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란 용어가 나타나다(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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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와 (재)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탈북자>란 용어가 나타나다.(2)
김영삼-김일성 정상회담을 몇 날 앞두고 김일성이 사망했다. 남북한 두 정상의 회담은 당시 절묘한 시대적 반영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확정되자 북한은 그와 경쟁하기 위한 대안으로 1989년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유치했다.
1980년대는 북한에게 있어서 혁신과 좌절의 시대였다. 김일성 우상화가 최고조에 달해 주체사상탑과 개선문, 남포갑문을 비롯한 거대 기념비 공사에 과중한 투자를 하면서 소련의 최신군사 기술을 뽑아내 첨단무기 제조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남한의 88올림픽에 대항한 40억 달러 규모의 13차 청년학생 축전준비에 돌입한 것이다. 남한에서 5만명 규모의 잠실 올림픽 경기장은 착공하자 북한은 평양 릉라도에 15만명 규모의 경기장을 착공했다.
1985년 황해도 신계지구에 제주도까지 공격하기 위한 중거리 미사일 기지건설을 위해 선발대로 독립통신 분대를 데리고 나갔다가 평양순안비행장으로 급히 철수해 들어가니 서독에서 비행장 활주로 도면과 싱가포르 공항역사 도면을 사와 순안공항이 착공되고 있었는바 남한의 김포공항보다 더 크고 현대적인 규모의 공항을 짓기 위한 경쟁이었다. 그 후 열 받은 노태우 정부는 더 요란한 공항을 구상했고 그것이 오늘 날 인천공항이다. 물론 이런저런 요인들도 있었다.
남과 북의 경제전쟁은 박정희 정권 때 극에 달했었다. 북한이 대규모 선박건조 능력을 확보하자 박정희는 현대 정주영 회장을 몰아 붙여 대형선박 건조능력을 확보 했는데 그것이 오늘날 세계최고의 현대중공업이고 박정희가 경부 고속도로를 착공하면 김일성은 평양-원산간 고속도로를 2배 넓고 더 곧게 착공하고 남한이 63빌딩을 착공하면 북한은 105층 유경호텔을 착공하는 식이었다.
한해가 지나자 북한의 방송과 신문들은 남조선은 에이즈 천국이라고 날마다 떠들고 또 한해가 지나자 남조선여객기 폭파는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 남조선 안기부의 조작이라고 야단법석이었다. 북한은 88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김현희 칼기 폭파 사건을 일으켰다.
노동당은 소련과 동구 공산권나라들이 세계 공산주위 위업을 배신했다고 날마다 강연을 진행했고 1988년이 되자 북한만 빼고 공산국가 전부가 남조선 올림픽에 갔다고 욕을 바가지로 했다.
1989년 평양축전이 진행되기 직전 중국에서는 ‘천안문사태’가 발생했고 중국은 축전에 불참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참여는 했다.
위태롭던 동구공산권 국가들의 운명은 독일에서 터졌다. 소련이 동구권에서 공산패권주의를 포기하면서 독일이 통일되고 주변공산국가들은 도미노 식으로 붕괴했다.
동시에 북한의 젖 줄기 었던 사회주의 국가 경제협력기구와 시장이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혼란에 빠지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소련과 중국은 나 몰라라 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89년 평양축전은 남북한의 이념, 체제, 경제, 문화 모든 분야에서 완전 승자와 패자를 갈라놓았다. 남한은 세계적인 강국으로 발 돋음 했으나 북한은 몰락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었다.
북한은 국제 고아국가로 팽개쳐지고 경제는 파산 상태에 빠졌다. 천하의 김일성도 시대적 태풍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인민군 지휘관들은 승용차에 기름을 넣을 수 없어 회의를 갈수 없었고 1990년이 되자 영양실조에 걸린 군인들이 부대마다 넘쳐나기 시작했다. 굶주린 군인들은 닥치는 대로 주민들의 재산을 약탈하는가하면 어린 병사들은 탈영해 주민들에게 구걸까지 했다.
화가 치민 김일성은 <인민군대가 계속 이렇게 도둑질을 하고 약탈을 하면 ‘인민’이란 용어를 뜯어내어 그냥 ‘군대’라고 하자, 그래도 시정이 안 되면 나라가 망해도 군대를 해산하자>라며 통탄했으나 뾰족한 대안이 없었다.
재앙은 덤으로 온다고 루마니아 차유세슈크가 인민사형을 당해 노동당 간부들의 머리를 철퇴로 내려 친 듯 충격을 주더니 미국이 핵 위기를 조성하며 북한 무력공격을 선언하자 준전시 상태에 돌입해야 했다.
영양상태가 나빠진 민가들에는 전염병이 창궐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병으로 죽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굶주려 죽었다는 소문이 간간히 들렸다.
인민군 군관과 하사관들 속에서는 공공연히 김일성-김정일을 비방하고 상욕을 퍼붓는 현상이 나타났고 군의소와 영양실조 환자들이 있는 병동에서는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철수시켰다. 영양실조로 병든 군인들이 김부자 초상화를 보면 마구 파손하기 때문이었다.
1990년 3월 1일 나는 아주 가까운 동지 7명과 <구국항쟁위원회>라는 비밀결사를 구성했고 날마다 북한의 정치상황과 미래에 대하여 의논했다. 그때 나이 26살이었고 인민군 소위였다.
1991년이 되자 기본적인 목표와 방향이 잡혔다. 우리의 목표는 첫째로 남북 전쟁을 무조건 막는다. 둘째로 김부자 가문통치를 끝낸다. 셋째로 인민들과 군인들을 항쟁에로 이끈다. 넷째로 남조선과 협력한다. 였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는 안중근의사의 백절불굴의 의지와 권총뿐이었다.
