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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재입북의 배후에 숨겨진 이야기들
Korea, Republic o 동남아에좋은일자리 0 542 2013-01-29 09:49:33

북한 조선중앙TV는 24일 밤 한국에 정착했다 다시 재입북한 탈북자 4명의 기자회견을 방송했다.

 

  북한이 되돌아온 탈북자를 내세워 기자회견을 연 것은 지난해 6월 박정숙 여인 이후 벌써 3번째. 탈북자 사회에선 앞으로도 비슷한 사건들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을 한 4명 중 3명은 2010년 4월 전남 목포에 정착한 김광호-김옥실 부부와 10개월 된 딸이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중국으로 여행을 떠난다면서 출국한 뒤 북한으로 입국했다.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딸까지 낳아 행복한 일만 있을 것 같은 이들이 무엇 때문에 불과 2년 반 만에 목숨을 걸고 찾아온 ‘자유의 품’을 다시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

 

● 첫발부터 빼앗기는 한국의 삶

 

  2010년 4월 탈북자 정착지원기관인 하나원에서 3개월간의 정착교육을 받고 나서는 김 씨 부부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중국에서 이들을 한국까지 데려온 소위 ‘브로커’였다.

 

  그는 중국에서 약속했던 대로 1인당 각각 250만 원씩 모두 500만 원을 지불할 것을 요구했다. 김 씨와 함께 온 다른 탈북자들은 모두 순순히 250만 원을 냈다. 중국에서 쓴 계약서에는 한국에 도착해 하나원을 나올 때 내면 250만 원을, 이후 지불을 미루면 최대 400만 원까지 내겠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은 하나원을 나올 때 정부에서 1000만 원이 조금 넘는 임대주택 보증금과 300만 원의 정착금을 받는다.

 

  보증금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내기 때문에 300만 원이 사실상 탈북자들이 쥐고 사회에 나서는 재산의 전부이다. 이후 3개월마다 100만 원씩 정부에서 3번을 더 지급한다. 여기에 탈북자가 고용보험이 되는 일자리에 취직하게 되면 추가 인센티브를 받게 된다. 

 

  하지만 탈북자가 아무 것도 모르는 한국 사회에서 정착하자마자 취직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탈북자는 정착 초기 300만 원을 쥐고 텅 빈 집에 들어가야 한다.

 

  300만 원 중 브로커에게 250만 원을 떼어주면 50만 원 밖에 안 남는다. 여기에 매달 기초생활수급자로 받는 30만 원을 더해 세 달을 살아야 한다.

 

  사실상 낮선 땅에서 아무 정보도 없이, 필수 가전 집기도 없이 시작하는 탈북자들에겐 혹독한 조건이다. 하지만 대다수 탈북자가 이렇게 시작한다. 한국행 브로커 없이 홀로 한국에 오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다른 탈북자와 달리 돈을 내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브로커는 1년 넘게 집요하게 추적해 끝에 부부의 몫으로 400만 원을 받아냈고 나머지 100만 원도 달라고 요구했다.

 

  그와 다툰 김 씨는 끝내 거절했고 이 문제는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김 씨 부부에게 중국에서 작성한 계약서대로 지불을 미뤘으니 1인당 400만 원씩 주라고 판결했다.

 

  김 씨 부부는 항소했다. 하지만 브로커가 법원의 판결에 따라 적법하게 고용한 신용평가회사가 김 씨 집의 임대료를 차압하려 하자 분노한 김 씨 부부는 한국을 떠났다.

 

  이들 부부는 기자회견에서 거듭 격앙된 목소리로 집까지 빼앗기게 됐다고 이 문제를 거론했다. 한국 사회에 입국하자마자 빚에 쫒기다 ‘자유의 품’을 떠난 것이다.

 

● 브로커는 ‘필요악?’ ‘탈북 도우미?’

 

  브로커에게 100만 원을 지급하지 않고 버티다가 재판에서 패소해 임대료까지 떼이게 된 김 씨는 얼핏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브로커는 가해자, 탈북자는 피해자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 바로 탈북자 문제의 복잡성을 보여준다.

