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광장

자유게시판

상세
돌하르방 탄생 설화 2
Korea, Republic o 서생 0 229 2013-01-14 20:59:19

 

 

한라산 동북쪽 바닷가는 자연포구를 이룬 송이(검은 화산암) 해안이다. 쉰 남짓한 가구들이 옹기종기 모인 포구마을 어둥개의 바람막이를 겸한 돌담은 해안으로 이어진다.

그 돌담길을 따라 갈중이로 아래만 가린 머슴애가 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미역 많은 빌렛기 쪽을 향하는 아이는 망사리와 태왁을 메고 있다.

"빌레야, 같이 가."

또래의 가무잡잡한 계집애가 종종걸음으로 따라온다.

"게메 흠생이(어리광쟁이) 하고는 안 논다니까."

힐끗 돌아본 까맣게 반짝이는 얼굴이 시큰둥하니 툭 던진다.

"너 죽을래, 어엿한 비바리한테 흠생이가 뭐가, 흠생이가."

씩씩대며 쫓아온 물소중이 바람의 언년이가 망사리를 앙칼지게 낚아채며 바락 대든다.

둘은 한동네에서 나고 자란 열두 살 동갑내기다. 두 아이를 앞질러 갈색 털에 윤기가 자르르한 수달 한 마리가 쪼르르 달려간다.

 

"한번만 더 그랬단 봐라! 니 흠생이를 확 패버릴 테니,"

험악한 말투와는 달리 코를 벌름대는 얼굴에는 장난기가 반짝인다.

흠생이는 앞질러 간 수달이다. 갯가에서 만난 빌레에게 낮을 가리며 잘 다가오지 않던 녀석은 만날 때마다 던져주는 낙지발 자투리나 전갱이 대가리 따위를 받아먹으며 차츰 친해졌다.

고양이수염에 볼록 튀어나온 뺨, 반짝이는 털로 감싼 날씬한 몸매, 갯가에서 정신없이 장난치다 걸핏하면 제 어미도 잃어버리는 개구쟁이 수달 흠생이는 애교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제는 빌레가 물질만 나서면 어디선가 바람처럼 나타나 애교를 떨며 먹이를 조르거나 앞질러 바다로 내달린다. 물질을 따라나서면 꼭 뭔가가 생기는 것을 알아서다.

 

"언년아, 우리 오늘은 너븐여 가서 고동(소라) 잡자."

나란히 걷던 빌레가 불쑥 던진다.너븐여는 해변에서 이백 발도 더 떨어진 먼 바위다. 넙적하고 편편하다고 해서 너븐여인데 밀물 때면 물에 잠겼다가 썰물 때만 나타난다.

"너븐여? 울 어망 들키면 혼나는데---?"

흠칫 한다.

"어망 말만 듣다간 평생가도 상군 잠년 못될 꺼다 너."

음흉스레 부추긴다. 바다에 남편을 잃은 언년 어미는 한발 이상 깊은 먼 바다로 못나가게 외동딸을 야무지게 단속한다. 하지만 염장을 지르는 동무의 꼬드김에 파르르한 언년이는 홀라당 넘어가버린다.

"그래 까이 꺼, 가자, 가. 너븐여로."

 

그날 너븐여의 아이들은 큼지막한 소라를 열 개도 넘게 건졌고 지천으로 널린 다시마 숲 속에서 전복까지 찾았다. 입이 벌어진 두 아이는 사이좋게 나눈 전복과 소라를 망사리 가득 지고 돌아왔다.

그러나 불룩한 망사리를 어미에게 자랑한 언년에게 돌아온 것은 매운 회초리와 잔소리뿐이었다. 한 바탕 혼찌검이 나면서도 저를 꼬드긴 동무의 이름만은 죽어라 불지 않는 언년이였다. 수달과 희롱하는 푸르른 새싹들의 세월은 그렇게 꿈길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좋아하는 회원 : 0

좋아요
신고 0  게시물신고

댓글입력
로그인   회원가입
이전글
탈북 난민 인권 연합 김용화 회장님 감사합니다
다음글
탈북자의 신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