1991년 9월 23일 추석날을 이용해 제1조는 거사를 단행하고 2조는 함경북도 고무산에서 평양까지, 평양에서 신의주까지 전단을 살포하기로 했다. 그런데 거사는 실패하고 내가 지휘한 전단만 살포됐다. 내용은 ‘김일성-김정일’을 사형했다는 것이고 인민들과 군인들은 항쟁에 나서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1970년 이후 최고의 정치적 사건이었고 9월 24일 아침6시에 김정일에게 보고됐다고 <9.24>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당시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군보위부에서 나를 체포하기 위해 분투하던 사람들 중 4명이 남한으로 귀순해 와 있다. 지금도 그들은 함께 술을 마실때마다 그때 ‘임영선이 너를 잡았으면 영웅칭호를 받았다, 그럼 귀순도 안했지’하며 웃군 한다. 국가안전보위부에서 임영선이 붙잡으면 영웅칭호 감이라고 공시했다고 한다.
지금도 죄책감을 털어내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어설픈 행동 때문에 김정일과 노동당을 깜짝놀래 우고 거대 검거선풍을 일으켜 얼결에 검거된 항쟁자들과 괴멸된 비밀단체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렇듯 1990년대에 들어선 북한은 국내외적으로 혼란과 궁핍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일성주석은 남한과의 협력으로 돌파구를 찾으려고 했다.
만일 1994년에 김영삼과 김일성 두 정상의 회담이 진행되었다면 오늘날의 한반도는 지금과 전혀 다른 상황에 놓여 있을 지도 모른다. 한 국가와 민족의 운명은 어느 한 통치자의 순간적인 판단과 결정에 의하여 180도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는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1995년부터 남한 국민들은 북한주민들이 많이 이주해 온다는 소식을 근근히 접했고 1997년 황장엽 노동당비서의 망명으로 그 실체가 드러났다.
남한으로 망명한 황장엽선생과 김덕흥씨를 가장 거슬리게 한 것은 ‘귀순자’ 혹은 ‘망명자’ 또는 ‘북한이탈주민’ 이란 명칭이었다.
황장엽선생의 주장인바 <나는 총을 놓고 항복한 군인이 아니니 귀순자가 아니요, 자기 나라에서 자기 나라로 왔으니 망명도 아니요, 북한은 잘못된 체제이니 이탈자도 아니다.>였다.
당시 귀순자들은 ‘북한이탈주민’이란 용어에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저항하고 있었으며 사용자체를 거부하고 있었다.
당황한 김영삼 정부가 궁여지책으로 찾아낸 것이 ‘자유북한인’, ‘탈북자’, ‘자유인’ 등 여러 용어를 공모해 보았다. 그 중에 ‘탈북자’란 용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황장엽 선생도 그렇다할 용어를 찾을 수 없어 “탈북자”를 사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법적 용어로는 <북한이탈주민> 그대로 남아 있었다.
통일방송 대표 임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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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북한군생활을 그때 10년 한사람인데 이건 너무한 거짓말 아닌가요?
그리고 1990년 3월1일 <국국항쟁위원회>를 당신이 인민군소위일때 같은인민군들로 만들어 여러해동안 활동했다는것은 정말 믿을수가 없습니다.
그때당시 그럼말을 소문으로도 (북한은 소문이 아주 빠름) 전혀 들어보지 못했거든요.
참 이거뭐 망상소설 아닌가요? 망상이 아니면 조목조목 밝혀주기를 바랍니다.
무용담은 재미있게 읽었어요. 하지만 그대의 과거가 정당화되고 인정받으려면 여기서도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는 거죠. 안철수가 크라이막스일 때 그대는 안철수 지지한다고 선언했어요. 그리고 정의로운 탈북민들이 나서 탈북민지원정책협의회 한다고 할 때 초기에는 참가한다 하더니 곧 등 돌려 비난글 올렸지요. 이건 김일성 비판 삐라 뿌린다고 하다가
동지들을 고자질한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임영선 씨는 분명 사나이다운 기질이 있어요.아마도 강감찬 장군 시절이었다면 임금님 표창 몇 개 받았을 것입니다. 근데 아직 북쪽 무용담 즐기는 것 보면 멀었어요. 탈북자들의 고정된결함이 뭔지 아세요? 유독 북한에서의 무용담에 집착한다는 거죠. 여기는 북한과 비교가 안되는 자유국가입니다. 낡은 사관 집어던지세요. 그리고 바른생활로 탈북사회의 지도자가 되려고 노력하세요. 그럴 때 당신의 과거 업적도 인정되는 것입니다.
탈북자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면서 김일성 반대하는 투쟁 했다면 그건 소가 웃을 일입니다. 김일성이 겨우 소련군 대위가 정권 잡더니 남침전쟁 일으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실패요, 과오입니다.
그러나 오늘 임씨가 쓴 글은 정당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북한에서 아니 북한군인들의 김일성을 비방 하지 못하였다고 비방하시분 당신 북한에서 북한 욕 못했다고 다 그런거 아니에요
저도 저의 친구들도 김일성 김정일 욕했수다
군대 때 말이유
당신들의 말은 무지렁이 북한놈 무식한 북한놈 반항도 못하는 탈북자 이미지 로 만들어 준다는 거 아슈
ip2 ip3 들도 그리 잘알면 임씨 처럼 쓰시던지 욕만 하고 남이 일하면 뒷다리 잡는 거지 군성 좀 버리오
참 어처구니 없는 참 참참
만약 당신이 글허게 공공연히 욕했다면 아마도 이남한땅에 올수가 있엇을가요?
아마도 그즉시로 체포되여 총살또는 토대가 아주좋으면 정치범수용소에가서 말라 죽었을것입니다. 당신이 발재글을 올린 사람아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