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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원에서 만난 할머니
United States 대건들 0 430 2013-11-06 13:06:07
한 명의 사제

오늘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3년 만에 한국에 오니 정말 좋았습니다. 우리나라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이 한국말로 잘 통하고 시스템도 척척 잘 돌아가고 특히 인터넷이 빨라 좋습니다.

부모님과 식사를 하고 동기 신부가 차를 태워주어서 방학동안 머물 숙소로 오는 중에 감동적인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 신부님은 통일과 북방선교에 관심이 있는 신부님이라 한 번은 탈북자들이 우리나라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키는 '하나원'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신부님께 한 봉사자가 고해성사를 보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시다고 하더랍니다. 보통은 봉사자 중에 가끔 고해를 보기도 해서, 봉사자가 원하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탈북자 중 한 분이 고해를 보기를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한 할머니께서 들어오셨습니다. 연세가 여든 내외가 되어 보이셨습니다. 그 할머니는 성호를 그으시면서 말씀도 못하시고 계속 우시더랍니다. 그도 그럴 것이 60년 만에 보는 고해성사였던 것입니다.

그 할머니는 유아세례를 받았지만 공산정권 하에서는 종교생활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종교 생활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가톨릭 신자라는 것을 철저히 숨겨야했습니다. 딸과 함께 탈북을 하였는데 그 숨 막히는 긴장을 뚫고 국경을 넘었을 때 할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성호를 그으셨습니다. 딸은 어머니가 하는 것이 무슨 행동인지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60년이 넘게 힘든 일이 있으면 남이 못 보도록 이불을 뒤집어쓰고 성호를 긋고 주님의 기도를 바쳤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의 동기 신부님은 하염없이 흐느끼는 할머니에게 계속해서 "그건 할머니 잘못 아니에요, 그건 할머니 잘못 아니에요..."라고만 되풀이 해 주었다고 합니다. 평생 고해를 못하고 미사를 못 한 것이 어찌 할머니 탓이겠습니까?

그러면서도 평생 믿음을 지켜 오신 그 할머니 앞에 저를 비롯한 모든 현대의 신앙인들은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 할머니는 60년 만에 하는 첫 미사와 영성체의 행복감에 젖어 미사 참례하시는 내내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신부님은, '우리는 왜 그런 첫 마음으로 미사에 참례할 수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맞습니다. 저도 오늘 한국에 들어오면서 공항 표지판이 한글로 되어있고 안내방송이 한국말로 나오는 것 하나에서도 너무 행복해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첫 마음이 얼마나 가겠습니까? 그렇게 먹고 싶은 음식도 한두 번 먹어보면 더 이상 땅기지가 않습니다.

저도 눈물을 흘려 본 경험을 생각해 보니 군대 들어갔을 때 몇 주 미사를 갈 수 없다가 가게 되어 눈물이 났던 적, 또 신학생 때 불만이 쌓여가서 한 이틀 굶어보고 영성체를 했더니 눈물이 났던 때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 땐 미사가 정말 은혜 자체였고 성체 하나로 온전히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험들은 서서히 또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 첫 마음으로 산다면 정말 행복할 수 있을 텐데요.

오늘은 우리나라에 첫 사제 순교자인 김대건 안드레아 대축일입니다. 저는 김대건 신부님의 대축일을 맞이해서 그 분을 빌미로 사제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만약 북한에 단 한 명의 사제만 있다고 해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해를 보고 미사를 하며 소원을 풀 수 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김대건 신부님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사제가 된 분입니다. 물론 그렇게 어렵사리 탄생한 첫 방인 사제이셨지만 채 1년도 활동하시지 못하고 잡히시어 순교하시게 됩니다. 그 때 어떤 신자들은 평생 단 한 번 한국어로 고해성사를 받고 강론을 들었을 것입니다. 한 번 미사를 하기 위해서 부산에서부터 옹기장이 행세를 하며 목숨을 걸고 경기도로 올라온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일 년도 안 되는 시간동안이지만 한국에는 단 한명의 한국말을 쓰는 사제밖에 없었고 신자들에겐 그가 유일한 보물이었습니다. 그건 그분의 성품과는 별개였습니다. 한국말을 쓰는 사제라는 것 하나만으로 그분을 구하기 위해서 많은 신자들이 대신 목숨을 바치겠다고 달려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에게 그 할머니 이야기를 해 준 신부님은 사실 신자에게 멱살도 잡히며 모함도 당하는 등 여러 상처를 받은 분입니다. 물론 사제가 먼저 잘 해야 신자가 잘 해 줄 수 있다고 말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신자들이 그 나라에 마지막 남은 사제라고 생각하고 소중히 여겨준다면 신자들의 마음을 보고라도 더 달라지려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사제에게 손을 댈 수 있는 정도로까지 사제라는 것이 하나의 보통직장인처럼 여겨지게 되었을까요?