 

  정부에서 탈북자 입국을 전혀 도와주지 않는 실정에서 탈북자들은 대체로 같은 탈북자 출신의 브로커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브로커는 한국으로 입국한 통로를 이용해 다른 탈북자들을 입국시키다 전문 브로커가 된다.

 

  하지만 탈북자들을 입국시키는 데는 필연적으로 돈이 들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 숨겨주고 먹여줘야 하고, 기차나 버스 등을 타고 중국 대륙을 횡단해야 하며 3국에서 벌금도 내야 한다.

 

  운이 나빠 체포되는 경우엔 감옥에 가야하고, 김 씨처럼 한국에 온 뒤 약속된 돈의 지급을 거절하는 탈북자가 있으면 끊임없이 찾아가 독촉해야 한다. 

 

  만약 전문화된 브로커가 없다면 90% 이상의 탈북자들이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거나 또는 몇 배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와야 한다.

 

  브로커들은 돈을 받고 그 돈을 밑천으로 다른 탈북자들을 데려오는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그래서 “탈북 브로커는 필요악”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탈북 브로커들은 스스로를 ‘탈북도우미’라고 지칭한다.

 

  문제는 비용의 적정선이다. 이동수단과 통로 등이 달라 일률적으로 얼마가 적정선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100만 원 이하의 원가가 든다는 사람도 있고, 위험부담까지 고려하면 250만 원은 돼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분명한 것은 현재 250만 원 이상 받는 브로커는 일반적으로 탈북사회에서 ‘악덕 브로커’로 분류된다. 300만~400만 원의 비용을 요구하고, 온갖 폭언과 심지어 탈북 여성들에 대한 성적 폭행까지 하는 탈북브로커는 지금도 존재한다.

 

  대다수 탈북자들은 초기엔 탈북 비용을 지불하고 매우 어려운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시기를 벗어나면 점차 자리를 잡는다.

 

  북한에 되돌아간 김 씨 부부도 중고차까지 살 정도로 돈을 모았지만 나머지 100만 원은 끝내 갚지 않았다. 그들에겐 브로커와의 돈 문제가 감정문제로 비화되면서 서로 ‘갈 데까지 가게 된’ 것이다. 북한으로 돌아갈 때 이들은 차를 팔고 돈을 갖고 중국에 갔다.

 

● 북한의 새로운 탈북자 정책

 

  과거엔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어려움에 봉착해도 어떻게 하나 버티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북한에 돌아가면 처벌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북한은 탈북자를 회유해 재입북시키는 새로운 수법으로 남쪽에 간 탈북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들이 돌아와 한국 사회를 비난하게 되면 남쪽에 대한 주민들의 환상을 막을 수 있고 탈북이 그만큼 억제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전문 공작부서까지 생겨나 북한의 가족을 동원해 한국에 간 가족들을 회유하고 있다.

 

  한 탈북자는 “김 씨 부부가 힘들어할 때 이들에게 접근해 북한에 돌아가면 처벌도 받지 않고 남쪽에서 갖고 간 돈으로 잘 살 수 있다고 회유한 탈북여성이 있는 것으로 알지만 증거가 없어 체포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탈북자 사회에선 김 씨와 비슷한 어려움에 봉착했다 회유를 받고 재(再)입북하는 사람들이 또 나타날 것이라 보고 있다. 
 

● 2년 반 만에 만든 절망? 희망?

 

  김 씨 부부가 북한에 돌아간 것은 단순히 한국 생활에 실망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김 씨는 나름 영악한 사람이다. 북한 기자회견에서 이야기했듯이 그는 과거 수차례 중국을 넘나들며 밀수를 했고, 이 때문에 북한에서 체포돼 처벌받기 직전 약혼녀를 데리고 탈출했다.

 

  그는 지인들에게 과거 북한에서 소를 훔치기도 했고, 중국에서 지프차를 훔쳐 팔아먹기도 했다고 자랑삼아 이야기했다고 한다. 북한에서 소도둑은 최대 사형까지 처할 수 있는 중범죄이다.

