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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 공작원 VS 북파 공작원
United States 무라카노 0 304 2013-09-17 02:36:21
남파 공작원 VS 북파 공작원

(앞글에 이어)

1996년 9월에 발생한 일명 ‘강릉 무장공비사건’을 모두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중에 11명은 포위에 들어 퇴로에 몰리자 집단 자살한 채 발견됐다. 26명 가운데 1명 만이 생포되고 나머지는 모두 총격 중에 죽거나,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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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무장공비 사건 때 좌초한 북한 잠수함’.

말이 쉬워 집단 자살이지, 한번 상상해보라.

옆에서 탕~하는 총성과 함께 동료들이 하나 하나 차례로 쓰러지고 내 차례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상상을~ 난 한번 상상만 해봤던 것도 소름이 끼쳤다. 그런데 북한 공작원들의 시신들을 보면(사진은 끔찍해서 올리지 않았습니다) 동요없이 줄을 지어 서서 차례로 죽음을 맞았다.

이건 인간의 한계로 버티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 무엇이 북한 공작원들을 이런 괴물로, 죽음을 초월한 존재로 만들었을까.

북한이 공작원들에게 하는 대우를 보면 이유를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다. 공작원으로 남파됐다 임무 수행 중에 죽으면 그는 무조건 북한의 공화국 영웅이 된다. 남파공작원의 가족은 그가 살아있을 때도 중앙당 최고위 간부와 같은 대우를 받지만 죽어서도 마찬가지다.

가족은 평생 자손 대대로 국가가 책임져준다. 유족은 대학도 당연히 보내준다. 간부도 시켜준다.
내가 살던 마을에 1960년대 남파됐다 죽은 사람의 가족이 있는데 명절 때마다 중앙당에서 선물이 내려온다. 해당 지역 간부들이 나서서 이런 가족을 보살펴 주어야지 이들을 등한시해서 문제가 제기되면 간부고 뭐고 사정이 없다.

반면 남한에 파견됐다 생포되면 가족은 추방돼 짐승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봐야 한다.

공작원들이 생포되지 말아야 한다는 철저한 정신교육을 받긴 했겠지만, 자신들이 죽느냐 사느냐 여부에 따라 가족의 운명이 자손 대대로 천당과 지옥으로 갈린다는 점이 이들을 죽음 앞에서도 망설이지 않고 줄을 서 있게 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남한에 와서 북파공작원 시위를 두 눈으로 보았다. 가스통에 불을 달아 굴리는 등 상당히 과격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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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파 공작원들의 시위 모습.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놀랐다. 아니, 저런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서 시위를 해야 하다니.

북한에서 남파한 경험이 있는 공작원은 누구도 못 건드린다. 북한 거리에서 보안원이 모르고 공작원을 잘못 단속했다가도 웬만큼 눈치를 줬을 때 보내줘야지 안 그러고 계속 깐죽거리다가 흠 잡히면 정말 잘못 걸린거다. 그런 권위를 가진 사람들만 보다가 저런 거리 시위는 상상도 못한다.

북한에서 공작원은 최고의 엘리트 중에 엘리트다. 그 자부심이 상상을 초월한다. 공작원의 특권 중에는 결혼할 때는 전국 각지에서 가장 예쁜 여성들을 고르고 추려 최종 수십 명을 엄선한 5과 대상 중에 사진을 보고 고르는 특권까지 있다. 남한의 최고 탤런트 저리 가라고 하는 미모의 여성 사진들을 쭉 펴놓고 ‘너 맘대로 골라’하는 셈이다.

임무 몇 번을 잘 수행하면 영웅이 돼서 평생 국가의 높은 간부가 돼서 살 수 있다. 실패해도 자신의 잘못이 아니면 고려해준다. 예전에 노무현 정부 시절에 김정일이 선물로 보낸 송이를 갖고 남에 온 북한군
대장은 1968년 1.21일 김신조가 포함된 부대의 청와대 습격 시도 때 살아서 탈출한 당시 124부대 대위였다. 임무는 실패했지만 그 포위망을 뚫고 살아왔다는 공로로 지금은 대장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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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사건 당시 체포된 김신조.

북한은 체포된 간첩에 대한 의리도 대단하다.

2000년 9월에 북한이 인수해간 비전향장기수 63명 중에 46명은 남파 공작원들이었다. 이들을 잊지 않고 끝까지 데려간 모습만큼은 우리가 따라 배워야 할 점이다.

데려 가서 감옥에 있었던 기간을 보상해 준다면서 부총리급에 해당하는 고급 주택을 주고 나이 차이가 30~40년씩 차이가 나는 젊은 아내도 얻어주었다.

남자는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말이 있다. 이렇게 자신들을 알아주는데 어떻게 목숨을 아끼랴.

그런데 공작원을 영웅 대접하는 북한과는 달리 남한에서는 오히려 북파 공작원들이 죄인 취급까지 받는다. 북한은 남파 간첩을 데리고 가는데 남한은 북파 공작원을 돌려달라는 말은 고사하고 북파공작원이라는 존재조차 오랫동안 숨겨왔다.

내가 들은 북파 공작원들의 처지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들은 임무를 수행하면 준다던 보상을 국가가 떼먹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집 한 채를 준다고 약속하고 그것을 떼먹었고 나갈 때 몸만 쫓겨나듯 나왔다고 한다. 북파공작원 중 상당수가 빈민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고작 집 한 채? 그것도 안주다니…)

오히려 죄수들처럼 보안관찰 대상이 돼서 외국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회사에 취직하려고 해도 공작원 기간의 자료가 말소돼 취직도 애를 먹는다고 한다. (할 말을 잃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공작원 중에 제대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사람도 거의 없다고 한다. (이 이상 더 나가서부터는 분노가 솟구친다.)

