한에서 공부하는 특별한 비결은 없습니다. 그저 어려운 것이 있으면 보충교과서를 찾아 이해하면 되고 남들보다 배로 시간을 투자해 공부하면 된다는 것이죠.

조동현: 매일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과외 받고 오면 11시에 들어와서 책 좀보고 하다보면 2시 정도에 잡니다.

기자: 대학생활은 처음인데 느끼는 바가 클 것 같은데요?

조동현: 아이들이 술을 많이 마시는 것 같습니다. 술 문화나 놀이 문화가 좋기는 한데 제가 술을 안 해서 그런지 너무 술을 많이 마신다는 생각이 들고 동시에 남한 아이들은 공부를 한 기간이 길어서 그런지 역시 공부를 잘하고 열심히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자원이 없는 한국이 이만큼 됐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남한 대학생이 정상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진학을 하면 19살 이니까 조동현 씨는 같은 학과 친구들보다 나이가 다섯 살 이상 많은 겁니다. 그러나 항상 마음의 문을 열고 스스럼없이 대하다보면 공부하는 방법도 알게 되고 그들을 통해 문화도 배우고 정보도 공유할 수 있어 남한생활 적응이 자연스레 된다고 했습니다.

조동현: 북한에서 어려서 나오고 중국에서 오래 살아서 다른 점은 잘 모르겠는데 고향이 북한이니까 남한 아이들보다 북한을 더 이해하고 통일에 관심이 있고 한 점이 틀리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앞으로의 계획은?

조동현: 꿈은 외교관이 되는 겁니다. 그를 위해 대학원을 갈지 외교 아카데미를 들어갈지 고민 중입니다. 일단 대학교 졸업하고 영어와 중국어는 한국말처럼 해야 된다는 마음을 갖고 있고 친구들은 대학원가서 박사가 되라고 하기도 하는데 아직 결정을 못 내렸습니다.

조동현 씨는 북한에선 오늘 먹을 양식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지금은 앞으로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남한 외국어 대학교에 재학 중인 탈북자 조동현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사이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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