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안으로 파고들어온 빨갱이(김일성주체교신자)들을 척결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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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7:14-15내가 화목제를 드려서 서원한 것을 오늘날 갚았노라 이러므로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서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도다]
본문에서 나오는 화목제와 誓願(서원)의 의미, ‘peace offerings’ 의미와 ‘my vows‘ 의미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의미하는데 하나님을 빙자하는 전술전략도 악마의 것임을 밝히고 있다. 화목제와 서원을 이행한다는 명분을 구사하여 그 안에서 색욕 충족의 기회를 추구하는 것을 본문에서 밝히고 있다. 하나님과 화목은 예배의식만인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으로 통치를 받아 하나님의 본질로 행동하는 화목 그 exchange되는 것인가? 오늘 날 한국 교회는 이것에 대한 定立(정립)을 미루고 있다.
예배만을 위한 예배는 의식으로 치닫고 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심령 속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의 심령통치를 거부하는 예배는 다만 의식일 뿐인데, 그런 행위를 마치도 예수를 믿는 자로 여기려고 하나 다만 교인에 불과한 것이다. 예수 믿는 행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데 있다. 그것이 곧 기름부음이고 하나님과 화목의 유일무이의 길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본질에 참여가 없는 예배는 형식이고 기복이다. 하나님의 사랑 앞에 인간의 본성이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를 깊이 받아들여 사는 굴복(경배)이 없는 것은 산제사 예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인간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가 없고 사랑의 통치가 없게 된다. 그런 인간의 속에는 육적인 사랑 ‘자기만사랑’만 가득해진다. 그것에 인생을 거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대적이 되어 사는 것이다. 입으로만 하나님을 찬양한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찬양하나 본질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삶을 산다. 사람이 입과 마음이 전혀 다르게 말을 한다. 이는 거짓말이다. 그런 식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인데 이를 신앙의 고백이라고 강변하는 자들이 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은 언제나 입으로 행동으로 나온다.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 그 통치를 받아들이는 기도가 되어야 하고 예배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 앞에 서야 한다. 그 사랑의 빛은 거울이 되어 그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예배이다.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랑의 책망을 따라 회개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어야 하고 그 사랑의 빛 앞에서는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늘 하나님의 사랑의 빛 앞에서 자신의 행동을 심판받아야 한다. 거기서 조금이라도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곧바로 열심히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에 反(반)하는 것을 모두 다 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곧 하나님께 드리는 산제사 곧 화목제이다. 참된 예배이다. 참 예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의 사랑의 통제를 따라 사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의 피만을 강조하지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사랑의 통제를 받아 살아야 하는 것을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한다. 否定(부정)하려고 한다. 그 때문에 속죄의 은총과 기복의 은총만을 강조하는 설교 상품이 불티나게 팔린다. 그리로 사람들이 몰려가서 큰 교세를 이루게 되고 그런 목사는 힘이 있어 표심을 잡으려는 政客(정객)들의 친구가 되고 하여 한 세대를 풍자하는 목사들이 된다. 하지만 예수의 피를 받은 사람은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을 부정하는 班列(반열)에 서 있게 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피의 은총을 입은 자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기름부음을 입어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살아야 한다는 원칙을 무시하는 설교가 得勢(득세)하는 세월이고 인간의 무한 욕심을 부추겨 ‘자기만사랑’과 기복에 빠지게 하는 세월이다. 이러한 거짓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은총을 입고 기름부음을 따라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를 받아 살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길은 거기에 있고 그것이 곧 하나님의 본질에 참여하는 길임을 직시해야 한다.
