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게재 일자 : 2010년 10월 11일(月)
황장엽, ‘손발 묶인 남한 생활’ 한때 자살 생각
내가 본 황장엽 - 홍진표 계간 ‘시대정신’ 편집인
1997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비서가 한국으로 망명했을 때, 필자는 오랜 주사파 운동권 활동을 접고, 북한 민주화운동을 모색하고 있었다. 당연히 황 선생의
망명을 진심으로 반겼고, 함께 운동권을 정리한 동지들과 황 선생이 비로소 공개한 저작들을 읽고 토론하면서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었다. 1998년 시대정신을 창간하자 이를 황 선생에게 전달하여 우리의 존재를 알리고자 했으나, 정부당국의 비협조로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결국 1999년 주사파 지하조직 민혁당사건이 노출되면서, 이를 주도한 김영환 시대정신 편집위원과 황 선생이
만나게 되었고, 그 후 지난 10년 동안 한달에 한번꼴로 모임을 가져왔다.
황 선생은 손자병법, 삼국지를 즐겨 인용하면서 정치전략을
논하였고, 북한에서 대외활동을 하면서 만난 마오쩌둥(毛擇東), 호찌민, 흐루시초프 등 사회주의지도자들과의 흥미로운 일화를
들려주었다. 항상 내 용량의 부족함을 느끼는 이 모임을 통해 주체철학이 김일성과 김정일에 의해 어떻게 개인숭배의 도구로
악용되었는지 생생하게 알게 되었으며, 북한 민주화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누구보다도 절제력이 강한 황 선생도 한국의 정치인과 지식인들 일부가 북한체제에 무지한 것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여 개탄하였다. 황
선생은 북한을 통상의 독재국가 정도로 여기고 합리성과 상식을 기대하는 경향에 대해 일관되게 투쟁해왔다. 황 선생이 망명하자
김정일정권은 가족,
제자 등 수천명을 처형하거나 정치범 수용소로 보냈는데, 현 시대에 권력에 의한 한 개인에 대한 가장 대규모의 정치보복일 것이다.
이런 광기의 보복을 미리 충분히 예상하고 망명의 결단을 했으니, 이 생각만 떠올리면 항상 그 높이에 고개가 숙여진다.
황 선생은 김대중 노무현정부 10년동안 마치 새장에 갇힌 새처럼 그 뜻을 펴지 못했으니, 점차 노쇠현상이 오는 걸 지켜보는 것도 참으로 답답했다. 가족과 아끼던 제자들을 희생시키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손발이 묶인 한국생활로 인해 한때 자살도 생각했다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노무현정부 중반쯤 우리는 덧없이 흐르는 시간이 안타까워 황 선생에게 북한망명정부를 만들자는 의견을 내놓은 적도 있었다. 당시 여건도 썩 좋지 않았지만, 아마 무슨 권력을 탐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을 경계하였는지 동의하지는 않았다. 김정일정권의 폭압통치 종식을 바라는 사람들은 다 같은 심정이겠지만, 황 선생이 북한 해방을 보지 못하고 가신 원통함은 감당하기 어렵다. 워낙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하여 적어도 몇 년은 더 북한 민주화운동을 이끌 것으로 믿었는데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여러 제약과 무관심, 편견 등이 겹쳐 의외로 황 선생의 북한 민주화전략, 철학, 식견, 잠시의 휴식도 없는 실천활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느껴왔다. 앞으로 국내외의 학자들이 황 선생에 대해 깊이 연구하여 그 진수가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
▲1963년생 ▲서울대 정치학과 중퇴 ▲시대정신 편집인 ▲ 자유주의연대 사무총장 ▲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01011010302231110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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