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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평양가서 이렇게 말하겠다.
Korea, Republic o 통일신문 0 331 2013-01-21 08:23:04

지난 2012년 탈북자사회에서 경사로운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 하나는 9월 10일부터 15일까지 대한민국 경주에서 있은 제78차 국제펜대회에서 145번째 회원국으로 ‘망명북한펜센터’가 탄생한 것이다. 여기에는 본지 논설위원이기도 한 소설가 림 일 씨를 비롯해 5명의 탈북작가들이 참석하였다.

다른 하나는 지난 9월 25일에 강철환 조선일보 기자와 림 일 탈북작가가 공동대표로 구성된 ‘북한 해외근로자의 인권개선을 위한 국제연대’(INHL)의 탄생이다. 미국 유럽 등 해외의 여러 기관 및 관련단체와 함께 북한 해외근로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 및 인권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국제적인 인권단체이다.

<통일신문>은 탈북자사회의 중추적 리더이면서 역사에 아로새겨질 국제 활동을 하고 있는 INHL의 강철환 림 일 공동대표와 특별대담을 가졌다.

- 먼저 두 사람 소개를 간단히 부탁한다.

강 =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는 현대판 노예관리소, 함경남도 요덕정치범수용소 10년 체험자다. 지난 1992년 8월 중국을 경유하여 대한민국으로 왔다.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일보> 기자로서 대북연구단체인 ‘북한전략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림 = “1997년 3월 쿠웨이트 주재 조선광복건설회사에 근무하던 중 남한으로 왔다. 지난 2005년부터 문학 활동을 하고 있다. 작품은 ‘소설 김정일’을 비롯해 5권의 책이 있고 <동아일보> 등 중앙일간지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 기자와 작가라? 같은 문인이 아닌가?

림 = “그렇다. 내가 <통일신문> 논설위원이니 우리는 같은 언론인이고 ‘망명북한펜센터’ 이사이기도 하다. 남한에 와서부터 줄기차게 북한인권운동을 펼쳐온 강철환 대표는 1993년 ‘대왕의 제전’(전3권)이란 책을 냈다. 나에게는 탈북 선배이면서 작가 선배이기도 하다. 늘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허물없는 친구다.”

- 두 사람 처음 어떻게 만났는가?

강 = “1998년 가을로 생각된다. 당시 명동성당에서 이기헌 신부님(현재 천주교 의정부교구장)과 오혜정, 이선중 수녀님 등이 주최한 탈북자 초청행사가 있었는데 거기서 만났다. 그때는 평범한 고향후배로만 알았는데 오늘 림 대표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소설은 아무나 쓰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림 작가 팬이다.”

- INHL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강 = “작년 4월 말 우리 단체에서 ‘북한 해외근로자들의 인권침해’ 라는 주제의 세미나에 발제자로 림 일 작가를 모셨다. 쿠웨이트 노동자출신인 그의 증언을 들으며 충격을 받았다. 섭씨 40도 이상인 열사의 땅에서 하루 15시간씩 일을 하고도 월급을 못 받았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가? 이후 림 작가와의 사적인 자리에서도 많은 증언을 들었다. 그때부터 이 부문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림 = “올 봄에 ‘북한 해외근로자 실태 자료조사’를 직접 인터뷰하는 강 대표를 보면서 꼼꼼하고 원칙적인 그의 업무능력에 감명했다. 낮은 자세에서 상대방을 존중하는 인간성에 호감이 갔다. 국제비지니스 감각이 돋보이는 그의 리더로 직원들이 중동과 러시아에 가서 북한 해외근로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해온 사실에서 더욱 놀랐다. 우리 두 사람이 2년 전부터 꾸준히 준비해온 INHL이다.”

- ‘강철환!’ 하면은 요덕수용소 체험자, 조선일보 기자, 부시 미국대통령 접견자, 대표적인 북한인권운동가 등으로 알려졌다. 해외근로자와의 인연이 없지 않는가?

림 = “출범 직전에 고민이 많았다. 사실 강 대표가 ‘이 문제의 당사자는 림 작가다. 쿠웨이트 건설현장에서 들어온 탈북자로 유일무이하다. 당신이 대표를 하라. 상징성이 있다. 나는 필요하다면 사무국장 정도의 직책을 맡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내가 고사하였다. ‘공동대표로 하든지? 아니면 나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 이유가 뭔가?