本是(본시) 성경에서 말하는 화목제란 의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본질과 동일해지는 것을 의미하는데 한 사랑 한 마음 한 영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때문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본질에 통치를 받아들이는 것을 화목제라고 한다. 하나님의 본질의 통치를 받지 않으면서 그것을 빙자한다면 이는 詐欺(사기)에 해당된다. 본문에 나오는 음녀는 그것을 빙자한다. 하나님의 본질에 참여를 거부하면서 화목제를 드렸다고 한다. 둘이 합하여 한 몸이 되는 것인데,
하나님의 기준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합하여 한 몸이 되는 것은 정결한 교회이다. 하나님과 합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를 받는다는 의미다.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비유컨대 외도를 일상화하는 음녀이다. 그런 행위는 하나님의 사랑과 한 몸이 안 되는 것 곧 다른 사랑으로 그 몸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것이다. 화목이라는 의미는 ’peace‘인데 원어는 shelem {sheh'-lem}이라 발음한다. 그 안에는 peace offering, requital, sacrifice for alliance or friendship, voluntary sacrifice of thanks 의미를 담는다.
그녀가 화목제의 의미를 화목이라는 ’sacrifice for alliance or friendship‘ 의미에서 ’alliance‘라는 의미만을 끄집어내어 자기 행동을 정당화시키려는 짓을 하는 것이다. ’alliance‘는 동맹 결연 연합 동맹 관계 혼인의 의미를 표현할 때 사용되는데, 혼인의 의미를 타락시켜 하나의 조직을 만드는 방법으로서의 엮음을 강조한 것이다. 性(성)은 결혼조직이라는 한 몸을 만든다. 이는 하나님이 일부일처로만 국한되도록 원칙을 정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또 다른 조직을 만드는데 사용하여 왔다.
性(성)의 행위를 언어로 표현한다면 성적으로 소통을 한다는 것은 곧 조직의 하나로 묶는 마인드적인 특성을 말한다. 예를 들자면 김일성의 남한적화는 악마적인 ‘자기만사랑’의 충족요구이다. 이를 충족하려고 남한 내에 간첩 종북 조직을 만든다. 그런 조직을 성적으로 엮어지는 방법을 삼고 있다. 그런 특성은 하나님의 정하신 원칙을 무너지게 하는 문란의 죄악을 잉태하고 낳고 그것이 자라면 그 세상에 사망을 초래한다. 경제의 행위는 조직을 통해서 하는 것인데, 그런 조직을 성으로 엮어 공동체를 만든다면 결국 그 조직은 악마의 거처가 된다.
악마가 들어오면 결코 창조와 생산은 없게 된다. 다만 멸망만 있을 뿐이다. 악마 유혹은 인간의 육적인 사랑 ‘자기만사랑’을 중시한다. 악마적인 ‘자기만사랑’을 가진 자의 조직원이 되면 '자기만사랑'을 위해 자기희생을 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김일성의 ‘악마적인 자기만사랑‘을 충족케 하려고 북한주민 모두를 노예로 삼는다. 남한 종북을 노예로 삼는다. 악마는 기만과 폭력과 살해의 공포로 그런 희생을 강요한다. 그것에 속거나 당하거나 굴복한 인간들을 性(성)으로 묶는다. 하여 조직을 만들고 그 조직을 통해 악마적인 ’자기만사랑‘을 충족케 한다.
그 때문에 악마는 사람에게 ’자기만사랑‘을 세일한다. 이는 그것이 악마의 거처와 소통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기만사랑’을 위하려고 하다 속는다. 폭력에 ‘자기만사랑’을 위해 굴복한다. 살해협박에 ‘자기만사랑’은 비굴하다. ‘자기만사랑’과 결합한 자들은 언제나 악마적인 ‘자기만사랑’에 약하다. 그 때문에 악마의 밥이 된다. 악마는 그 때문에 사람들을 유혹하여 ‘자기만사랑‘을 주입한다. 그것이 주입되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하고 싶은 것만 한다. 사유체계가 경도되고 편협해진다.
