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괴 붕괴時에 그 바다는 우리 바다인데, 이를 제대로 경영하는 匠人(장인)들의 合 해양수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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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북괴 붕괴時에 그 바다는 우리 바다인데, 이를 제대로 경영하는 匠人(장인)들의 合 해양수산부인가?
[잠언8:24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는 바다를 만들고 큰 샘들을 만들기 전부터 그를 만들어 경영하시고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그 신성을 인간에게 알리고자 하심으로 인해 나온 지혜 그 지혜가 그것의 창조 전부터 났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하나님 안에 있는 무궁한 지혜의 창고에서 그 원리를 가져오셔서 이미 세우셨다는 것이다. 이를 ‘前(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로 변역된 ‘I was brought forth’는 원어에 ‘chuwl {khool}’로 발음하고 ‘to twist’ ‘whirl’ ‘dance’ ‘writhe’ ‘fear’ ‘tremble’ ‘travail’ ‘be in anguish’ ‘be pained’ 의 의미 등을 담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travail’ 産苦(산고)의 고통에 포함되고 함축되는 의미를 담는다.
그 피조물 바다를 만드는 지혜는 인간이 바다를 경영하는데 언제나 産苦(산고)의 원칙을 주신 것을 의미한다. 바다는 고인 물이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인 물은 언제나 썩어간다. 썩어가는 물은 죽은 바다이다. 죽은 바다는 그 母胎(모태)가 죽었기에 죽음만 낳는다. 그 때문에 바다를 만드실 때 산고의 고통을 가진 姙娠婦(임신부)를 聯想(연상)하신 것이 아닌가 한다. 늘 살아있는 물의 바다를 企劃(기획)하신 것이다. 그 때문에 늘 살아 있어야 하는 바다로 만들기 위해 그 槪念(개념)을 모두 다 찾아내어 그것에 따라서 바다를 造成(조성)하신 것이다. 그런 개념으로 造化(조화)하신 것이다.
때문에 바다를 경영하는 것에 필요한 지혜는 造化(조화)에 調和(조화)이다. 그 調和(조화)는 그 造化(조화)를 이룬 그 모든 개념의 黃金律(황금률)의 비밀이다. 그 調和(조화)의 黃金律(황금률)을 얻으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이를 읽어내는 잣대인 讀解力(독해력)으로 얻어야 한다. 그 독해력을 얻기까지와 그것으로 행동하여 바다를 살리는 시스템을 만드는 産苦(산고)의 고통을 가져야 한다. 이런 産苦(산고)의 의미는 생명의 출산이다. 생명의 바다가 되어야 산고를 통해서 생명이 나오기 때문이다. 바다를 경영하는데 무지와 무식함은 마치도 영구불임의 胎(태)와 같다.
영구불임과 그 無子(무자)함을 극복하기 위해 부활과 생명이 되시고 바다를 조성하여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야 한다. 그 지혜를 받으면 죽은 바다라도 생명의 바다로 만든다. 이를 바다를 치유한다고 한다. 바다에 대한 치유는 21세기의 인류생존에 걸린 주요한 국제적인 難題(난제)이다. 어느 나라가 그 기술을 가질 것인가를 두고 치열한 角逐戰(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유조선의 기름유출로 갯벌이 죽어간다면, 과연 그것을 되살리는 비책은 있는가? 바다를 배우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각국은 자기들 나름대로 바다를 독해하려고 무진 노력을 다한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가 과연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구에 땅과 바다를 조성하신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있다면 바다를 읽어내는데 누구 보다 더 깊고 높고 넓고 길고 다양한 讀解力(독해력reading comprehension)을 가질 것이다. 그런 지혜를 갖도록 産苦(산고)하는 우리가 되자고 강조하는 것이다. 한국은 三面(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과연 우리는 이를 다 독해하는가? 이 바다를 경영하려면 産苦(산고)의 과정으로 그 지혜를 얻어야 가능하도록 만들어 진 것이다. 五大洋(오대양)의 의미는 六大洲(육대주)와 맞물려 상부상조하도록 이를 조성하신 하나님의 지혜의 산물이다.