림 = “단지 탈북자사회 유명한 ‘강철환!’ 이라는 브랜드 값 때문은 아니다. 그의 됨됨과 업무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다. 대표는 일할 줄 아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 감투에 집착하는 사람은 질색이다. 탈북자사회에 그런 사람 적지 않다. 감투는 우리 몸의 치장거리다. 사람의 진심은 마음에 있다.”

강 = “솔직히 말하면 림 작가에게 미안한 생각도 든다. 서재에서 조용히 글을 쓰는 사람에게 내가 괜히 무섭고 힘든 인권운동에 불러들인 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사명감을 갖고 하는 일이라 하지만 도무지 자기 혼자서는 어림도 없다.’고 완강히 거부하는 림 작가의 고집에 내가 졌다.”

- INHL은 국제연대이다. 어느 나라 어떤 인사들과 연대하는가?

강 = “그동안 북한 정치범수용소 해체 및 주민들 인권개선을 위한 투쟁에 협력해온 세계의 많은 정의의 인사 및 단체들이 있다. 국제엠네스티의 휴먼라이츠워치, 일본의 노펜스와 북조선난민구호기금, 미국인권위원회 등 국제인권단체 및 인사들과 협력하여 북한해외근로자들의 인권개선을 위한 활동을 공동으로 대처할 것이다.”

- 구체적인 사업계획이 있는가?

림 = “해외 노동자출신의 탈북자 30여명이 남한에 있다. 이중 일부 사람들의 증언기록과 중동과 러시아에 나가 있는 북한근로자들의 면담기록 자료를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국제노동기구(ILO)에 공식 제소하겠다. 북한 인력을 받는 해당 나라에서 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 및 지위향상을 위한 ILO 권고는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 INHL의 첫 해외세미나를 일본 도쿄에서 했다고 들었다.

강 = “지난 10월 26일부터 29일까지 도쿄 메이치대학교에서 진행되었다. 본 대학교수와 일본 내 대북전문가들, 시민단체 대표들, 인권운동가들 100여명이 참석했다. 다소 진지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세미나는 2시간 초과되었으며 의외로 반응이 뜨거웠다. 언론사로는 TBC방송, 아사히신문, 통일일보 등이 참여했다.”

림 = “쿠웨이트 노동자출신인 내가 30분간, 러시아 노동자출신인 김 모 씨가 40분간 비참한 북한 해외근로자들의 노동 및 인권실태를 생생하게 증언했다. 때로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 젓기도 하고 혹은 입을 쩍 벌리기도 하는 등 참석자들이 토씨하나 놓칠세라 경청하고 녹음하는 모습에 다소 놀랐다.”

- 가벼운 질문으로 마치겠다. 두 사람 같은 평양 출신이고 동갑이기라고 들었다. 누가 형인가?

강 = “나는 평양시 중구역 경상동 태생으로 그곳에서 9살까지 살았다. 어느 날 부친의 김일성 비판 발언으로 10년간 함경남도 요덕군에 있는 15호 관리소에 수감되었다. 림 대표는 대동강구역 소룡동 태생이고 서울에 오기 전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우리는 68년생 원숭이띠이고 내가 한 달 빠른 형이다.”

- 두 사람이 또 다른 공통점이 있는가?

림 = “있다. 우리는 둘 다 기독교 신자들이다. 강 대표는 침례교회 집사이고 나는 감리교회 집사이다. 강 대표가 올해로 신앙생활 15년째이고 나는 10년째이다. 우리는 교회에 가면 북한주민들의 죽어가는 영혼을 위해 기도한다. 우리 민족의 간절한 소원인 통일도 하나님께서 주실 거라고 확신한다.”

강 = “또 있다. 우리 두 사람은 슬하에 아들 두 명씩 두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신기할 정도이다. 거기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 점도 같다. 이쯤 되면 명콤비인 것 같다.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먼 길을 림 대표와 함께 가겠다. 통일되면 고향 평양에 가서 ‘우리 서울에서 젊은 시절 열심히 살았지!’ 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말하겠다.”

대담 = 장운영 통일신문 사장

정리 = 신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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