 

  한국으로 올 때는 약혼녀와 따로 방을 내주지 않는다고 칼을 들고 위협까지 할 정도로 막가는 사람이었다. 이 때문에 그와 함께 온 사람들은 김 씨의 이름만 대도 고개를 흔든다.

 

  김 씨가 한국에 온 뒤 브로커 비용을 주지 않고 버틴 것도 바로 이런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보통 웬만한 탈북자들은 브로커에게 항복해 그냥 돈을 주고 만다.

 

  이런 김 씨가 북한에 돌아간 이유는 단순히 빚에 쫓겨 절망적이었던 것이 다가 아닐 것이다. 김 씨 부부가 북한으로 돌아가기 전에 머리 속에 굴렸을 수판은 대략 이러할 것이다.

 

  김 씨 부부는 북한에서 공식 결혼하지 않고 왔기 때문에 김광호는 목포에 김옥실은 부산에 임대주택을 받았다. 김옥실은 곧 부산 집을 처분하고 1000여만의 돈을 쥐고 목포에 와 김광호와 살림을 합쳤다. 이후 이들은 2년 동안 이곳저곳에서 벌었다.

 

  보통 한국을 떠나 해외로 가는 탈북자들은 임대주택을 내놓고 은행 등에서 최대한도로 돈을 빌려 나간다. 김 씨도 그랬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한국 생활 2년 만에 이들은 최소한 3만 달러 이상의 재산을 쥘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3만 달러는 크다고 보기 어렵지만 북한에서 3만 달러는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500달러면 4인 가족이 어렵게나마 1년을 먹고 살 수 있는 북한 실정을 감안하면 이들은 한국생활 2년 반 만에 북한에서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수중에 넣었다. 이 돈을 장사 밑천으로 한다면 큰 돈을 벌수도 있다.

 

  김 씨 부부는 갖고 간 돈을 북한에 모두 갖고 가지 않았을 것이다. 기자회견 내용 등을 정리하면 이들은 10월 말 출국해 12월 초에 북한에 들어간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한달 남짓 사이 중국에서 갖고 간 돈을 무사히 맡길 곳을 찾았거나 미리 북한의 가족에게 송금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을 잘 아는 김 씨는 북한에서 안전을 보장받은 뒤 나중에 점차 중국에서 몰래 돈을 갖고 갈 수 있을 것이라고 타산했을 것이다.

 

  이런 속셈은 북한 보위부도 알고 있겠지만, 증거가 없는 이상 어쩌기는 힘들다. 현재 김 씨 부부 말고도 상당수 탈북자가 북한에 들어갔다는 설이 있다. 이들도 비슷한 코스를 밟았을 것이다.

 

● 탈북자 재입북 북한 정권에 이롭지만 않아

 

  하지만 탈북자들이 계속 돌아오면 북한으로서도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박정숙 씨 귀환 때도 말로는 남쪽에서 온갖 핍박을 다 받았다고 기자회견을 했지만 정작 주민들은 “까무잡잡한 여자가 5년 만에 귀부인이 돼 나타났다”고 술렁거렸다.

 

  거기에 입국한 탈북자들이 몰래 숨겨온 돈으로 잘 살게 되면 주민 여론이 문제다. 그렇다고 처벌하면 용서를 강조했던 당의 정책에 큰 흠집이 생긴다.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이 때문에 최근 북한 당국에선 새로 회의를 열고 탈북자 정책의 방향을 수정했다고 한다. 북한으로 되돌아오게 하지 말고, 어려움에 빠진 탈북자를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로 꾀여 보낸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멸시와 차별을 못 견디고 남쪽을 떠나 가난한 나라를 떠도는 탈북자의 군상을 만들어 내부적으로 선전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 베이징(北京)에 북한 공작 담당자가 이미 파견돼 한국인과 조선족 여러 명을 포섭했다는 설이 나온다. 어려움에 처한 탈북자 주변을 배회하며 “어려우면 동남아에 좋은 일자리가 있으니 한국을 떠나라”고 꾀어내기 위한 목적이다.

 

주성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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