하여 진실을 알지 못하고 망하게 된다.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잘 속고 쉽게 굴복하고 비겁해진다. 이는 저항 적대하는 성질이 아니라 동조하는 성질이기 때문이다. 그 이치를 아는 자들은 돈을 위해 악마와 결탁한다. 악마와 결탁하는 자들은 ‘자기만사랑’을 이루기 위해 악마의 힘을 사용한다. 그 힘은 기만의 힘이고 폭력의 힘이고 살해협박 살인의 힘이다. 그것으로 사람을 노예로 묶어 놓고 성으로 조직을 만든다. 그것이 곧 김일성이 대한민국에 깔아놓은 종북 인프라이다. 이는 그것에 악마가 들어가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악마가 거기에 있어야 그것들이 남한을 파괴하는데 유용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것이 곧 노예 조직을 만들고 유지하는 방법론이다. 그와 별도로 그들끼리의 동맹 결연 연합의 동맹관계를 만들기 위해 혼인을 한다. 그러한 것도 기득권의 구축의 한 방법으로 정착 된지 오래 되었고 고정간첩들의 신분세탁을 위한 과정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러한 ’friendship‘의 의미는 악마와의 우정 우애이고 악마를 벗으로서의 사귐과 교우이고 그런 우호는 하나님과 본질상 대적(enemies)이 되는 것이다. ’enemies‘는 헬라어로 echthros {ech-thros'}라 발음하고.
그 안에는 제1의 의미로 hated, odious, hateful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들이 교회에 나가 예배의식에 참여해도 사실은 입으로만 하나님을 찾을 뿐이다. 그런 자들은 본질로는 하나님의 적이 되어 사는 것이다. 가짜들이다. 하나님의 적이 되어 하나님을 미워하고 싫어하고 증오하고 혐오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에 극도의 반감을 갖는 악마를 품고 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의 근원이다. 하나님의 사랑 통치에 대하여 증오할 본질과 하나님의 사랑에 밉살스러운 불쾌한 싫은 마음에 들지 않는 미운 가증스러운 싫은 것들이 나온다.
그런 지긋지긋한 대적이 되는 동맹체를 만드는 방법상에 하나가 성적 문란을 통한 결합이다. 제 2의 의미는 hostile, hating, and opposing another, used of men as at enmity with God by their sin, opposing (God) in the mind, a man that is hostile, a certain enemy, the hostile one, the devil who is the most bitter enemy of the divine government 의 의미를 담고 있다. 성의 문란과 혼인에 있는데 그 둘의 의미는 북괴의 고정간첩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것들은 다 ‘자기만사랑’에 기초를 둔다. 이는 악마의 노림수다.
악마적인 ‘자기만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에 적이다. 그 적을 제압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나라가 되려면 악마적인 ‘자기만사랑‘에 눌린 노예들을 해방해야 한다. 그런 나라가 되려면 ‘자기만사랑’을 거부케 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행하면서 이런 문란을 제거하는 일대의 대청소를 해야 한다. 그런 것이 자리매김한 것은 부부간의 사랑의 부재에 있다. 인간이 만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를 받으면 ’자기만사랑‘을 죽이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는 가정에서 창조와 생산능력이 넘쳐 나오게 되고 그로인해 국가의 예산이 기회비용으로 유출되지 않고 예산을 절약하는 효과와 국가장래에 투자하는 유용성을 낳게 하는 것이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과의 결합으로 하나님이 그들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적으로 문란하면 악마가 들어오는 것이고 악마가 들어오면 모든 것이 망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그녀가 하나님과 화목을 했다면 하나님의 본질인 사랑의 통치를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아야 한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본질로 통치를 받으면 결코 뻔뻔할 수가 없어야 한다. 인간의 본성에 거슬리는 짓을 하고도 뻔뻔하다면 이는 하나님과 화목을 한 자가 아니다. 본문의 그녀와 성적으로 결합하는 것은 하나님과 화목에 반역하는 길임에도 그녀는 화목제로 강조한다. 이는 명백한 사기이다. 성적인 결합으로 하나님과 화목이 이뤄지지 않는다. 하나님과의 화목은 성적인 결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치하신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사는데 있다. 그것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줄여서 표현하자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에 있는 것이다. 이것의 원리가 곧 성경인데, 이를 감추고 속이고 성적인 결합에서 화목이 나온다는 거짓말을 한다. 김일성주체교가 대한민국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은 그들만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랑은 김일성만을 사랑하는 것에서 나온다. 과연 그 사랑은 가족愛(애) 부부愛(애) ‘자기愛(애)’ 등을 이길 수 있을 것인가? 그 사랑의 힘을 믿을 수 없기에 그들은 가족을 인질로 잡는다. 또는 생명을 인질로 삼아 스톡홀름 러브를 만든다. 스톡홀름 러브가 그들의 묶인 줄을 단단히 한다.