어떤 자료를 찾아보니 1951년부터 남과 북이 공작원 침투를 자제하기로 약속한 1972년까지 1만여 명의 북파공작원들이 파견돼 이중 7726명이 사망 또는 실종됐다고 한다. 10명에 7~8명은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죽음의 위험이 높은 임무를 수행하고도 이들은 죽어서도 명패 나마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도 없었다. 존재가 없는 사람들로 취급받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죽었다는 통보가 가족한데 제대로 가지도 못했다.

물론 북한의 남파 공작원은 최고 중의 최고 엘리트를 고르지만 한국의 북파 공작원은 선발에서 차이가 있다는 점이 다르긴 하다. 하지만 살인병기로 훈련받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건다는 것은 북이나 남이나 똑같다. 그런데 왜 하는 일은 같아도 대우는 이렇게도 하늘땅 차이일까. 그것도 불과 몇 십리 밖에서 정 반대의 일이 벌어질까.

북파 공작원들이 과격 시위와 특정 이념지지 등으로 일부 이념 세력에게서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들이 북한에 들어가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왔던 사람들인지도 다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북한에 들어가 임무를 수행하고 살아서 돌아온 분들 만큼은 열백 번 존경을 해주어도 부족한 분들이라고 본다.

손 얹고 생각해보자.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일이다, 당신은 10명 중에 절반 만 죽는 임무라 해도 거기에 갈 용기가 있는가. 나 자신도 자신 없다. 그러나 북파공작원들은 알고 갔던 모르고 갔던, 강제로 갔던, 사명감으로 갔던 어쨌든 죽음의 문턱을 넘었던 분들이다. 민주화운동 유공자가 되기 더 쉬운지 지뢰가 깔린 DMZ를 넘어가기 더 쉬운지 삼척동자도 안다.

1년에 수십 억 원의 충분한 보상을 받는 스포츠 스타들에게 표하는 존경의 반에 반만큼이라도 나라를 위해 피 흘린 분들에게, 그러고도 빈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 그런 분들에게 돌려보자. 물론 나는 북파공작원들에 대한 처우의 구체적 내용은 잘 모른다. 그러나 이들이 대다수가 불쌍하게 산다는 것은 안다.

북파 공작원들에 대우를 보면서 정말 크게 실망했다. 나라가 음지에서 피를 흘린 자신의 전사들을 버리면 벌을 받는다. 이런 것은 북한의 절반만이라도 배웠으면 한다. 너무나 부끄럽다.

북한처럼 전체주의 독재 국가가 아니어서 국가가 해주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말년을 편안하고 보낼 수 있는 집 한 채 전세금과 살아가는데 부족함이 없을 보조금 정도는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봤자 몇 명이겠는가. 이런데 내 세금이 든다면 나는 조금도 아깝지 않다.

그러나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걸었던 사람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명예와 긍지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명예와 긍지…그것이야말로 나라를 위해 몸을 내댄 사람들에게 국가가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보상이다.

1990년대 말에 중국에서 대북 첩보 활동을 하던 당시 안기부 직원들이 탈북자들을 이용해 첩보활동을 했다고 한다. 연길 백산호텔이라는 곳에 아지트를 두고 ‘진달래회’라는 조직도 만들고 고학력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훈련도 주고 했었단다.

그런데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남북 사이에 화해협력 분위기가 생기자, 그 이용하던 탈북자들을 그들이 북송되면 어떤 운명이 기다릴지 뻔히 알면서도 현지에 이들을 다 버리고 자기들만 철수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래서 북한 보위부에 잡혀가 처형된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이때 피해본 사람들을 찾아 뭉치겠다고 한 탈북자 단체가 나섰던 것으로 안다. 4명을 찾았다고 했다.

그들이 바랐던 것은 큰 것이 아니었다. 단지 한국에 입국해 살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한국에 오겠다고 목숨을 내걸었는데 실컷 이용만 당하고 결국 버려진 셈이다. 물론 이런 국가의 최고의 비밀은 흑막 속에서 나와 빛을 보기가 매우 어렵다.

1972년에 남북 7.4공동성명이 나온 뒤에도 이와 똑같은 일이 있었다. 김일성을 습격하기 위해 키워진 북파 공작원들이 어떻게 버려졌는지는 영화 ‘실미도’에서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이 죄수들이 아니라 평민들이었다는 것도 밝혀지고 있다. 그것도 수십 년 뒤에야 진실이 베일을 벗기 시작했던 것이다…

2002년 월드컵 4강에 올라갔을 때 온 국민이 떨쳐 나와 긍지높이 “대한민국”을 외쳤을 때, 그 긍지 높은 대한민국의 이면에는 이런 얼굴 뜨거운 추악한 모습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때, 보훈처에 일하는 인간들이 국가 유공자로 서류를 조작해 연금을 받고 있을 때, 빈민으로 살고 있는 북파 공작원들은 거리에서 가스통을 굴렸다.

이제라도 바꾸자. 국가를 위해 피를 흘렸음을 자랑스러워하는 대한민국이 될지, 아니면 전쟁이 나면 앞장서 도망치기에 바쁜 대한민국이 될지는 우리 손에 달렸다. 우리의 인식이 달라질 때 국가도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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