하나님은 바다를 만드시고 큰 샘들을 만드셔서 그것을 통하여 그를 만든 목적을 이루시고 아울러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그 神性(신성)을 드러내신다. 이를 조성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부합하는 조화를 얻기 위해 우리는 과연 산고를 하고 있는가? 해양수산부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가 과연 바다의 깊음의 의미와 바다 속의 큰 샘들의 의미와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보화의 의미를 다 독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많은 나라에서 자기 앞바다의 비밀을 캐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지구 전체를 감싸는 바다를 하나님의 독해력으로 읽어내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그것을 모두 다 하나님의 눈빛으로 읽어내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북괴가 잠수정으로 대한민국의 삼면의 바다를 제집처럼 드나들어도 이를 감지 할 수 없는 상태라면 정말 그 무능(無子息(무자식))을 이기는 산고가 필요하다. 바다 속에 있는 ‘deep’의 의미 그 심오함의 ‘depths’의미 그 다양한 생명과 보화와 개발가능성의 비책의 의미들을 담는 ‘deep places’의 의미, 인간의 눈이 알아낼 수 없는 ‘abyss’의 이유들은, 죽어가는 바다를 치료하지 못할 때 생기는 그 아뜩한 그 심연 그 무저갱 그 나락 그 지옥 그 혼돈의 의미는 죽은 바다가 주는 의미일 것이다. 죽어가는 바다를 살려야 한다.
모름지기 다양한 생명체들의 생존의 비밀에 얽힌 ‘the deep’의 의미를 포함한 것이 ‘sea’가 아닌가? 그 바다 속에는 해양 심층수가 있고 그것이 앞으로 다가올 물 전쟁을 극복하게 하는 비밀을 담고 있는데 ‘deep (of subterranean waters)’ 그것을 과연 얼마나 읽어내고 있는가? 해저에 숨겨진 지하자원의 보고는 아직도 인간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곳이 너무나 많다. 지천으로 깔린 보고들이 가득한데 이를 알아낼 독해력이 없다. 우리는 남극과 북극의 빙하의 의미와 그 아래 숨겨진 ‘deep’의 의미를 읽어내고 있는가? 없다면 하나님의 독해력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지름길이다.
각양 의미를 가지는 길로서의 sea의미 바다만이 가지고 있는 그 협곡의 비밀 abysses (of sea)의 의미를 논할진대, 인간이 그 바다를 독해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죽음이고 모든 것을 망하게 하는 바다가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인간이 바다를 제대로 경영하지 못하면 인류는 망하게 되는 것이다. [누가복음 21:25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the sea and the waves roaring’의 원어는 헬라어로 echeo {ay-kheh'-o}로 발음한다. ‘to sound’ ‘used of the roaring of the sea’의 의미를 담는데, 인간이 바다를 죽이면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영어 echo의 의미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말씀이다. 바다 속에는 아직도 원시 시대의, 태고의, 초기의 때부터 숨겨진 기호의 의미를 가득 담는 ‘primeval ocean’의 의미를 읽어낸다면 특히 태초에 부여된 기름부음의 의미 곧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그 신성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바다 속에 흐르는 해류의 변화와 그 변화무쌍함을 어느 정도 독해하는 나라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을 데이터베이스화하여 그것의 비밀을 통해서 군사적 상업적인 가치를 창출하려고 한다. 해양대국의 지름길이다. 그 바다 속에 흐르는 거대한 해류의 의미 depth (of river)를 읽어내는 나라가 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바다와 그 深淵(심연)의 의미의 연장선상에서 아울러 무저갱과 그 음부의 비밀까지도 다 읽어내는 독해력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造化(조화)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성과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조화되지 못한 삶은 지옥으로 보내지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리의 해양수산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일본의 바다 경영의 독해력과 우리의 바다 경영의 독해력의 차이는 얼마나 되나? 북괴와의 그 독해력의 차이는? 우리는 지난 글들에서 북괴의 붕괴 시에 땅을 흡수하고 바다를 흡수하는 것인데, 북한 지역의 우리 바다를 다시 접수하게 되면 과연 어쩔 것인가?