이리 저리 묶은 줄의 견고함은 결국 김일성에 대한 사랑인 스톡홀름 러브이다. 노예가 주인을 사랑하는 사랑인데, 이런 결집으로 대한민국을 먹으려고 한다. 김일성은 악마적인 ‘자기만사랑’을 가지고 있다. 이런 자들이 교주가 되어 있다. 그 안에 모든 것들은 김일성의 악마적인 ‘자기만사랑’에 기초를 둔다. 이런 것은 악마적인 결집이기 때문에 그 안에 악마가 거하는 장소이다. 그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는 정반대에 있다. 하나님의 적이라는 의미이다. 'a certain enemy' 하나님의 눈앞에 현저한 적은 김일성주체교이다.
인간의 본성을 주신 분의 통치를 받아야 비로소 본성의 책망을 듣지 않는다. [요1서3:20-22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인간 본성에 판단 받는 짓을 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것으로 정권을 잡고 유지하는 것이 김일성체제다.
그것을 김정일에게 주었고 그 아들 김정은에게 물려준다. 김일성의 악마적인 ‘자기만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희생해야 하는 것이 북한주민이다. 그것의 원리가 남하한다. 그 南下(남하)를 위해 그의 주구들이 동분서주한다. 그들이 나서서 대한민국을 김일성의 악마적인 ‘자기만사랑’의 노예로 만들어 간다. 이웃의 모든 것을 다 파괴하여 김일성의 악마적인 ’자기만사랑‘의 충족을 만든다. 그 때문에 모두는 다 김정은의 노예가 되어야 하고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아야 한다. 참으로 가증스러운 짓을 하는 공동체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웃을 복되게 하는 것이고 생명의 증진을 자유의 증진을 부요의 증진을 기쁨의 증진을 건강의 증진을 공급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를 받은 결과이다. 하지만 김일성의 악마적인 ‘자기만사랑’을 숭배한 결과는 이웃의 생명과 행복과 소유와 모든 것을 다 파괴하는 파괴다. 모든 이웃을 김정은의 노예로 만들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그러한 주술은 그것을 위해 태어나고 살아야 하고 죽어야 하는 인간을 만드는데 있다.
그들이 교회의 예배를 이용하여 대한민국을 속이고 있다. 마치도 종교의 자유가 있는 듯이 행한다. 하지만 그것은 다만 선전선동에 불과하다. 오늘 날 그런 미혹이 대한민국에 펼쳐져 있고 그것들은 교회 속으로 파고들어가서 북한선교라는 미명하에 하나님을 배반하는 짓을 한다. 그들은 김일성 주체敎(교) 신자들이다. 입으로는 예수의 이름을 부르나 속으로는 김일성을 사랑하는 스톡홀름 러브에 통치를 받고 있다. 그들은 음녀처럼 남편을 배신한 여자들처럼 하나님을 배신한 자들이다. 그들이 기독교의 이름으로 대한민국을 망하게 한다.
우리는 그런 자들의 득세를 결코 방치 좌시할 수 없어야 한다. 교회의 예배를 빙자하고 속에는 김일성주체교를 섬기는 자들을 반드시 드러내어 제거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것이 이 세대를 사는 자들이 해야 할 사명이다. 그것은 인본주의적인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 가 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아서 그 사랑의 통치를 따라 행동할 때 그것들을 골라내고 제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통제 그 기름부음을 위해 일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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