아마 첫 사제를 대하던 마음이 사제가 둘이 생기고 셋이 생기고 더 많이 늘어났기 때문에 그 첫 사제를 대하던 마음이 무뎌져버린 것이 아닐까요? 사제도 물론 첫 모델인 김대건 신부님을 본받아야겠지만 신자들도 우리나라에 단 한 분밖에 없었던 사제를 대하듯이 지금의 신부들을 대하려는 마음을 다시 가져야하지 않을까요?

유럽 교회의 퇴락이 어쩌면 프랑스 혁명 이후 사제들을 하나의 공무원이나 직장인처럼 여겨지게 된 것으로부터 시작되지는 않았을까요? 사제를 존중하지 않으면 하느님은 사제를 보내주시지 않으십니다. 선물은 고맙게 받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제의 품위는 하느님께서 세워주시는 것이고 하느님께서 거룩하게 축성하시는 것입니다. 그 사제가 비록 부족한 점이 많다고 하더라도 미사 드리고 고해성사 드려주는 것만으로도 그런 사제를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사울은 하느님께서 사무엘을 시켜 기름을 부어 축성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입니다. 기름을 부어 축성했던 직책은 사제와 왕과 예언자였습니다. 기름은 성령님을 나타내고 하느님께서는 성령님을 부어 특별한 직무를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으로부터 축성된 사울은 하느님께 죄를 범하게 되고 자신이 받았던 성령님을 잃게 됩니다. 그렇게 되니 마음이 불안하게 되고 다윗을 시기하여 그를 죽이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다윗을 추격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 한 번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었습니다. 사울이 자고 있을 때 다윗이 부하들과 그의 막사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의 부하들은 사울을 죽이고 나라를 차지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느님께서 성별하여 뽑으신 왕을 어찌 인간이 손을 댈 수 있느냐?”며 다만 겉옷자락을 자르고 그의 창과 물통만을 가지고 왔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었고 이젠 하느님도 사실 그에게서 떠난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기름 부어 성별하신 왕이었기 때문에 옷자락을 자른 것만 가지고도 다윗은 큰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나중에 사울의 군사 하나는 전쟁터에서 크게 상처를 입은 사울을 칼로 찔러 죽이게 됩니다. 사울이 상처를 크게 입어서 어차피 죽을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적군에게 죽기를 원치 않았고 그 신하에게 자신을 찔러 달라고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찌른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앞으로 왕이 될 다윗에게 조금은 아부하는 마음으로 이 일을 아뢰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반응은 예상외였습니다. 비록 자신을 죽이려는 원수였을지라도 하느님께서 성별하신 사람이었는데 그에게 함부로 칼을 대었던 그 군사를 나무라고 즉시 칼로 쳐 죽였습니다.

아무리 형편없다고 생각되는 사제더라도 하느님께서 거룩하게 축성한 몸이고 그 사제를 욕하거나 해를 가하는 일은 그 사람을 뽑아 거룩하게 축성하신 하느님께 대해 죄를 범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죄를 우리는 ‘독성죄’라 부릅니다. 큰 죄 중에 큰 죄입니다.

사제는 김대건 신부님의 온전한 순교정신을 본받아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줄 알아야합니다. 그러나 신자들 차원에서도 사제를 마치 이 나라에 있는 유일한 사제인 것처럼 대할 줄 아는 마음을 갖는 것 또한 적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 전삼용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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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hh ip1 2013-11-06 16:50:16
    종교인은 아니지만 감동적인 이야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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