그 때가서 그것의 비밀을 캐는데 호들갑을 떨 것이 아니라, 그들보다 더 먼저 중국 보다 더 먼저 그 바다의 모든 비밀을 읽어내야 할 것이 아닌가? 과연 그것을 읽어내는 노력을 위해 하나님이 기준 하는 산고의 고통을 치르고 있는가? 바다를 만드시기 위해 그 지혜가 산고의 고통을 치렀다고 하는데, 그 바다를 경영하려는 자들이 産苦(산고)의 고통이 없이 어떻게 생명의 경영을 할 수 있는가? 바다를 생명 있게 경영하지 못하면 어떻게 인류를 살리고 국민을 살릴 수 있겠는가? 각종 不調和(부조화)로 인해 무너져가는 바다 생태계의 신음소리가 하늘에 사무치고 있는데....
이를 알아듣지 못하는 자들이 公職(공직)에 앉아 돈만 밝히고 있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무엇이 되겠는가? 과연 우리는 우리 바다를 생명을 잉태 출산하는 바다로 만들고 있는가? 羊水(양수)의 깊음 속에 있던 아이가 큰 고통을 겪으면서 세상으로 나와 우렁찬 소리로 운다. 그처럼 생명의 소리침이 우리 바다에서 가득 나오게 하는가? 우리 沿岸(연안)의 바다 속의 생태계는 무너지고 있다는데 과연 이를 회복시킬 힘은 있는가? 회복 ‘shuwb {shoob}’ ‘to return’ ‘turn back’ 그것이 문제다. 그것은 황금률이 무너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를 하나님의 기준으로 회복시킬 匠人(장인)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해양수산부를 원한다. 북괴가 바다 속의 海路(해로)를 다 찾아내고 그것의 지형지물을 마음대로 운영할 정도로 발전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에 생명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毒(독)이 나와 대한민국을 죽일 것이 아닌가? 三面(삼면)의 바다로 생명을 잉태하고 다양하고 거대한 탄생의 소리들이 가득해야 하는 것이 우리 바다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과연 우리는 바다로 무엇을 잉태하고 어떤 산고를 통해서 그것에서 생명을 낳게 할 수가 있는가? 그것이 없이 어떻게 미래를 경영할 수 있겠는가? 해양대국이 경제대국이 되는 시대이다. 먼 바다를 경영할 독해력이 있는가?
물론 우주시대에서 우주 航母(항모)를 띄우는 나라가 강대국이 되는 것이지만 아직은 해양대국이 그 대세이고 그것을 통해서 우주 항모를 띄우는 나라로 발 돋음을 할 수가 있다. 바다에서 전쟁, 이순신 장군의 산고는 망해가는 나라를 다시 살리는 기적을 출산한 것이다. 비록 그는 죽었지만 아름다운 産苦(산고)를 한 것이 아닌가? 五大洋(오대양)을 인접하는 나라마다 그것으로 생명의 출산의 찬가를 부르고 싶어 하지 않을 나라가 있겠는가? 우리는 과연 우리의 독해력을 그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가? 바다의 모든 비밀의 의미를 다 읽어내고 그것으로 데이터베이스화 할 수 있는가?
그것으로 오대양과 깊은 샘들의 수많은 생명의 존재들을 관리하고 그것들의 거처를 확보해주고 그것들로 인해 생명의 바다 죽어가는 바다가 아니라 생명을 출산하는 바다로 만들어 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아닌가? 빨갱이들의 눈에는 오로지 대한민국을 죽이려고 하는 것 밖에 없다. 그런 것들이 대한민국의 公僕(공복)의 자리에 앉아 기득권을 쌓고 오로지 대한민국의 바다를 죽여 자기들의 돈을 챙기려는 것이다. 독도의 앞바다를 내준 것도 그런 의미가 아닌가? 독도의 바다 속의 비밀을 일본이 더 많이 읽어내고 있다는 말인데, 독해력이 현저하게 낮은 자들이 우리 공복들이 아닌가?
