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서울사진 중 일부는 1970년초 사진도 포함되어 있군요. 1960년엔 아직 윤보선이 대통령으로 있을 때인데, 박정희가 군사혁명을 하고 그 후 얼마있다가 정권을 잡기 시작하면서 수차례의 경제개발계획에 따라 대한민국은 실로 놀라운 발전을 하게 됩니다. 박정희가 있었기에 대가리에 똥만 든 2천명은 죽을 맛이었으나 4천만 국민은 비록 통행금지같은 행동의 제한은 아주 조금 있었지만 행복했습니다. 1960대년 후반인가 70년대 초반에 박정희대통령 당시 남북회담이 열려서 북한기자가 평양에 왔을때 서울의 발전상을 보고 놀라면서 말하기를 "남조선 기자동무 저기 수많은 자동차는 미제국주의가 빌려준거 맞지?"라고 의심반 빈정거림반 물어었드랬는데, 그 때 남조선 기자가 하는 말... "그래 맞다, 자동차 빌려오는 것은 그럭저럭 빌려올 수 있었는데, 저 수많은 빌딩 빌려오는 건 정말 힘들었다" 라고 대꾸해주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 때부터 대한민국은 경제력에서 이미 북한을 앞지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유입니다.약 50여년전 4월 19일 수많은 대학생과 고등학생 심지어 중학생까지 목숨을 초개까지 버리며 부패와 무능에 빠진 자유당 정권을 몰아내고 얻은 자유와 민주주의는 이미 그 전부터 북한을 앞지르고 있었습니다. 자유는 거져 얻어지는것이 아닙니다. 북한에서도 자유를 얻기위해서는 수많은 인민들이 들고 일어나고, 민족을 생각하고 있는 북한의 장령들이 떨쳐일어나서 김정은이 돼지새끼와 그 꼭둑가시들을 처단하여 인민들을 해방시키기를 기원합니다.
1960년의 서울은 그 당시 천리마운동으로 조립식건설이 한창이던 평양에 비하면 너무 뒤떨어졌다는 것이 알린다. 하기야 당시 북한은 이미 산업화를 이루었으니까. 남한에서 쇳물 한바가지 뽑을 제철소가 없었으니 그럴수밖에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남한의 산업화를 이루고 경제적으로 김일성을 압도하는 기적을 이룬 박정희대통령이 정말 대단합니다.
정확히 1968년 초봄~초여름 사이로 보입니다. 장충체육관이 이미 완공 된 걸 보니 1963년 2월 1일 이후가 확실하고요. 사진을 보면 육교에 "1968 06.18~06.20 제2차 세계대학총장회의" 써 있고요. 사진에 나오는 일일승공학교 개교일은 1968년 3월10일 입니다.
먼길님.
김일성이는 땅굴이나 파고 /
인간말종이죠.
여기가 북조선인줄 알아요
현재북한의평균모습보다더한심하고구립니다.
대한민국하나님은혜로 복받은곳입니다.
그리고여성비하말하는분
저어두운사진들속에 꽃같은존재를 비하라고하니~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