함에도 자기들의 수치를 숨기고 도리어 큰 소리를 쳐대는 이 惑世誣民(혹세무민)은 정녕 대한민국의 바다를 제대로 관리 경영할 수 있는가 회의가 들고 이를 책망 제거하지 못하는 국민은 과연 바다를 경영할 능력이 있는 국민인가를 두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바다가 생명을 낳고 부요를 낳는 경영의 지혜는 이를 造成(조성)하신 지혜와 부합하도록 산고의 고통을 통해서 調和(조화)의 神妙(신묘) 精妙(정묘) 奧妙(오묘) 奇妙(기묘)의 경지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를 받자고 강조한다. 거기서 이 모든 독해력의 잣대가 나오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그 신성에 부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성에 부합되면 그 영원하신 능력이 열려 造化(조화)와 調和(조화)할 수 있는 黃金律(황금률)을 주신다. 갯벌이 죽어 가는데, 이를 살리는 능력은 무엇인가? 왜 죽어 가는지 독해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데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갯벌이 무엇으로 살게 되는지 그 황금률을 모르는데 어떻게 그것에 치료를 할 수 있고 그 안에 존재들이 무슨 비율로 생존을 도모하는지 그것을 모르는 자들이 어떻게 그 갯벌을 치료할 수 있는가? 言語道斷(언어도단)이라 하겠다. 또는 牽强附會(견강부회)라, 환경을 빙자하는 자들이 누군가? 빨갱이가 아닌가?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려는 빨갱이 방식일 뿐이다. 제주도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구축하는 것은 해양대국으로 가는 捷徑(첩경)이다. 너무나 늦은 것인데 이를 방해하는 것은 그들이 환경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도리어 중국과 북괴를 위해서 그리 한 것이다. 언필칭 이들의 빙자하는 환경은 빨갱이 혹세무민이고 선전선동이라 하겠다. 公海(공해)상의 비밀과 깊은 바다 속으로 대양의 비밀을 파고들어가는 선진국은 이미 어느 정도 독해력을 갖춰가고 있는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작게는 북한지역의 바다를 곧 접수하게 되는데 우리는 그 바다를 치료하고 그 바다로 젊고 건강한 산모처럼 만들어야 한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 바다로 생명을 부요를 무수히 출산하게 해야 하는데, 그 바다 속의 비밀과 해저의 비밀을 알아내고 그것에서 수많은 부요를 이끌어내어 국가를 복되게 해야 하는데 일심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조화에 부합되는 조화의 잣대인 독해력을 얻는 것을 기피하고 나라에 숨어 있는 빨갱이들을 제거하는 산고를 싫어하고 있다. 자꾸만 싫어하면 나라가 망하는 것만 나올 것이 아니겠는가? 중국의 산업화로 동해는 이미 중금속에 오염이 나날이 가중되고 있는데 산동省(성) 맞은 편 바다는 그 바다의 오염으로 죽어가고 있다는데,
과연 우리는 우리 바다를 얼마나 살려낼 수 있고 치료할 수 있는가? 이 産苦(산고)의 비밀 그 기술의 의미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바다 창조 전부터 준비된 것이다. 그것을 누리는 대한민국이 되자고 우리는 강조하는 것이다. 海賊(해적)이 출몰하는 지역을 다스리는 지혜마저도 역부족인 나라에서 해양 무역대국의 의미는 어디까지일까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죽어가는 바다를 살려 세상을 구출하는 것이 정치여야 한다. 그것이 곧 이웃사랑의 길이고 인간의 도리이다. 바다가 죽으면 땅도 죽고 나라도 죽는다. 어서 바다를 근본적으로 살리는 대책을 강구하기를 강조한다.
<구국기도생각> http://onlyjesusna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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